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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YMCA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와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삶에 관심하는 사람들

by yunheePathos 2010. 8. 4.

삶의 푯대를 찾아 헤매는 것은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줄 수 있는 생명수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마무리에서 욕심을 벗고 인생의 행복감을 가질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얼마전 부터 옛날 친구들 - 이것도 약칭 예친이네요 - 을 몇몇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은 예수쟁이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에 대한 탐구를 20년 넘게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우리가 제도교회에서 요구하는 교회에 충성하는 충성파이거나 신실함으로 무장된 사람들은 아니랍니다. 하나님없는 성숙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가졌던 본훼퍼가 그나마 좀 친근성있는 목사라고 할까요? 종교적 행위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답니다. 단지 삶의 현장에서 세상에 보내진 증거이자 편지로서 역사에서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와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삶에 관심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만나기는 한 참 만났는데, 이제 모임을 잘 다듬어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으로 어제 회의같은 회의를 첫 모임으로 했답니다. 앞으로 청년들과 평화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이 쉼과 학습을 함께할 수 있는 교육관을 꿈꾸며, 기독교에서의 수련 전통과 연찬, 상담과 치유프로그램을 배우고, 변화된 삶을 위한 배움을 기획하기로 했답니다.  

오늘 올리는 자료는 이 모임(예수를 찾는 친구들(예친), 2010년 8월 3일. 4시. YMCA연맹 지하 회의실)을 위해 급하게 작성한 잡글이랍니다. 개인적으로 보관을 해야해서 올리는 것이 절대 보시거나 참고하시지 마시길..

예친 8.3.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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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친(예수를 찾는 친구들), 2010년 8월 3일. 4시. YMCA연맹 지하 회의실


<<횡설 수설>>


1.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감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할까, 아니면 우리가 왜 모이기에 힘쓰는가에 대해 정리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넓은 세상살이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부터 작성해야 할 것인가? 이것부터 정리하는 것이 빠를 것 같다. 생각을 하다하다, 사실은 다른 일에 밀려 3시부터 이 글을 쭉 횡설수설하기로 한다.


2. 이것은 우리의 의기는 높데 구체적이지 못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여러가지 조건을 준비해오지 못한 어린 걸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아이가 성장하기 까지 2,000번의 넘어짐을 통해 걸음을 배우고 뛰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 넘어지는 과정의 아픔과 좌절도 있을 법하지만 인지능력이 그리 발달하지 못한 아이는 그 아픔을 또 다른 기쁨으로 대신하며 다시 일어나고 높어지고를 반복하며 자신이 인식하기도 전에 주위 사물과 사람들의 도움을 구할 줄 알고 우뚝 일어서게 된다.


아마 우리의 과정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과거의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듯이 예전의 의기만으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개발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한 만큼 세월이 급하기도 하고, 판단의 빠름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를 예단할 수 있는 힘이 있기에 쉬이 포기하거나 접을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높다.


3.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장점 또한 있다. 흘러간 과거의 시간과 경험, 고민들을 지금도 붙잡고 20여년을 누룩처럼 묵혀왔고 그것이 이제 여러 모양으로 발현될 채비를 하고 있으며, 우직한 소처럼 빠른 판단만을 의지 않는 신념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일감으로 제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공동의 관심으로 강렬하게 공유하는 감성들이 있다. 이것은 예수쟁이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인으로서의 행위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세상에 보낸 편지이자 증거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고자 하는 고백과 역사의식이다. 또한 우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를 소중히 하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함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한 궁극적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강점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정을 성숙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4. 결론적으로 우리의 현재 상황은 의기는 높데 구체적이지 못하며, 준비된 것이 없다. 그러나 누룩처럼 번질 수 있는 20년 묵은 내공과 공동의 정서적 기반과 신뢰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넘어짐을 조심하며 우뚝 설 수 있도록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를 세워갈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인원의 많고 적음이나 물질의 많고 적음이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가 갖는 강점은 우리 모임을 위한 강점일 뿐만 지금의 시대를 새롭게 열어 가는데 있어서도 대단히 훌륭한 자산이다.


<<궁극적 관심에 대한 공유와 정서적 신뢰가 왜 강점인가?>>


그동안 자본주의 체제와 독재정부 시스템, 분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제도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권력교체를 통한 사회변혁의 꿈이었다. 인문학의 풍토 또한 객관과 주관의 분리, 과학적 분석이라는 이름의 자연과학과적 체계의 도입 등 객관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과학적 사고를 우선시 해왔다. 또한 이런 결과로 자연스럽게 국가권력과의 싸움을 통해 가치와 문화적 진지를 구축하기 보다는 시스템을 통한 인간의 개조, 변화를 지향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90년대 초반 이후 시민사회론과 시민사회의 등장은 체제적, 중앙 권력과의 싸움에서 구체적인 사안을 갖는 운동으로 관심과 무게를 전환하였고, 운동 주체론의 관점에서도 노동자, 농민의 중심에서 소위 부문과 영역에 따른 구분이 작동되고 이에 따라 전문화, 분업화 과정을 거쳐 지금에 오고 있다.


그러나 1995년 이후 전문화, 분업화 된 운동은 시민 참여의 방법 보다는 전문가 그룹 중심의 소위 대변형 운동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이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신자본주의에 따른 초국적 자본주의 질서, 제국의 질서에 대응하는 지구화시대 시민운동의 화두가 등장하면서 지역에서의 생활자 운동, 지역운동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변화된 질서에 대한 대응 방식과 주체 형성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지구화시대에 국가권력이 연성화되면서 국가권력으로만 지구 자본 체제에 대응할 수 없다고 보는 관점이며,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공간인 지역단위에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자본에 대한 대응이 주요 관심사였다.


보다 더 크고 중요한 변화는 60, 70년대 서구사회에서 제기된 생태주의와 생산력주의를 공동기반으로 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파괴될 수 밖에 없는 자연생태계 - 지구온난화, 에너지 및 자원부족, 식량위기 - 등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자연과 인간과 상호간의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하는 문명 전환론적 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것의 경과적 결론으로 제기된 운동이 생명과 평화의 질서를 갖는 가치운동이다. 생명평화운동은 김지하의 동양사상에 입각한 생명론 이후 운동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로 볼 수 있다.


생명평화운동은 인문학이든, 물리학이든 과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삶의 가치와 태도로는 생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이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체제에 공통으로 지적되는 사항이다. 또한 과학기술문명에 기초한 현대 문명은 남북간 양 체제의 극단적 격차를 발생시키고, 제국지배 질서에서 인간의 삶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자연의 질서가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가치에 의한 공동체적 질서와 인간혁명이라는 주제가 새롭게 부각되게 되고, 이것은 결국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인 자본주의 질서에서 내려와 새로운 질서를 살아가는 삶을 가꾸는 것이다. 개인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은 자본주의적 개념이며, 사유재산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철학적 개념이다. 개인, 자유는 사유재산을 축적하고 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개념 틀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이것을 폐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재구성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마틴 부버의 <나와 너>에서 제기하듯 너가 없는 내가 없고, 내가 없는 너는 없다. 하나님 없는 내가 없고, 내가 없는 하나님은 없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도 동일하다.


역사적 예수가 주는 메시지인 평화,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예수가 주는 평화,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도록 안내하는 기도하는 삶, 그리고 깨달음을 촉구하는 도마의 이야기는 기독교가 갖는 이 시대의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궁극적 관심은 결국, 생명의 뿌리를 소중히 하며, 자치하는 삶, 연대하는 삶을 통한 평화로운 삶, 행복한 삶을 나누는 것일 것이다. 생명평화의 행복 화수분을 만들기 위한 삶. 그것이 예수운동 아닐까..


미시적인 것을 통해 거시적인 세상을 분석하고, 거시적인 해석을 통한 미시적인 문제의 해결.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은 문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며, 상호 연관성을 분명히 깨달으며 현재의 작은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일거리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 생명평화운동의 지향 :
‘나로부터 시작하는 운동, 공명하는 변화, 또 다른 삶의 고백’>>


생명평화운동은 ‘생산력 지상주의에 매몰된 경쟁과 물질의 시대에서 ‘살아 있음’과 ‘이웃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찾는 운동, 반물질, 반자본 운동’이다.


기독교운동으로서 생명평화운동은 ‘생명이신 하나님의 지체로서 모든 만물이 생명의 소통을 이루고 거듭남으로써, 새 하늘, 새 땅, 새 인간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다. 생명평화운동은 따라서 ‘반자본, 반물질’의 관점에서 ‘생산력 지상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초국적기업과 제국(주의)’, 이들의 경제적 기반인 ‘에너지와 금융독점 체제’, 이를 지탱하는 ‘힘의 논리(정치안보주의, 군사주의)와 무한경쟁의 경제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지구화 이데올로기(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와 삶의 질을 보장한다)’에 대한 대응하는 새로운 문명전환운동이며, 제국(주의)체제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에 과감히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문명전환운동으로서 ‘반물질, 반자본’ 운동은 ‘대량소비와 끊임없는 죽임의 경쟁’으로만 유지될 수 있는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와 인간 공동체의 건강’을 척도로 ‘사회적 공정, 존재의 풍요로움을 지속 가능케 하는 사회적 협동’을 높여갈 수 있도록 ‘비시장적 질서, 즉 주축경제’를 확대해가는 운동이다. 이것은 ‘개인 주권의 삶을 주창하고 개인주권의 세계로 연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국사회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어려움과 제도와 정책의 문제로만 해소될 수 없는 다면적인 문제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하는 방식, 즉 한 사회와 세계의 문화(가치, 정신, 태도 등등)가 중요시된다. 생명평화운동은 ‘내가 없는 타자에 대한 규정’, ‘타자가 없는 나만의 수련’ 그리고 ‘공동체 중심의 생활’만으로는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


결국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추구는 ‘사회와 개인의 삶에 드려지고 있는 위기와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며, 어떻게 반응하며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화적 맥락과 텍스트에서 근대성의 문제를 다시 고찰해야 한다. 문화, 역사,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분한 성찰과 근대사회와 현대사회 문명에 대해 비판적으로 되돌아 볼 수 있는 담론과 깊이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명평화운동은 그동안의 운동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성찰의 힘을 기르고, 이를 토대로 생명과 평화를 노래해야한다. 이것이 개인과 집단, 집단과 자연, 국가와 세계, 국가와 지역, 이동과 정주, 노동과 삶, 개인과 사회, 세계 등 현대 물질문명이 우리에게 던지는 주제들에 대한 우리의 응답을 찾아가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성찰하는 삶, 깨달음을 깊게하는 삶, 자치하는 삶, 연대하는 삶, 행복을 가꾸는 삶, 교육하는 삶.

우리 스스로가 행복한 삶을 가꾸는 운동을 하자.


1. 교육관(도서관)

-. 쉼과 학습과 수련이 있는 공간.

-. 국내외(아시아) 활동가들이 교류하는 공간

-. 새로운 삶의 지향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교류와 네트워크, 학습

▷ 교육, 학습, 쉼, 노동, 연대 등

▷ 50-80명 규모의 숙박과 쉼의 공간

▷ 예산 1억 5천 2억. 폐교 인수/장기위탁, 자치단체와 협력, 법인의 문제.

생명학연구원 작업, 화천의 문제, 기타 폐교, 지리산 등.


2. 에큐메니컬 운동단체로서 기능

-. 에큐메니컬운동에 대한 분석

-. 신학적 성서적 토대 마련

-. 기독교 메시지와 이에 근거한 현실 비판, 행위 운동..

작은 것을 소중히 하자.


3. 학습, 배움의 마당.

-. 일단 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자..

-. 필요한 것을 학습하자. 성서신학, 생명평화운동, 에큐메니컬운동, 현실운동, 이슈 등


시급한 결론 : 일단 3번을 하면서 2번을 하자. 그리고 1번의 꿈과 지향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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