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88선언 30주년 기념 국제협의회 소개 글이 있어 옮겼습니다.
----------------------
한국교회 88선언 30주년 기념 국제협의회
1. 개 요
- 주 제: “평화를 심고 희망을 선포하다“: 한국교회 88선언 30주년 기념 국제협의회
- 장 소: 서울 동대문 라마다 호텔 (서울 중구 동호로 354)
- 일 시: 2018년 3월 5-7일
- 주 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K) 화해통일위원회
- 참석자: 국내외 포함 약 120명
2. 배 경
1)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이하 ‘88선언’)의 역사적 배경
분단은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깊은 갈등과 균열 야기했고 이는 한국교회의 삶과 선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고1980년대말 군부독재가 종식될 때까지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며, 단순히 반공주의적 입장만을 되풀이 해 왔다.
비로소 1980년대 들어 NCCK를 중심으로 반공주의를 넘어 남북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통일운동이 싹트기 시작한다.
1982년 NCCK는 통일문제연구원 운영위원회 (현재의 화해통일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듬 해에 통일정책협의회를 개최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전두환 정권의 극심한 탄압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1)
이러한 이유로 NCCK는 세계교회협의회 (WCC)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고 한국 밖에서 이루어지는 통일모임에 대해서는 제재하지 말라고 한국정부에 경고하였다.2)
WCC는 이 요청을 받아 해외에서 개최되는 한반도 평화모임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감당하기로 결정하였다.
1984년 일본 도잔소회의는 이러한 합의에 근거한 첫 모임이었다.
비록 조선그리스도교연맹 (KCF)로 대표되는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1984년 도잔소 회의는 한국교회와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체에게는 한반도 평화통일운동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카이로스적 사건이었다.3)
도잔소 회의 2년후 1986년 9월,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교회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글리온 회의 이후 남북교회 간의 많은 만남들이 세계교회들의 주선하에 이루어졌고, 세계교회들의 이러한 노력들은 88선언이 나오기까지 마중물의 역할을 하게 된다.
특별히 우리와 같이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던 독일교회가 한국교회에게 분단의 상황을 신학적으로 정리해 보라는 권고를 하게 된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분단극복을 주로 외교적 혹은 군사적 측면에서만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분단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한다.
우리 미국 기독교인들은 한국민들의 고통에 책임을 통감하며 깊은 사죄를 드린다.”4) 는 한반도분단에 대한 미국그리스도교교회협의회 (NCCCUSA)의 진심 어린 사과는 한국교회가 88선언을 발표하는데 큰 격려가 되었다.
한편 NCCK는 1985년부터 88년까지 통일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정리하기 위하여 5차례의 신학협의회를 개최하는데 이 협의회들이 88선언의 기초를 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05년 개최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주제강연에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88선언이 김대중 정부 통일정책의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었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의 통일정책의 기본정신은 6.15 선언에 잘 나타나 있는데, 즉 자주, 민의 참여, 인도주의, 대화, 협력 그리고 상생이다.
이 기본정신은 88선언의 5원칙 즉,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 인도주의, 민의 참여와 궤를 같이 한다.
88선언은 민간에 의해 이룩된 최초의 통일선언으로 민간통일운동뿐만 아니라 정부의 통일 정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 88선언의 신학적 중요성
(1) 민중 참여의 선교
1952년 세계선교협의회(IMC)가 주최한 윌링겐 협의회는 선교는 민중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5)
NCCK는 88선언에서 민족통일을 위한 기본원칙 중 민중참여를 중심으로 하는 선교의 중요성을강조하였다:
“통일을 위한 방안을 만드는 모든 논의 과정에는 민족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특별히 분단 체제하에서 가장 고통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민족 구성원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의사결정과정에서 늘 소외되어 온 민중의 참여는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6)
(2) 다름은 하나님의 축복: 경계 넘어가기
88선언에서 한국교회는 반공주의를 종교적 우상으로 숭배하였고, 북한의 형제자매들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모든 이들을 저주하였음을 회개하면서 남북의 차이를 품기 위한 첫 출발점이 바로 상호신뢰라고 고백하였다.
88선언의 이러한 죄책고백은 이념적 배타주의에 갇혀 버린 한국교회와 사회에 대한 엄정한 도전이었고 공산주의 이웃과의 신실한 대화를 촉구하는 강력한 선언이었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신앙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결단을 통하여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문적 이해를 넓히고 이념적인 대화에 필요한 이데올로기의 연구와 교육을 촉진시킨다.”7)
88선언 이후 KCF와 NCCK는 수 많은 만남과 대화의 장을 가졌으며 이는 상호이해와 신뢰형성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3) 나눔의 영성
88선언의 희년 선포를 통해 NCCK는 희년이 독재적 정치세력이 야기한 경제적 부정의를 극복하는 것임과 동시에 정의에 근거한 하나님의 평화가 실현되는 계약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임을 인식하였다.
NCCK는 이러한 희년 비전으로 적극적인 교회개혁운동을 선언했다.
희년 신앙에 나타난 나눔의 영성을 실현하기 위해 NCCK는 1995년 북한 대홍수 (수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함) 피해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1996년 "식량 나누기 (Sharing Food, Sharing Spirit)” 운동을 시작하였다.
반세기가 넘는 남북 적대관계를 고려할 때 NCCK의 모금캠페인에 대한 반응은 엄청났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캠페인의 성공에 힘입어 NCCK는 1997년 “남북나눔운동본부”를 조직했다.
이 운동본부의 주요 목적은 남북 주민들의 경제교류를 촉진하고 북한에 새로운 경제적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남한에서 모금된 재원은 북한의 농업공동체 농장이나 유기농법과 같은 대안 경제모델을 개발하는 일에 쓰여졌다.
이 운동은 2006년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체가 남북평화공존을 위한 대안적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반도 에큐메니칼 포럼 (EFK)”을 결성하면서 전세계 교회로 확산되었다.
3. 목적
- 88선언 이후 30년간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성찰
- 평화통일에 대한 신학적 비전 재정립
- 평화통일 중장기 전략과 실천 방안 연구
-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와의 연대 심화
- WCC의 정의평화순례 (PJP)에 적극적 동참
- 지역적, 국가적, 지구적 차원에서 평화에 대한 신학적 비전 제시
4. 일 정
3월 4일: 해외 참석자 도착
3월 5일:
09:00-10:00: 개회 예배 (국악 예배); 교회협 평화통일운동 30년 영상
10:00-10:40: 소개/ 인사1
10:40-11:00: 휴식
11:00-12:30: 세대간 대담: “88선언”과 지금
12:30-14:00: 오찬
14:00-15:30: 이야기 나눔1: 분단의 아픔- 제주 4.3, 간첩조작 탈북민, 개성공단 피해자
15:30-16:00: 휴식
16:00-17:30 주제강연1: “한반도 평화통일을 향한 에큐메니칼 여정”/ 울라프 트베이트 총무 (WCC), 이홍정 총무 (NCCK)
18:00: 환영 만찬: 통일부 장관 등 참석
3월 6일:
09:00-09:20: 아침기도회 (떼제기도회)
09:20-10:40: 주제 강연2: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를 향하여”/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10:40-11:00: 휴식
11:00-12:30: 패널토론 1: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를 향하여-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체의 역할”
토론자: 피터 프루브 국장 (WCC), 짐 윙클러 총무 (NCCCUSA), 이기호 교수 (NCCK)
12:30-14:00: 오찬
14:00-15:40: 패널토론 2: “분단극복과 평화 만들기- 대안은 무엇인가”
토론자: NCCK, 메튜 총무 (CCA), 크리스 퍼거슨 목사 (WCRC), 김성재 박사 (NCCJ)
15:40-16:00: 휴식
16:00-18:00: 분과토론
18:00: 석식
3월 7일:
09:00-09:30: 아침기도회
09:30-10:40: 분과토론 보고 및 종합토론
10:40-11:00: 휴식
11:00-12:20: 종합토론 (선언서 및 실천계획 “Korea Peace Plan” 제안)
12:20-12:40: 폐회기도회 (떼제기도회)
12:40- 오찬 및 현장방문 (선택사항)
................
(각주)
1) 그 당시 어떠한 종류의 통일운동도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으로 여겨져 탄압받았다.
2) Erich Weingartner, “Twentieth Anniversary Reminiscences on the Tozanso Process: Ecumenical Peace Efforts in Korea”, in Windows into Ecumenism: Essays in Honor of Ahn Jae Woong (Hong Kong: CCA, 2005), 376.
3) 도잔소 회의로 소위 도잔소 프로세스가 시작되었고, 현재는 2006년 WCC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 (CCA) 등으로 구성된 한반도 에큐메니칼 포럼 (EFK)이 도잔소 프로세스의 정신과 일들을 이어 가고 있다.
4) International Affairs Commission, NCCCUSA, Peace and the Reunification of Korea: A Statement of the NCCCUSA (New York: NCCCUSA, 1986), 1-2.
5) David J. Bosch,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 (New York: Orbis Books, 2011), 400.
6)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위원회 편, 1980-2000 한국교회평화통일운동자료집 (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00) , 106.
7) 같은 책, 109.
----------------------
한국교회 88선언 30주년 기념 국제협의회
1. 개 요
- 주 제: “평화를 심고 희망을 선포하다“: 한국교회 88선언 30주년 기념 국제협의회
- 장 소: 서울 동대문 라마다 호텔 (서울 중구 동호로 354)
- 일 시: 2018년 3월 5-7일
- 주 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K) 화해통일위원회
- 참석자: 국내외 포함 약 120명
2. 배 경
1)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이하 ‘88선언’)의 역사적 배경
분단은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깊은 갈등과 균열 야기했고 이는 한국교회의 삶과 선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고1980년대말 군부독재가 종식될 때까지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며, 단순히 반공주의적 입장만을 되풀이 해 왔다.
비로소 1980년대 들어 NCCK를 중심으로 반공주의를 넘어 남북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통일운동이 싹트기 시작한다.
1982년 NCCK는 통일문제연구원 운영위원회 (현재의 화해통일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듬 해에 통일정책협의회를 개최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전두환 정권의 극심한 탄압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1)
이러한 이유로 NCCK는 세계교회협의회 (WCC)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고 한국 밖에서 이루어지는 통일모임에 대해서는 제재하지 말라고 한국정부에 경고하였다.2)
WCC는 이 요청을 받아 해외에서 개최되는 한반도 평화모임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감당하기로 결정하였다.
1984년 일본 도잔소회의는 이러한 합의에 근거한 첫 모임이었다.
비록 조선그리스도교연맹 (KCF)로 대표되는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1984년 도잔소 회의는 한국교회와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체에게는 한반도 평화통일운동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카이로스적 사건이었다.3)
도잔소 회의 2년후 1986년 9월,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교회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글리온 회의 이후 남북교회 간의 많은 만남들이 세계교회들의 주선하에 이루어졌고, 세계교회들의 이러한 노력들은 88선언이 나오기까지 마중물의 역할을 하게 된다.
특별히 우리와 같이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던 독일교회가 한국교회에게 분단의 상황을 신학적으로 정리해 보라는 권고를 하게 된다.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분단극복을 주로 외교적 혹은 군사적 측면에서만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분단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한다.
우리 미국 기독교인들은 한국민들의 고통에 책임을 통감하며 깊은 사죄를 드린다.”4) 는 한반도분단에 대한 미국그리스도교교회협의회 (NCCCUSA)의 진심 어린 사과는 한국교회가 88선언을 발표하는데 큰 격려가 되었다.
한편 NCCK는 1985년부터 88년까지 통일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정리하기 위하여 5차례의 신학협의회를 개최하는데 이 협의회들이 88선언의 기초를 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05년 개최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주제강연에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88선언이 김대중 정부 통일정책의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었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의 통일정책의 기본정신은 6.15 선언에 잘 나타나 있는데, 즉 자주, 민의 참여, 인도주의, 대화, 협력 그리고 상생이다.
이 기본정신은 88선언의 5원칙 즉,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 인도주의, 민의 참여와 궤를 같이 한다.
88선언은 민간에 의해 이룩된 최초의 통일선언으로 민간통일운동뿐만 아니라 정부의 통일 정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 88선언의 신학적 중요성
(1) 민중 참여의 선교
1952년 세계선교협의회(IMC)가 주최한 윌링겐 협의회는 선교는 민중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5)
NCCK는 88선언에서 민족통일을 위한 기본원칙 중 민중참여를 중심으로 하는 선교의 중요성을강조하였다:
“통일을 위한 방안을 만드는 모든 논의 과정에는 민족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특별히 분단 체제하에서 가장 고통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민족 구성원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의사결정과정에서 늘 소외되어 온 민중의 참여는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6)
(2) 다름은 하나님의 축복: 경계 넘어가기
88선언에서 한국교회는 반공주의를 종교적 우상으로 숭배하였고, 북한의 형제자매들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모든 이들을 저주하였음을 회개하면서 남북의 차이를 품기 위한 첫 출발점이 바로 상호신뢰라고 고백하였다.
88선언의 이러한 죄책고백은 이념적 배타주의에 갇혀 버린 한국교회와 사회에 대한 엄정한 도전이었고 공산주의 이웃과의 신실한 대화를 촉구하는 강력한 선언이었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신앙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결단을 통하여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문적 이해를 넓히고 이념적인 대화에 필요한 이데올로기의 연구와 교육을 촉진시킨다.”7)
88선언 이후 KCF와 NCCK는 수 많은 만남과 대화의 장을 가졌으며 이는 상호이해와 신뢰형성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3) 나눔의 영성
88선언의 희년 선포를 통해 NCCK는 희년이 독재적 정치세력이 야기한 경제적 부정의를 극복하는 것임과 동시에 정의에 근거한 하나님의 평화가 실현되는 계약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임을 인식하였다.
NCCK는 이러한 희년 비전으로 적극적인 교회개혁운동을 선언했다.
희년 신앙에 나타난 나눔의 영성을 실현하기 위해 NCCK는 1995년 북한 대홍수 (수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함) 피해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1996년 "식량 나누기 (Sharing Food, Sharing Spirit)” 운동을 시작하였다.
반세기가 넘는 남북 적대관계를 고려할 때 NCCK의 모금캠페인에 대한 반응은 엄청났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캠페인의 성공에 힘입어 NCCK는 1997년 “남북나눔운동본부”를 조직했다.
이 운동본부의 주요 목적은 남북 주민들의 경제교류를 촉진하고 북한에 새로운 경제적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남한에서 모금된 재원은 북한의 농업공동체 농장이나 유기농법과 같은 대안 경제모델을 개발하는 일에 쓰여졌다.
이 운동은 2006년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체가 남북평화공존을 위한 대안적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반도 에큐메니칼 포럼 (EFK)”을 결성하면서 전세계 교회로 확산되었다.
3. 목적
- 88선언 이후 30년간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성찰
- 평화통일에 대한 신학적 비전 재정립
- 평화통일 중장기 전략과 실천 방안 연구
-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와의 연대 심화
- WCC의 정의평화순례 (PJP)에 적극적 동참
- 지역적, 국가적, 지구적 차원에서 평화에 대한 신학적 비전 제시
4. 일 정
3월 4일: 해외 참석자 도착
3월 5일:
09:00-10:00: 개회 예배 (국악 예배); 교회협 평화통일운동 30년 영상
10:00-10:40: 소개/ 인사1
10:40-11:00: 휴식
11:00-12:30: 세대간 대담: “88선언”과 지금
12:30-14:00: 오찬
14:00-15:30: 이야기 나눔1: 분단의 아픔- 제주 4.3, 간첩조작 탈북민, 개성공단 피해자
15:30-16:00: 휴식
16:00-17:30 주제강연1: “한반도 평화통일을 향한 에큐메니칼 여정”/ 울라프 트베이트 총무 (WCC), 이홍정 총무 (NCCK)
18:00: 환영 만찬: 통일부 장관 등 참석
3월 6일:
09:00-09:20: 아침기도회 (떼제기도회)
09:20-10:40: 주제 강연2: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를 향하여”/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10:40-11:00: 휴식
11:00-12:30: 패널토론 1: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를 향하여- 세계 에큐메니칼 공동체의 역할”
토론자: 피터 프루브 국장 (WCC), 짐 윙클러 총무 (NCCCUSA), 이기호 교수 (NCCK)
12:30-14:00: 오찬
14:00-15:40: 패널토론 2: “분단극복과 평화 만들기- 대안은 무엇인가”
토론자: NCCK, 메튜 총무 (CCA), 크리스 퍼거슨 목사 (WCRC), 김성재 박사 (NCCJ)
15:40-16:00: 휴식
16:00-18:00: 분과토론
18:00: 석식
3월 7일:
09:00-09:30: 아침기도회
09:30-10:40: 분과토론 보고 및 종합토론
10:40-11:00: 휴식
11:00-12:20: 종합토론 (선언서 및 실천계획 “Korea Peace Plan” 제안)
12:20-12:40: 폐회기도회 (떼제기도회)
12:40- 오찬 및 현장방문 (선택사항)
................
(각주)
1) 그 당시 어떠한 종류의 통일운동도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으로 여겨져 탄압받았다.
2) Erich Weingartner, “Twentieth Anniversary Reminiscences on the Tozanso Process: Ecumenical Peace Efforts in Korea”, in Windows into Ecumenism: Essays in Honor of Ahn Jae Woong (Hong Kong: CCA, 2005), 376.
3) 도잔소 회의로 소위 도잔소 프로세스가 시작되었고, 현재는 2006년 WCC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 (CCA) 등으로 구성된 한반도 에큐메니칼 포럼 (EFK)이 도잔소 프로세스의 정신과 일들을 이어 가고 있다.
4) International Affairs Commission, NCCCUSA, Peace and the Reunification of Korea: A Statement of the NCCCUSA (New York: NCCCUSA, 1986), 1-2.
5) David J. Bosch,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 (New York: Orbis Books, 2011), 400.
6)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위원회 편, 1980-2000 한국교회평화통일운동자료집 (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00) , 106.
7) 같은 책, 109.
88선언 30주년 국제협의회 참석자들(왼쪽부터)트베이트 WCC 총무, 크리스 퍼거슨 WCRC 총무, 메슈 조지 추나카라 CCA 총무, 정세현 전 장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728x90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mmunique for “International Conference in Celebration of the 30th Anniversary of the 88 Declaration” Cultivating Peace, Proclaiming Hope (0) | 2018.03.09 |
---|---|
한국교회 88선언 30주년 기념 국제협의회 성명서, 평화를 심고 희망을 선포하다 (0) | 2018.03.09 |
사진으로 보는 2017 제7차 한중일YMCA 청년평화포럼 이모저모 (0) | 2017.12.31 |
“두 개의 십자가를 지고, 분단과 냉전의 질곡을 넘어” - 이홍정(NCCK 총무) (0) | 2017.12.31 |
제7차 한중일YMCA 평화포럼, 광주근대 문화 탐방 (0) | 2017.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