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 한반도, 평화에 이르는 길
- 힘의 평화와 하나님의 평화
이윤희 /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
1.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시선 1) 한국 역사와 기독교를 다시 생각한다. 2) “생명평화의 눈으로 성서 다시 읽기”- 정복과 패권에서 해방과 나눔으로. 3)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시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발걸음
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 1) 요약 2) 2017년, 2018년. 밸푸어 선언 100년, 누구의 평화인가? 3) 팔레스타인의 현실, 누구의 눈으로 볼 것인가? 4) 누구의 눈으로 말할 것인가? 하나님의 평화
3.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의 호소와 요청 1)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 2) “대안성지순례의 시작 - Come & See”
4. Come & See, 팔레스타인 이야기 1) 팔레스타인 성지순례와 홈스테이 2) 분리장벽과 검문소(Check point) 3) 팔레스타인 난민캠프 4) 파괴되는 주거 가옥 5) 사라지는 베두인(Beduoin) 학교와 마을 6) 팔레스타인 청소년들과 교육 7) 이스라엘 시민의 딜레마, 안보(security)와 민주주의(Democracy) 8) 평화를 위해 일하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
5. 예루살렘을 둘러싼 문제 1) 예루살렘 갈등의 역사 2) 주택 파괴 House demolitions 3)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주거지 Palestinian residency 4) 고립된 동예루살렘 5) 미대사관 이전
6. 마무리 - ‘불가능한 순간’에 말하는 하나님의 평화, 민에 의한 평화?
(참고자료) 팔레스타인기독교단체연합(NCCOP)이 WCC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보내는 공개서한 |
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
1) 요약
○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은 1896년 작 “유대인국가”에서 정치적 시오니즘에 이데올로기 기초를 제공했으며 다음과 같이 썼다: 유대인들이 민족을 구성하지만, 민족 문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영토(국가)가 없다. 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반유대주의로 인하여 헤르츨과 많은 유대인들의 소원은 자신들만의 국가를 갖는 것이었다. (그렇지만)그의 책에는 팔레스타인이 언급되지 없었다.
○ 1897년에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된 제1차 시오니스트 의회에 의하면: 시오니즘의 목적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거주를 합법화 하는 것이었다. (이때) 전세계 시오니스트협회는 시오니즘운동의 중심적 의사결정기구로서 수립되었다.
○ 팔레스타인은 400년 동안 오토만제국의 일부였다. 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하게 되었다(국제연맹이 영국에게 팔레스타인과 다른 중동국가들에 대한 위임 통치권을 부여했는데, 이것은 각국이 독립 준비가 될 때까지 한시적인 것이었다.) 시오니스트들은 영국의 정책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하여 1917년에 영국의 외무장관인 아서 벨푸어(Arthur Balfour)가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선포하게 하였다.
○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들의 대거 이주가 이루어졌다. 이미 18세기말부터 유대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새로운 현상은 아니었지만, 이때의 이주민 수는 막대했다.
○ 몇 차례의 심각한 물리적 충돌 후, 1937년에는 영국 위임 통치의 종결과 팔레스타인을 아랍과 유대인의 국가로 양분하도록 하는 제안이 있었다.
○ 1947년에 유엔은 팔레스타인의 분할을 제안했다. 유대인들은 당시 5퍼센트의 소유권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6.5퍼센트의 영토를 갖게 되었다. 유대 사회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팔레스타인은 거부했다.
○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수립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상황이 가져올 영향 때문에 이것을 “나크바”(아랍어로 재앙)로 간주했다. 바로 그 다음날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그 당시는 트랜스요르단) 그리고 이라크로부터 침공당했다. 그러나 이 전쟁이 끝날 무렵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78퍼센트를 점령했다.
○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한 결과는 75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난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러 이유로 그들의 영토를 떠났는데, 전쟁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유부터 구조적인 추방까지 다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이것은 ‘유엔 결의안 194’에 난민들은 돌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명시된 것이나 국제법과는 상반된 상황이었다. 16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만이 이스라엘에 남을 수 있었다. 정확한 숫자는 불확실하지만 이스라엘의 영토가 된 지역에서 대략 400개에서 530개의 마을들이 파괴되었다. 현재는 약 460만 명의 난민들이 웨스트뱅크, 가자, 시리아, 그리고 레바논의 난민캠프에 거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과 내부적으로 추방된 사람들은 총 7백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 이스라엘은 1950년 3월, 아랍인들의 토지 몰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부재자 재산법’을 공포하였고, 1950년 7월, ‘귀환법’(“모든 유대인은 새로운 이주자로서 이스라엘로 돌아올 권리를 가지며 완전한 이스라엘 시민권을 받는다.”)을 제정함으로써 제도적으로 아랍인들을 추방시키고 이스라엘인들을 정착시켰다.
○ 19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의 6일 전쟁 후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동예루살렘 포함)와 가자(골란 평원 및 시나이 반도 포함)를 점령했다(1979년 평화협정 후 시나이는 되돌려 줌). 골란 평원과, 웨스트뱅크(동예루살렘 포함) 그리고 가자는 여전히 점령 상태이다.
○ 아랍어로 인티파다란 “봉기/거부하다”라는 의미로서 1987-91년 사이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점령에 항거하는 시위로 시작되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독자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된, 광범위하고 잘 조율된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인티파다 기간에 민간인들은 세금을 거부하는 등의 불복종 운동으로 이스라엘의 점령이 재정적 부담이 되도록 만들었다. 시위와 투석전도 벌어졌다. 결국 인티파다는 중무장된 이스라엘군에 의해 3만 7천명 이상의 부상자들과 약 750명의 사망자를 낸 후 중단되었다.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를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 중 중요한 것으로 오슬로 (잠정) 합의가 있었다. 합의안은 웨스트뱅크를 A, B, C 구역으로 나누되, A구역(3%)은 (신생)팔레스타인에 전권을 주고, B구역(24%)은 공동 통치로, C구역(74%)은 이스라엘이 전권(구역별 비율은 그 이후 조금씩 변경됨)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오슬로 안은 궁극적인 평화 협정으로 가기 위한 잠정 합의안이었다. 합의안의 진행 과정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은연중에 포함하고 있었으나 오슬로 합의는 계속 지연되다가 결국 2001년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합의안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웨스트뱅크 지역의 대부분을 통치하도록 하는 기반을 만들어 줬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C구역에 어떤 건물을 짓고자 할 경우에 이스라엘 정부에 허가를 구해야 하며 대부분의 경우는 거부당한다.
○ 오슬로 합의는 사실상 C 지역에서 다수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존재와 투자를 합법화시킴으로서 이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한 것이다. 오슬로 협상 이후 이스라엘 내부와 정착촌을 이어주면서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관통하는 관통 도로가 건설되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관통도로 출입할 수 없다. 많은 정착촌들은 주요한 팔레스타인 도시들을 내려다 보고 있으며, 주요 도시 별로 최소한 하나 이상의 주변 정착촌들이 있다. 이러한 정착촌들은 주로 블록 대형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확정의 결과는 하나의 팔레스타인 도시를 3개 혹은 4개의 구역들로 분할한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의도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토막 내어 버림으로써 미래에 팔레스타인 국가가 실제로 성취될 수 없도록 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2000년부터 시작된 두 번째 인티파다 운동은 점점 더 가혹해지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대항과 오슬로 합의안의 실패로 인해 촉발됐다. 외부 협상 세력의 무능력 또는 의지 부족으로 인해 (이스라엘) 정착지는 끊임없이 확장되었고, 게다가 늘어나는 이스라엘 군의 검문소들과 토지몰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느끼게 하였다. 두 번째 인티파다 운동은 첫 번째보다 더 무장된 성격이었다. 팔레스타인 측 이슬람 세력은 자살폭탄 공격을 강화하였고, 이스라엘 군대는 이전보다 더 치명적이고 매우 기계화되었다. 3년 간 2,40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78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망했다.
○ 지난 100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지속적으로 영토를 빼앗겨 왔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과연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이다.
2) 2017년, 2018년. 밸푸어 선언 100년, 누구의 평화인가?
2017년은 이스라엘이 한 국가 실체로서 등장할 수 있었던 벨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 100년이 되는 해이다. 2018년은 이스라엘이 건국된 해이고 팔레스타인에게 Nakba, 재앙의 해이다. 1948년. 제국의 각축장이었던 동아시아 한반도는 분단과 내전의 시작이었고, 그 반대편 서아시아 팔레스타인은 재앙의 시작이었던 날. 이스라엘은 건국을 전후로 팔레스타인 마을 400~600개를 파괴했고 이로 인해 75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기 시작됐다. 1967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를 점령한 이후에도 46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현재 팔레스타인 난민은 약 540만~700만 명으로 41%가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에, 나머지는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주변국에 살고 있다. 1948년에 시작된 대재앙은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벨푸어 선언은 1917년, 영국의 외무 장관 아서 밸푸어(Arthur James Balfour)가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국가 수립을 약속한 외교선언이다. 이것은 2년 전 ‘전쟁에서 영국 편을 드는 대가로 팔레스타인에 아랍 국가 건설을 돕겠다.’고 했던 영국의 ‘맥마흔 선언(Macmahon Declaration)’과 충돌하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서아시아(중동) 유혈 사태의 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반도 분단과 함께 제국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비극적 역사의 시작이다. 제국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서쪽의 끝 팔레스타인에서는 땅이 나뉘었고, 동쪽의 끝 한반도에서는 냉전의 38선이 그어졌다. 세계 평화 위기의 양대 축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선언 100년을 맞이한 지난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선언 100돌을 기념해 영국 총리관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찬을 함께하며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영국이 선구적 역할을 해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팔레스타인 정치인 하난 아쉬라위는 <가디언>지 기고를 통해 “밸푸어는 누군가의 고향을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고 약속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밸푸어 선언을 규탄하는 시위가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요르단, 시리아 등지에서 잇따라 진행된 바 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등 제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갈라진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반도와 팔레스타인. 힘에 의한 평화가 누구의 평화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3) 팔레스타인의 현실, 누구의 눈으로 볼 것인가?
1967년에 웨스트 뱅크와 가자 지구의 면적은 1948년 당시의 팔레스타인 영토의 22%에 불과하다. 1995년의 오슬로 협정에 의해서 팔레스타인은 이 22%에 불과한 영토를 점유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나머지 78%에 대하여 점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에 정착촌을 건설하였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영토를 다시 분할하여 분리 장벽을 건설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2002년 6월부터 분리 장벽을 건설하고 있다. 웨스트 뱅크 지역 내의 분리 장벽의 총 길이는 725km에 달할 것이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장벽은 90km나 된다. 장벽의 통문은 모두 60개 이지만, 그 중에 3분의 2는 팔레스타인 거주자들은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예루살렘에는 모두 12개의 문이 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은 단 4개만 이용할 수 있다. 나머지는 이스라엘 거주자들을 위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행증을 받아야만 한다.
평화는 중립적인가? 평화를 말할 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보여 지는 이미지를 통해 정보를 소비하며 평화를 말하기 싶다. 대중매체는 중립이라는 미명하에 자칫 힘에 의한 평화의 이미지 정보만을 제공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서아시아와 남북한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평화가 특히 그렇다. 따라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말할 때 ‘누구의 눈으로 평화를 말할 것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22,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고 팔레스타인 투옥자들은 의료 진료, 가족의 방문, 학교 교육 등을 금지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년 동안 독방에 감금되기도 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웨스트 뱅크 지역의 수감자 중에는 어린이 수감자들이 있다. 2000년 이후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서 기소된 어린이의 수는 7,500명에 달한다. 대부분의 어린이 수감자는 웨스트 뱅크와 동예루살렘 지역 출신이다. 어린이들은 수감될 때부터 가혹행위를 받고 있으며, 대부분 야간에 체포되어서 가족이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신문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돌을 던진 혐의를 받고 체포된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의 감옥이나 구치소에 수감되어 음식과 음료수, 의료의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들을 향해서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욕설을 퍼붓고 있고, 어린이들은 종종 성폭행의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출감된 어린이들의 90%가 심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하나님은 소외된 약자의 울음에 응답하며 소리 없는 이들의 음성을 대변하신다. 세상의 평화가 아닌 ‘하나님의 평화’를 선포하신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가 깨지고 있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평화’는 무엇인가? 세계YMCA와 YWCA가 보고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몇 가지 지표를 확인해보자.
▷이스라엘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2000년 이후 6,750명에 달하고 이 중 1,380명이 어린이였다.
▷이스라엘에 의해 파괴된 팔레스타인인의 가옥은 1967년부터 29,000채에 달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8M 높이의 700Km가 넘는 분리장벽과 관통도로, 500여 개의 검문소 등에 의해 감옥 아닌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에 체포되는 어린이는 매년 700여 명에 달하며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도 203명에 달했다.
▷가자(Gaza)지구 인구의 80% 가량이 인도적 구호물품에 의존해 살고 있으며, UN은 2020년이면 가자 지구는 “거주불가” 지역이 될 것이라 발표한 바 있다.
▷가자의 농업용 물의 35%와 어업용 물 85%가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접근 불가능하며, 이는 주로 농업과 어업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인구의 생계가 악화되어가는 주원인이다.
▷봉쇄로 인하여 3,900개의 기업 중에서 23개만이 살아남았다.(2012년) 이에 반해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미국으로부터 매년 30억에서 35억불의 군사비를 지원받아 왔다.
▷2014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이 있자마자 미 상원은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로켓포 및 야포 방어 시스템) 지원을 위해 3천6백억 원의 추가 지원을 인준했다.
▷유럽연합(EU)은 이스라엘의 최대 교역국으로, 2012년 연간 쌍방 무역이 400억불에 달하며, 유럽연합-이스라엘 무역협회는 이스라엘에게 유럽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득권을 부여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중립을 지킨다면, 당신은 억압하는 자의 편을 든 것이다. 만약에 코끼리가 생쥐의 꼬리를 밟고 있을 때 당신이 중립을 지킨다면, 생쥐는 당신이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전혀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데스몬 투투 주교)
4) 누구의 눈으로 말할 것인가? 하나님의 평화
남북한 한반도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는 결국 한국 시민사회와 신앙인들이 누구의 눈으로 평화를 말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힘에 의한 세상의 평화를 말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평화를 말할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평화는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님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남북한을 둘러싼 동아시아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서아시아의 평화를 구하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유일한 방안이지 않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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