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관리자가 막상 현장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때 코칭이나 피드백을 받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면허증 없는 사람이 사람을 잔뜩 태우고 운전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초보인 리더도 괴롭고 그 차에 타고있는 직원들도 몹시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리더를 잘못 뽑거나 제대로 육성하지 못하면 사고가 납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리더십 사고가 숱하게 나는데도 리더를 뽑거나 육성하는 방법은 그다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출처 : [관계] 리더가 일으키는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
전문가(자신의 방식으로 성공, 직선)와 관리자(전문가 방식의 존중과 성공지원, 커브)로 개념 구분하여 관리자가 되기 전 행동과 사고습관의 변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의 뜻을 표하게 됩니다.
시민사회운동에서 한가지 더 생각되는 것이 리더의 여유와 학습의 문제입니다. 어쩌면 전문가나 관리자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지만 관리자의 비전에 따른 여유, 학습 내용의 차이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부분 전문가(실무자라고 표현해도 될 듯합니다. 인용한 글에서 전문가로 표현되어 있어 그대로 사용)로서의 경험을 갖고 자연스레 늘어나는 흰머리카락 만큼의 나이로 관리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위 글에서 말하는 실패한 관리자가 되고 흔한 표현으로는 '꼰대'가 되기 십상이죠. 특히나 어린 나이에 그리고 어려운 시절에 관리자를 시작한 사람들에게서 그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꼰대문화를 보게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위 글에서도 폐기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비전을 관심하기보다는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는 생존형 리더나 이념이든 생존이든 자신의 스타일에 집착하고 조직을 맞추고자 하는 리더가 많은 이유일 것입니다.
위 인용 글의 개념을 빌리면 시민사회 리더들 중 관리자보다는 전문가가 더 많아 보입니다. 여유도 학습도.. 결국 시민사회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라는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일하는 친구들의 헌신만을 강조하며 자신의 성과만을 생각하는 리더, '헌신,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재원'에 대한 대책은 고려하지 않은채 '내일'만을 말하는 리더, '왜'라는 동기부여 없이 '결과'만을 강조하는 리더, 시민사회의 경영을 돈과 행정의 문제로만 강조하는 리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리더..
'비전'을 강조하는 리더도 '경영'을 행정이나 돈으로 국한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경영'을 강조하는 리더도 '돈과 행정'의 문제로만 제한시키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결국 시민사회의 '경영'은 돈과 행정이라는 현실의 문제로만 이해되어 한편으로는 절대시되거나 다른 한편으로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 시민사회 리더십이 형성되어 온 과정에서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비전"을 강조하든 "돈"을 강조하든 이런 리더들은 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하기 보다는 개인의 헌신에 기대는 특징을 갖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면 내 편이 되고 그렇지 않은 다른 생각의 리더는 부족하거나 문제가 많은 리더로 치부돼 배제됩니다.
이들은 새로운 리더십을 구하기보다는 익숙한 사람들끼리(학연, 지연, 모임, 종교, 연배, 경험 등등 유교적인 한국적 문맥에 충실합니다) 모여 그들만의 리그에서 문제는 상대에게 전가된 채 높은(?) 책임의식으로 뭉치고 힘을 행사합니다.
순혈주의에 어느덧 패권이 형성됩니다. 평상시에는 무능하고 위기에는 강한 조직이 만들어집니다. 여유가 사라지고 깨달음의 학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람과 생각이 발 붙이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경영은 이념과 비전, 조직, 사람, 사업, 재원이 하나의 써클이 되어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평가되며 피드백되는 원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어느 한 곳이 막히거나 터부시되어서는 안됩니다. 써클이 깨지면 조직은 동맥경화에 걸려 종적 관료가 되고 조직의 생기를 죽이게 됩니다.
누구나 알지만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내 눈의 들보는 감춘 채 남의 티눈을 보기에 바쁘기 때문입니다. 크고 오래된 조직, 지역일 수록 이와 같은 순혈주의적 패권의 위험 앞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90년대 이후 시민사회가 성장했다 하면서도 우리는 제대로 된 리더십(청년리더십을 포함해)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오지 못했습니다. 정부나 기업, 특히 정당운동과의 관계설정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당대의 필요에 의해 구심력이 강한 곳으로 시민사회 리더들은 흡수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시민사회의 리더십(청년)을 준비하고 육성하는 것은 꿈 같은 당위로만 남아 있고 현실을 움직이는 명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결국 시민사회운동은 지도력의 빈곤이라는 늪에 빠져 있습니다.
시민사회운동의 구심력은 약해지고 중견(?)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당장의 명분이야 어떻든 이리저리 개인적인 진로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민사회에 기초한 다양한 움직임을 폄훼하거나 소홀히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움직임은 지지되고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양성 안에서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자신의 가슴에 다른 사람의 이름표를 붙이고 의기양양해 하며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지는 듯해 이에 대한 경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여튼 지금의 시민사회는 리더십이 분명치 않습니다. 90년대 이후 시민사회 리더십을 준비하고 육성하는 그룹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하여튼 과거의 리더십(시민사회 조직에서 떠난 젊은 리더를 포함해)이 여러 이유로 점차 떠나면서 시민사회의 운영과 이에 적합한 리더십이 무엇인가는 당대의 고민이 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다양한 영역에서 민에 기초한 자치조직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이 청년들에 의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에 의해 양극단의 리더십이 극복되고 새로운 리더십이 형성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마을을 만드는 청년, 청년을 세우는 마을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이 체계적으로 준비될 때 시민사회의 경영은 이념과 조직, 사람과 재원의 끊이지 않는 써클이 되어 시민사회의 운영원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와이 또한 중요한 시점입니다. 위의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은 상황입니다. 어쩌면 더 각질화되고 기구화되어 곪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80년대 이후 와이운동에 대한 성찰이 절실합니다. 또한 그동안 내부 구성원들이 갖고 있던 아픔과 상처들을 솔직하게 돌아 보고 치유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입니다.
개인의 헌신을 앞세우기 보다는 내일과 오늘을 균형있게 생각하며 운동과 운영 즉 경영 시스템을 잘 구축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것은 원칙이 분명하고 협력과 상생의 조직 문화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서로의 부족을 크게 보기보단 나의 부족을 크게 보며 상대의 부족을 채워 주고자 노력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하면 스캔들이 되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가 되는 무원칙의 문화로는 불가능합니다. 비전이 분명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청년부재의 사회를 극복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한국YMCA의 에큐메니컬운동이 성장하고 시민사회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기둥이 될 것입니다.
YMCA운동 또한 원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한 리더들의 여유와 진솔한 학습이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됩니다. 또한 깊은 성찰과 솔직함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30년을 미뤄 온 일입니다. 조급해 해서도 안되지만 지금의 관성에 기대서도 안됩니다. 단호하면서도 긴 호흡이 필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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