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게도 존경받은
이상재 선생
-하나의 족자가 이해의 가교가 되다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은 동경 대진재가 일어났을 때 한국에 계셨으므로 그 난리를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그 소식을 서울에 앉아서 들었을 뿐이며 마음 속으로 아파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선생은 동경 대진재와 깊은 인연을 갖고 있으니, 그것은 선생이 직접 쓰신 「一心相昭不言中」이란 족자와 얽힌 이야기이다.
알다시피 1923년 동경 대진재가 일어나자 일본인 폭도들은 수많은 한국인 유학생들과 노무자들을 마구 잡아 죽였다. 이것을 보고 한 양심적인 일본인 의사 가와가미 쇼도무(小上昌得)이란 사람이 부상을 입고 거의 죽게된 한국인들을 자기 병원으로 옮겨다가 응급치료를 해주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무료로 입원시켜 치료해 준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엔 한국인 유학생 하나가 있었다. 그는 폭도들에게 중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입원 가료(加療) 중에 있었다. 입원할 때에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차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가 일본인 병원에 누워있고, 일본인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학생은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가와가미 의사를 보고 “네 놈들이 어느 때는 우리를 마구 죽창으로 찌르고 때리고 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우리들의 상처를 때려주다니! 이 간사하고 교활한 놈들아!” 하면서 고함을 쳤다. 그리고는 “죽어도 네 놈들의 신세는 안 지겠다”면서 뛰쳐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 순간 가와가미 의사는 “잠깐 참으시오. 기다리시오!”하면서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두루마리로 된 족자 하나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月南 李商在 선생의 낙관이 찍힌 「萬事無救眞理外, 一心相昭不言中」이란 글씨였다. 그는 이 족자를 펼쳐 보이면서 그 학생에게 이상재 선생을 아느냐고 하였다. 그 학생이 “알고 말고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요!” 하니까 가와가미 의사는 자기도 이상재 선생을 무척 존경하니 너무 화내지 말고 자기의 호의를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일본인들이 저지른 죄악을 속죄하는 뜻으로 치료해 주는 것이나 너무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한국인 학생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냥 치료를 받고 나왔다는 것인데, 이 족자는 월남 선생이 1911년 일본에 갔을 때 써준 글씨였다. 당시 재일본 한국YMCA의 총무였던 김정식 선생의 주선으로 맡은 이 족자는 가와기미 의사가 가보처럼 갖고 있었던 귀중한 소장품이었다.
일반사람 중에도 이런 착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과연 다행한 일이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의 초점은 월남 이상재 선생의 애국심과 자주정신에 있다. ‘萬事無救眞理外’ 즉 세상 만사를 다 갖고 싶고 다 하고 싶지만 진리이외에는 구하지 말라며, ‘一心相昭不言中’ 즉 마음 하나만 서로 비치면 말은 없어도 잘 통한다는 뜻인데, 전자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뜻이고, 후자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모두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와 통한다.
끝으로 1927년 월남 선생이 이승을 떠나자 각계에서 애도사, 추도문이 각 신문에 발표되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여기 소개하여, 송산(松山)의 애도사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면 「선생의 사진을 볼 때마다 우리는 선생의 궁한 형상, 초조한 얼굴에 놀라지 아니치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시상과 저의 감정과 저의 처지가 그 외상에 나타난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예수! 그런데 월남선생은 일찍이 예수를 배웠으니 어느 때는 어떤 동산에서 어느 때는 어떠한 강변에서 어떻게 기도하였던가? 그 중 한 형상, 그 초조한 얼굴, 아! 선생의 얼굴도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동아일보는 그 애도사에서 「그가 유전(儒典)에서 연단한 것도 조선심(朝鮮心)이며, 야소교에서 장양(長恙)한 것도 조선심이며, 미국에 가서 환성(喚醒)한 것도 조선심이며, 일본에 가서 촉발한 것도 조선심이며, 모든 안팎을 버린 것도 조선심이다. 조선심에서만 월남이 있을 것이요, 조선심 밖에서는 월남을 찾지 못하게 되리라 함은 결코 우리의 사견이 아닐 것이다」라고 썼던 것이다.
아! 조선심!
오늘날과 같이 애국심이 흐려지고 일본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이 때에 월남 선생의 애국심을 배워야할 것이다. 선생의 조선심 일편단심, 일심(一心)을 우리는 배우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YMCA가 이 정신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등걸
-1982.9.1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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