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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숨

고난의 십자가를 잃어버린 한국 교회, 세월호 희생자는 '부활의 십자가'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by yunheePathos 2017. 4. 16.
내일은 부활절이고 세월호의 눈물이 시작된 3주기가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은 아직도 우리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3년이 지나서야 세월호가 겨우 인양되고 아직도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의 십자가'가 되어 지금 우리의 가슴에 있습니다.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과 같은 또 다른 억울함과 불행이 없는 생명이 우선되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아직도 '부활의 십자가'가 되어 오는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교회는 그들의 가족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비하거나 우롱하기조차 하였습니다. 예수를 거부했던 권세와 아집의 예루살렘처럼 말입니다. 선민의식과 대속사관에 기반한 한국 교회는 이미 예수의 십자가를 잊어 버리고 승리의 부활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맘몬의 승리자가 되고 패권의 강자가 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그리고 억울하게 갇히고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의 애절한 호소에 귀를 막고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비난하고 매도하는데 앞장섰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부 교회만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은 너무나 거대하고, 그에 비해 한국 교회의 성찰과 회개의 목소리는 작기만 합니다. 너무나 아픈 현실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거듭남의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고통과 단절의 아픔이 없이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예수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거듭나는 부활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어제와 다른 거듭난 오늘을 살아가는 것, 생명과 평화의 빛을 가슴에 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일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에 동참하지 않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잃어버린 한국교회, 교회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슬픈 이유입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은 한국 교회에 '부활의 십자가'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1970년 11월 13일,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을 보고 당시 기독청년들은 그의 영정을 지키며 전태일을 청년예수로 고백했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삶이 있는 곳으로 더 깊은 눈길을 보내며 본격적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노동이 있는 현장으로 힘차게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태일이 청년예수가 되었듯이, 이제 세월호 희생자들은 '부활의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수난의 십자가에서 멀어진 승리자를 위한 부활이 아닌 고난 가운데 있는 부활말입니다. 그들의 수난으로 인해 절망 가운데 있던 시민들이 깨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이 사회에 변화의 물결이 일었났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기적같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늘의 별이된 그들이 있었고 그들의 가족이 있었으며 3년을 함께한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고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길에 한국 교회가 참여할 때 '부활의 십자가'로 세월호 희생자들은 우리 곁에 있을 것입니다.

 "너희 때문에 하나님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당한다"고 했던 바울의 이야기가 한국 교회의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집트 노예로 살았던 한 세대가 광야 40년을 통해 다 죽고 다음 새로운 세대들이 가나안 땅을 찾아 갔듯, 아직도 한국 교회가 광야 40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많은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십자가'에 눈물짓고 아파하고 있음 또한 사실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초대에 흔쾌히 응답했던 사람들이 갈릴리 민중들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 세월호 희생자들이 '부활의 십자가'로 고백되고,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9명의 희생자들과 이미 희생당한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눈물로 함께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그것이 부활의 아침, 갈릴리로 간 예수의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네가 내 동생이어서 너무 고마웠고 행복했어. 우리 다시 만나면 영원히 함께 하자.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되었던 세월호 3주기 촛불집회에서 한 여성이 읽어간 편지입니다. 아마 누군가도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함께하며 이렇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부활을 소망했을지 모릅니다. '부활의 십자가'를 기억하는 부활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신구약 성서통독이 오늘 이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네요. 사순절과 부활절을 생각하며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묵상하며 통독한 성서는 또 다른 많은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메시지는 더 간명해지는 느낌도 듭니다. 부활절을 앞두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부활절 인사와 함께 보내온 사진

두 팔이 없는 예수상. 예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위해 함께할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보는 십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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