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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숨

육신이 찾는 노동의 새벽..

by yunheePathos 2014. 12. 17.
젊다고 말할까
어린 시절이라고 말해야하나..
아님
고뇌와 갈등의 순간들이었다라고 말해야 하나..

지금도 가늠하기 힘든 지금..
그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그 때에
시로 노래로 촉촉히 나를 울리던
그 한토막 <노동의 새벽>

찬바람이 칼이되어
온 육신을 찔러대고
정신마저도 혼미하게 하는 이 밤..

그 시와 노래를 찾아
추운 가슴을 덮어본다.

20대 눈물로 익혔던 것들이
지금은 그냥 육신이 말한다.

오래 못가도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는 이 시간.

차가운 한잔의 소주가
지금 나를 깨운다.

노동의 새벽이
감사하다.

지금 나를 돌보는 언어이자
메시지이기에.

-~~~~~~~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 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박노해,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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