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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숨

[생명의 기도 18] - 울부짖는 소리가 내 소리였다. 빌고 비는 부모들의 가슴이 내 가슴이었다.

by yunheePathos 2014. 5. 20.

잊지 않을게, 친구들아


세월호의 슬픔을 우리 깊이 내면화하자. 이 슬픔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친구들에게 약속한대로 잊지 말고 이 슬픔을 간직해야 한다. 이 슬픔이 우리 속 깊은 곳에서 새로운 생각과 태도와 행동으로 용솟음쳐 나와야 한다.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잊지 않는 일이다. 이제 우리 삶을 혁명하도록 하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세계를 혁명하자. 이것이 희생당한 친구들에게 우리 살아남은 이들의 할 일이다. 이것이 애통한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이다. 연령의 고하를 넘어 우리 모두가 새로이 다짐하고 결심하고 실천할 일이다. 녹슨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얼굴을 다시 밤새워 닦고 닦으면서 새 삶의 길을 가도록 하자.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을 때 세월호를 탔던 청소년들은 제주도 수학여행의 꿈을 꾸며 고대했으리라. 고교 시절의 수학 여행이란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 친구들과 함께 자고 여행하면서, 미래의 추억을 만들 꿈으로 얼마나 설레였을까. 5월의 푸르름 처럼 약동하는 생명을 만끽하려는 그 딸, 아들들의 얼굴들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세월호가 기울고, 물에 잠기는 중에도, 아이들은 명랑했다. 순박하고 착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참혹한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그냥 그들의 부모가 되었다. 가슴이 막히고, 눌렸다. 아이들이 탄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설마 설마 내 자식은 빠져 나왔겠지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부모의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진도 팽목항에 도착해 들려오는 앞뒤없는 소식들을 들으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는 부모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배속에 갇혀 못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캄캄해지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한시라도 빨리 내 자식들을 건져내야겠다고 울부짖는 소리가 내 소리였다. 아침에서부터 점심이 지나 하루 햇빛이 밝을 때에 바닷속에 빠진 아이들을 건져내야 하는데 해가 다 지도록 아무 일을 할 수 없이 아이들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부모들의 가슴이 내 가슴이었다. 밤이 되고 날이 밝고, 자식 다 죽었겠구나, 살아온 아이들이 있다는데 내 자식이 거기라도 있는가 명단을 다시 읽고 또 읽고, 제발 어디서인가 불쑥 얼굴을 내밀며 엄마, 아빠달려올 것 같은 환상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바닷물 어딘가에 떠 있어다오, 빌고 비는 부모들의 가슴이 내 가슴이었다


한 명 두 명 죽은 이들이 올라오는 소식만 들려오고 통곡 소리가 높아가는 중에도 내 자식은 어딘가 살아서 돌아올 것 같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내가 먼저 절망하면 안된다,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자식도 잃어버리겠다고, 쓰러지는 마음을 다잡고, 몸을 다시 세웠고, 내 자식은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다,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걸면서, 죽어 돌아오는 얼굴이 내 자식이 아닌 것을 안도했다. 또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이제는 틀렸구나, 시간이 너무 지났구나, 자식이 죽었구나, 내 자식이 죽었구나, 허망하게 출렁이는 저 바다 속에서 내 자식이 죽어 있구나, 어찌하나그 비통하고 분한 마음들이 내 마음이었다. 죽은 자식이라도 건져내야 할 텐데, 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건져내야 할텐데죽어서라도 먼저 돌아 온 자식들이 대견하고 부러웠다.


YMCA의 청소년들도 바닷속에 들어있었다. 평소 그 아이들을 잘 알고 있었던 안산 YMCA 이사장님은 안산 이야기를 전하면서 목이 메었다. 울고 또 울어도 우리는 계속 울어야 할 것이다. 차라리 부모인 내가 죽었어야 더 좋았을 것이다. YMCA 긴급 회의가 열렸다. YMCA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러나 모두 무언가 YMCA에게도 책임감이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느꼈다. 딱히 무어라도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청소년들의 비극적 죽음에 YMCA가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청소년 아이들은 잊지 않을게, 친구들아라는 노란 배지를 만들어 어른들의 가슴 위에 달아 주었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잘 잊는다. 기억하지만 잊는다. 감정이 식으면 잊어버린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간다. 이전에 살던대로 살아간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반성도 없다. 이것이 정말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일상생활이 바쁘고 할 일이 많고 해오던 대로 살아가도 하루가 정신없이 살아가는, 아무런 생각도, 뜻도, 왜 나는 살고 있으며,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나는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지도 알지도 못한 채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내면서 시간을 죽인다. 잊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잊고 산다. 사람은 결국은 잊어버린다. 이제 또 시간이 흘러가면, 마치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까마득한 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래서는 안된다.


잊지 않는다는 말은 그냥 머릿속에 남겨두겠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행동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뜻이다. 바꿔야 할 것은 바꾸고, 버려야 할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잊지 않는 것이고, 죽기 직전까지도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명랑하게 장난치며 놀던 친구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다


자기 삶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채 잊지않겠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이고, 또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왜 나는 사는가, 무엇을 위해 나는 살아야 할 것인가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과거 살던대로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어른들이 살라는대로 사는 것은 죽어간 친구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과연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있는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구하면서 사는가를 깊이 반성하자. 생각하자. 그리고 변화의 행동을 시작하자.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이것이 잊지 않는 길이다.


작든 크든 자기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용기를 갖자. 두려워하지 말자.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자. 분노하자. 나의 삶을 짓눌러 온 모든 억압에 분노하자. ‘아니다저항하자. 아닌 것에 아니오 하는 내적 힘을 기르자. 모이고 노래 부르자. 희망을 노래 부르자.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저항하고 분노하며 우리들 자신의 삶을 살아가자. 기뻐하자. 살아있는 동안의 삶을 축하하자. 이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준 천부 인권이다


슬퍼하자. 진정 슬퍼할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함께 모여 노래 부르고 함께 울고 함께 웃자. 다시 우리를 회복하자. 우리를 갈라놓은 온갖 장벽을 넘어가자. 이렇게 하여 우리는 친구들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며 우리는 살아가게 될 것이다. 친구들의 죽음은 나의 삶과 연결되고, 친구들의 못다한 꿈은 나의 꿈 안에 함께 하자. 죽음을 그냥 죽음으로 끝나지 않게 하자. 우리 삶에서 계속 이어지도록 하자


이 길이 잊지 않을게 친구들아약속을 지키는 길이다.       


정지석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 소장, 국경선평화학교 대표)



이 글은 YMCA 생명평화센터 정지석 소장(국경선평화학교 대표)님이 한국YMCA전국연맹 소식지 통권 254호(2014년 5~6월호)에 실고자 보내 주신 글이다. 


어린 자식들을 찾기 위해 울부짖고 빌고 비는 부모의 마음을 같이 하며 잊지하고 행동하고 변화하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보다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실고자 합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나의 이름'으로 이야기하며 생명의 기도를 나눴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개인의 문제로만, 희생당한 유가족들만의 문제로만 돌리지도 않고, 또는 나와 무관한 사회의 문제로만 돌리지도 않으면서 나의 삶에서 사회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관심과 사회문제에서 또 나를 찾아볼 수 있는 성찰과 행동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을 '생명가운데 정의로움과 함께 찾아오는 평화운동', '생명기도운동'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YMCA 회원, 시민들과 '생명의 기도문'을 나누고 싶은 분들은 제 멜(c-forum@hanmail.net)로 보내주시면 YMCA 회지, 관련 SNS 등에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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