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 일정도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3-4년, 계속 머리에 떠돌던 그림자를 조금이라도 잡은 것 같습니다.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당연시 여겨왔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 바쁜 일상에서 뭔가 아쉽고 부족하기만 했던 것들, 허전한 빈구석으로 몰아쳤던 찬바람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엿 본 경험이었습니다.
Y를 그만두고 지역에서 가졌던 소중한 실패 경험과 YMCA에서 생명평화운동이라는 타이틀로 다시 시작하면서 가졌던 의문들, 그리고 지난 해부터 'YMCA 목적과 사업협의회'를 준비하면서 가졌던 생각들, 그리고 삶의 온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선배들의 이야기와 삶을 보면서, 반면에 또 '아, 이런 것은 정말 아니구나!'라는 반면교사들을 챙기면서 허기진 부족함의 실마리를 찾아왔습니다.
이번 자메이카 일정은, 누구 말처럼 가족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알량한 자존감만-내가 뭐라 한다고 해도- 갖고 살면서 가졌던 먹구름의 실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분명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사건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고백되어지고 응답되어지는 힘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현존을 고백하며,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했지만 생명이 짓밟히고 평화가 파괴되는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깊이 뿌리박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정말 어리석은 깨달음입니다.
이것은 한국 에큐메니컬운동을 보면서, 그리고 이번 대회를 보면서 갖게 되는 공허함의 실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백, 수천 명이 모여도 그 어떤 절심함이나 뜨거움을 느낄 수 없고, 수 많은 고백과 기도도 힘이 없는 단지, 말의 성찬으로 끝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에 Y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삶 또한 '온전하지 못한 기구 안의 사람이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생명과 평화를 노래하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컨텍스트가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단지 '지역', '지구', '시민', '정의', '평화', '생명', '하나님 나라'라는 추상적 구호와 주장 안에서만 하나님이 있고, 정의가 있고, 평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건의 현장에서 고백되어지는 삶과 기도가 없는 것. 그래서 일에 힘이 없고, 사람이 없고, 돈이 없고, 비전이 불분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사건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삶의 고백과 기도가 없는 에큐운동에 어떤 비전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집단이 갖고 있는 역사성과 존재 기반을 갉아 먹으면서 삶과 무관한 추상적 구호와 명분에만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회 안에서 해석되지 않는 기구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이제 다시, 울부짖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현장에서 증거되어지는 고백자로 나서야 에큐메니컬 기독운동의 의미가 재발견되고 새로운 힘이 만들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지금과 같이 하나님을 앞세우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하나님을 죽이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개독교를 한탄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 언어에, 그 삶에, 말의 성찬으로 하나님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작성: 이윤희/yunheepatos 2011년 5월 25일 수요일 오후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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