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선(세계YMCA연맹 전 회장, 이화여대 명예교수)
“그 날이 오면, 주의 성전이 서 있는 주의 산이 산들 가운데서 가장 높이 솟아서, 모든 언덕을 아래로 내려다 보며, 우뚝 설 것이다. 민족들이 구름처럼 그리로 몰려올 것이다.
민족마다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께서 우리에게 주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주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다른 모든 민족은 각기 자기 신들을 섬기고 순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나, 주 우리의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분에게만 순종할 것이다.(미가 4:1-5)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려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2)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려는 것입니다. (에베소 2:14-16)”
인사
한국 YMCA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기서 조금 만 더 가면, 휴전선 철조망이 보이고 중무장한 우리 군인들과 기관총이 달린 전차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곳, 휴전 상태인지 전쟁 상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감도는 이 땅에서 평화를 말하고, 통일을 위해서 일하려고 다짐하는 “YMCA 평화통일운동협의회” 출범을 위하여 자리를 같이 하게 된 것, 감동과 전율을 느낍니다. 그리고 눈물로 치하하고 싶습니다.
193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80이 넘도록 살아남아서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게 된 일제 강점기 세대에게는 일제 강점 36년은 분단 70년의 우리 민족의 비극에 비하면 오히려 짧은 감이 들 정도입니다. 일제 36년, 그리고 분단 70년. 우리는 일제 식민지 노예 생활 36년을 채 청산하지 못한 채, 한반도의 허리가 동강나고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노예 생활 70년을 죽지 못해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피로 물 든 이 철원의 백마고지에서 깊은 밤 마다 들려오는 아우성 소리는 남과 북의 젊은이들과 미국과 유엔의 이름으로 온 세계 방방곡곡에서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달려 온 피부 색깔이 다른 젊은이들의 피눈물 나는 통곡소리로 들립니다. 3년 동안을 피 터지게 싸우고 1953년 7월 27일, 그러니까 62년 전 내일 모래, 무기를 내려놓고, 전차들을 세우고 전쟁을 중단하고 쉬자는 약속을 하고는, 계속해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증오, 분노와 복수의 아우성이 소름끼치는 이 휴전선, 전쟁을 준비하는 이 땅에서 평화를 말하고 화해를 꿈꾸고 협력을 계획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떨리고, 무섭습니다. 그러나 눈물 나게 기쁘고 감동 먹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YMCA의 전통
오늘 우리가 평화통일운동협의회 출범을 위해서 모인 것은 우리 한국 YMCA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 받아 미래를 향한 헌신을 약속하기 위해서입니다. 20세기가 전쟁으로 동 트고 물들고 있고, 일본제국주의가 아시아 대륙에 전쟁의 야수를 뻗어 한반도를 삼키고 있을 때, 한국 땅에 들어 온 YMCA 기독교 청년 운동은 조국의 자주와 독립을 가슴 속 깊이 품고 출범했습니다. 그리고 3.1 민족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분단된 나라의 반공 이데올로기와 군사 안보 독재가 기승을 부릴 때 한국 YMCA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한 역사가 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투쟁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민주주의와 조국의 평화 통일은 분리할 수 없는 공동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제하 자주 독립운동에 이어, 군사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을 거쳐, 이제 우리 한국 YMCA는 분단 한국을 넘어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향해 한 거름 더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 YMCA는 작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조국의 평화 정착과 통일을 달성하는데 헌신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목적문에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명기했습니다. 21세기에 다시 태어난, 우리 한국 YMCA의 역사적 선교적 사명을 온 천하에,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밝힌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모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과 감동으로 떨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는 오늘 두려움과 떨림으로 모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택한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증오의 시대에 화해와 사랑을 말해야 하고, 분노와 복수의 담론을 거역하고 용서와 포용의 담론을 시작해야 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휴전선에 와서 평화를 준비하고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분단의 시대에 통일을 말하고 전쟁의 검은 구름이 온 천지를 뒤 덮고 있는 세상에서 평화와 희망을 외친다는 것은 무섭고 외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군사 문화 속에서 평화와 민주주의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기득권 문화에 거스르는 반문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간신히 메르스 왕관 바이러스 전염병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70년 묵은 분단 바이러스는 극복하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분단 바이러스는 70년 동안 우리나라와 우리 몸과 마음을 온통 병들게 하고 있는 무서운 바이러스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이제 우리 DNA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분단 바이러스는 625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는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이 바이러스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 서로를 진보다 종북이다, 친미다 보수다 하면서 진영논리로 서로를 헐뜯고 평화 이야기나 남북 교류와 협력을 이야기만 하면, 종북이라고 하고 좌파라고 낙인을 찍고 있습니다. 분단 바이러스는 증오와 공포와 분노와 복수의 악순환을 만들어 나가는 죽음의 바이러스입니다.
이 분단 바이러스와 전쟁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항체, 평화의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우리 한국 YMCA가 평화 바이러스를 만드는 평화 바이러스 제작소가 되겠다고 다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평화 바이러스는 상처 투성이 한반도를 치유하는 것이고, 온 아시아 대륙을 치유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88 선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 NCC는 1988년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는 바로 그해 88선언이라는 평화통일 문서를 만들어 온 천하에 밝혔습니다. 평화 바이러스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은 첫째로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야 평화 이야기를 국정원의 해킹 방해나 억압을 받지 않고, 마음 놓고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전쟁을 반대하는 말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지금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평화협정에는 핵문제가 해결되고, 군축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미군 철수 문제가 제기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7년 전 우리는 소리만 크게 냈지, 88선언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88 선언을 행동으로 운동으로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달, 서울에서 열린 통일 전문가들의 모임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그 모임에 참석한 한 젊은 독일 학자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독일 통일이 갑자기 준비 없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동안 20년이 넘게 평화와 교류 그리고 협력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 얻은 것이 독일 통일이라고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독일 학자는 독일이 통일 되었을 당시 15살의 고등학교 학생이었는데, 자기 자신은 독일 통일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서독에 살면서 동독의 같은 또래의 학생들과 편지 교환을 했다고 하면서 그때부터 동독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편지를 교환하는 동안 동독의 펜팔 친구를 직접 만나러 동독에 여행도 다녀오게 되면서 통일을 생각해 보고 이를 위해서 정치학과 국제정치학자가 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YMCA 학생들에게도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남한의 목사님들, 특히 YMCA 지도자들이 북한의 교회 지도자들과 꽤 자주 만나는데 평양의 교회를 통해서 우리 젊은이들과 북의 젊은이들과 편지 왕래도 하고 YMCA가 주최하는 남북 축구대회나 농구대회를 열면서 왕래하고 교류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우리가 북으로 보낸 자전거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서 서울로 와서 남 쪽 산과 바다를 함께 달리는 모임도 만들어 볼 수 있지 많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일을 행동으로 몸으로 운동으로 우리 힘으로 시작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여기 모인 것입니다.
칼을 쳐서 낫을 만들고...
오늘 봉독한 구약 성경의 선지자 미가의 말씀처럼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고 운동 목표입니다. 분단 바이러스와 함께 우리를 병들게 하는 안보 바이러스, 우리 군대를 비리와 부패로 병들게 하고 있는 군비 바이러스를 평화 바이러스로 차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위해서 일하라고 하시고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평화를 위해서 일하던 선지자들은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전쟁 바이러스와 싸우고 분단 바이러스와 싸우는 데는 희생이 따릅니다. 순교를 각오해야 합니다. 평화를 말하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평화의 왕 되시는 예수님이 가신 가시밭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가겠다고 다짐하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아멘.
한국YMCA평화통일운동협의회 창립선언문
https://yunheepathos.tistory.com/m/706
한국YMCA평화통일운동협의회 창립예배 설교문(2015. 7.25. 철원제일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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