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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필리핀 여정

그림 한 장이 전하는 천국과 지옥.

by yunheePathos 2017. 4. 29.
필리핀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특별 초대 작가전 작품 3.



이 그림을 보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것이 너무나 위대한 인간의 능력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림이라는 것이 이런거구나 생각했습니다. 한 권의 책보다 위대할 수 있구나 말입니다.

그림이 잘 보일지 모르지만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이 침대에 누워 신부 세명을 앞에 두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영생을 기도하며 신부들에게 자신의 사후 구원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2천헥타르에 이르는 땅도 교회에 바쳤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중남미 지역(어떤 이들은 신세계라고 합니다) 점령자(어떤 이들은 이를 또 개척자하고 합니다)였고 대농장을 갖고 있던 유럽인입니다. 이 그림은 1600년대의 중남미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 그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작가의 매력은 커튼 뒷편에 몰래 서 있는 7개의 머리가 달린 악마와 그 악마 뒤로 숨죽이며 서 있는 선주민 인디언 소녀입니다. 이 작가는 7개의 머리를 갖고 있는 악령이 위대한 개척자와 은혜의 신부들의 기도가 끝나고 그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고요?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영혼을 잡아가기 위해서랍니다.

악령의 뒷편에 서 있는 인디언 소녀는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답니다. 죽음을 앞둔 새로운 문명의 전파자이자 신세계의 개척자라고 말해지는 대농장의 주인인 그를 저주하는 기도말입니다.

면죄부와 공덕의 논리로 하나님을 가두고 구원을 팔았던 중세교회와 서구 제국의 침략사를 풍자한 것 같습니다. 필리핀은 400년에 걸친 스페인의 식민통치 시절 멕시코에 있던 스페인 통치기구의 통제 하에 있었다고 합니다. 마치 주한미군이 미국의 태평양사령부의 통제 하에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중남미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필리핀 작가가 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국의 시대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질문을 강렬하게 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말입니다. 세상의 평화(제국의 평화)와 다른 하나님의 평화(약자들의 생명과 평화의 연대)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만이 아니라 작가 두 명이 함께한 이 전시회의 주제 자체가 '사기'랍니다.

하여튼 이 그림의 작가가 오늘 저에게 아주 아주 큰 허탈한 웃음을 준 세번째 작품입니다.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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