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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소도(蘇塗)가 된 삼성동 성전(聖殿)에서 선포된 '박근혜 성전(聖戰)'' - 2017년 시민평화항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by yunheePathos 2017. 3. 13.

'소도(蘇塗)가 된 삼성동 성전(聖殿)에서 선포된 '박근혜 성전(聖戰)'' - 2017년 시민평화항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역시 박근혜는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기대 이상이다. 순진한 시민들이 기대하던 반성과 사죄의 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지배 권력을 상실하게 된 것에 대해 떡고물을 나누던 자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있을 뿐이다. 대신 진실을 밝히기 위한 현실 정치 투쟁에 나설 것을 천명하고 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이로든 그 길을 호위하며 함께할 것을 선동하고 나섰다. 소도(蘇塗) 삼성동 성전(聖殿)에서 '박근혜 성전(聖戰)'을 선포한 것이다. 그에게 환상을 보는 우주적 기운이 있음을 자주 잊고 있음을 다시 일깨운 하루다.


이미 청와대는 깔끔하게 치워져 있을 것이다. 이명박이 한 건의 보안서류도 남기지 않고 나왔듯 그는 싸움의 진지를 삼성동으로 옮기며 깔끔하게 청소를 했을 것이다. 그것이 보일러와 장판의 진실일 것이다. 삼성동은 이제 그와 그의 신도들에게 역사의 성전(聖戰)을 치루는 신성한 곳, 성전(聖殿)이 되어 매일 밤낮 성지순례 코스가 될 것이다. 아마 그들은 이것이 반신반인(半神半人)에 대한 충성이자 애국, 애민의 정신이며, 나라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의 뜻에 따라 소도(蘇塗) 삼성동 성전(聖殿)에서 잃어버린 역사의 정의와 진실을 회복하기 위해 죽기까지 각오하는 '박근혜 성전(聖戰)'이라 할 것이다.


이제 소도(蘇塗)가 된 삼성동 박근혜 성전(聖殿)은 그의 제사장들이나 신도들만의 성지(聖地)가 되지 않을까?. 예수의 이름을 팔아 먹고 살아가는 이들이 그의 제사장이 되어 구국기도의 소리가 하늘을 찌를 것이며, 세종대왕처럼 30여 년이 넘도록 통치하지 못한 울분에 가득찬 통곡이 천지를 흔들 것이다. 그러나 그에 관한 작은 비밀이라도 밝혀내고자 하는 불순한 이들, 그것이 공권력이든 언론이었든간에 어떤 접근도 불허되리라.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칠 것이다. 일제 부역자들이 건국의 세력으로, 반공의 첨병으로, 독재의 세력으로 연명해왔듯이 말이다. 소도(蘇塗)에 세워진 태극기를 배경으로 웃음띈 얼굴에 외로운 악어의 눈물을 가끔 흘리면서 말이다.


박정희 유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든 만물이 그렇듯 죽음을 앞둔 그 세력 또한 마지막 불꽃을 키우고자 할 것이다. 이것은 자칫 그들만을 불사르는 것으로 머물지 않고 한국 시민사회 전체를 태우려들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 앞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음을 역사가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이것에 기름을 붓는 사람들이 탄핵 이후 승리감에 취해 당장 이들과의 통합과 치유를 주장하는 이들이다. 이것은 성전(聖戰)의 불꽃놀이에 스스로 기름을 안고 들어가는 화려한 나방의 날개 짓이다.


통합과 치유는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인과 성찰, 치열한 토론과 합의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배움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것이 민주주의 과정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지배의 허구 이데올로기가된 모든 금기와 신화를 용인해서는 안되며 이에 도전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는 이를 기반으로 모든 사람의 가치와 비전이 자유롭게 소통되고 토론될 때 상식과 문화로 한 사회의 질서로 형상화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민이라는 허위와 맞서는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주술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며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가장 비타협적으로 관철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생리적으로 범죄와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통합과 치유는 결국 권력 나눠먹기를 통한 박근혜 성전(聖殿, 聖戰)'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고, 박근혜로 상징되는 70년 매국과 독재 세력의 화려한 재기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승리의 축배를 들며 이제 검찰 수사만을 기다릴 것인가? 이제 꽃길로 오는 봄에 대한 환상을 꿈꾸며 차기 대선 투표만을 기다릴 것인가? 물론 검찰은 당연히 일체의 정치적 고려없이 박근혜와 그의 신도들에 대한 수사를 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정점에 이르는 과정을 조율하며 화려한 쇼에 가려진 양수겸장(兩手兼將)의 묘수를 찾고자 할 것이다. 자신의 뿌리를 보호하면서도 승리감에 취해있는 이들에게 제공할 풍미있는 요리를 준비하면서 말이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선거의 유불리를 따지며 검찰 수사에 단호하지 못한 이들, 통합과 치유를 말하며 스스로 화려한 불나방이 되려는 이들이 있기에 그들의 선택은 손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세력이 대통령직을 갖는다 해도 향후 검찰개혁이나 박근혜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겨울 내 움츠렸던 뱀의 독이 더 치명적임을 생각한다. 광화문에서의 화려한 축포가 누구의 환호성이 될지 지금 장담할 수 있을까? 빈약하기만 살림에 겉만 요란하고 화려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지난 4년동안, 아니 지난 9년동안 망가지는 한국 시민사회를 아파하며 제기되었고 제안되었던 다양한 사회개혁 과제들이 흩어지고 있다. 어쩌면 과정의 승리에서 잠시 미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누가 된다고 해서 세상이 쉬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새로운 한국사회를 위한 꿈이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에 모이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배는 물의 깊이에 따라 크기가 결정된다. 배를 띄우는 것은 역사와 당대 시민사회의 도도한 물결인 것이다.


지금 시민사회가 해야할 일은 박근혜 성전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한국사회 지배자들의 신화와 금기에 도전하는 일일 것이며, 새로운 한국사회 변화의 상(像)이 무엇인지 정책과 제도로 분명히 구체화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을 정당운동 세력과 공개적으로 토론해 가는 일도 하나의 중요한 과제이다. 궂이 공개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시민사회 인사들의 정당운동 편입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특정인 누가, 누가 정당운동에 편입된 것이 마치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듯 표현되거나 연대로 상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정당운동 활동가에 비해 그리고 흩어져 있는 시민들에 비해 특별히 도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다만 그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주장하고 싶은 것은 한국 시민사회가 갖는 무형의 가치와 비전, 그것이 네트워크화된 힘이 있는가의 문제다.


따라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가능한 물적, 정신적 토대로서 한국 시민사회의 가치와 비전이 무엇인지를 토론할 수 있는 작은 그물망들을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시민사회의 거대한 물결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 물결을 움직이는 순풍을 만들어가는 일, 전국적인 조직 망을 갖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과 깨어있는 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1987년 6월 '민주주의 항쟁'이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시작을 만들어낸 시민혁명이었다면, 2017년 '정의로운 평화항쟁'은 한국 시민사회가 '정의로운 민주주의'와 '평화의 시대'로 들어서는, 그래서 시민들의 자치권력이 보장되는 새로운 한국사회의 문을 열어제낀 시작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0여 년만에 역사가 주는 열매를 잘 맺을 것인지, 그것은 온전히 지금 우리의 몫일 것이다.


또한 이것이 소도(蘇塗)가 된 삼성동 성전(聖殿)에서 선포된 '박근혜 성전(聖戰)'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 삼성동에서 그를 맞이한 사람들 :
최경환·윤상현·조원진·김진태·박대출·이우현·민경욱 의원, 손범규 전 의원, 허태열·이병기·이원종 전 비서실장과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김관용 경북도지사, 전광삼 전 춘추관장 [출처: 중앙일보, 2017.03.13 02:57]




<출처 https://goo.gl/JHIhNB>


<출처 : https://goo.gl/b0hj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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