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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숨

죽음을 객관화시키지 않은체 상징으로 희화화시키는 이들이 솔직히 두렵다.

by yunheePathos 2020. 7. 16.

<죽음을 객관화시키지 않은체 상징으로 희화화시키는 이들이 솔직히 두렵다.>

지식의 양이 아닌 가치를 대하는 태도와 종시를 견디는 힘, 그리고 이를 위한 지금의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가 중요함을 지식인들은 종종 잊는 듯하다.

비평자들과 논평자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내가 무식해서 그런지 참 쓸데없다. 울림도 없는 것들을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그리 매일 떠들어대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탐욕과 지배, 패권은 제국과 자본만의 논리가 아니라 어느 덧 그들의 '선한 뜻을 만들어가는 진정성'(아직은 그들을 존중하기에) 있는 삶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할 때인 듯하다.

삶으로 노동과 청년, 여성을 말했던 이들, 극우보수와 꼰대를 비판했던 그들이 어느덧 시나브로 중심을 상실한 정체불명의 꼰대가 되어 '유치하다', '가르쳐야 한다'는 등 지금의 청년과 여성을 말한는 이들이 되어 있는건 아닌지.

내가 아파하는 것은 한 개인의 죽음일 뿐만 아니라 그 죽음을 객관화시키지 않은체 상징으로 희화화시키는 이들이 솔직히 두렵다.

그들이 말하는 이 시대가 무엇인지 궁금하고 걱정된다. 그들의 가슴에 충만한 것이 무엇인지. 70학번, 80학번 세대들의 움직임이 정말 유의미한가. 참 할말이 많겠지만 대부분 삶과 무관한 비평자들로, 정치공학자들로 남아있는 이들이여..

어쩌겠나. 정부, 정당이 아닌 동네 조직의 시민권력을 말하는 내가. 필요에 따라 청년과 여성을 말하는 그런 사람들을 친구로 두고 있다는 것만로 어느덧 위안을 삶는 나이의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그러나..

다만 나는 아픔이 있는 곳에 그 무엇보다 우선해 있을 줄만 알기를.

그것이 하느님이 주신 존재 이유임을 아는 나 이기를..

그냥 바램이고 그동안 생각했던 마무리만을 잘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래도 가보자. 운동이라는 너의 벽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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