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인식 전환과 어느 선교사의 5·18 기록 (출처 : 518기념재단)
5·18기념재단은 5·18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해외자료를 분석하여 발표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최용주 비상임연구원은 이번 보고서 외에도 지난 5월 「카터 행정부의 인권외교의 포기가 광주학살에 큰 영향을 미쳐」, 6월 「안보우선의 경로종속성 -1979~1980년 5월까지 미국의 대한(對韓)정책 분석」을 번역·분석하였다.
1. 5·18기념재단은 1980년 5·18 당시 광주에 거주하던 미국인 선교사가 작성한 5·18관련 일지를 발굴해서 번역 공개하였다.
2. 이 일지는 주한 미국대사 마크 리퍼트가 2017년 1월 18일 5·18기념재단에 기증한 5·18관련 기밀해제 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조사결과 미국정부가 1997년에 광주광역시에 제공한 기밀해제문서철에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제 9권 참조)
+ http://www.518archives.go.kr/books/ebook/9/#page=363 363~388쪽
3. 이 문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이 입수하여 “광주소요에 대한 체류자의 설명(insider’s account of Kwangju Riot)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국무부에 기밀전문으로 타전한 것으로 타전일자는 1980년 6월 10일로 되어 있으며, 일지의 제목은 ”5·18사태의 요약된 회고“ (Abbreviated Retrospect of the May Eighteenth Incident at Kwangju, Korea)로 적혀져있고, 일지의 작성일자는 1980년 6월 5-6일로 명시되어 있다. 작성자는 기밀이 해제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4. 흥미로운 점은 미국대사관이 자신들이 평가하던 “광주사태”와는 여러 가지 상반된 견해를 담고 있는 이 일지를 본국으로 타전하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본 보고서 중 가장 균형잡힌 광주사태 기록이자 분석”이라고 평가하고 신중하게 다루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5. 이 일지는 당시 상황을 일자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첫째, 5·18사태는 공수부태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둘째, 알려진 바에 달리 군인들이 물러간 광주에서는 시민들에 의한 폭동이나 폭력사태가 전혀 없고, 매우 질서정연하고 안정된 상태에 있었으며, 셋째 공산주의들이나 불순분자의 책동은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6. 광주시민들의 민주주의나 정치발전 등과 같은 거창한 구호보다는 잔인한 국가폭력 앞에서 하나로 뭉쳐서 자신들을 지켜낸 숭고한 인본주의적 공동체적 투쟁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7. 이 일지는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5·18사태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5가지로 요약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 광주시민들의 높은 시민정신과 자제력, 공동체적 결속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8. 이 일지는 미국인 선교사라는 신뢰할만한 지위에 있는 인사가 작성한 최초의 영문 기록이면서, 미국대사관이 공식적인 논평을 달아서 카터행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한 최초의 5·18기록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고 있으며,
9. 특히 당시의 대한(對韓)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던 미국의 고위관료들이 가장 먼저 열람한 공식기록이라는 점에서 5·18이후 대한정책의 기류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10.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보고서와 전문 번역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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