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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YMCA/YMCA

YMCA 인물 17. 우남(羽南) 이원철(李源喆) 박사

by yunheePathos 2018. 12. 3.

우남(羽南) 이원철(李源喆) 박사

 



우남(羽南) 이원철(李源喆) 박사는 1896819일 서울 다동에서 이종억 씨의 4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주위사람들로부터 신동(神童)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그 후 이 박사가 보성중학과 선린상업학교에서 중학교과정을 이수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것은 1915년이었다. 그의 천재성과 노력은 그로 하여금 연희전문학교 2학년생의 몸으로서 19163월부터 1학년 수학을 강의하는, 말하자면 학생교수가 되게 하였다.

19191회로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221월까지 모교에서 전임강사로서 있으면서 후배양성에 전력하였다. 그러나 별빛에 인화된 젊은 이원철 선생은 연희 전문학교 수학강사로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천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날이 갈수록 강렬하게 타올랐다.

마침내 그는 19221월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시건주에 있는 엘비온이라는 작은 대학에 4학년생으로 편입하였다. 미국의 학제로는 1월은 제 2학기가 시작되고 6월에 졸업식이 있고 9월이면 새 학년이 시작된다. 2월부터 시작한 그의 학교생활에서 그의 천재성은 여실히 증명되었다.

교수회의에서는 유난히 키가 작은 코리아에서 온 학생에게 5개월만에 졸업을 허가하고 학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시건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천문학을 연구하도록 강력하게 추천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그는 무난히 미시건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이 되어 다음해인 1923년에 이학석사학위를 받고 이어 박사학위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많은 별 중에서 여름별인 독수리 자리에 있는 에타별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미시건의 여름날씨가 좋은 편은 아니었을 터인데도 학문적인 이유 때문에 에타별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이 별이 바로 원철성()인 것이다. 50대 이상의 많은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원철성은 하나의 신화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원철 박사하면 원철성의 발견자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유독히 독수리 자리의 에타별을 우리가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은 이원철 박사가 이 별을 관측하고 연구했다는 것은 조국의 영광과 연관지어서 그의 귀국을 보도했던 1920년대의 매스컴의 역할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는 1926년에 귀국한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일제탄압으로 사임하였다.

8.15해방과 함께 이 박사는 기상대를 인수받는 초대 대장으로 일하게 되어 1961년에 은퇴할 때까지 관상대에 계속 머물러있었다.

그의 생애는 메마른 땅에 외로이 홀로 피었다가 외롭게 홀로 진 꽃과 같다.

-1978.12.1 청년

전택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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