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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YMCA/YMCA

KSCF로의 통합 이후 1970년대 대학Y 변화와 분류

by yunheePathos 2024. 12. 15.

- “KSCF로의 통합 이후 1970년대 대학Y 변화

캠퍼스에서 활동을 벌이던 대학Y가 학생사회개발단을 통하여 정치-사회적 프로그램을 KSCF라는 별도의 조직으로 벌여가자 시청년회(지방YMCA)는 독자적인 활동과 비전을 회관 활동을 중심으로 모색하게 된다. 회관 내 동아리 형태로 산재해있는 학생동아리들을 운동체화하여, 대학YY를 떠남으로서 생긴 공백을 메우고 신생 KSCF와도 계속해서 연대망을 살려가는 노력을 하게 된다.”

KSCF로 통합된 이후에도 1970년대 각 지방YMCA에서는 대학Y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속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취미클럽이거나 봉사활동 등을 하는 정도였었기 때문에 학생기독운동으로서의 본질적 성격이나 이념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지만, 대학Y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YMCA 내에 이러한 다양한 대학생 클럽이 생겨난 데에는 다음의 역사적 배경들이 작용하였다.

 

▢ 1987년 : 대학Y 존재 형태/유형 분류 (YMCA 간사논문_윤경태_1987년 분석 참고)

- "KSCM과 통합과정에서 제정된 헌장 상의 문제와 한국YMCA 전체 차원에서의 대학Y 재건노력은 중앙의 정책보다는 각 지역YMCA의 필요성에 의하여 또는 지역 YMCA와 무관하게 학생들의 임의성에 의하여 조직화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YMCA운동의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에 따라서 대학Y의 성격이 각 지역마다 다르게 발전되었다.

대학Y 운동을 캠퍼스 단위의 학생기독교 소그룹운동으로 파악하는 기독학생운동 : 부산대학Y(하나모임)와 대구의 계명대학Y, 영남대학Y, 인천, 안동YMCA의 대학Y

대학Y를 지역 공동체로 파악하여 지역운동 속에서 학생조직으로서의 자기 위치를 설정하고 있는 경우로 학교 안의 서클활동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이 지역 출신 각 학교 학생들이 YMCA 산하 대학생 조직으로 존립하면서 지역운동, 시민운동, 민중운동을 벌리고 있는 학생운동 : 부천대학Y(3) 대국대학Y, 부산의 비조직대학Y, 성남, 구미, 마산, 순천, 제주, 전주, 원주YMCA산하 대학생조직

대학Y, 즉 학생운동 서클로서 학내 학생운동 조직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 : 광주의 전남대학Y, 조선대학Y, 청주의 충북대학Y . 이 경우 대학Y란 이름만 빌릴 뿐이고 YMCA의 공개성, 합법성, 장소를 활용하고 필요시 재정지원을 힘입을 수 있고, 어려움에 봉착할 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전략적 필요에서 대학Y 이름으로 활동.

학생기독교운동의 통합 이후 전통적 YMCA의 형식과 내용을 모방하면서 친교, 교양, 봉사에 치중하는 대학생 클럽 : 서울이나 대구의 일부 클럽, 대전의 대학Y.

- 특기할 사항은 전국 대학Y들이 통합 이후에도 지방대학들에서는 과반수 이상이 캠퍼스 조직을 형성하고 있고, 최근에 들어 이 경향성이 더욱 증대되면서 대학Y 전국 흐름이 캠퍼스 단위의 소그룹운동으로 재편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는 어떤 내용으로든 학생운동조직의 성격을 강화 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YMCA는 자원봉사자 중의 대학생들의 모임(클럽)이 자연스럽게 생성될 수 있었다. 시청년회 중에는 청년활동의 일환으로 50년대 후반에 이미 대학생 취미클럽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의 집결 동기는 과외, 학술, 문학, 연극, 봉사, 카메라, 등산, 싱얼롱-Y 등 여러 가지에 이르고 있었으며, 주로 여가선용과 레크리에이션을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1968년 대학YMCA연맹과 KSCMKSCF로 통합되면서 시청년회 차원에서는 봉사, 여가 중심의 대학생 클럽을 YMCA 목적클럽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새로운 클럽들도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통합당시 대학Y 자체가 학생기독운동성이 부족한 경우는 자연히 기존 형태의 대학Y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념적 지도력을 공급해 주던 선배 지도력의 수배, 구속들로 인하여 자연히 이념적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며, 자연히 구조적 모순을 다룬 본질적 학생기독운동 보다는 사회봉사 차원의 활동, 인간관계 중심적인 활동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프로그램의 하나인 어린이Y, 중학Y, 고교Y로 이루어지는 조직구조 속에서 자연히 고교Y를 졸업한 선배그룹들의 조직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후배들을 지도할 대학생 자원지도력이 필요하였다.

학생기독교운동의 통합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YMCA의 자기이해가 청년단체이기 때문에 YMCA의 이미지보존을 위한 외형적인 충족과정으로서 대학생 계층이 필요.

 

사례) 그 한 예가 서울Y대학생부의 활동이다. 비교적 짧았지만 1970년 봄에서 그 다음해까지 있었던 서울Y 대학생부의 문화사회적 접근들은 오늘날 대학인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문화, 언어, 탐방 여행들의 원형이기도 하며, 한국 대학가의 대안문화를 선호하는 인류학적, 생태적, 자연적 감수성과도 닮아 있다. 또한 한류(韓流)등에서 나타나듯 동아시아 청년세계의 공통된 문화적 감수성을 찾아내려는 한국의 대학청년세계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기도 한 것이다.

서울YMCA 대학생부가 문화사회적인 실험을 추구한 내용들을 보면, 발전부락운동 (지역사회 조직활동), 학생언론(학생들의 사회쟁점토론), 시비천하」「유목교회(여가지역 소외지역에서의 사회선교활동),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연극활동), 국토순례, 주유천하, 부족사회(여행문화대학생공동체활동) 등이 있었다. 이러한 문화사회적 접근은 대학Y연맹이 이미 1968년 기획하고 채택하여 KSCF로 보낸 학생사회개발단이라는 정치-사회적 접근을 보강하는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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