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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시민사회 단상 - 새로운 뿌리를 맺어갈 수 있는 씨앗을 만들고 떨굴줄 아는 후기청년들이 아쉽고 그립다. 생명은 운동을 하고 운동하는 생명은 씨앗을 만든다. 운동하는 생명을 생각한다.

by yunheePathos 2018. 1. 4.
1. 45년 해방공간과 80년 서울의 봄은 전략 부재의 준비되지 민의 허약함과 그로인한 굴곡진 역사의 질곡으로 전락했던 뼈아픈 경험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또 그 시간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됩니다.

2.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시민사회운동의 담론과 철학의 부재, 거버넌스 또는 제도화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산하기관으로 이전하는 반면 새로운 청년 리더십의 육성 전략 부재와 실패,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혼용과 혼재, 그리고 정당정치로의 주변화/하부화, 선거와 입법 중심의 동원형, 이벤트형, 언론형 시민운동의 대중화(?), 일상적 촛불 광장정치의 신성화와 절대화, 사회개조 전략과 프로그램의 빈곤 등등. 하여튼 답을 구해야할 질문은 많으나 어쩌면 시민사회운동은 파티에 정신이 없는 것 같다.

신년에 들려온 북녘의 메시지는 대단히 다행스런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이에 더 기름을 붙이는 것 같다. 웬지 뭐가 될 것 같은 분위기에 파티의 흥은 점점 더 고조되고 목소리도 높아진다. 뭔가 하나를 안하면 이젠 명함 내밀기 어렵다는 듯이 말이다. 차분하게 치밀한 자기 전략과 프로세스를 준비하지 않은채 흥에 넘친 목소리만 크게 높여서는 안된다.

차분해지기..
자리지키기.. 그 자리에서
민의 역량 돌아보기..
그리고 시민들 생활 안에서 꾸준히 준비하고
장기적으로 실행하기.

3.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과 남북한의 평화를 가꿔가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자조운동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한국 시민사회의 작동원리 또는 그 지향 방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탐구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인권 또는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제도권력을 갖거나 그 주변에 있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진보적인 권력이거나 진보된 사회는  결코 아니다.

국가권력은 시민사회의 지향과 철학을 외연으로 확장하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일 뿐이다. 국가권력 자체가 결코 평화일 수 없으며 그 자체를 정당화하거나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가치와 지향의 수원지로서 시민사회의 원류를 부정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되며 시민사회를 국가 권력의 동원 수단으로 여기거나 당대의 권력의 논리로 통제하려해서는 안된다.

도도히 흐르는 깊고 넓은 강을 찬양하며 그 시작의 원류인 깊은 생명의 수원지와 그것을 잇고 있는 작고 다양한 샛강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물론 수원지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이 온 누리를 적시는 강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넓고 큰 것, 힘과 영향력 그리고 스타십 등 우리가 외형에 취해 그 근본을 구축해가는 일에 소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4. 위를 보며 밑을 보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만을 생각하지 그 시작의 출발점이자 기반이었던 마지막을 쉽게 잊거나 보지 않는다. 종시의 논리가 부재하다. 남은 자의 문제로 치부되거나 전가된다. 그 연결 고리는 상생의 협력이 아닌 자생성을 상실한 꼬이고 얼킨 매듭이 되기 쉽다. 자원 동원의 능력에 따른 그 상대적 크기 만큼 중심과 주변이 구분된다. 시민사회에 온갖 중간 지원조직이라는 이름으로 4대강에 댐 만들듯이 만들고 이곳에 모든 자원을 집적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시민사회의 자발성과 자율성 이에 기반한 창조적 에너지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생태계는 이미 붕괴되고 철저히 동원, 규제 시스템에 의해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스타 시스템에  의해 길들여진다. 분명 댐의 유용성이 있지만 생태계의 흐름을 막거나 파괴해서는 안된다. 4대강 댐처럼.

5. 어쩌면 지금 시민사회의 껍데기를 쓴 기존 시민운동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민사회 자치 담론과 운동이 형성되거나 아니면 형해화된 폼생폼사의 피곤한 시민운동이나 제도권력의 주변화된 힘으로서만 남아 있을지 모른다. 시민사회와 제도권력의 상호존중과 긴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넓은 강의.크기를 누리고자 하는 것 만큼 다양한 샛강과 수원지를 지키고 넓혀가고자 하는 노력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뿌리가 말라가는 고목의 화려한  마지막 몸부림이자 파티를 보는 것 같다.

6. 일상의 촛불광장을 그리워하거나 신화화하는 일은 시민사회를 살리는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시민사회 작동의 원리로 추천되어서는 안된다. 민의 뿌리를 살펴보고 그들의 자치와 그들의 시민권력을 강화하고 그들간의 연대를 높여가게 하기 위한 관심과 작동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 뿌리에 청년의 혈맥이 흐르게 해야한다. 민에 의한 평화, 권력을 중심에 둬야 한다.

7. 강은 수 많은 샛강과 수원지로부터 연원한다. 수원지와 샛강이  없는 강은 존재할 수 없다. 강이 덩치가 크다하여 샛강을 잡아먹어서는 안된다. 튼실한 한 그루의 나무를 빌리면 두, 세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알아야한다. 아쉽게도 재고 정리하듯 탈탈 쓰기만 하는 것 같다. 마치 마지막 시간인듯. 그 과정에서 여린 뿌리들은 말라 죽거나 기존의 나무 그늘에 숨이 막혀가고 있다.

8. 말라죽어가는 뿌리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자 하는 마지막 노력은 그.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 할 수 있다. 꽃을 찾아가는 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자신이 끝이 아니기에 새로운 뿌리를 맺어갈 수 있는 씨앗을 만들고 떨굴줄 아는 후기청년들이 아쉽고 그립다. 나도 어느덧 후기청년이 되었다.

9. 생명은 운동을 하고 운동하는 생명은 씨앗을 만든다. 운동하는 생명을 생각한다.


2018. 1. 4.
홍성가는 기차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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