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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YMCA

정지석박사의 팬들힐 이야기 2. 결국 사람이 희망인가?, 만남과 관계에서 영향을 미치려는 태도보다는 충실하게 대하는 태도가 좋은 것

by yunheePathos 2010. 11. 29.
미국 팬실베니아 팬들힐 공동체를 방문 중에 계신 정지석박사(YMCA 생명평화센터 소장)가 두번째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팬들힐 80주년을 기념한 파커 팔머 박사의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요,

개인적으로 이 글을 통해  Faithful rather than Affective(만남과 관계에서 영향을 미치려는 태도보다는 충실하게 대하는 태도가 좋은 것), '숨겨진 커리큘럼(A hidden curriculum)',  '끊임없이 계속 실천하는 용서 continuing action to forgiveness'로 공동체를 정의하는 것, 영적 공동체의 소중함 등에 대해 울림을 듣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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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이 희망인가

- 펜들힐 80주년 기념 파커 팔머 강연을 들으면서 -

 

펜들힐 80주년 기념강연으로 파커 팔머가 왔다. 펜들힐 학장을 했고, 많은 미국 퀘이커들에게 존경을 받는 퀘이커이다. 1974년부터 11년간 학생으로, 그리고 학장으로 지내면서 펜들힐과 인연을 맺었고, 펜들힐과 인연을 가진 이래 그는 감리교인에서 퀘이커로 이동했다. 사회학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로서, 7권의 책과 많은 글들을 쓴 저자로서, 영적 훈련과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하는 공동체의 선생이자 리더로서 그는 현재 71살의 나이가 된 사람이다. 그는 오늘 많은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펜들힐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곳에서 만났던 중국 친구와의 이야기, 펜들힐 책임자였던 더글라스 스티어와의 만남과 그로인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게 된 이야기(더글라스 스티어는 함석헌 선생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데 기여한 퀘이커이다), 그리고 낯설었던 퀘이커리즘과 문화, 공동체의 삶을 재미있게 이야기 했다.


그의 이야기 중에서 나에게 깊이 들어왔던 몇 가지 점들을 기록해 본다.


A Hidden Curriculum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표면으로 드러난 일들에서보다 안보이는데서 더욱 자신을 이끌었던 교육이 있었음을 깨달았는데 그는 이것을 '숨겨진 커리큘럼(A hidden curriculum)'이라 불렀다. 그의 전 인생 가운데 펜들힐에서의 삶도 숨겨진 커리큘럼의 과정이었다. 누구에게나 그 인생 안에는 숨겨진 커리큘럼이 작동하고 있으니 어느 곳, 어느 상황에 있든지 자신을 실현하는 길을 찾아라,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 인생 안에 작동하는 숨겨진 커리큘럼! 참 좋은 표현이다. 나도 종종 이런 일을 깨달을 때마다 하나님의 섭리 혹은 안보이시는 그 분의 손길이라 불렀는데, 팔머는 이 삶의 비밀을 숨겨진 커리큘럼이라 부른다.


Community

공동체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계속 실천하는 용서 continuing action to forgiveness'라고 팔머는 말한다. 그리고 공동체는 사람이 떠나면 다시 다음 사람이 그 자리에 오는 곳이란다. 80년동안 이어오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펜들힐 공동체를 이만큼 사실적으로 실감나게 느끼도록 해주는 공동체 설명이 또 있을까 싶다. 매우 사실적이고 생활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찾아오고 또 떠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생각해본다. 사실 지구 공동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한 세대가 떠나면 다음 세대가 태어나서(찾아와서) 살고 또 떠나고 찾아오는 곳 그곳이 지구 공동체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머물고 일하는 곳 역시 공동체이다. 계속 용서하고 계속 이어지는 곳!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이름이다.


Meeting for Worship

공동체는 모든 사람들이 만남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만나는 곳이다. 모든 진짜 존재는 만남이다 All real being is meeting between ...  존재를 의미있게 하는 것은 만남이며, 예배의 만남(meeting for worship)은 그 만남의 중심이다. 그는 퀘이커 예배 모임에서 자신이 정돈되고 다듬어짐을 느꼈는데, 마치 목공소의 대패처럼, 거친 나무같은 자신이 다듬어졌다고 고백한다.


Meaningful Living

의미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meaningful is living being). 의미있는 배움은 앞으로의 여생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팔머는 말한다. 참 좋은 말이다. 늙어감이 허무와 죽음의 공포로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의미로 넘치고 살아있는 존재감을 얻어가는 길은 인생 속에 숨겨진 커리큘럼을 인식하며 의미있는 배움을 계속해 가는 것이리라.  팔머는 펜들힐을 영적으로나 삶의 전체를 살아감에 있어서 안전한 장소이며, 이런 곳이 오늘 같은 불안함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더욱 귀중한 곳이라고 역설한다. 사람들이 모여 안심하고 깊은 영성을 체험하며 의미있는 배움을 지속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곳이 세계 도처에 많이 생겨나길 기대해 본다.  


Faithful rather than Affective

영향을 미치려는 태도보다는 충실하게 대하는 태도가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팔머는 말한다. 그가 일흔살을 넘어오면서 깨달은 삶의 태도이다. 이 태도가 깨어진 관계, 사람들간의 비극적인 간격을 해결하는 길이다.   


결국 사람이 희망인가

강연 후 몇 개의 질의응답이 오고갔다. 그 가운데 주목되는 질문은 21세기 위기 상황에 있는 세계 속에서 퀘이커 영성이 기여할 바 선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거대질문이었다. 그러나 현대 퀘이커들, 그리고 퀘이커리즘의 장점에 기대를 거는 사람에게는 매우 관심을 끄는 질문이다. 팔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오랜동안 했다. 그만큼 대답하기 곤란한, 커다란 질문이기 때문이리라. 그의 대답을 요약하자면,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영성과 삶의 태도를 지속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한 장소로서 펜들힐 같은 곳의 의미를 강조했다. 너무 불안정한 세상에서 불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작지만 꼭 필요한 장소로 계속 남아달라고 했다. 그는 줄곧 영적 추구를 계속하는 삶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국 희망을 사람에게 두자는 것이라는 그의 진심을 느꼈다. 팔머는 언제나 영적 추구는 어둠속에서 시작하느니 만큼 위기라고 여겨지는 때에 영적 여행을 시작하자고 한다. 영적 여행이라 하면 절망과 무의미함과 이기심으로부터 참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는 거대담론을 일상의 피부에 와 닿는 일에서부터 답변을 구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시시콜콜한 생활이야기를 중심으로 삼는 여성들의 대화법이랄까? (그래서 여자들의 수다는 언제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밌다. 반면에 거대담론을 하는 남자들은 술 없이는 대화가 안되며, 정치 이야기로 흘러가 꼭 싸우곤 한다). 자신의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하면서, 청중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최근 퀘이커 청년 모임에서 경험한 일을 이야기했다. 청년들은 함께 모였을 때, 노래부르고, 일하고, 시를 읽으면서 토론도 하더라는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갱신되는 경험을 그는 줄곧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청년운동 시절 우리가 노래부르고, 토론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참 암울했던 시절인데 노래를 부르면서 희망을 잃치 않았던 것을 기억했다. 다시 노래부르자. 공동체는 노래부르는 곳이란 개념 규정을 하나 더 넣어야겠다. 자기 자신의 내적 갱신으로부터 사회 변혁운동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결국 그 거대한 질문에 대한 팔머의 대답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결국 사람인가'라는 새삼스런 화두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사람이 희망이다. 그러면 사람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람에서 시작한다면 그 사람 안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안에서부터 새로운 힘과 성찰과 생각과 신념이 나오는 길, 새로운 종교의 일이며, 새로운 영성이 요청되는 이유이다. 새로운 영적 갱신운동으로부터 사회 변혁으로 나아가는 길, 이것은 오래전에 예수가 걸었던 길이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걸오온 길이다. 오래된 새길... 결국 다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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