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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원고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의 부름과 한국 그리스도인의 응답 2'-“생명평화의 눈으로 성서 다시 읽기”

by yunheePathos 2014. 8. 12.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의 부름과 한국 그리스도인의 응답 2


“생명평화의 눈으로 성서 다시 읽기”- 정복과 패권에서 해방과 나눔으로.

 

“구원과 해방의 하나님으로 알려진 성서의 하나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편파적이 차별 대우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국가가 설립되기 전에는, 구약성서예수를 예언하고 증거하는 기독교 성서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이스라엘 국가 형성 이후, 유태인들과 기독교 해석자들이 구약성서를 시온주의의 성서로 보는 것이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에게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구약성서가 시온주의도 뒷받침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지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풀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숙제이다.”(예루살렘 성공회의 아티크(Naim Ateek)신부)

 

팔레스타인은 한국 기독교의 성서읽기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2). 특별히 성서의 이스라엘과 지금의 이스라엘 국가를 구별하지 않은 ,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국가 건설과 점령을 성서적 예언의 성취로 보는 기독교 시오니즘(Christian Zionism 3)과 그것이 한국 기독교에 미치고 있는 영향, ‘선택된 백성과 약속의 땅’에 대한 분별력은 대단히 중요한 신학적 과제이다4). 

‘선민사상’, ‘땅에 대한 약속’, ‘가나안 정복’ 등은 중세 십자군 전쟁의 명분이었으며, 근대 유럽의 전 세계에 걸친 식민주의와 침략 이민자들에게는 그들의 정복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였다. 십자군들은 '여리고 성'을 함락하고 스스로가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살육을 자행하고, ‘이것은 성서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었다. 

근대 유럽에 의한 아프리카5)와 아메리카6) 대륙을 식민지화하는 역사와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7)도 이에 속한다. 남아프리카 신학자 모살라(Itumeleng J. Mosala)는 이 이야기들이 백인들에 의해 아프리카 흑인들이 당하는 억압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윤리적 권위를 상실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8)

물론 하나님의 백성과 약속의 땅에 대한 믿음이 이런 식민지 정복자들의 합리화를 위한 이데올로기로만 기여했던 건 아니다. ‘가라 모세(Go Down, Moses)9)’라는 흑인영가에서 볼 수 있듯 땅을 잃고 억압받는 이들의 희망과 자유를 위한 투쟁의 모델이기도 하였다. 

한국 기독교 또한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라는 절망의 땅에서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주는 신앙이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애굽 땅 노예들의 탈출과 해방이라는 이야기로 절망을 견디었고, 제국주의 총칼 앞에서도 해방과 자유를 말하고 정의를 행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대한 믿음으로 전쟁과 분단으로 갈라진 민족 앞에 새 희망과 새로운 세상을 설파했고 한민족의 단결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수고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이와 같이 인종차별과 식민지의 땅에서, 전쟁과 분단이라는 고난과 수난의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신앙이자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나눔을 만들어가는 평화와 치유의 종교였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 지금 어디에 있으며, 누구의 자리를 탐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이 되어 버린 한국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 한국 교회의 성서해석과 신앙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 신앙의 선조들이 말했던 모세와 여호수아가 지금 한국 교회에서 어떻게 불리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팔레스타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백과 질문을 통해 다시 성서읽기를 함으로써 한국 기독교를 성찰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해야 한다.



각주

2) '아브라함과 계약',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선택된 백성과 약속의 땅’, ‘가인과 아벨’, ‘하나님의 백성과 가나안 원주민의 관계와 갈등’, ‘다윗의 유대국가 건설과정에서의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예수의 이스라엘 이해’, ‘바울의 기독교 선교에서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정의와 평화’ 등등 성서를 새롭게 읽도록 인도하고 있다.

3)  철학자 레이보비츠는 이에 대해 “종교적인 유대인 가운데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점령 지구의 사수(死守) 정책에 관여하는 사람이 소위 ‘대 이스라엘’ 정책이 자신의 신앙의 본질이요 종교상의 계율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이스라엘아, 이 신이 우리의 신이다’(출애굽 32장) 라고 외쳤던 이들의 후계자이다. 금송아지는 오로지 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 ‘토지’, ‘국가’ 등의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다.”

4)  “한국 기독교에도 어느새 기독교 시오니즘이 확산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대해서 한국 기독교가 올바른 관점을 지니기 위해서는 우선 서구 기독교에 대중적으로 팽배해 있는 오류와 편견에 물들지 않도록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반유대주의적인 대체신학과 기독교 시오니즘을 함께 극복하면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지향하는 성서해석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팔레스타인 기독교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성서해석 방법론에 관한 근원적인 성찰들을 요청한다.”, 배현주(부산장신대 교수)

50 “바로의 군대처럼 우리의 뒤를 따라 영군 군대가 쫒고, 온 사방에 믿지 않는 검은 ”가나안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으므로, 우리들을 적의 손에서 구하시고 약소의 땅에 이르는 자유를 주셨다” 1836년, 화란계 아프리카인들의 ‘거대한 마차행진(the Great Treck)' 기록에서

6) 1776년 미연방공화국 설립자인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과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신생 미국의 국쇄(Great Seal)에 약속의 땅 이미지를 넣자고 제안하였고, 1805년 대통령 취임식 연설에서 제퍼슨은 “그는 우리를 품어주시며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듯이 우리 선조들을 옛 고향에서부터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고 평안이 넘쳐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사상과 미국을 고대의 가나안과 일치시키는 시도는 원주민들을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추방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했고 식민자들 스스로를 ‘사탄의 세력’인 미 원주민들과 싸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들에게 원주민들에 대한 약탈, 살인, 전쟁, 강제 이주, 땅의 강제 수용은 정복 신앙에 기초한 식민지 세력에게는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7)  “성지(Holy Land)를 구원하기 위해서 정복 전쟁은 유태 전통에서 있어서 의무다”, “자신들이 땅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고 현대판 블레셋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선택받았다”, “이스라엘에게 땅의 문제는 경제적인 혹은 국가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점령지역을 빼앗고 지키는 것은 종교적 의무”라고 말한다.

8)  “백인들이 성서를 오용한 결과에 대한 항의는 흑인들로 하여금 백인 노예제도로부터 해방에 아무런 힘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종 격리주의의 특헤자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왜 이런 이야기가 성서의 앞부분에 있어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성서 전체가 인권이나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 있지 않음이 오직 유일한 타당성과 설명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9) “내 원수 네 앞에 서지 못하고, 너는 가나안 땅 차지하리니. 이 세상 근심 걱정의 광야를 넘어 자 가자 가나안으로. 이제 노예의 쇠슬 끊어 버리고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리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의 부름과 한국 그리스도인의 응답" 중 에서

- 생명평화의 대안성지순례를 생각한다.


<2013년 12월, '한국YMCA 간사회(AOS) 푯대지'에 실린 글을 4편으로 나눠 올린 것이다.>


3편 계속보기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의 부름과 한국 그리스도인의 응답 3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호소와 요구 :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


가자YMCA와 한국YMCA가 보내는

가자지구를 위한 긴급 호소문

▢ 후원계좌 : 농협, 056-01-104546 (한국기독교청년회)

http://yunheepathos.tistory.com/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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