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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원고

팔레스타인 평화주간(5월 28일~6월 3일) 에큐 설교 - 글로벌 그리스도인 공동체 : 산 넘어 바다 건너(서광선 박사)

by yunheePathos 2012. 6. 2.

한국YMCA전국연맹 생명평화센터는 팔레스타인 평화주간(5월 28일~6월 3일)을 맞아 팔레스타인 Faten의 한국 방문과 팔레스타인과 남북한 평화를 위한 한국 세미나(5월 29일)를 개최하였고 2013년 WCC 총회지인 부산을 찾아 팔레스타인의 평화이슈에 대해 협의하고  한국분단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철원 DMZ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세미나에 참여하셨던 서광선 박사님(세계YMCA연맹 전 회장, 현 한국YMCA전국연맹 목적과사업위원회 위원장)께서 팔레스타인 평화주간 예배를 위한 설교문을 보내오셨습니다. 6월 3일이 교회환경주간이기도 해 생태예배를 드릴 것을 제안드린 바 있어, 팔레스타인 평화주간 예배는 교회에 따라 6월 10일 드리기도 할 것 같습니다. 

이전에 자료로 안내드린 영상 등을 참고로 서광선 박사님의 예배 설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빠져있는 사진자료는 첨부한 한글 파일과 PPT파일에 있습니다.  


 에큐설교2012.6.3..hwp

20120603 PPT.ppt



 에큐 설교

글로벌 그리스도인 공동체 : 산 넘어 바다 건너

/ 서광선 박사


본문 : 에베소 2:13-22; 4:15,16

고린도 전서 12:12-26

 

 사도 바울의 고민

 

옛날, 2000년 전, 사도 바울이 선교활동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우선 바울 선생님은 예수님 살아생전에 베드로나 요한처럼 직계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리새파 열심당원으로 당시의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잡아 죽이는 박해자였습니다. 그런 안티 크리스쳔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나고 나서 예수를 믿고 선교사로 나서게 되었으니, 소위 정통 제자들의 의혹과 시기와 질투를 안 받을 수 없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 사도 바울의 선교활동 뿐만이 아니라, 예루살렘 회의에서 (15장) 바울과 베드로의 논쟁을 읽어 보면, 제자들끼리의 갈등을 볼 수 있습니다.

 

 

엘 그레코, 사도 베드로와 바울,

1587-92년

 

그리스도교 사명자를 대표하는 두 인물 - 베드로와 바울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수제자로서 그의 신앙 고백은 교회의 반석이고, 천국의 열쇠가 놓여 있다. 그를 수장으로 로마 카돌릭 교회가 세워졌다. 전향자 바울은 기독교의 세계화와 신약 성경의 한 부분을 이루는 서신서의 저자다. 그를 통해 기독교는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로마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다. 열성(Pathos)과 지성(Logos)을 대변하여 대조적인 두 제자는 그러나 한 지점에서 만난다 - 진심으로, 주님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는 거!

 

논쟁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유태인들에게만 전할 것이냐, 아니면 이방인들, 즉 유태인 아닌 외국 사람들에게도 전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전한다고 하면, 유태인 아닌 그리스도인들에게 유태교의 종교적 의례들과 관습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제자들은 유태교 안의 기독교를, 즉 폐쇄적인 기독교를 고집했고, 바울은 개방적이고 세계적인 기독교를 고집했습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바울은 유태인이지만 동시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세계적”인물이었습니다. 바울의 선교 사업을 통해 기독교는 당시의 로마 제국에 널리 전파되었고, 오늘에 이르러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우리 교회, 우리 교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 울타리 밖의 교회들과 우리나라 밖에 있는 교회들과 세계를 향해서 문을 활짝 열고, 보고 듣고 배우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고 싶습니다.

 

교파와 교단과 연합체 (NCC, CCA, WCC)

 

우리 교회는 장로교, 감리교 등 한국의 교파에 속한 교회입니다. 장로교는 거의 100개가 넘는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지만 그 뿌리는 미국과 카나다 혹은 호주 등 외국의 선교사들이 속해 있던 교회 혹은 교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독립된 교회 공동체로 되어 있지만, 목사의 자격을 얻을 때는 교단의 승인을 받고, 교단의 목사인 동시에 우리 교회의 목사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 나름대로의 선교활동이 있고, 당회, 제직회, 주일학교 등이 있지만, 교회들이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을 위해서 합동하고 협력하는 일을 위해서 “교회 협의회”를 만들어서 이 협의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협의체로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 교회들처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K)"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NCC는 90년이 가까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협의체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성공회, 구세군, 복음교단, 순복음, 루터교 뿐만 아니라 정교회도 회원으로 되어 있고, YMCA, YWCA, CBS 등도 회원 단체로 되어 있습니다. 또 예장 합동을 비롯한 몇몇 교단들은 ”한기총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고 하는 교회 협의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한국 안에만 교회협의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이 모여서 구성한 “아시아 기독교 교회협의회 (CCA-Christian Council of Asia)"가 있는데, 한국의 NCC와 연대하고 한국의 NCC 회원 교회가 CCA의 멤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NCC 회원 교단들은 세계교회협의회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의 회원입니다. ”한기총“ 멤버 교단들은 그동안 NCC와 선교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대립각을 세워 왔지만, CCA나 WCC에 대해서도 대립된 입장을 취해 오고 있고, 나름대로의 세계 ”복음주의“ 교회 협의체와 연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토록 장황하게 우리 교회 울타리를 넘어 어떤 교회 조직이 있고 그것들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교회, 믿음의 공동체가,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국경을 넘어 세계의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우리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한국의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아시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 북 아메리카,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태평양 섬나라의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로 묶여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연대와 공감

 

오늘 봉독한 바울 선생님의 편지를 읽어 보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이고 한 몸을 이루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 안에서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그리스도인들, 나아가서 아시아와 아시아를 넘어 온 세계의 그리스도인들과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님은 당시의 유태나라에 기근이 생겨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갈 때, 로마 제국의 다른 나라 그리스도인들에게 헌금해서 구제 사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일원이 배고프면 나도 마음 놓고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손가락 하나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픈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동족이고 같은 피와 말과 문화를 나눈 북한의 동포들이 굶고 있고, 올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떵떵 거리며 먹고 마시며 잘사는 것을 자랑만 하고 있을 수 있는가 고민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데,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국제구호기구를 통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인의 수는 아시아에서 필리핀 다음으로 많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대형교회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러시아에 까지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민족이 사는 북한의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도 쌀 한 톨 내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북한에 먹을 것 보내는 것을 한사코 막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나와 내 가족, 내 친척, 우리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울 선생님은 너무나 열심히 가르쳤고 실천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산골길에서 강도 만난 사람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진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측은지심이라는 한자로 불쌍한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기고, 병든 사람들, 몸이 불편한 장애우를 부추기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측은지심, 다른 말로 하면, 타인과의 공감대, 옆에 있는 사람이 아프면 함께 아파하는 마음, 친구가 괴로워하면 함께 괴로워하는 마음-이런 마음을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다른 나라, 이름도 모르는 먼 나라에 지진이 나서 사람들이 무너져 내린 건물 안에 갇혀서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오늘은 저 멀리 있는 나라, 팔레스타인이란 땅, 이스라엘이란 국호를 가진, 옛날, 예수님이 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지(聖地)” 거룩한 땅의 사람들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5월 21일부터 오늘 6월 3일까지를 WCC 세계교회협의회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한 세계주간 (World Week for Peace in Palestine)으로 제정하고 온 세계교회가 우리 기독교인들의 성지인 팔레스타인에서의 전쟁과 테러가 종식되기를 기원하자는 호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의 NCC와 YMCA는 지난 화요일 29일 서울 종로5가의 기독교회관에서 팔레스타인 원주민이며 팔레스타인 YWCA 이사를 모시고 그곳 사정을 듣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의 호소는 1948년 까지 1000년 이상 자기들의 땅인 줄 알고 살아 왔는데, 1948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나치스 독일의 학살과 핍박으로 고생하던 유태인들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여 영국과 유엔이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데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리하여 팔레스타인 원주민들과 밖에 살던 유태인들 사이에 영토에 대한 분쟁이 생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세계 강대국들의 힘에 의지해서, 팔레스타인 영토를 조금씩 먹어 들어가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일정 지역에만 거주하게 하고, 예루살렘 수도나 다른 유태인 지역에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 6메타나 되는 높은 장벽을 쌓고 감시하고 지키고 있습니다. 성지 순례 한다고 예루살렘에 가면 관광하는 교회당이나 건물 마다 총을 멘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쟁터에 관광을 다니는 기분입니다.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외치고 땅을 내 놓으라, 높은 벽을 허물라고 외치면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무차별 잡아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데모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군인들이 쏘아 대는 최루탄으로 눈을 뜨고 다닐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수는 2 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감옥에 잡혀 있는 팔레스타인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3 천 명이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유태교와 이슬람 교도들의 문제이지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고,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는 5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고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합니다. 그리스 정교회 교인이 기독교의 51%, 천주교도가 32%, 그리고 나머지가 개신교도라고 합니다.

 저 팔레스타인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팔레스타인의 기독교 교회 지도자들은 “카이로스 문서”라는 것을 발표하고, “이스라엘의 강제적인 팔레스타인 영토의 군사적 점령은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죄악임을 고발 한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인종차별과 군사적 억압과 토지 점령을 규탄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전체 영토의 78%를 유태인들이 독차지하고 자기네들 땅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6메타 높이의 흉측한 장벽, 옛날 서독과 동독을 갈라놓은 베르린 장벽 보다 더 견고한 벽을 쌓아 놓고 있고, 우리 휴전선의 철조망 보다 더 높은 철의 장막을 쌓고 그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자기 땅을 강탈당하고 팔레스타인에서 도망쳐 나온 난민의 수가 무려 5백만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일제하 한국 땅에서 살 수 없어서 만주로 연해주로 사할린으로 도망 간 우리 백성들의 생각이 납니다.

 

팔레스타인과 한반도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정하게 되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도 비슷한 상항에서 살고 있고, 우리도, 분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고, 휴전선이라고 하는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절대 넘어 다닐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땅을 강탈하고 점령하며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고 한 것, 그 시대의 수모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의 연대

 

팔레스타인에서 이번 한국 NCC의 세미나와 기도회에 초청받은 강사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해서 한마디로 “와서 봐 주세요!”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다녀가는 관광객들이 매년 5만 명에서 6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성지순례”라는 명목으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요단강이니 사해를 건성 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하신 곳,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따라 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다니고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예루살렘 옛날 성안을 둘러보는 것, 물론 뜻이 있고, 살아생전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팔레스타인의 현실, 팔레스타인의 눈물 나는 호소를 보고 듣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찾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드리는 곳에 와서 함께 예배드리며 함께 눈물을 흘리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함께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형화를 위해서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강사로 내한한 분은 강연을 마치면서 남아프리카 원주민 해방운동에 참여한 투투 주교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의 연설을 마쳤습니다.

 

“만일 당신이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나 몰라라) 중립을 지킨다면, 당신은 억압하는 자의 편을 드는 것이다. 만약 코끼리가 생쥐의 꼬리를 밟고 있을 때, 당신이 (나 몰라라) 아무것도 안하고 중립을 지키고 있다면, 약한 생쥐보다는 거대한 코끼리가 더 고맙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당하고만 있는 약자의 편에 들것입니까? 아니면 모른 척하고 입 다물고 가만히 침묵하고 있을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결단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위해 기도합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정의로운 평화를 이뤄가야 할 때입니다.

60년의 분쟁과 억압과 공포를 종식하고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때입니다.

차별과 분리를 위해 높이 쌓은 장벽이 하루 속히 허물어지게 하시고,

이스라엘 정부가 온전히 협상을 이행함으로써 아랍의 평화를 위해 기여하게 하시고, 60년을 넘게 난민이 되어 떠도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하루 속히 그들의 권리를 회복하게 하시고, 난민 정착촌에서의 절망에서 벗어나 진정한 안정을 되찾게 하옵소서. 거룩한 땅, 예수님의 땅에 사는 시민들이 하나 되어 살아가게 하시고, 깨어지고 상처 입은 이웃들이 서로 용서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저희들에게 오시옵소서. 평화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분단과 전쟁으로 신음하는 우리들 가운데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 좀 더 생각할 문제들

 

오늘의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은 무엇이며 이스라엘은 무엇인가?

 

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논해야하는가?

 

팔레스타인의 그리스도인들의 호소 (카이로스 문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그리스도인들을 도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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