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본 한국기독교센터(KCC)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이 자료실입니다. 작은 사무공간에 작지만 또렷이 자신의 역사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자료를 잘 모아 정리하고자 하는 노력이 저의 눈에 아름답게 들어왔습니다.
'운동이 기록이고, 기록이 운동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저에게는 작지만 자신의 발걸음들을 축적하고 있는 모습이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노력은 이후 이와 같은 활동을 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배움의 터전이 될 것이고, 또한 당장은 자신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 자신의 역할을 사회 안에서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생각의 반영일 것입니다. 자신의 발걸음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흔적을 소홀히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배들의 배움터가 없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축적하고 연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는 집단은 그 역사의 깊이와 무관하게 결국 뿌리없는 집단이 될 것입니다. 자료의 수집과 관리는 이것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한 집단이 공유하는 공동의 노력과 성과의 산물일 것입니다. '개인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갖고 연구하느냐'와는 또 다른 질문이고 응답인 것이죠. '자료실이 없어도 내가 갖고 있는 자료가 얼마인데,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는데!'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개인의 노력과 집단의 공동 지식체계와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공동 지식체계가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홈페이지에 우리 자료가 있다'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상업용 서버에 올려놓고. 이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는 많은 분들이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상업용 서버가 우리의 자료를 평생 잘 관리해주리라는 것도 허망한 생각일 뿐입니다.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한, 두번 만들어보지 않은 집단과 개인은 없을 것입니다. 또 과거에 올렸던 자료들이 지금 어디에 어떻게 보관되고 있는지, 폐쇄된 홈피와 블로그의 자료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고, 사실 별 관심이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당장 상업용 서버로 운영되고 있는 홈피에, 블로그에 자료가 일부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위안을 찾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축적하는 것은 후배들과 현재 참여하고 모든 사람들이 운동을 만들어가고 세워가는 지침돌입니다. 사회적인 기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한 기초자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후배 지도력과 볼런티어에 기초한 회원 지도력을 육성하는데 가장 우선적인 기초적인 일이고, 한 집단(NGO)의 필요성과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첫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갖는 지도력을 육성하기 위한 첫 작업이 도서관이고 학습공간일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회원운동을 말하지만 지도대상으로 회원운동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회원운동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그것은 허망한 꿈입니다. 개인의 운동이 아니라 집단의 참여, 성과를 위한 공동의 우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인의 노력도 그 안에서 공급되고 수렴될 수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당장 현금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아름다운 과실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미뤄둘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당장 현금을 찾아 움직였던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지 아프지만 묻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집현전이나 규장각이 이래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역사가 오랜 집단은 이에 대한 필요성이 특히나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역사가 오랜 집단이 공동의 지식체계를 위한 자료정리와 학습체계가 잘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집단들이 오히려 도제 시스템과 같은 방식으로 전수되고 운영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객관적인 연구와 평가로부터 새로운 지도력과 사업이 개발되기 보다는 선배로부터 전해져오는 방식과 틀 안에서 권위와 습성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됐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안정적이고 잘 발달된 관리 체계가 계발되어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시간 활동해 온 지도력들이 있고 그 틀 안에 고여있는 여러가지 것들이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객관성보다는 당대 지도력이 갖고 있는 주관성, 연구에 기초한 새로움 보다는 경험에 의한 평가가 우선하는 경우가 많고, 지도력 또한 그 틀 안에서 평가되고 성장하는 매우 보수적인 기구로 전락하거나, 새로움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멸되기도 합니다. 관료성을 극복한 전통과 혁신의 상호 침투가 가능한 조직은 결국 공동의 지식체계를 어떻게 구축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거와 같이 독점된 정보와 전문성이라는 이름의 그리고 운동이라는 테두리로 영역화된 곳에서 자발성과 헌신성, 참여와 변화의 볼런티어운동이 발생한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이 번지수가 완전 다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번지수 없는, 구호성 토론만이 많은 곳은 생산성도, 효율성도, 새로움도, 지도력도, 볼런티어도 만들어지거나 성장할 수 없습니다. 구호만 있고 성장할 수 있는 밭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입네하며, 운동합네 하며, 선배입네 하며 어떤 영역이든 독점화된 테두리를 고수하는 것은 구습이며, 결국 자기 밥 그릇을 챙기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공동의 지식체계와 학습, 참여의 연구체계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과거로부터 비추어보고 또 새로운 자양분을 찾고 축적할 수 있는 공동의 지식체계를 구축하는 작업일 것입니다. 특히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퇴보의 과정에 있는 단체에서, 또 그 틀을 극복하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단체들에게 있어 아카이브 구축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오랜된 단체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자신이 성과있게 수행했던 사업들에 관한 자료들을 개인 소장 형태로 갖고 있게 되고, 아주 큰 추억으로 뇌리에 담고 있게 됩니다. 이런 지도력들이 하나 둘, 현장에서 물러나게 될 경우 이런 공적인 자료와 기억들은 개인 자료가 되거나 유실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여러개 중의 하나로 치부하며 소홀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정보의 독점과 소유의 발로로 공유된 지식체계를 개발하지 않거나 어두운 서재 한 곳에 쌓아놓은 경우가 많게 됩니다. 지식과 사업에서, 그리고 지도력에서 새로움을 찾는 단체는 이런 자료들을 잘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유형의 자료라는 자산을 모아가는 것 만이 아니라, 선배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무형의 지식과 지혜를 모아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보물창고를 찾는 것과 같은 모험이죠.
이런 과정이 새로운 지도력과 사업을 발굴하고, 객관적인 사회적 평가를 통해 지향과 지표를 만들어갈 수 있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원초적인 최소한의 노력이 아카이브인 것이죠. 아카이브 작업은 단순히 자료를 수집, 관리, 공유하기 위한 일차적인 기능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과 정체성, 지도력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고, 우리의 활동을 사회안에서 객관화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활동이 주관성에서 벗어나고 과거의 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작업이며, 신뢰와 투명성을 높여 볼런티어, 회원운동의 씨를 뿌리고 성장할 수 있는 밭을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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