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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인물20

YMCA 인물 48. 3.1독립운동 민족대표 양전백(梁甸伯) 목사 3.1독립운동 민족대표양전백(梁甸伯) 목사 -학생Y 운동의 개척자로 지도력 발휘 한국장로교 최초의 7인 목사로 손꼽히는 분이며 3.1독립운동의 33인 민족 대표이신 고(故) 양전백(梁甸伯) 목사. 1869년에 평안북도 구성(龜城)에서 태어난 그는 타고난 학자의 기질과 재능으로 한학을 수학한 후 곧바로 마을 서당의 훈장이 되었다.때마침 만주에서 예수를 믿고 돌아온 백홍준(白鴻俊), 이응찬(李應贊), 서상륜(徐相崙) 등 초대교인들은 의주를 중심으로 철산, 구성, 선천의 각 군인(君人)들에게 만주로부터 들여온 기독교 서적을 배포하게 되었다. 이때 소년 양전백은 처음으로 기독교 서적을 보게 되었고, 구성 사람 김이련(金利鍊)과 김관근(金灌根) 부자(父子)의 전도로 26세가 되던 해에 기독교인이 되었다.때마침 청.. 2018. 12. 4.
YMCA 인물 47. Y 농촌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개척자 백사당(白沙堂) 양주삼(梁柱三) 박사 Y 농촌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개척자백사당(白沙堂) 양주삼(梁柱三) 박사 -Y운동 조직화와 한국NCC 창설에 공헌 아호가 백사당(白沙堂)인 양주삼(梁柱三) 박사는 1879년 1월 25일에 평안도 용강(龍岡)에서 출생했다. 4남매 가운데 맏아들인 그는 6세 때부터 한문공부를 시작했다. 유불선삼도(儒彿仙三道)로부터 시작해서 동학에 흥미를 갖기도 했으나, 우연한 기회에 만국공보(萬國公報)와 덕혜입문(德慧入門) 등의 한문으로 된 기독교 서적을 읽게 되면서 기독교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20세가 되던 1899년에 그는 서울로 올라와 선교사들과 만나면서부터는 유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 헐버트(H. B. Hulbert) 선교사의 소개장을 얻은 그는 25원을 꾸려서 1901년에 상해로 가는 선박에 오르게 되어 남감리.. 2018. 12. 4.
YMCA 인물 46. 참다운 평신도상을 심어준 해사(海沙) 김명선(金鳴善) 박사 참다운 평신도상을 심어준 해사(海沙) 김명선(金鳴善) 박사 -인술을 통해 영혼을 구혼하는데 힘써 해사(海沙) 김명선(金鳴善) 박사는 1897년 10월 17일, 지금은 이북 땅이 되어버린 황해도 장연군(長淵君) 대구면(大救面) 송천리(松川里)에서 태어났다. 송천리는 보통 ‘소래’라고도 하고 ‘솔내’ 또는 ‘솔샘’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소나무가 울창한 계곡에 맑은 샘물이 콸콸 솟아 문전 옥답에 물을 넉넉히 대어주면서 황해바다로 잇고 있으며 소나무 숲과 바닷가의 모래밭, 그리고 그 위에 만발한 해당화의 절경은 유명하다. 그보다도 소래 마을은 한국 개신교의 요람지이기도 하다. 대개는 1885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목사가 한국에 입국함으로써 처음 복음이 전파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미 소래마을에는 복음의 씨가 .. 2018. 12. 4.
YMCA 인물 45. 한국선교의 기반을 닦은 서울YMCA 3대 회장 터너 주교 한국선교의 기반을 닦은 본회 3대 회장터너 주교 한국성공회 제 2대 주교와 황성기독교청년회 (즉 서울YMCA)의 제 3 대 회장을 지낸바 있는 A.B.터너(Arthur Beresford Tur-ner) 주교는 1862년 8월 24일 영국에서 출생, 한국에는 1896년 12월 2일에 입국했다. 한국에 와서는 단 아덕(端雅德)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그는 옥스퍼드 케블(Keble)대학과 커데스돈(Cuddesdon)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887년에 옥스퍼드에서 부제(副祭:Deacon), 1988년에 사제(司祭:Priest), 1905년 1월 25일 제 2대 한국성공회 주교로 서품(叙品)을 받고, 1910년 10월 8일데 한국에서 순직하여 양화진 외인묘지에 묻힐 때까지 한국 선교의 기반을 닦아 놓은 위대한 .. 2018. 12. 4.
YMCA 인물 44. 재일본 한국Y 4대총무 이기윤(李基潤) 선생 재일본 한국Y 4대총무이기윤(李基潤) 선생 -YMCA활동과 함께 성북고교 설립 등 교육사업에 헌신 재일본 한국YMCA의 제 4대 총무를 지낸 바 있는 이기윤(李基潤) 선생의 약력을 찾아내기 위해 무척 고심을 하던 차에 문득 김희선(金熙善) 선생을 우연히 어느 모임에서 만나, 그의 도움으로 이 글을 쓰게 됐다.이기윤 선생은 1879년 함경남도 단천(端川)군 단천읍 태생이다. 단천은 인물이 많이 배출되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예를 들면 한국 현대사에 혜성과 같이 나타났던 이동휘(李東輝) 선생, 북한의 괴뢰 김일성이 아닌 진짜 김일성(金一成) 씨, 건국대학의 창설자인 고 유석창(劉錫昶) 선생, 세종대학의 창설자이며 이사장인 주영하(朱永夏) 박사, 일본 동경교회의 목사이며 전 재일본 한국Y의 이사장이던 오윤태(吳.. 2018. 12. 4.
YMCA 인물 43. 현대 건축사의 선봉자 이명원 선생 현대 건축사의 선봉자이명원 선생 -이 선생은 젊은 간사로서 일제의 경제적․폭력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열성 회원들과 함께 YMCA를 사수하는데 성공했다 내가 직접 만나본 Y원로회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높으신 회원이었다. 선생은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약 10개월 전인 1884년 2월 25일 서울에서 이경윤(李慶允)씨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일찍이 개화되어 1906년에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를 졸업하고 1907년부터는 궁내부(宮內府) 주사를 지냈다. 그러나 월남 이상재 선생의 권유로 YMCA학원 영어과에 입학하여 1911년에 제 3회로 졸업, 이어 그 간사가 되었다. 선생이 간사로 있을 때의 일인데, 1913년 당시 부총무로 있던 김 인(金 麟)이 일본 총독부의 사촉을 받아 YMCA를 파괴하려 할 때, Y 이사.. 2018. 12. 4.
YMCA 인물 42. 광복시인이며 영문학자인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선생 광복시인이며 영문학자인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선생 3.1운동 때에는 YMCA 학관에서 배운 영어로 독립선언서를 번역하여 구미 각국에 알리기도…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선생은 1898년 5월 9일 서울 맹현(孟峴, 종로구 가회동)에서 변정상(卞鼎相) 씨와 진주 강(晋州 姜)씨 사이의 3남으로 출생했다. 호는 수주로 광복시인이며 수필가, 영문학자, 언론인, 한학자이기도하다. 그의 가족으로는 법률가인 삼청(三淸) 변영만(卞榮晩) 씨가 그의 맏형이며, 자유당 정권 때 외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바 있는 일석(逸石) 변영태(卞榮泰) 씨가 그의 가운데형이다.그는 1907년에 사립중앙학교(中央高普 전신)를 다니다가, 1910년에 사립 계산학교(桂山學校)와, 1912년에 YMCA청년회 학관 영어과를 졸업했고.. 2018. 12. 4.
YMCA 인물 41. Y일요강화와 하령회를 통해 청년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킨 교육자 김창제(金昶濟) 선생 Y일요강화와 하령회를 통해 청년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킨 교육자김창제(金昶濟) 선생 Y창설시부터 학생회원으로 활동교육자이면서 웅변가로도 유명했던 김창제(金昶濟) 선생은 1877년에 충청남도 보령군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문학에 뜻을 품은 선생은 일찍이 상경하여 관립한성사범학교(경기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했으며 1903년에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창설될 때부터 학생회원으로 활동을 했다.이미 기독교 신자이기도 했던 선생은 한국YMCA 창설과 함께 회원으로 출발하여 전 생애를 Y운동의 지도자로 마쳤다고도 할 수 있다. 안동장로교회를 개척또한 선생은 안동교회의 창설자 중의 일원이기도 했다. 당시 장로교회는 장안에다 교회를 세울 때 지역적인 면에 많은 고려를 해서 세웠다. 즉 서대문 쪽에는 새문안교회.. 2018. 12. 4.
YMCA 인물 40. 전쟁고아와 부녀자 구호사업에 힘쓴 창주(滄柱) 현동완(玄東完) 선생 전쟁고아와 부녀자 구호사업에 힘쓴창주(滄柱) 현동완(玄東完) 선생 현동완(玄東完) 선생은 1899년 6월 12일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호는 창주(滄柱)로서 그는 1917년 조선중앙YMCA 학관을 졸업한 뒤, 1918년부터 YMCA 간사로 피택되어 소년부와 체육부 간사, YMCA 연맹 주임간사, 영창학교(英彰․Y학관) 교장, 그리고 서울YMCA 총무를 지내는 등 거의 전 생애를 YMCA와 더불어 산 Y멘이다.그의 가문은 YMCA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큰아버지인 현흥택(玄興澤) 씨는 구한말엔 군인으로서 전권대사 민영익(閔泳翊) 씨의 수행원으로 미국과 구라파 여행을 했으며, 1896년에 독립협회가 조직될 때에는 정령(正領)의 신분으로 창설에 많은 활약을 했다. 특히 1903년에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창.. 2018. 12. 4.
YMCA 인물 39. 창의력과 실천력을 겸비한 자원지도자 설봉 전택보 선생 창의력과 실천력을 겸비한 자원지도자설봉 전택보 선생 1901년 11월 1일에 함경남도 문천국 교월리(橋越里)에서 탄생한 전택보 선생은 14세 때에 부모를 따라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부모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므로 교회학교에 다니면서 민족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1919년 3.1독립운동 때에는 독립신문을 인쇄하여 동지들과 신문을 뿌리고 만세를 부르다가 죽을뻔 했으나 이듬해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나면서부터 가난하게 태어난 그는 고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팔이, 인력거도 끌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철학이나 인문 계통의 학문을 하려했으나 도중에 마음의 변화를 입어 상과를 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924년인 24세 때에 고베(神戶) 고상(高商)에 입학, 4년 간의 수업을 우수한 성적으로.. 2018.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