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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YMCA/YMCA

2024 YMCA 신년 시무 예배 말씀; 희망을 가지고 살기 (안재웅 한국YMCA전국연맹 재단이사장)

by yunheePathos 2024. 1. 4.

희망을 가지고 살기

 

안재웅 한국YMCA전국연맹 재단이사장

한국YMCA전국연맹 신년 시무 예배 말씀 (2024. 1. 2. 10:30, 연맹 회의실), 안재웅 이사장님의 허락을 구해 나눕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서 5 3〜5절)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은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크신 축복과 위로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올 해는 많은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먼저 한국YMCA전국연맹의 110주년 창립 기념행사입니다. 그리고 제주 생명평화파크에 아시아태평양YMCA연맹의 본부가 옮겨오는 경사입니다. 또한 세종 행정수도에 Y연맹 연수원 기공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부서별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성공적인 성과를 위해 모든 정성을 다 하고 있습니다. 뜻 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창립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교회협 인권센터 설립 50주년과 남북 평화통일 논의에 물꼬를 튼 도잔소협의회 40주년도 기념하게 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4월에는 총선이 있습니다. 매우 중대한 역사적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귀중한 한 표를 통해 의회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하겠습니다. 시대의 트렌드를 제대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낙오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자기의 삶을 진취적으로 개척하고자 하는 크레이티브(creative) 시대는 말 그대로 창조적인 사고와 협력에 따라 생존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직업이나 직장의 컬러도 분명하게 구분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노동계층은 Blue컬러로, 사무직은 White 컬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BlueWhite의 중간은 Gray로 부릅니다. 기계를 다루면서 컴퓨터 조작을 책임진 부류들입니다. 서비스 업종은 Pink컬러로, 환경관련 업종은 Green컬러로, 그리고 금융계통은 Diamond컬러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이런 구분에서 다각적으로 활약하는 사람들이 요즘의 대세입니다. 이들을 Rianbow컬러 세대라고 부릅니다. 한 직장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동시에 여러 직종을 무난히 해내는 Rainbow세대를 주목하면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트렌드는 재택근무 혹은 원격근무를 가능케 합니다. 효율성으로 볼 때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미래는 점점 다양화된 재능을 가진 능력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어 갈 것입니다.

 

매우 부담스런 미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은 금물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 의 저자 Soren Kierkegaard절망이야 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절망을 넘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방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대책도 없이 질주하는 군상을 보게 됩니다. 온갖 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미래 삶에 축복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두렵기만 합니다.

 

1960년대 신학계의 화제를 일으켰던 "신 죽음의 신학"은 큰 논란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Thomas Altizer신의 죽음이 역사적인 사건임을 알아야 한다. 신은 우리 시대, 우리 역사, 우리 존재 안에서 죽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인간이 신에게 바라는 어떤 기대도 할 필요가 없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초월자인 하나님은 죽었고, 세계에 내재하는 인간 예수만이 남았다는 급진적인 신학적 입장을 피력하였습니다. 또한 William Hamilton과 공저로 발간한 급진신학과 신의 죽음(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은 많은 파장을 일으켰으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신 죽음의 신학"Jurgen Moltmann희망의 신학(Theology of Hope)”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문제는 어떤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유보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 Moltmann입니다. 역사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미래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신학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희망의 촛불을 꺼버리지 않고 살려놓은 것입니다. 희망의 신학의 주제는 미래와 희망으로 요약된다고 하겠습니다. 현재를 강조하는 실존주의 신학과 달리 희망의 신학은 미래를 강조한 것이 특징입니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와 관련될 때만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의 신학은 때로 미래의 신학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Moltmann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에 차출되었다가 1945년부터 3년간 포로가 되어 벨기에와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미군 군목이 준 신약성경과 시편합본을 정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쟁의 참혹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는 신정론의 문제에 고심하는 한편,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 생존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포로생활을 통해 신정론의 문제와 희망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Moltmann은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당대에 세계적인 신학자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의 주요 저서를 꼽는다면; 희망의 신학(1964),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 그리고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1975)삼부작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희망의 신학은 종말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였습니다. 희망이 모든 것을 추진하는 동력과 기초가 된다는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는 종말론을 신학의 중심 주제로 간주하고 신학 전체를 종말론적 관점에서 연구했습니다. 희망의 신학의 중심을 이루는 두 개의 개념은 희망과 약속입니다. 희망의 신학에서 희망과 약속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에 있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희망의 생명력을 체험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습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살아남는 대신에 포기한 자들은 병들어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삶과 죽음의 분수령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모든 문제들은 미래에서 그리고 미래에 의해 대답될 수 있다고 보는 Earnest Bloch희망의 철학에 자신의 신학을 적용하여 나온 것이 희망의 신학입니다. Bloch는 희망이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으로 인식하였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희망은 아직 아닌 존재의 존재론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무언가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희망은 인간 존재의 필연적 특성이기도 합니다. Bloch의 철학 에세이는 이렇게 끝납니다. “역사의 뿌리는 바로 인간이다. 그는 노동하고 창조하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이를 뛰어넘지 않던가. 만약 인간이 자신을 파악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안에서 소외 없는 자기 자신을 증명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유년기에 갈구했으며, 아무도 아직 실현되지 못한 어떤 것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고향이다.” 인간과 세계가 이상적인 상태에서 행복하게 결합한 유토피아적 상태를 고향이라고 표현한 것인데, 그 고향에 다다를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창세기가 시작된다.“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Moltmann은 교회의 과제는 개인을 회심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사회 구조의 개혁에 힘써야 하고, 신학 역시 세계가 무엇인가를 단지 해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신학의 과제는 인간답게 살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희망의 성취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인간은 미래의 도래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희망의 성취는 많은 부분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 달려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신학은 따라서 행동신학입니다. 그것은 왜 하나님이 세상의 악에 대하여 어떤 일을 하지 않는가를 묻는 대신 악을 변화시키려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교회는 현 역사 안에서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어떤 정치적인 힘을 위하여 현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희망의 신학에서 본 교회론의 한 단면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란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란을 당해도 인내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담대하게 2024년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 랑과 인도하심이 늘 우리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2024년 Y연맹 신년 시무식 예배말씀_안재웅 이사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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