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덕기(全德基) 목사
전덕기(全德基) 목사는 한국으로서는 감리교 상동(尙洞)교회의 초대목사이다. 그는 기독교 목사인 동시에 열렬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경기도 양평에서 1875년 12월 8일, 아버지 전성여(全成汝)씨와 어머니 임(林)씨 사이의 2대 독자로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그는 아홉 살 먹는 해에 부모님을 다 여의고 일찍이 고아가 되었다. 열두살 되는 해에 할아버지를 따라 서울 상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의 할아버지는 숯장수였기 때문에 어릴 적에 숯장사 심부름을 하며 자랐다. 전덕기 소년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것은 1892년 열일곱살 되는 때였다. 그때까지 그는 학교 문앞에도 가본 적이 없고 다만 언문(한글)을 배우고 성경만을 읽었다. 선교사 스크랜톤(W. B. Scranton) 목사(의사를 겸함)가 창설한 상동교회와 상동병원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신앙과 지식을 배웠을 뿐이다. 그 당시 배재학당에는 이승만, 신흥우, 주시경 등 청소년들이 많이 입학했는데, 오직 전덕기 소년만은 할아버지 밑에서 숯장사 일을 도우며 또한 선교사 심부름을 하며 가사를 돌봐야만했다. 그의 학교 경력이란 그가 목사 안수를 받은 지 4년 뒤인 1911년에 감리교 신학교(그 당시는 협성신학교)에 약 10개월 간 다닌 것 밖에 없다.
이처럼 학교경력도 없고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기구하게 자란 사람이 한국교회사와 민족독립운동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이제 간단히 교회경력을 말한다면, 1896년 그는 나이 21세 때에 세례를 받고, 1898년에는 상동교회의 속장이 되고 1901년에는 전도사가 되고, 1907년에는 집사 목사 안수를 받고, 그때부터 1914년 3월 23일 39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상동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1910년에는 그가 장로목사 즉 한국연회에서 선교자들과 동등한 자격과 권위를 갖는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는데 그 해 교인통계를 보면 상동교회를 정동교회보다 약 4백명이나 더많은 1739명의 교인을 가진 감리교 최대의 교회로 성장시켰던 것이다.
일반 독립운동의 경력에 대해서는 너무나 할 말이 많다. 1905년 소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상동교회에서 엡웟 청년회 전국연합회를 소집해서 보호조약의 무효를 위하여 김구, 이준 등과 함께 상소운동을 한 것이라든지, 1907년 상동교회 사랑방에서 헤이그 밀사파견 문제를 모의하여 파견에 성공한 것이라든지, 또한 그 해에 안창호, 이동년, 이동휘,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창설한 것이라든지, 안악사건․105인 사건 등에 관계되어 옥고와 시련을 겪은 것이라든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만큼 그의 활동과 영향력은 컸다. 교육사업에 있어서도 그는 상동교회안에 공옥(攻玉)학교와 상동청년학원을 설립하여 수많은 인재를 길러 내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주시경의 한극운동을 적극 지원하여 상동교회에서 국어강습회․강연회 등을 계속했던 것이다.
YMCA와의 관계는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 이후 일제의 강압으로 상동교회 청년학원과 엡웟청년회가 해산된 뒤부터 시작되었다. 전덕기 목사는 황성기독교 청년회의 종교부 위원 및 의사부(議事部) 위원으로 활약했다. 그 당시 의사부는 오늘날의 이사회 또는 총무위원회에 맞먹는 중요한 부서였다. 그리고 그는 회원확대운동에도 선봉을 섰다. 알다시피 초창기 YMCA는 독립협회 지도자들과 상류 지식층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어 있었는데, 전덕기 목사와 같은 평민출신의 지도자들이 많이 가담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말하자면 종로파와 상동파가 YMCA 안에서 합류가 되어 민족의 세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때마침 YMCA는 소위 장안에서 제일 큰 회관을 새로 짓고 대규모 사업을 시작하던 때였다.
어쨌든 전덕기 목사는 언제나 다음의 말씀을 간직하고 민족운동을 계속했다. 즉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를 전파하게 한다’라는 말씀을 전하고 또한 실천해나갔던 것이다.
등걸
-1979.6.1.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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