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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인물20

YMCA 인물 38. 좌익세력에 대항하여 재일본 한국YMCA를 지켜온 김옥남(金玉南) 선생 좌익세력에 대항하여 재일본 한국YMCA를 지켜온김옥남(金玉南) 선생 한나라의 역사에 흥성한 때와 침체한 때가 있는 것처럼 한 단체의 역사도 흥성기와 침체기가 있기 마련이다. 재일본 한국YMCA의 과거 70여년 간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몇 차례의 흥성했던 시대를 회상하며 긍지와 명예를 느끼게 된다. 김정식, 백남훈, 최승만, 김우현 총무 당시에 흥성기 이뤄1906년, 재일본 한국YMCA는 당시 황성기독교청년회의 부총무로 있던 김정식(金貞植)씨가 일본으로 파송됨으로써 창설되었다. 창설과 함께 총무에는 김정식씨, 이사에는 조만식(曺晩植)씨 등이 되었으며 그 두 사람이 창설기의 꽃을 피웠는데 이때가 최초의 흥성기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백남훈(白南薰) 총무 당시라고 할 수 있다. 재일본 유학생의 2.8독.. 2018. 12. 4.
YMCA 인물 37. 세계 YMCA 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공헌한 존 알 모트 박사 세계 YMCA 운동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공헌한존 알 모트 박사 모트 박사는 1865년 5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감리교 소속 평신도로서 대학YMCA운동에서 시작하여 전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인물이 되었다.즉 그의 약력을 간단히 소개하면, 1888년부터 1915년까지는 YMCA 국제위원회의 학생부 간사로 있었고, 1895년에는 WSCF 즉 기독학생연맹을 창설하여 다년간 그 회장이 되었다. 또한, 1910년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획기적 사건인 에딘바라 대회(Edinburgh Conference)를 주최하여 그 계속위원회의 회장이 되었고, 1915년부터 1928년까지는 SVM, 즉 미국 해외 선교운동에 붐을 일으킨 학생자원봉사단(Student Volunteer Movement)의 회장이 되었다... 2018. 12. 4.
YMCA 인물 36. 이상향 건설에 몸바친 독립운동가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선생 이상향 건설에 몸바친 독립운동가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선생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선생은 1864년 3월 25일 평안남도 정주(定州)읍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당시에 기독교측 민족대표로 활약한 남강은「내가 죽거든 몸뚱이를 땅에 묻지 말고 학생들이 만질 수 있도록 생리학 표본으로 만들어 학교에 두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위대한 애국자이다.YMCA와의 관계는 직접적으로는 남강선생이 창설한 정주 오산(五山)학교에다 학생YMCA를 조직하면서부터이고 간접적으로는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 산농(汕農) 박승봉(朴勝鳳) 선생, 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 선생들과 민족운동을 벌인데서 찾아볼 수 있다.그러나 먼저 선생의 생애를 보면, 가세가 너무 가난하여 11세부터 남의 .. 2018. 12. 4.
YMCA 인물 35. 3.1운동을 초교파적인 연합운동으로 이끌어간 33인 민족대표 국사(菊士) 오화영(吳華英) 목사 3.1운동을 초교파적인 연합운동으로 이끌어간 33인 민족대표국사(菊士) 오화영(吳華英) 목사 국사(菊士) 오화영(吳華英) 목사는 1879년 4월 5일에 황해도 평산군 평산면 대촌리에서 오석조(吳錫潮)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향리에서 한문을 배우고 한때는 동학난에 가담하여, 1891년에는 잠시 만주에서 망명생활을 한 적도 있다. 귀국하여 1901년부터는 구한국 정부의 우정판사(郵政判事)라는 관직에 있은 적도 있으나 2년 뒤 이를 사임하고 1911년까지 향리에서 장사도 하고 농사도 했다.국사 선생이 기독교 신자가 되기는 향리에서 장사와 농사를 할 시기인 것 같다. 그리고 1918년에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제 6회로 졸업했는데, 목회를 시작하기는 이보다 6년 전인 1912년부터이며, 1916년부터 3년 간 원산.. 2018. 12. 4.
YMCA 인물 34. 민족의 장래를 청년에게 걸었던 3.1운동의 33인 민족대표 월당(月塘) 최성모(崔聖模) 목사 민족의 장래를 청년에게 걸었던 3.1운동의 33인 민족대표월당(月塘) 최성모(崔聖模) 목사 월당(月塘) 최성모(崔聖模) 목사는 1874년 1월 9일에 서울 안국동에서 최영칠(崔永七)씨의 독자로 출생했다. 3백년 이상 서울 북촌에서 살아온 선비의 가문에서 태어난 월당은 15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할 생각은 없고 그저 집에 들어앉아 책이나 읽으면서 청년기의 울분을 달래었다. 그러다가 28세 되던 해 어느날, 친구 이필주(李弼柱, 33인 민족대표)씨와 함께 상동교회 문 앞을 지나다가 연설회 광고문에 이끌리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 날부터 두 청년은 그 교회의 전덕기(全德基)씨를 알게되었고, 그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어 상동교회의 교인이 되었다.YMCA회원이 된 것은 1906년쯤부터인가 싶다.. 2018. 12. 4.
YMCA 인물 33. 덴마크식 농촌운동의 개혁자 청만(晴巒) 이기태(李基台) 선생 덴마크식 농촌운동의 개혁자청만(晴巒) 이기태(李基台) 선생 청만(晴巒) 이기태(李基台) 선생은 1894년 6월 7일에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을 닮아 전형적인 한국의 선비 그대로의 천성과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학문과 글쓰기를 즐겼다. 담담하고 조용한 그의 일상생활은 극히 평범했으나 도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으며, 두드러지게 사회에 나타나는 일이 없었어도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YMCA와의 관계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활발히 촉진되었던 덴마크식 농촌운동에 가담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청만 선생은 빈틈없는 문필가로서 YMCA 기관지인 청년(靑年)에다가 ‘농촌으로 가자’라는 제목의 글을 썼으며, ‘정밀의 농업’이라는 논문을 9회나 연재하기도 했다.청만 선생은 정열과 지식을 겸.. 2018. 12. 4.
YMCA 인물 32. 한국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찌(會田嘉伊智) 옹 한국 고아의 아버지소다 가이찌(會田嘉伊智) 옹 소다 가이찌(會田嘉伊智) 옹은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고아들을 위한 사업에 헌신한 사회사업가이며 교육자이다. 1867년 10월 20일에 일본 야마구찌겐(山口縣)에서 태어난 그는 20세가 되던 해부터 고향을 떠나 방랑생할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양문명의 창구 구실을 했던 나가사끼(長琦)항의 탄광에서 광부일을 하면서 고학하던 것을 비롯해서 25세부터는 노르웨이 화물선 선원이 되어 홍콩에서 수년간 식민지로서의 생활을 겪었다. 그리고 29세에는 대만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당시의 대만도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이다. 그곳에서 독일인이 경영하는 제조공장에서 통역을 하다가 32세 되던 해에 중국본토에 가서 일본군대의 군속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 2018. 12. 4.
YMCA 인물 31. 재일본 한국Y 2대 총무 해온(解溫) 백남훈(白南薰) 재일본 한국Y 2대 총무해온(解溫) 백남훈(白南薰) 백남훈(白南薰) 선생의 아호는 해온(解溫), 1885년 11월 3일 황해도 은율군 장연면 서부리 176번지에서 탄생, 83세의 고령으로 1967년 6월 28일에 이 세상을 떠나신 분이다. 교육가, 정치가, 사회운동가로서도 찬란한 경력을 가진바 있는 그가 YMCA와 관계를 갖게 된 것은 1909년에 선생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부터였다. 선생은 25세 되던 해에 도쿄의 명치학원(明治學院)에 입학하여 1913년에 졸업하고, 다시 와세다(早稻田) 대학 예과를 거쳐 1917년에 동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도쿄에 가자 곧 재일본 한국YMCA(원명은 재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의 총무 김정식(金貞植) 선생의 안내로 그 회원이 되는 동시에 때마침 일본 유학생 전.. 2018. 12. 4.
YMCA 인물 30. 육정수(陸定修 또는 陸定洙) 선생 육정수(陸定修 또는 陸定洙) 선생 육정수(陸定修 또는 陸定洙) 선생의 아호는 삼전(三田), 본관은 옥천(沃川)이다. 1885년 2월 25일, 충청북도 옥천(沃川)에서 명문거족인 육(陸)씨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그(故 陸英修 여사의 사촌오빠)는 12세 때인 1896년에 서울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마침 독립협회가 창설되었으므로 학당 안에서 서재필(徐載弼), 윤치호(尹致昊) 등으로부터 신문학과 의회헌법, 만국공법(萬國公法, 즉 국제법), 영어 등을 배웠다. 그 당시의 동창생으로서는 이승만, 신흥우, 여운형, 정교, 양홍묵, 오긍선 등 명사들이 많았는데, 이들로 학교 안에 협성회(協成會)가 조직되었을 때에 그는 창설회원의 한사람으로도 활약했다.YMCA운동에 그가 처음으로 가담한 것은 1901년 배재 대학부 학.. 2018. 12. 4.
YMCA 인물 23. YMCA 최초의 체육간사인 소포(小圃) 김종상 선생 YMCA 최초의 체육간사인소포(小圃) 김종상 선생 한국 기독교청년회 사상 최초의 체육간사인 소포(小圃) 김종상 선생은 1885년 1월 14일 강원도 정선군(旌善君)에서 한학자 김찬배(金讚培) 씨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서울에 온 그는 한학을 공부하고 일찍이 관립영어학교에 입학했다. 너무 어리기도하고 시골서 왔기 때문에 입학 자격이 없었지만, 함종(咸鍾) 부사를 지낸 바 있는 무관 출신의 그의 조부와 그 당시 학부대신(學部大臣)이던 민영찬(閔泳瓚) 씨와 가까운 친구였으므로 그의 특청으로 13세 때에 입학하여 1904년까지 거의 7년 간 영어를 공부했다. 처음 입학할 때는 장가를 든 성인처럼 가장하기 위하여 머리채를 올려 상투를 틀고 다녔으며 결혼은 16세 때에 오신원 씨와 했다.그가.. 2018.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