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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원고

YMCA운동의 형성 원리를 찾아서 3 - 에큐메니컬 정신운동체 : 정신, 가치, 사회적 영성

by yunheePathos 2014. 9. 3.

YMCA운동의 형성 원리를 찾아서

말씀은 스스로 존재한다. 

  


들어가며

1. 시대 상황(Context)으로부터 시작하는 보편적인 운동

2. 에큐메니컬 정신운동체 정신가치사회적 영성

3. 청년 운동체 변화의 꿈사람을 키우는 운동

4. Volunteerism에 기초한 Association 운동

시민사회를 확장하는 운동운동을 만드는 운동

5. 지구시민사회운동체로서 지역과 전 지구적 의제의 통합과 통섭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나님의 평화

6. 결론 삼아

 

2. 에큐메니컬 정신운동체 : 정신, 가치, 사회적 영성

 

YMCA운동은 에큐메니컬 정신운동체다. YMCA운동은 국가 권력과 제도에 의한 변화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한 사람의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혁명운동이다. 제도의 변화로만 궁극적 질서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자유에 도달하기 위한 공동체적 인간의 끊임없는 훈련을 강조한다. 개인의 내적 혁신과 사회 혁신이 구분되지 않으며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이해를 추구한다. 에큐메니컬운동은 신, 구교의 일치와 연합이라는 서구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과 이웃 종교 그리고 모든 만물의 상생과 생명의 일치로 확장되고 있다. 일치는 내 안에서 타자를 찾지 않고, 타자 안에서 나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 다양성 안에서 찾는 일치다. 하나님을 절대화시키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 세상의 모든 것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정의와 평화, 생명의 질서를 추구하는 정신. 이것이지 않을까?

세상은 물질만능의 경쟁과 불안한 삶으로 사람들을 몰아가며 공동체적 인간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내몰며 법인격(개인)의 자유를 위한 국가 기능은 강화되고, 구체적인 한 인간(개인)의 자유를 위한 기능은 축소된다. 이로 인해 초국적인 군산복합체와 기업(법인격으로써 개인)의 지배질서는 더욱 강화되고 약자인 개인(사람)은 흩어지고 불안한 존재가 된다. 19~20세기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생산력주의라는 공통의 기반을 갖고 있다. 그들은 이성과 과학의 이름으로 자연 생태계를 공존과 상생의 터전이 아닌 인간의 이용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서구 제국에 의해 빈곤과 절망의 땅으로 전락한 3세계는 자신과는 무관한 행동의 결과로 고통받고 있으며 그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세계는 일국에서 세계로, 인간의 문제에서 지구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제도와 시스템에서 삶의 질서와 문명의 문제로 넓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서구 자본주의는 그 해답을 과학기술로부터 찾고 있다. 그 결과 인류는 지금, 생존 가능한 지구의 미래를 염려하고 있다. 또한 현대 문명에 기초한 삶의 질서를 바꿀 수 있는 가치와 시스템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현대 기독교는 새로운 문명과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슨 답을 할 수 있는가?

기독교의 시작인 야훼신앙은 노예들의 고백이다. 이집트 노예들의 해방에 대한 염원이자 찬미이다. 가족과 고향을 잃은 포로된 자들의 절망과 희망의 노래다. 국가 없는 해방자들의 자기 통치를 위한 질서이자 정신이며 훈련된 이들의 신앙이다. 예언자들은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고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위해 죽기까지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던 이들이다. 기독교는 세상의 질서와 다른 하나님나라의 질서와 주권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희망의 노래다. 국가가 없는 이들의 삶의 질서이자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구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치유와 위로이자, 지치고 상처받은 세상 만물의 절망의 외침이자 희망의 찬가다. 사랑과 평화 그리고 생명을 향한 고백이다. 세상의 평화와 다른 예수의 평화를 추구하며, 이미 우리 안에 있지만 또 새롭게 와야 할 하나님나라를 소망한다.

기독운동은 이집트 노예들과 바벨론의 포로들로부터 시작하여 로마제국의 갈릴리 민중들에 의해 세상과 다른 하나님나라의 주권과 질서가 선포되고 국가를 잃은 조선 민중에게 희망으로 피어난 운동이다. 한국YMCA운동의 정신사적 맥락은 이처럼 일제 식민지 조선 민중의 해방에 대한 열망(Context)과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 전통(Text)이 맞닿아 있다.

한국YMCA 에큐메니컬운동은 이와 같은 사상적 전통을 이미 잉태하고 있으며종교적 영역의 일치로만 제한되거나 갇히지 않는다. 세상과의 일치, 온 만물 우주와의 상생을 말한다. 또한 에큐메니컬운동은 지금의 세계가 제기하는 지구 시민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기본 태도이자 정신이며,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세상의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응답이다. 이처럼 에큐메니컬은 강자의 윤리가 아닌 약자의 자리에서 울려 퍼지는 생명의 울림이자 연대의 몸부림이며 예수운동의 핵심적 복음이다. 약자가 말하는 정의이자 평화이며 생명이다. 사랑이다. YMCA운동은 복음적 전통에 기초한 에큐메니컬운동의 시작이었다. 복음과 에큐메니컬은 구분되거나 양립되지 않는다. 하나다. 이것을 구분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르고 구분하는 것이며 자신의 이해를 투영하는 것 이외에 다름 아니다.

그리스도는 상생의 에큐메니컬 정신으로 우리를 자연스럽게 인도한다. 권력이 주는 세상의 질서가 아닌 인간혁명을 꿈꾼 '하나님나라의 영성', '가나안 여정의 훈련', 그것이 에큐메니컬이다. 에큐메니컬 정신의 본연을 찾아가는 운동은 한국 기독교의 혁신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지구 시민사회의 변혁적 영성, 사회적 영성을 공유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기도와 연구, 나눔과 실천의 전통은 우리가 갖고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와 함께 성립한 개인은 법인격의 자유를 의미한다. 사실 한 사람으로서의 개인은 무기력한 존재로 기존 질서에 순응하거나 편입되기 위한 경쟁에 참여할 권리밖에 없다. 현대 사회의 개인의 자유란 무엇일까?

☆☆  대부분의 3세계는 자신의 의지와 행동과는 무관하게 빈곤과 지구온난화, 핵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구 제국의 시민사회가 강자의 윤리나 나눔(지원)의 문제가 아닌 도덕적 의무와 책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초기 한국YMCA운동의 정신사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게일 등 초기 선교사의 미국 복음주의운동 세계 에큐메니컬운동의 지도자였던 John R Mott의 지지와 영향 윤치호, 이상재 등 개화 지식인 그룹과 전덕기 등 하층 청년과 학생Y 운동의 전통 한국YMCA 최초의 총무였던 김정식에 의해 소개된 우찌므라 간조의 무교회주의 192O년대 이후 신흥우의 사회복음주의 운동 192O년대 학생Y 간사였던 이대위를 통한 기독교사회주의 빈자들의 삶과 함께했던 오방 최흥종 목사 1930년대 현영학 총무에 의한 퀘이커운동과 정인세 한국의 간디로 불리는 조만식의 시민자구운동 톨스토이, 간디, 유영모에서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범신적 기독론과 평화사상 전통 등에 빚지고 있다 할 수 있다.


인물 해제

 

1. John R Mott는 세계 에큐메니컬운동의 중심적 인물로서 한국YNCCK 창립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다. 대학Y운동을 시작으로 YMCA 국제위원회 학생부간사(1888~1915), WSCF 창설(1895) 및 회장 역임, 에큐운동의 결정적 사건이라 말하는 에딘바라 대회 주최(1910) 및 회장, 학생자원봉사단(SVM) 회장(1915~1928), 국제선교협의회(MIC) 회장(1912~1942), 세계YMCA 회장(1926~1937) 등을 지냈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한국Y와는 한국Y 창설을 위한 조사관 (라이언) 파견, 초대 총무 질레트 파송, 1907년 내한 강연, 황성기독교청년회 건물 신축 기금 지원, 1923년 농촌운동 지원, 1924NCCK 창립 등 한국 에큐메니컬운동에도 많은 공헌을 남겼다. 모트에 대해 소개를 하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그에 의해 주창되었던 에큐메니컬운동의 정신과 연대의 기운이 그가 감리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파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았던 생활인기독자였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성직화된 목회자와 교권 중심의 한국교회에서는 다시 보기 힘든 지도자 유형일 것이다.

 

2. 김정식은 한국인 최초의 YMCA총무로서 1906년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 유학생들을 조직하기 위한 재일본한국YMCA를 창립하고 초대 총무를 지냈다. 일본에 있는 기간 동안 우찌므라 간조와의 교류를 통해 무교회주의를 한국에 소개하였고, 일본에 최초의 한인교회를 창립했다. 한국에 소개된 무교회주의는 이후 김교신, 함석헌 등에 의해 성서조선운동으로 교권화된 성직사회에 큰 충격과 사상적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이단시되고 있다. 김정식은 연동교회 초대목사인 게일에 의해 전도되었으며 연동교회에서 이상재 등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목회자의 길을 권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생활인기독자(평신도)로서 지내며 기독운동을 추구했던 그의 삶을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3. 이대위는 북경지역 한인YMCA를 조직하기도 하였으며 중앙YMCA 학생부 간사를 역임하며 연동교회에 기독동우회를 조직하여 연동교회가 작은 중앙YMCA운동의 요람으로 소문나기도 하였다.

 

4. 최흥종은 목사이자 선교사이며 광주YMCA 창립자. 나환자와 결핵환자와 평생을 함께하였지만, 광주 YMCA 설립, 노동공제회와 신간회 전남지회장을 역임하고 모루히네(아편) 방독회 회장, 재만인권위원회 회장, 그리고 해방 후 건국준비 위원회 전남지회장 역임하는 등 목회자이자 사회운동가이며 사회사업가로 활동했으며 최초로 광주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룬 인사이다.

5. 현영학은 1930년대 미국 펜들힐을 방문하고 돌아와 한국Y에 퀘이커를 소개하였으며, 구체적인 실천 형태로 Peace Maker Club(PMC)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당시 무단통치기 일제하에서 평화주의 운동이 어떤 실천 형태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평가는 많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현재 평화주의 운동 그룹이 갖고 있는 내적 수련과 공동체주의 그리고 사회제도와 구조의 문제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것이다.

 

6. 정인세는 1920년대 선린상업학교에 다닐 때 서울YMCA 평화구락부에서 현동완의 지도를 받았으며, 유도를 잘했다고 한다. 평양신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광주에 내려가 광주YMCA 총무로 일했으며, 해방 이후 현동완 총무의 소개로 이세종선생을 소개 받고 함께 일하면서 맨발의 성자 이현필을 알게된다. 4살 아래인 이현필을 선생으로 모시면서 YMCA를 떠나게 되고 이현필과 함께 동광원을 세워 초대 원장을 지냈다. 1965년 광주에 귀일원을 창설하여 초대 원장을 지낸다.

 

7. 조만식이 국가없는 사회에서 민중 스스로의 자각과 연대를 통한 시민자치의 확장을 위해 노력했던 물산장려운동과 교육운동, 민족기업운동은 그를 한국의 간디로 불리게 한다. 조만식의 자치운동은 식민지라는 조건과 평안도가 역사적으로 중앙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으로 민 스스로의 자구운동과 강한 협동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시경의 국학운동과 조만식의 물산장려운동은 민족의 얼과 혼을 일깨운 양대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만식은 1908년부터 1913년까지 5년간 일본에서 유학할 때, 학생Y운동의 개척자로서 또는 유학생Y운동의 선구자로서 재일본 한국YMCA에 관여하였으며, 1921년부터 1932년까지 평양YMCA를 창설하고 12년간 평양YMCA 총무로서 일했다.


한국YMCA전국연맹과 성공회대학교의 공동 협력 과제 모색을 위한 워크숍’(2013년 10월 5오전 9시 30~12한국YMCA전국연맹 1층 회의실)에서 “YMCA운동의 형성원리와 시민사회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발표한 내용을 ‘YMCA운동의 형성원리와 관련된 부분만을 수정보완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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