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컬 운동 이해
안재웅 (한국YMCA전국연맹 재단이사장, 전 CCA 총무)
이 글은 안재웅 한국YMCA전국연맹 재단이사장이 2019 한국YMCA 간사학교(2019.1.15. 파주 홍원연수원)에서 강의한 강의록입니다.
안재웅이사장님의 허락을 구해 올립니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이해_2019.1._간사학교 강의.pdf
교회사학자들은 20세기에 일어난 에큐메니컬 운동을 16세기 종교개혁과 더불어 교회사의 양대 분수령으로 꼽는다. 종교개혁에서 비롯된 갈라진 교회를 하나의 교회로 묶으려는 운동이 바로 에큐메니컬 운동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계기로 에큐메니컬 운동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첫째: 에큐메니즘(Ecumenism)에 관한 이해
에큐메니컬 운동은 에큐메니즘을 이해하여야 하고 그 말의 뜻이 “오이쿠메네” (oikoumene)라는 그리스말에서 왔다는 사실도 참고해야 한다. 오이쿠메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the inhabited earth)이라는 포괄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오이쿠메네는 “오이케오”(oikeo) 즉 거주한다는 동사와 “오이코스”(oikos) 즉 집, 처소, 거처, 또는 가족 (household)이라는 명사를 모두 포함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
오이쿠메네는 우주 가운데서도 지구라는 곳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인간, 동물, 식물, 그리고 광물 등 모든 피조물들이 한 식구처럼 살아가는 숙명적인 공동체를 뜻한다.
에큐메니즘은 성서적 의미로 보면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엡 4:5)라는 고백과 함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라는 보편적인 인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에큐메니즘의 핵심은 일치와 갱신을 앞세워 갈라진 교회를 하나의 교회가 되게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주권에 절대 복종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에큐메니컬 운동이다. 결국, 에큐메니즘은 교의학에 기반을 두고 선교신학, 상황신학, 정치신학, 실천신학 등을 포괄하는 동시에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 함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둘째: 에큐메니컬 운동의 역사 이해
초대교회의 하나인 고린도 교회를 보게 되면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고전 1:12) 라는 바울의 서한에서 교회 분파를 걱정하는 그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초대교회는 1054년 대분열이 생길 때 까지는 하나의 교회였으나 결국 동방정교회와 서방가톨릭교회로 갈라지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로마 등 5대 교구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앞의 네 교구는 정교회로 그리고 로마가톨릭교회는 단독으로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동방정교회는 두 줄기로 갈라지게 되는데 Greek Orthodox와 Russian Orthodox는 the Greater Oriental Churches로 Armenian, Syrian, Coptic 그리고 Jacobites Orthodox는 the Lesser Oriental Churches로 양분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Martin Luther가 1517년 종교개혁을 주도함으로써 개신교가 시작되었고 개신교는 여러 분파로 나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 역시 사소한 분열을 경험했지만 하나의 교회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첫 번째 “에큐메니컬협의회" (Ecumenical Council)가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후 일곱 차례나 계속되었고 마침내 “니케아 신조”를 공동의 신앙고백으로 받아 드리게 되는데 381년 콘스탄티노플 협의회에서 이를 확정 한 바 있다. 이것이 바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로, 요즘 우리가 고백하는 이른바 니케아 신조인 것이다. 초창기 에큐메니컬 협의회가 만들어 낸 성과라 하겠다. 또한 교회와 국가와의 미묘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도 에큐메니컬 협의는 불가피하였던 것이다.
교회는 중세 암흑기 이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경험하였고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18-19세기의 경건주의와 복음주의 전성시대를 지나 20세기와 더불어 에큐메니컬 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 가운데 한분인 W.A. Visser‘t Hooft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시작을 1910년 에딘버러에서 개최한 “세계선교사대회" (World Missionary Conference)로 꼽는다. 물론 에큐메니컬 운동과 관련된 여러 모임을 거명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1910년을 에큐메니컬 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보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에딘버러 선교사대회 앞서 1854년 New York과 London에서 세계선교를 위한 모임이 개최되었다. 그후 1860년 Liverpool에서 그리고 1878년과 1888년 London과 1900년에는 New York에서 지속적으로 모임이 이어졌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사대회를 주도한 사람은 John R. Mott이다. 그는 미국 감리교 평신자로 당대 에큐메니컬 운동의 여러 모임의 사회를 도맡아 할 만큼 지도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또한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 (WCC)창립총회가 암스테르담에서 열릴 때에도 John R. Mott가 사회를 하였고 그는 명예회장으로 추대된바 있다.
1884년에 창설된 YMCA운동과 1895년에 시작한 세계학생기독교연맹 (WSCF)의 표어는 요한복음서 17장 21절에 기록된 “그들 모두가 하나 되기를” (that they may all be one/ut omnes unum sint)바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담고 있다. 이 두 에큐메니컬 기구는 교회로 하여금 분열을 극복하고 일치와 협력 그리고 선교와 봉사를 위해 나설 수 있도록 나름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Visser‘t Hooft는 그의 저서 “Has the Ecumenical Movement A Future” (1974) 라는 책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시대적 구분을 하고 있다.
1910-1934
이 시기에는 John R. Mott를 중심으로 “국제선교협의회”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1921)가 창설되었고, Charles Brent는 “신앙과 직제” (Faith and Order, 1927) 운동을, 그리고 Nathan Soederblom은 “삶과 사업” (Life and Work, 1925) 운동에 초석을 놓았다.
Mott는 “우리세대에 세계를 복음화 하자” (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 라는 기치로 세계의 복음화가 바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선교적 사명이요 과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또한 지금이야 말로 ”선교의 적정기“ (The Decisive Hour of Christian Mission) 라면서 선교의 긴박성을 호소한 바 있다.
Brent는 신앙과 직제 운동은 교파적 이해를 초월한 “교회의 가시적 일치” (The Visible Unity of the Churches)를 이룩하는 것이 에큐메니컬 운동의 핵심임을 강조함으로서 일치운동의 사도라는 명성을 얻었다.
Soederblom은 삶과 사업 운동의 목표를 “Serve Together" 라고 못 박고, 1914년을 계기로 세계가 자국의 국익에 따라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게 되자 ”Life Together", 그리고 “Work Together"를 그리스도인의 이상으로 삼았고 기독청년들 (YMCA, YWCA)과 학생들 (WSCF)이 주축이 되어 당장 이를 실천하도록 촉구한 바 있다.
1934-1948
1934년을 시작으로 독일의 전체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되자 J.H. Oldham을 중심으로 삶과 사업 운동을 “영성운동” (Spiritual Movement)에 초점을 두어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독일의 경우는 Martin Niemoeller와 Dietrich Bonhoeffer 등 여러 교회지도자들이 “고백교회" (The Confessing Church)를 만들어 Nazi 정권에 저항하였다. 반면에 대 다수의 교회 세력은 Nazi정권에 순순히 따르게 되었는데 이 무리들을 “독일 크리스천” (German Christians)이라 부른다. 독일의 고백교회운동은 에큐메니컬 운동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 경우라 하겠다.
이런 혼란과 위기 속에서 당대에 명성을 날리던 신학자들 가운데 Karl Barth, Reinhold Niebuhr, Emil Brunner, Paul Tillich, 그리고 Nicholas Berdyaev와 같은 분들로 “위기신학” 또는 “변증신학” 과 같은 신학적 담론으로 참담해진 현상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혜안을 제시해 주었다. 또한, C.H. Dodd와 Hendrik Kraemer는 “성서신학” (Biblical Theology)에 역점을 두고 성서를 상황에 따라 새롭게 재해석하도록 실천적인 주장을 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당면한 과제, 즉 전쟁, 갈등, 핍박, 착취, 소외, 그리고 인권침해 등을 이겨내기 위해서 삶과 사업 (Life and Work)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48-1960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가 창설될 때만 하더라도 두 차례나 세계전쟁을 겪은 터라 허무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였다. 동서 냉전의 사상적 갈등은 에큐메니컬 운동의 중심부가 될 WCC의 탄생을 환영하게 되었다. Karl Barth는 “내 신학 도서실이 몽땅 이 모임에 와있다”라는 말로 WCC 창립총회의 인상을 감동적으로 피력한바 있다. WCC는 “우리는 함께 있기를 원 한다” (We intend to stay together)라는 말을 Kathleen Bliss가 함으로써 에큐메니컬 운동의 이상을 간결하게 표현한바 있다.
WCC는 “책임사회” (Responsible Society)라는 과제를 에큐메니컬 운동의 핵심의제로 내세우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전력을 기우렸다. 또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교회들이 대거 에큐메니컬 운동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유럽교회와 서방교회와의 긴장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조율로 말미암아 분열과 갈등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길 수 있었다. 가령 “Christian-Marxist Dialogue”와 같은 예는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1925년 "카나다연합교회“ (The United Church of Canada, 이하 UCC)와 1947년 “남인도교회” (The Church of South India, 이하 CSI)가 그리고 1957년에는 “북인도교회” ( The Church of North India, 이하 CNI)가 조직 되었는데 이는 교회일치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CSI는 성공회, 장로교, 그리고 감리교가 하나가 된 연합교회의 면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본그리스도교단 (The United Church of Christ in Japan, 이하 UCCJ)과 필리핀연합교회 (The United Church of Christ in the Philippines, 이하 UCCP)는 국가의 통제에 의해 통합된 경우이다. 1977년 오스트렐리아는 The Uniting Church of Australia로 교단 통합을 하였으며 문호를 열어놓고 계속적인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기독교협회 (The China Christian Council, 이하 CCC)라 하여 교파 후기체제를 만들었다. 아시아교회는 연합한 (United), 연합해가는 (Uniting), 중국처럼 post-denominational church가 혼재해 있는 대륙이다.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은 예수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우리고 있다. 또한 “아시아기독교협의회" (Christian Conference of Asia, 이하 CCA)의 전신인 “동아시아기독교협의회” (East Asia Christian Conference, 이하 EACC)가 1957년 인도네시아 프라팟에서 창설되었고 EACC 지도력은 1961년 제3차 WCC 총회를 인도의 뉴델리로 유치해서 무난히 총회를 마무리함으로써 아시아 교회의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1960-현재
이 시기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중대한 획을 긋는 사건들이 줄을 잇게 된다. 제3차 WCC총회가 1961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고 이때 “국제선교협의회” (IMC)가 WCC로 통합한 일이다. 또한 러시아 정교회는 동유럽의 정교회들과 함께 제3세계에 속한 신생교회와 더불어 대거 WCC 회원이 되었다.
“세계학생기독교연맹” (World Student Christian Federation, 이하 WSCF)은 1960년 스트라스브르그에서 “교회의 생명과 사명” (The Life and Mission of the Church)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 했는데 에큐메니컬 운동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이때의 지도자들은 D.T. Niles, Lesslie Newbigin, W.A. Visser't Hooft, Emil Brunner 그리고 Karl Barth와 같은 인물들로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신학적으로 다듬어 내어 에큐메니컬 운동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WCC와 일치와 협력을 다루는 사무국을 개설하였고 신앙과 직제의 문제를 폭 넓게 연구해 오고 있다. WCC는 교회와 사회문제, 인종차별 철폐문제, 개발에 관한문제, 오늘의 구원문제, 세례 성만찬 사역의 문제,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존문제, 인권 교육 질병, HIV and AIDS문제, 복음과 문화문제, 성 평등과 여성지도력 개발문제, 난민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을 다루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제10차 WCC 부산총회 이후에는 “평화와 정의의 순례” 프로그램을 적절하게 이끌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활성화하고 있다. 2013년 WCC 부산 총회는 “우리는 함께 움직이기를 원 한다” (We intend to move together)라는 새로운 각오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거보를 내딛게 되었다. 2018년 6월에는 로마 가톨릭교회 Francis 교황이 WCC창설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WCC본부를 방문하고 함께 예배를 드렸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중대한 역사의 계기가 되었으며 신구교간에 협력과 우애를 다지는 상징이 되었다.
셋째: 에큐메니컬 운동의 신학 이해
에큐메니컬 신학의 바탕은 가시적 교회의 일치를 돕는데 있다고 하겠다. 비록 “교리는 갈라 젓지만 봉사는 함께 한다” (doctrine divides, service unites)는 구호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정신을 잘 말해주고 있다.
에큐메니컬 신학은 그리스도 교회의 본성, 세상을 위한 교회. 흖어지는 교회, 그리고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라는 명제를 신학적으로 정리해 냄으로서 교회 분열의 속성을 지양하고 일치를 이루어 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의 지체이므로 교회는 “하나이며” (One), “거룩하고” (Holy), “보편적” (Catholic)인 동시에 “사도성” (Apostolic)을 지닌 신앙인들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에큐메니컬 신학은 잘 정리 해내고 있다.
에큐메니컬 신학은 어떤 특정 교회의 전통이나 신학자의 학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서로 common ground를 마련해서 consensus를 이루어 가는 “과정신학” (Process Theology)인 동시에 삶의 현장을 중시하는 “상황신학” (Contextual Theology)이며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행동신학” (Doing Theology)이요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 하려는 “선교신학” (Mission Theology)이라 하겠다. 결국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와 ”교회의 선교“ (missio ecclesae) 그리고 “인간의 선교” (missio hominum)을 골고루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선교적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려는 포괄적 시도가 에큐메니컬 신학의 내용이라 하겠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회의 신학적 common ground를 찾기 위해 consensus를 도출해내는 일 역시 에큐메니컬 신학의 과제중의 하나라 하겠다.
가령 리마 예식서 (Lima Liturgy)로 불리는 “세례, 성례전, 사역” (Baptism, Eucharist, Ministry)에 관한 문건은 로마 가톨릭교회,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가 에큐메니컬 신학의 consensus를 이루어 낸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에큐메니컬 신학은 Theo-ecumenics, Eco-ecumenics, 그리고 Geo-ecumenics를 보다 깊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신학적 명제를 나는 2002년 홍콩에서 열린 CCA 창설 45주년 국제심포지엄에서 제시한바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특성은 복음중심 (Gospel-centered)이며 생명중심 (Life-centered)이라 하겠다. 아울러 에큐메니컬 운동은 선교 지향적 (Mission-oriented)이며 평화 지향적 (Peace-oriented)이고 봉사 지향적 (Service-oriented)인 동시에 나눔 지향적 (Share-oriented)이라 하겠다.
넷째: 에큐메니컬 운동의 과제 이해
에큐메니컬 운동은 흔히 제2의 종교개혁이라 부를 만큼 그 파급의 효과가 크다고 하겠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하나님 인간 자연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때문에 신학, 인간학, 사회학, 윤리학, 생태학 등이 에큐메니컬 운동의 내실을 채워주는 일차적 학문이란 사실이다.
나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당면 과제를 다음과 같이 12대 운동방향으로 요약하여 강조하고 있다.
교회의 일치와 갱신을 주도하는 운동
해방의 복음을 선포하는 운동
정의와 평화를 이룩하는 운동
화해와 치유를 이루어가는 운동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운동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등을 솔선수범하는 운동
바닥공동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운동
돌봄의 선교를 실천하는 운동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가는 운동
전통종교와 사상, 전통문화와 민담, 전통음악과 미술 등을 다듬어내는 운동
아시아신학을 발전시키는 운동
통일과 복지가 함께 성취되는 운동 (한국의 경우)
나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역점을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신학의 내실화
조직의 활성화
운동의 특성화
윤리의 생활화
참여의 보편화
재정의 자립화
인재의 저변화
나는 2005년 제12차 아시아기독교협의회 (CCA) 총회가 치앙마이에서 개최되었을 때 총무 보고를 통해 에큐메니컬 운동의 방점을 이렇게 제시하였다.
생명의 존중 (Respect life)
폭력의 배제 (Reject violence)
갈등의 해결 (Resolve conflict)
정의평화의 증진 (Promote justpeace)
인권의 보호 (Protect human rights)
보편적 가치보전 (Preserve common value)
나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결단을 이렇게 촉구하였다.
새로 시작하기 (창조성)
수리하기 (지속성)
허물고 새로 짓기 (차별성)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 닮기 (정체성)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에 동참하기 (역동성)
이런 과제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함께 협의하는 것은 물론, 교회는 다른 종교 및 여러 시민사회와 연대하면서 당면과제 해결의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에큐메니컬 운동이라 하겠다.
다섯째: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래
에큐메니컬 운동은 한 세기를 훨씬 넘겨 발전해 왔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공과를 다르게 평가하겠지만 에큐메니컬 운동이 축적한 자산은 놀랄 만큼 큰 것이 사실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배출해 낸 지도력은 말할 것도 없고 방대한 신학적 기여도는 놀랄 만큼 크다. 또한 교회와 사회의 문제, 지속 가능한 발전문제, 약자 보호와 인권문제, 긴급구조 문제, 인류공동체의 미래문제 그리고 에큐메니컬 신학 내실화문제 등을 꾸준히 다루어 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주변 환경이 에큐메니컬 운동을 제약하고 있다. 때로는 한계를 스스로 인식한 나머지 마땅한 방안을 강구하기 위하여 노력 하고 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종교는 인간과 더불어 있게 마련이고, 교회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필요성을 점점 인식하게 될 것이므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래는 그리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동서 냉전의 대립과 갈등을 겪으면서 발전해 왔다. 오늘 우리는 미국 과 중국이 주도하는 2극체제의 틈바구니에서 살고 있다. 경제적 세계화가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인지공학과 첨단과학이 무섭게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환경파괴로 말미암아 지구는 자정 능력을 잃고 있다. 핵위협으로 인류는 불확실한 미래를 살고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고 운동의 이념과 틀을 재정비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세계경제포럼 (World Economic Forum)은 다보스포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사회포럼 (World Social Forum)은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세계평화포럼 (World Peace Forum)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으며 한국은 세계생명포럼 (World Life Forum)을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YMCA의 주도적 참여가 요청되고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Oikoumene, 즉 우주적이면서 Oikoudome, 즉 지역적인 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인도의 신학자 M. M Thomas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circle of friends"가 주도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매우 탁월한 통찰이라 하겠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에큐메니컬 운동이야 말로 집단지성이 이끄는 visionary movement라고...
우리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계기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인식을 거듭 확인하였다. 또한 새로운 에큐메니컬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여야 한다면서 중지를 모으고 있다. Martin Luther가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은혜 (sola gratia), 오직 성서 (sola scriptura)”라고 외친 교훈은 영원한 진실이라 하겠다. 우리는 500년이 지난 현실에서 오직 회개 (sola metanoia), 오직 봉사 (sola diakonia), 오직 주께 영광 (sola gloria Deo)을 더해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하겠다. 종교개혁을 Reformation으로 표기하는데 말 그대로 개혁을 뜻한다. 또한 종교개혁으로 생겨난 교회들을 Protestant라 부르며 저항 즉 Protest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저항과 개혁은 종교개혁의 두 뿌리이다. Konrad Raiser는 WCC총무로 재직하는 동안 에큐메니컬 운동의 재구성 (Reconfiguration)을 위해 애쓴 인물이다. 그는 수차례 에큐메니컬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을 모아 진지한 협의회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그가 내린 결론은 지금까지 초석이 되었던 “일치, 선교, 봉사”라는 틀을 확고하게 견지하는 입장으로 결론을 지었다. 여기에 갱신, 교육, 나눔을 추가하여 일치와 갱신, 선교와 교육, 봉사와 나눔의 기둥을 우뚝 세워 에큐메니컬 운동을 확산해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보태고 싶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아날로그시대의 산물이다. 아직도 에큐메니컬 운동의 사고와 운동방식은 아날로그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정보 통신 (IT)시대이며 인공지능 (AI)이요 디지털시대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하고 “드럼이 바뀌면 리듬도 바뀐다. 따라서 스탭도 바뀌어야한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에큐메니컬 운동의 대 전환이 요청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계기로 에큐메니컬 운동은 더욱 간절하게 “구하고 (ask), 찾고 (seek), 두드리는 (knock)” 에큐메니컬 집단 지성과 에큐메니컬 일꾼들이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고 불의와 억압에 저항하며 정의와 평화, 생명과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릴 때 밝은 미래를 전망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일에 우리 모두는 부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들이다. 아울러 에큐메니컬 운동의 핵심요원이라는 자각과 자부심을 가지고 에큐메니컬 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겠다. (***)
<2019년 한국YMCA 간사학교 참가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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