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민사회

거짓 화해와 평화!-이 껍데기를 언제까지 뒤집어 쓰고 있어야 하는가?

by yunheePathos 2016. 7. 29.
역사정의를 무시하거나 파괴하는 자들이 현재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밝힐 수 없음은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는 청산되지 못한 친일과 독재의 유산이 정치와 경제, 언론 등 우리 사회의 뼈속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에 의해 법과 정의 그리고 시민사회 공공의 윤리조차 돈으로 가리워지고 미몽의 거짓으로 몰역사적인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최소한의 윤리와 정의조차 산산히 파괴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화해와 치유는 약자와 피해자의 용서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해자의 강권에 의해 이루어지는 윤리가 되고, 총칼을 앞세운 힘에 의한 거짓 평화가 사랑의 평화를 대체하는 것 또한 정상일지 모른다. 그들 또한 가해자의 역사와 정신을 공유하고 있기에 약자와 피해자에 의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치유와 평화는 그들에게 독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약자의 화해와 평화는 정의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그들이 지배하는 주류의 여론과 법의 이름으로 배척되고 가해자의 힘에 의한 거짓 윤리와 평화가 강요된다. 그것은 이미 돈의 권력으로 공고화된, 돈이 모든 것의 우선이 되는 새로운 신분 사회로 드러난다.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된다. 주먹이 모든 것에 앞서는 사회와 다를 것이 무엇이며 그 얼마나 퇴행적이며 잔인하고 불행한 사회인가? 일본과 한국의 현 정부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일부 지배집단에 의해 자행되는 역사왜곡은 다른 듯 하지만 그들의 본질이 동일함을 확인해주는 것이며, 동아시아를 새로운 냉전의 갈등으로 몰고가는 것은 영구히 공고히 하고자 하는 그들의 목적과 지향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일 개혁교회 운동의 선구자였던 마틴 뇌뮐러 목사의 시(나치가 그들을 덮쳤을때 또는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는 독일이 어떻게 나치 지배의 나락으로 떨어졌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시민들이 지배자들의 공포와 위협에 굴복하는 것, 그래서 허물어져 가는 공공의 가치에 대한 연대와 협력을 외면하는 것, 그리고 지금 당장 내 일이 아니라며 눈감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당장의 이익에 몰두하는 것.. 나치는 이런 시민들의 몰역사적 행위에 대한 댓가라는 것이다.

힘에 의해 강요되는 거짓의 화해와 치유 그리고 평화는 99%를 차지하는 약자(한 고위 공무원에 따르면 개•돼지)의 것이 아니다. 지배그룹의 안 마당으로 자부하며 살았던 성주의 모습은 강자들이 만들어 온 허상의 그늘에서 안주하고자 했던 약자들의 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마치 시민들은 가만 있으라 하며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쳤던 이승만에 대한 시민들처럼..

전후 독일은 역사정의를 다시 세우고자 지속적인 나치 청산과 피해자 배상 그리고 이웃 피해 국가에 무릎까지 꿇으며 적극적으로 사죄에 나서는 한편 나치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좌•우 정부 공동으로 역사의식을 갖춘 민주시민을 형성하고자 수 많은 돈과 시간을 시민정치교육에 투자했다.

이런 나라에서 조차 나찌의 망상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판국이니, 역사청산은 고사하고 제대로된 토론조차 막혀 있는 사회에서야 물어 무엇하겠는가? 답이 없으면 부족함을 알고 조용히 물러나면 되는 일을 되려 호통치는 세상이 되고 아무런 부끄럼이나 거리낌없이 국민의 이름으로 거짓 화해와 평화가 강요된다.

소위 고위 공직자들은 부패와 비리로 썩은내가 풍겨도 그들을 전담하는 수사기구 설치를 반대하며 끼리끼리 알아서 하겠다고 하며 국민을 개돼지처럼 취급하곤 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위기를 초래하고  자녀들의 삶 또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음이 명약관화함에도 불구하고 누가 어떻게 왜 결정했는지도 모를 사단을 믿으라고 윽박지르며 겁박하기 바쁘다. 수백명의 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일에는 세금 낭비라며 수수방관과 비협조 그리고 방해까지 하더니, 재벌의 이익 앞에서는 그 높던 눈 꼬리를 감추며 온갖 명분의 공적자금을 퍼부으며 비위 맞추기에 바쁘다.

소통하자는 국민은 갑자기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부도덕한 집단이 되거나 외부세력이 되어 종북이 되고, 대다수 국민은 채찍이 두려워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개•돼지가 되어야 한다. 온갖 찬사와 찬성의 목소리만 높고 비판과 반대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개•돼지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누가 개•돼지가 되는거지?)

이 껍데기를 언제까지 뒤집어 쓰고 있어야 하는가?

팍스로마나(Pax Romana)체제 하에서 '세상이 주는 평화는 나의 평화와는 다르다'며 죽어갔던 예수의 화해와 평화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틴에 대한 분리 고립 지배를 비판하는 그림. 이 그림이 떠 올랐다. 지배의 정치학은 그 정도와 양상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본질은 동일한 듯하다.>


위안부 재단, 20년전 '아시아여성기금'보다 되레 후퇴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