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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힘을 합해요

오랜만에 글다운 짧은 글을 한편 읽었습니다. 치열함과 진정성이 사라진, 입 바른 말만 앞세우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벗어버릴 수 있는. 송경동이 시를 쓰기 힘든 시대 / 노순택

by yunheePathos 2010. 10. 30.
[문화칼럼] 송경동이 시를 쓰기 힘든 시대 / 노순택

[한겨레신문] 2010년 10월 29일(금) 오후 08:45



[한겨레] 시인이 떨어졌다.

말랑말랑한 시어로 상한가를 치던 어느 시인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소식이라면 차라리 나으련만, 시인의 몸뚱이가 떨어졌다. 포클레인에서 떨어져 발목뼈가 작살났다.

전화기를 타고 “송경동이 떨어졌다”는 다급한 말들이 꿈틀댈 때, 올 게 왔구나 싶었다. 나는 그것을 부고라고 생각했다. 광화문 한복판을 걸으며, 내가 이렇게 시인의 죽음을 듣는구나 싶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이 빌어먹을 시인을 용서하지 않는 것과 궁극적으로는 그를 지워버리는 것, 그가 미련을 뒀던 온갖 일들에 아예 신경을 꺼버리는 일뿐이리라. 그 죽음은 분명코 타살이지만, 자살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이미 죽어버렸으되, 나는 내 안에서 다시 그를 죽이기로 다짐했다. 내 경고를 묵살한 너에게, 나는 이렇게 응답하련다.

헌데, 죽지 않았다. 시인의 머리통이 박살난 게 아니라, 발목뼈가 으스러졌다는 얘기였다. 미련한 그 시인이 제 몸뚱이 하나 가누지 못해 포클레인에서 떨어졌다는 전화였다. 실수로.

나는 별안간 시인을 사랑하기로 한다. 언젠가는 그도 고상한 시인 반열에 낄 날이 오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한다. 어쨌건 살았으니까. 으깨져 퉁퉁 부은 발을 질질 끌면서도 기어이 그 위로 다시 올라갔다지만, 거기서 끙끙 앓으면서도 내려갈 수 없노라 생고집을 부렸다지만, 죽지 않았으므로 일단은 용서키로 한다.

사실, 그는 죽을 뻔했다. 죽기를 자처했었다.

6년 넘도록 피눈물 나는 복직투쟁을 벌여온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초라한 천막이 포클레인에 위협당할 때 하필 그 자리에 있었다. 정신 차려 보니 포클레인에 기어올라 맨몸으로 삽날을 막고 있었다. 포클레인은 멈췄지만, 경찰이 들이닥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포클레인 위에서 그가 매달린 건 전깃줄이었다. 그는 고함을 낭송했다. “너희가 다가오면/ 나는 손을 놓는다/ 손을 놓는 건 나지만/ 나를 죽이는 건 너희들이다.”
경찰이 물러가고서도 시인은 열하룻밤을 꼼짝 않고 포클레인을 점거했다. 그러다가 볼품없이 떨어져 발목뼈를 부수고 만 것이다.

어쩌면 깨지고 부서지는 게 그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늘 실패하는 질문을 붙들고 다녔다. 평생 농사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대추리의 늙은 농부들이 전쟁기지를 지으려는 나라의 몽둥이에 떠밀려 들녘에서 흐느끼고 있다, 이럴 때 시인은 뭘 해야 하는가? 송경동은 현수막으로 목을 감은 채 국방부가 파헤친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창문 없는 공장에서 악기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이럴 때 시인은 뭘 해야 하는가? 송경동은 자본이 철수해버린 불 꺼진 공장에서 울었다. 찌라시를 만들고, 투쟁을 조직했다. 살려고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이 새까만 재가 되어 내려왔다, 이럴 때 시인은 뭘 해야 하는가? 송경동은 불타버린 남일당을 지켰다. 장례도 못 치른 채 냉동고에서 떨던 죽은 이들의 부활을 종용했다. 최저임금 64만1840원보다 딱 10원 더 받으면서도 일하는 게 삶이었던 여성노동자들이 ‘딸랑 문자 한 통’으로 해고돼 6년을 처절히 싸우고 있다, 이럴 때 시인은 뭘 해야 하는가? 송경동은 해고노동자들에게 달려드는 포클레인을 막아섰고, 그 위에 올랐으며, 경찰이 조여오자 전깃줄에 매달렸다. 아, 전깃줄에 매달린 시인이여, 시는 대체 언제 쓸 텐가.

시인은 끝내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가 남기고 간 포클레인 위에는 해고노동자 김소연씨가 대롱대롱 매달려 추위와 무관심과 침묵을 견디며 바짝 말라간다. 노동을 허락받지 못한 노동자와 시를 허락하지 않는 시인이 주고받는 이 고단한 ‘시’.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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