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는 현실 정치의 이름으로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채 이라크전쟁에 참여했고, 문재인정부는 금강산과 개성을 스스로 열지 못한채 일본에 대해 WTO 제소와 지소미아 종료를 거둬들였다.
미국의 강요에 의해 국익을 명분삼아 한국군은 용병으로 침략 전쟁에 참여했고, 일본에 대한 일방적인 항복으로 미국 지배블록에 순응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을 핑계로 반평화와 몰역사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스스로 '참여정부'라했고, 문재인정부는 '촛불정부'라 말한다. '참여'와 '촛불'은 하나같이 민의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의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상징으로 표상된다.
노무현정부와 문재인정부를 띄운 거대한 물줄기였던 '참여'와 '촛불'은 변화의 역사적, 사회적 역동성을 상실하고 특정 권력과 정부세력의 언어로 전락한다. 그 결과 비판적이고 역동적이어야할 시민사회는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약화되거나 정당과 정치세력의 주변부로 하부화된다.
그리고 권력은 민의 평화에 대한 요구를 세상물정 모르는 유아적인 순진무구함이나 좌파의 급진성이라 꾸짖으며 그 책임을 돌린다. 스스로 정권과 정당의 연속성도 만들어내지 못함에도 블구하고 말이다.
문재인정부는 평화 조정자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지배블럭에 순응한다. 주도적인 평화 행동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일본에 백지수표를 위임함으로써 남북한과 동아시아 평화의 물길과 촛불정부의 연속성을 문재인정부는 과연 열어갈 수 있을까?
두고 볼일이나 개인적으로는 이미 난망하다는 느낌을 가진지 오래다. 평화조정자일 뿐만 아니라 평화행동자로서의 주체성과 주도성을 찾기 어렵고 참여와 촛불은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놈의 현실정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주변화된 시민사회도 이제 주체적인 평화행동자로서의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길을 여는 창조적인 평화행동자이기보다는 광장의 목소리가 전부인 듯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누구도 스스로 행하지 않는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나 쓰러져가는 약해빠진 제국일지라도 그들이 지정/경학적 군사지배블럭 체제를 유지해 가고자 하는 한 말이다.
마지막 제국의 몸부림이 더 거칠고 거센 법이다. 그 제국과 함께 망하지 않으려면 힘들더라도 스스로 사는 문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제국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온 수난의 역사에 그것은 낯설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문재인 정부나 시민사회 모두, 평화행동자로서 제국의 지배블록에 평화의 파열구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제국에 편승한 힘의 평화가 아닌 수난의 역사에서 만들어 온 약자의 평화이어야 한다. 한국 시민사화가 만들고 기여할 수 있는 평화다. 민의 평화, 민이 만드는 평화가 절실하다. 민의 평화, 민이 만드는 평화가 절실하다.
문익환선생 방북 30주년인 올해 이런 저런 소식에 잡생각이 든다.
#평화 #평화조정자 #평화행동자 #제국 #지소미아 #문익환
미국의 강요에 의해 국익을 명분삼아 한국군은 용병으로 침략 전쟁에 참여했고, 일본에 대한 일방적인 항복으로 미국 지배블록에 순응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을 핑계로 반평화와 몰역사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스스로 '참여정부'라했고, 문재인정부는 '촛불정부'라 말한다. '참여'와 '촛불'은 하나같이 민의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의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상징으로 표상된다.
노무현정부와 문재인정부를 띄운 거대한 물줄기였던 '참여'와 '촛불'은 변화의 역사적, 사회적 역동성을 상실하고 특정 권력과 정부세력의 언어로 전락한다. 그 결과 비판적이고 역동적이어야할 시민사회는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약화되거나 정당과 정치세력의 주변부로 하부화된다.
그리고 권력은 민의 평화에 대한 요구를 세상물정 모르는 유아적인 순진무구함이나 좌파의 급진성이라 꾸짖으며 그 책임을 돌린다. 스스로 정권과 정당의 연속성도 만들어내지 못함에도 블구하고 말이다.
문재인정부는 평화 조정자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지배블럭에 순응한다. 주도적인 평화 행동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일본에 백지수표를 위임함으로써 남북한과 동아시아 평화의 물길과 촛불정부의 연속성을 문재인정부는 과연 열어갈 수 있을까?
두고 볼일이나 개인적으로는 이미 난망하다는 느낌을 가진지 오래다. 평화조정자일 뿐만 아니라 평화행동자로서의 주체성과 주도성을 찾기 어렵고 참여와 촛불은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놈의 현실정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주변화된 시민사회도 이제 주체적인 평화행동자로서의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길을 여는 창조적인 평화행동자이기보다는 광장의 목소리가 전부인 듯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누구도 스스로 행하지 않는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나 쓰러져가는 약해빠진 제국일지라도 그들이 지정/경학적 군사지배블럭 체제를 유지해 가고자 하는 한 말이다.
마지막 제국의 몸부림이 더 거칠고 거센 법이다. 그 제국과 함께 망하지 않으려면 힘들더라도 스스로 사는 문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제국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온 수난의 역사에 그것은 낯설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문재인 정부나 시민사회 모두, 평화행동자로서 제국의 지배블록에 평화의 파열구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제국에 편승한 힘의 평화가 아닌 수난의 역사에서 만들어 온 약자의 평화이어야 한다. 한국 시민사화가 만들고 기여할 수 있는 평화다. 민의 평화, 민이 만드는 평화가 절실하다. 민의 평화, 민이 만드는 평화가 절실하다.
문익환선생 방북 30주년인 올해 이런 저런 소식에 잡생각이 든다.
#평화 #평화조정자 #평화행동자 #제국 #지소미아 #문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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