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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과 한반도 평화

이스라엘과 미국, 팔레스타인과 한반도

by yunheePathos 2014.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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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미국, 팔레스타인과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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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 건설을 약속한 영국 수상 벨푸어의 선언에서 시작된 오늘 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비극은 1948년 이스라엘의 국가건설 이후 미국과  EU의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인 후견, 지지,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점령, 정착촌 건설을 통한 불법 점령, 식민지 점령정책은 미국의 지지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가자 침공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 정치, 외교적 지원과 함께 이스라엘에 지금까지 1200억불 이상을 지원

EU, 이스라엘의 최대 교역국

미국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지원으로 매년 30억에서 35억불을 지원해왔고,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1200억불 이상을 지원해왔다. 미증유의 군비와 경제지원이 정치적, 외교적 지원과 함께 제공되었던 것이다. 이에 더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이 있자마자 미 상원은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로켓포 및 야포 방어 시스템) 지원을 위해 3천6백억 원의 추가 지원을 인준했다. 이것은 지난해보다 50%나 오른 금액이고 미 국방부에서 올린 당초 예산보다 2배가 증가한 액수라고 한다. 한 번 발사하는데 드는 돈은 2천만 원~1억 원으로 미국은 아낌없이 지원하며 군수산업의 살을 찌우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죽음에 일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2010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아이언돔 개발 사업에 미국은 그동안 7억 2천만 달러, 우리 돈 7천 4백억 원을 지원했다고 한다(현재 가치 1조원. 기사참고). 유럽연합(EU) 또한 이스라엘의 최대 교역국으로, 2012년 연간 쌍방 무역이 400억불에 달한다. 유럽연합-이스라엘 무역협회는 이스라엘에게 유럽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득권을 부여하고 있다.



세계의 무관심 속에 8M 높이의 700Km가 넘는 분리장벽에 갇혀 

감옥 아닌 감옥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처럼 이스라엘이 미국이라는 후원자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팔레스타인인은 2000년 이후 6,750명에 달하고 이 중 1,380명이 어린이였다. 인티파타 기간 동안 이스라엘에 붙잡힌 팔레스타인들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잔혹한 수형생활을 해야 했고 이스라엘의 보안기관(Shin Bet)에 의해 조사를 받은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85%가 고문으로 조사를 받았다이스라엘에 의해 파괴된 팔레스타인인의 가옥은 1967년부터 29,000채에 달하며,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용의자가 생기면 용의자의 집 자체를 파괴하는 국가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8M 높이의 700Km가 넘는 분리장벽과 관통도로, 500여 개의 검문소 등으로 인해 감옥아닌 감옥에 갇혀 하루 하루를 모멸감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정례적으로 폭격 또는 침공을 당함으로써 이스라엘 대 중동정책에서 장기판의 졸처럼 활용돼왔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필요성과 대 중동정책에 따라 그리고 하마스에 대한 고립과 팔레스타인의 분열을 위해 가자지구는 폭격과 침공을 반복적으로 당해온 것이다. 1,400여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2008년의 1차 침공은 하마스가 정권을 잡거나 잡으려는 시점이었고, 2012년의 2차 침공은 팔레스타인의 UN 참관 회원국 승인이 이루어지는 시점이었다. 그 와중에 힘없는 어린이들과 여성들은 다치거나 죽었으며 집이 파괴되고 가족을 잃거나 고아가 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2014년, 오늘, 지금도 그 슬픔과 눈물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기울어진 저울에 의해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가 되고 있다. 

식량농업기구(FAO) 및 세계식량계획 2009년 보고서 “증거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사람들은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기준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인종이나 문화, 종교의 문제가 아닌 식민지 지배와 인종차별과 인권의 문제

그러나 기사처럼 이같은 미국의 대 이스라엘 지원을 유대인이 상원 국방위원장이라든가, 미국 사회 유대인의 파워로 과도하게 설명하는 것은 본의 아니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자칫 인종이나 종교의 문제로 왜곡할 우려가 있다. 지금의 이스라엘이 유대인 전체를 대표하거나 대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하며 인종주의나 종교간의 갈등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는 인종이나 문화, 종교의 문제가 아닌 식민지 지배와 인종차별과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의 많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지지하고 지금의 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영국 내 이스라엘 평화 운동 단체인 야카드(Yachad·히브리어 성경에서 '연합'의 의미)는 지난 7월 15일을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 간의 평화를 위한 세계 금식의 날'로 제안하고 전 세계 기독교인과 유대교인, 무슬림들이 함께 이 운동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동참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야카드의 디렉터인 해너 와이스펠드는  "금식을 통해서 영국의 유대교인들은 분명하고 뚜렷한 목소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두 국가 해결안에 대한 협상을 재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이 방법만이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의 민족자결권과 안정, 그리고 안전을 보장해 줄 평화를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헌신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과 서구 시민사회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문화, 종교담론으로 이미지를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를 회피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권을 앞세워 이슬람을 반대하는 서구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으로부터의 지지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구 사회가 만들어 온 '종교, 문화 갈등이라는 담론'을 극복해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슬람근본주의는 어떻게 생겼는가? 

미국과 서방 언론은 마치 이슬람 근본주의가 중동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인 양 말하고 있다. 그러나 50~60년대 서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관심은 아랍의 세속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의 확산을 막고 미국의 이해를 관철할 수 있는 세력과 정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에 의해 육성된 세력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다. 또한 이들의 정권 장악을 도운 것이 미국이었다. 그것이 70년대다. 


미국의 대 중동 전략

석유자원의 확보와 시장지배 질서의 유지이다. 2차대전 후 사우디아라비아를 확고한 석유 자원의 보고로 장악한 후 제2의 유전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 이라크 침공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이라크의 후세인도 중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소련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영향력 아래 성장한 세력이었다. 

"1945 2월 루즈벨트 대통령은 얄타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 이집트에 들려 미국 영사관 직원에게 사우디왕과의 회담을 주선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회담은 성사되어 1945 2 14일 사우드 항과 수에즈운하 입구 사이에 있는 아메르 호수에 정박하고 있던 배 퀸시(Quincy)호 선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여기에서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간에 퀸시 협약(Quincy Pact)이란 중요한 협약이 이루어집니다

협약은 총 다섯 가지로 이루어졌는데 그 핵심은 미국은 중동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정하고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보장한다는 것이고 이 대가로 사우디 아라비아는 사우디에 있는 세계 최대 유전을 60년간 미국에 조차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조차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바로 2005년이었습니다. 이 조차기간이 끝나면 유전과 시설전체를 전적으로 사우디왕가의 소유로 넘겨주게 되어 있었고 사우디 왕에게 지불되는 프리미엄은 아라비아에서 수출되는 석유의 베럴당 18센트에서 21센트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으로는 사우디의 유전을 대체할 수 있는 유전이 필요했는데 두번째 큰 유전이 이라크에 있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함에 있어 최소한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받아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침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대량살상무기나 생화학무기의 색출이 아니라 이라크에 존재하는 또 다른 유전을 장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미국의 궁극적인 세계전략은 군사주둔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 즉,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것이고 그 수단으로 미군의 개입 및 주둔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불량국가(Rogue State)의 저자로 유명한 윌리엄 불름(William Blum)이 쓴 “희망 죽이기”(Killing Hope)란 책에 보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과 CIA가 한국전쟁, 아프칸, 이라크 전쟁과 같은 대규모전쟁부터 시작하여 파나마의 노리에가(Noriega)라든지 하이티의 장 버트랑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 축출과 같은 정권교체에 개입한 것이 총 57건인데 거의 모든 세계분쟁의 이면을 이해하는데 이 원칙이 결정적인 열쇠가 됩니다. 전쟁의 목적은 세계시장지배, 그 수단은 군사적 개입입니다.  (지구제죽과 팔레스타인, 박성원, 한국YMCA 세미나 발표문, 7월 22일)

미국의 전쟁과 대외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에 드러나 있는 명분에 현혹되기 보다는 배경과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요청된다. 그것이 일시적인 판단이나 결정이 아닌 미국의 장기적인 이해관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단지 드러난 현실은 당시 현안을 미국의 이익에 맞게 활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가자침공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미국이 이라크에 화학무기가 없었던 것을 알고 침공했듯이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청소년들이 납치 당일 살해되었음을 알고 있었다(아이들이 살해되는 녹음파일을 보안으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마스가 저지른 행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마스가 한 것처럼 국제여론을 조성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자신이 피해자라는 미지를 포장하고 안보를 위한 자위권이라는 미명아래 가자지구에 대한 '집단적 처벌과 보복'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 시민사회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국제법을 어긴 반인륜적 행위이며 '인종청소', '인종학살'이라고 규정하고 비판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사회 뿐만 세계 곳곳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학살을 규탄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명분으로 내세웠던 하마스의 유대인 어린이 납치, 살해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지금도 이스라엘이 이처럼 잔인무도한 전쟁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분히 알아봐야 할 일이지만 세계의 모든 언론은 이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우리가 토론하고 찾아야 할 사안이다.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의 이유가 되었던 문제의 발단부터 시작해보자.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게 죄? 
5월, 이스라엘 군인에게 사살된 팔 청소년의 죽음은 아무도 문제삼지 않아.

유대인 청소년 3명이 살해당한 후 이것을 비밀로 한채 이스라엘 군인들은 마치 살아있는 유대인 청소년들을 찾는다는 듯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들쑤시고 다녔다. 헤브론 지역에서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헤브론을 봉쇄한 후 용의자 색출에 나섰고, 강제 가택수색으로 수 백명을 불법 체포했다. 헤브론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이지만 실제 이스라엘 군에 의해 군사적으로 점령된 지역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이스라엘 군 기지가 설치되어 있고, 시내 곳곳에 이스라엘 군 초소가 있는 지역이다. 이 수색과정에서 15살 소년을 포함해 5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일이다. 더구나 유대인 청소년 살해 사건이 있기 전인 5월 15일에는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팔레스타인 청소년 두명이 사살되고 한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그러나 서방언론 그 누구도 유대인 청소년 3명의 납치 살해에 보여주었던 관심만큼이나 또는 이를 핑계로 한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가자지구 침공에 대한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만큼이나 관심을 표명하거나 팔레스타인인의 저항권을 옹호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당시 헤브론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은 아니지만, 이처럼 새벽에 이스라엘 군인에 의한 

가택수색과 검문은 일상화되어 있다.


미국과 서구 언론에게 유대인 청소년 3명이 살해된 것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커다란 뉴스거리였겠지만, 이스라엘 군인에게 사살된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죽음과 헤브론 수색과정에서 죽은 5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죽음은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상이었는가? 지난 7월 2일, 동예루살렘에서 16살의 팔레스타인 한 소년(무함마드 아부 크다이르)이 이스라엘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납치된지 1시간만에 불에 탄 채로 죽임을 당한 사건은 정당한 보복이었는가? 그들은 유대인 청소년 살해 사건 전후의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죽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것이 죄라서 동정을 받을 가치조차 없는 것인가? 단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죄라서... 



DCI-팔레스타인이 작성해 지난해 유엔에 제출한 ‘팔레스타인 어린이 수감자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과 이스라엘 군에 의하여 사망한 어린이들(17세이하 기준)은 모두 498명에 달했다. 이들 중에는 8세 이하의 어린이 사망자도 100여명이 넘는다. 공권력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착민들에 의해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어린이들도 129명에 달한다. 또한 2013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에 체포되는 어린이는 700여 명에 달하며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도 203명에 달했다. 이렇게 체포 구금된 청소년들에 대한 인권유린도 심각한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팔레스타인의 저항권

가자 보건당국에 의하면 하루가 다르게 사망자 수와 부상자 수가 늘고 있다. 그 수를 하루하루 헤아리는 것조차 고통이고 신앙인으로서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제가자지구 유일한 화력발전소마저 폭파되어 그나마 근근이 이어지던 전기, 수도마저도 끊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첨병이라고 하는 서구 유럽과 미국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며 억압받고 추방당한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억압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는 점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이들의 저항할 권리를 부정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완전히 파멸시키려 하고 있으며 국제기구나 미국 등과 같은 국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약속만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한 자위권은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저항권은 철저히 억누르는 것이 미국과 서방의 시각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침공은 '안보를 위해 정당한 것'이고 팔레스타인의 저항권은 '용서할 수없는 악'인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의한 테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과 이스라엘, 서구 언론이 만들어 낸 팔레스타인의 저항권에 대한 이미지다. 팔레스타인의 저항권은 아랍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의 종교 테러. 



이것은 하마스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행정부를 담당하고 있는 한 정파, 정당으로 보지 않고 '무장단체'라고 지칭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하마스를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이 만들었고 운영되고 있는 무장단체로만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이해하는 구도가 '역사적 약자인 정의로운 이스라엘'과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싸움이라는 구도가 부지불식간에 우리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자위권은 정당하고 팔레스타인의 저항권은 부당한 악이라는 도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된다. 나는 서구로부터 주어진 이 같은 시각을 극복하는 것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하마스는 단지 이슬람근본주의 무장단체인가?' 한번 질문할 필요가 있다.  


하마스(Hamas), 어떻게 볼 것인가?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하는 말로 아랍어로 '알라를 따르는 헌신과 열정'을 뜻하기도 하며, 하마스 단체에서는 “힘과 용기”로 설명하고 있다. 


하마스는 1987년 1차 안티파다(봉기)를 경험하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탄압과 차별, 폭력을 경험한 아흐메드 야신과 같은 의사, 교사 등 지식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또한 임시정부 역할을 감당해왔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이끌어 왔던 파타(Fatah, '승리'라는 뜻)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였다. 역사적 아이러니는 이스라엘이 그토록 테러단체 지도자라고 말하는 하마스의 지도자 대부분은 교사, 의사 등으로 구성된 팔레스타인 민중에 기반한 지식인들이라는 것이고, 이스라엘 정부를 이끌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군 출신이라는 것이다. 하마스는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첫 자유선거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지지로 집권당이 되었던 정치조직이자 정당이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파타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가자지구로 통치구역이 제한되었다. 하마스가 통치한 가자지구 주민들의 삶은 서안지역에 비해 더욱 비참하다. 


가자지구의 현실 : 하늘 아래 가장 거대한 감옥, 거주 불가 지역?

가자지구는 우리나라 광주광역시(501.18㎢, 148만명) 보다 훨씬 작은 면적(364.3km²)에 180만 명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1평방 킬로미터 당 4,5000명 이상). 육로와 해로(지중해를 눈 앞에 두고도 10Km 이상 밖으로 나가지 못해 어업조차 힘든 상황)는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완벽히 봉쇄돼 있을 뿐만 아니라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 있어 '하늘 아래 가장 거대한 감옥'으로 남아있다. 인구의 대부분을 어린이와 여성이 차지하고 있으며 생필품은 물론 전기, 의약품, 물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하마스의 가자지구 활동은 실제 학교와 병원 운영 등 90%가 복지관련 활동일 수밖에 없었다.  

▣ 가자에 사는 44%의 팔레스타인들은 식량 안보 불안정을 겪으며, 인구의 80% 가량이 인도적 구호물품에 의존해 살고 있다. UN은 2020년이면 가자 지구는 “거주불가” 지역이 될 것이라 발표한 바 있다.

▣ 가자의 노동인구의 34%, 청년층의 50%를 포함한 인구는 실업상태이다.

▣ 가자 대수층으로부터 온 물의 90%가 넘는 양이 사람이 사용하기 안전하지 않으며, 이는 1967년부터 수원지 근원에 이스라엘 군이 주둔한 결과이다.

▣ 가자의 농업용 물의 35%와 어업용 물 85%가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접근 불가능하며, 이는 주로 농업과 어업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인구의 생계가 악화되어가는 주 원인이다.

▣ 봉쇄로 인하여 3,900개의 기업 중에서 23개 만이 살아 남았다. (2012년)



하마스의 현실 : 고립과 경제적 파산으로부터 탈피

하마스의 현 처지는 4월 23일, 그토록 극복하고자했던 부패하고 무능한 친서방파로 비판하던 파타와의 통합정부 구성을 합의한 것에서 일단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하마스는 그동안 표방했던 노선과 달리 미국과 EU 등 서구가 종용했던 3대 요구, 즉 '이스라엘 인정', '기존협정 인정', '폭력포기'에 동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권한을 전부 파타에 넘기다시피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고립과 경제적 파탄으로부터의 탈피가 시급한 현안이었던 것이다. 

가자지구와 하마스는 외부와 완전히 봉쇄된 상황에서 두 차례의 이스라엘의 침공과 폭격, 지원세력이었던 이집 모르시(Morsi) 정부의 붕괴와 생필품 공급 등 주 수입원으로 역할했던 이집트와의 터널 봉쇄 그리고 매달 2천만불을 지원했던 이란이 자금지원 중단(하마스가 시리아 내전에서 수니 반군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등으로 재정적 위기에 몰리게 된다. 가자지구 공무원들의 월급도 몇 달째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하마스는 굴욕적일 수 밖에 없는 미국과 EU의 3대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그토록 극복하고자 했던 파타와의 통합정부를 구성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었다. 이런 그들이 이스라엘 청소년들을 납치, 살해한다는 것은 누가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23일 서안 지역을 통치하는 파타와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통합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자 가자시티의 시민들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이를 환영하고 있다.


비난보다는 식민지 인종차별의 역사를 공유하는 시민으로서 

먼저 지지와 협력의 손을 내밀어야

이런 하마스를 '이슬람근본주의 테러무장단체'로만 규정해야하는가? 설혹 그들이 로켓과 무장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테러리스트로만 규정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하마스는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의해 선택받았던 정당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수운동가로서 비폭력직접평화행동을 주장한다. 따라서 테러와 무력투쟁에 반대의 입장을 우선 분명히 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가 식민지 지배의 주체였던 서구사회와는 달리 이들을 테러단체로만 규정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식민지 무장독립투쟁의 역사를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로 인식하고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테러단체로 비난하기보다는 식민지 인종차별이라는 아픔의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지지하고 협력하기 위한 손을 내미는 일이 먼저가 아닐까? 한국 시민사회는 일제 식민지와 엄혹한 독재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위한 과정에서 국제적인 많은 지지와 지원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의 진정한 이유

이스라엘은 기본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들의 땅에 대한 소유를 포기하기 전 까지는 이와 같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번 유대인 청소년들의 죽음을 활용해 가자지구와 서안지역에 대한 '잔디깍기'(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정례적인 침공을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은 ① 통합정부의 한 축인 하마스를 붕괴시킴으로써 통합정부 출범을 막는 것은 물론 ② 유럽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BDS운동을 저지하기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핍박받는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다시 만들어내고, ③ 중동의 위기를 자극함으로써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 타결을 저지하는 것이 의도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④ 이런 주기적인 과시를 통해 200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 중동의 군사적 맹주가 자신임을 드러내고 아랍국가들을 단속하는 부수적 효과도 거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마스의 완전히 붕괴시킴으로써 통합정부의 출범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이 이스라엘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중동에서의 이해와 이스라엘의 이익은 일치되기에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지지는 절대적이다. 이것은 결국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지원없이는 이스라엘은 그 어떤 깡패짓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미국이 이스라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응석받이 막내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지금은. 칼든 아이를 바로잡는 것은 아이를 바로 잡으면서도 그 부모와 어른을 바르게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어찌보면 우선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단 서쪽 끝 팔레스타인만의 현실이 아닌 동쪽 끝 한반도의 현실이기도하다. 미국에게 있어 그 우선 순위에서 밀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누가 팔레스타인을 위해 애도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죽어나는 것은 어린이와 여성, 노인 등 아무 죄없는 이들이 죽거나 다치고 고아가되고 집이 없이 난민이 되어야한다는 사실이다. 가엾고 슬픈 것은 힘없는 일뿐입니다.이스라엘 군의 폭격과 지상군 침공으로 인해 7월 8일 이후 3주동안 30일 현재,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에 따르면 1,210명이 사망하고 7,000여 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사망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가옥이 파괴되고 이제는 먹고 마실 물도 부족한 실정이다. 갖힌 감옥 안에서 집을 버리고 피난가라고 자애로운 이스라엘은 말한다. 그리고 폭격 경고 57초만에 폭탄이 떨어진다. 그나마 유엔이 운영하고 있는 학교와 시설들에도 - 지붕에는 하늘에서 볼 수 있도록 제발 여기만큼은 피해달라고 애원하듯 커다랗게 'UN' 두 글자를 새겨놓고 있지만 그것이 조준 목표가 되었다. 지중해로 걸어 나가는 길 이외에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UN이 운영하고 있는 83개 학교를 유일한 피난처로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이스라엘의 미사일로부터 안전한 곳은 어디란 말인가? 

 


가자지구 22개 시민단체들은 세계 시민사회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7.13) 

"이번에는 희생자가 얼마나 될까요? 

200명, 500명, 5,000명? 

여러분께 묻습니다 : 세계가 마침내 행동하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목숨이 

이곳에서 사라지면 충분할까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면 충분한 양이 될까요?"


이들의 외침과 절규에서 일제 식민지 하 선조들의 외침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지원을 호소하던 선배들의 목소리를 듣게된다. 


"정의와 안전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스라엘의 안보가 

결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정의를 부정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National Coalition of Christian Organizations in Palestine "이스라엘의 안보가 결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정의를 부정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일본인들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조선인들의 희생이 있었는지 아프게 기억하게된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사실은 이들 외에도 많은 수가 내일을 무사히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터전 위에서 들려오는 학살의 소리에 잠 못 이룰 오늘 밤, 우리 중 누가 다음 희생자가 될까요? 우리가 바로 그 살점을 찢어내고 사지를 도려내는 이스라엘 최첨단 살상무기의 공격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희생자 사진의 다음 주인공이 될까요?”

한국 시민사회와 종교계는 이들의 호소와 주장에 응답해야 한다. 생명과 사랑과 자비와 측은지심으로 울부짓는 이웃의 아픔을 감싸고 나눌 수 있는  종교적 심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스라엘의 안전과 정의는 동전의 양면"으로 "이건 전쟁이 아니다. 집단 처벌이자 복수이다."  



설혹 이스라엘의 주장처럼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 어떤 이유로든 있을 수도, 일어나서도, 용납되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수 많은 사람들의 영혼 위에 세워진 그의 나라가 무슨 영광이 있는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안전과 정의를 함께 찾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 모든 근본은 유대교 시온이스트들과 개신교근본주의 시온이스트

이 모든 근본에는 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 인들이 땅을 포기하고 디아스포라로 살아가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를 강요하는 유대교 시온이스트들과 개신교근본주의 시온이스트들이다. 지금도 그들은 죽어가는 생명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정당성을 주장하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모임을 개최하는데 바쁘기만 하다.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약속의 땅에 대한 신앙이 미국 원주민에게 어떤 재앙이 되었는지를 잊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미국 정복의 그 역사를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재현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회의원이자 극우 성향의 유대인가족당(Jewish Home party)의 일원인 Ayelet Shaked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집단 학살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그들은 사라져야 하고, 그들이 뱀을 키워낸 물리적 거주지도 사라져야 합니다.” 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새끼 뱀들이 그곳에서 자라나게 될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바일란 대학의 모르데차이 케다르 교수가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강간하라는 외침을 더하면... 아~ 여기에 21세기 보편적인 인류애와 인권, 윤리..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국가에 살인적 본성 위에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에게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으로 구성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낱 뱀에 불과하고 강간의 대상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이스라엘 극우주의자 한 두 사람의 극단적인 예에 불과한 것인가? 이스라엘 출신 정치학자인 일란파페(우리나라에 '팔레스타인 현대사'라는 책이 번역, 소개되어 있다) ‘Out of the Frame’에서  “요즘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학계에서부터 언론까지 모두 전례없는 수준으로 한 토착민을 파괴하고 추방하고 있는 국가의 노여움이 왜 정당한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고 진단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주요담론이 가자를 왜 완전히 파괴시켜야 하는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시온이스트 지식인 사회는 어떻게 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팔레스타인의 땅에서 쫒아내거나 죽이는 것이 유일한 화두가 되고 있는 듯하다.






수 천년 자신이 살아 온 땅을 지키고자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평화와 공존을 거부하고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들은 종교적 소신과 신앙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정당화한다. 입으로는 안타깝다 하나 전쟁의 부수적인 피해로 어찌할 수 없다고 한다. 이들이 유대인과 미국 개신교인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호령하고 있다. 개독교로 지탄받는 한국 개신교도 안타깝지만 그 우산 아래에 있는 듯 하다. 

알만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가자지구 침공을 정당화하는 유인물을 

거리에서 배포하는 분들을 봅니다. 아~ 이 일을 어찌한답니까?.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민족의 독립과 근대 국가 수립의 원천으로서 출애굽을 읽었고 해방과 자유의 땅으로 가나안 약속의 땅을 신앙하였다. 한국 개신교의 전통은 근본주의 시온이스트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자선이 아니라 책임자로서 미국과 영국이 문제해결해야 

지금의 문제를 있게한 영국과 미국 등 서구사회가 지금의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사랑하는 나라의 자비와 선의가 아니라 사고를 친 당사자로서 해결의 책임이 있다. 서쪽의 끝 팔레스타인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마음대로 선을 그었고 동쪽의 끝 한반도에서는 냉전의 38선을 그었다. 이것이 내전의 원인이었고 60년 갈등과 분쟁의 시작이었다. 세계 평화 위기의 양대 축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가자 사태 전문가 사라 로이는 가자 지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2010. 2. 17.)

[가자는] 상처 받고 찢어진 땅으로 사람들은 완전히 삶의 희망을 잃었다. 가자는 계속된 파괴로 인해 부패하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자지구 경제와 사회가 쇠퇴하고 마비된 것은 계획적 정책으로 인한 의도된 것이었다. 이스라엘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유럽연합 등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들 모두 고요했던 가자지구의 파멸에 연루되어 있다. 가자지구의 종말이 계획적으로 의도된 것처럼 아직껏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국제법 위반과 인권의 침해를 하는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즉각적이고 엄청난 제재를 가한다. 수십년 지속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봉쇄와 이라크에 대한 즉각적인 전쟁을 보라.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에게는 한번도 그런 제제를 가한 적이 없다. 


미국, 유엔인권이사회 '가자지구 침공 조사 결의안' 유일하게 반대

또한 미국은 세계 대다수의 나라들이 규탄하는 이스라엘의 수 십년에 걸친, 수 백번의 국제법 위반과 인종학살 행위에 대해 침묵하거나 UN에서의 거부권과 반대로 이스라엘을 지키는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23일(현지시간),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가 채택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에 대한 조사위원회 구성 결의안' 을 유일하게 거부한 것도 미국이다. 미국의 구부러진 민주주의와 인권의 잣대를 볼 수 있다.  


키스하퍼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이번 결의안은 건설적이지 않다"며 미국만이 유일하게 거부. 46개 회원국 중 아랍 국가와 중국, 러시아 등 29개국이 찬성하고 한국, 유럽 국가 등 17개국은 기권. 


국제법을 근거로 세계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로서 세계경찰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미국의 잣대가 이스라엘에서 특히 어떻게 구불어지고 있는지는 전 이스라엘 외무장관인 치피 리브니(Tzipi Livni)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나는 변호사이다그러나 나는 법을 반대한다특히 국제법을 반대한다.”라는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EU는 자신들로 인해 만들어진 현대사의 비극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외에도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저질러온 팔레스타인에 대한 모든 공격이 국제법 위반이자 반인륜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눈을 감고 있다. 아니 오히려 지구 시민사회가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은 인종학살이라고 주장하여도 이들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당한 자위권이라고 옹호하기까지 한다. 이들의 구부러진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잣대를 펼 수 있는 힘은 국가 간의 기구에 있지 않고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에 있다. 이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세계 시민사회는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 BDS 연대와 협력

세계 시민사회는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국 시민사회와 종교계도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가져오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전 세계 시민들에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을 막는 방법으로 BDS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BDS는 불매운동(Boycott), 투자 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운동의 약자로서 2005년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단체에 의해 시작되었다.



"인종차별 이념과 아파르트헤이트가 비합법화되었듯이 지금 팔레스타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가자 대학살 및 점령에 대한 세계의 비난이 아닌 이를 가능하게 만든 정책과 이를 도덕적, 정치적으로 정당화시킨 이념에 대한 비합법화 운동이다...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았던 경험에서 우리는 일말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이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유엔이 아닌 세계시민사회가 노력을 배가하여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투쟁에 도움의 손길을 뻗을 때이다. 이스라엘의 점령과 인종차별로 인해 억압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로서 우리는 점점 생존을 위해 국제법과 국제연대에 의존하게 되었고,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국제연대가 시급하다.

사상자와 집을 잃은 가자 지구 주민들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를 촉구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더 많은 대학 및 회사에서 이스라엘을 보이콧하고, 연금 펀드가 이스라엘 내 투자를 철회해야 할 때이고, 더 많은 국가가 이스라엘과의 외교를 중단해야 할 때이다.

국제법을 위반하고 1967년 이래 점령한 아랍 영토에서의 철회를 거부하며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차별하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고향으로의 귀환하는 것을 방해하는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가자 지구 및 팔레스타인인들과의 국제 연대를 위해서는 인종 차별적인 이스라엘을 완전히 고립시켜야만 한다." (비난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이다르 에이드(Haidar Eid), 가자지구 2014년 7월 18일)



가자지구 내 22개 시민사회 단체들도 공동성명을(2014. 7. 13. 가자 시민사회의 긴급요청: 당장 행동해주십시오!) 내고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 이스라엘이 이러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의존하는 유럽과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및 군사지원을 차단할 수 있는 제재조치;

모든 자유무역 및 EU-이스라엘제휴협약(EU-Israel Association agreement)과 같은 이스라엘과의 양자 협정의 중지;

2005년 압도적 과반수의 팔레스타인 시민사회가 요구한 바 있는 보이콧, 투자철회 및 제재조치" 를 제안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세계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지구 침공으로 인해 발생하는 죽음과 고통에 함께 슬퍼하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동정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식민지 점령과 인종차별, 인종학살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일에 함께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지금 요구하고 있는 BDS 운동이다.

이 운동은 1985년 WCC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을 전 세계에 알리고 인종차별정책을 철폐하는데 기여한 비폭력평화운동이다. 


 약자간 협력과 연대가 중요한 때

식민지와 인종차별, 내전이라는 공동의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서쪽 끝 팔레스타인과 동쪽 끝 한반도가 평화의 미소로 만날 수 있도록 지정학적 국제정치 질서 아래에서 고통받는 약자간 협력과 연대가 중요한 때이다. 


군산적인 힘을 내세운 추악한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이에 맞선 힘없는 선한들의 연대가 아름다운 평화이며 세상을 바꾸는 힘일 것이다. 국가는 결코 약자들의 선한 연대와 협력을 만들어낼 수 없다. 특별히 이스라엘 시온이스트 점령정책을 반대하는 이스라엘의 시민들과 전 세계 평화의 유대인들, 아랍 민족과 전 세계 이슬람 평화주의 그룹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의 삶을 배워가고 있는 평화의 사람들의 공동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으며 지구 시민사회의 평화의 모든 세력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미국과 EU가 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으로 해결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해야 한다. 미국 백악관과 각 국의 대사관에 메일과 전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 시민사회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전해야 한다. 미국과 EU가 이스라엘 대한 군사적, 정치적 지지와 지원을 철회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압력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그나마 가능케하는 방법일 것이다. 



평화를 만드는 용감한 이들이 되게 하셔서, 

비난을 받을지라도 진실을 말하게 하여 주옵소서.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가자지구에 가해진 이스라엘의 공습 피해자들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피로 얼룩진 채 봉쇄된 가자지구 안에 갇힌 우리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전 세계의 양심들에게 요청합니다. 지금 행동에 나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어주시고 이스라엘이 마침내 우리 시민들을 향한 살상 공격을 멈추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까지 보이콧과 투자철회 및 재제조치를 강화하여 주십시오.”

팔레스타인의 외침입니다.

군사력에 의한 평화는 거짓평화이며

약자들의 협력과 연대가 만드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이다.


팔레스타인과 한반도가 만나야하는 이유


예수의 땅,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 참사에 대해 한국 교계는 무관심한 듯 하다. 아니 오히려 이스라엘의 식민지 점령과 차별 정책에 동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교회 교인들은 자신도 모른 채 기독교시온이즘과 성직자 중심주의에 의해 '이스라엘은 선, 팔레스타인은 악'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신앙의 분별보다는 무조건적인 믿음 안에 갇혀있기를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는 하는, 이스라엘의 편을 드는 신학을 제고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어쩌면 한국 교회가 개신교가 그토록 극복하고자 했던 중세 카톨릭의 부패와 패권주의, 성직자 중심주의에 그대로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것을 팔레스타인은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제 시기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과정을 거쳐 성숙해 온 한국 개신교가 일본 제국주의를 거부하며 자주와 해방의 신앙을 고백했듯이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근대 민족국가의 숙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팔레스타인과 한반도. 아픔과 수난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21세기 갈릴리. 지금 서쪽의 끝 팔레스타인과 동쪽의 끝 한반도가 평화로 만나야 할 이유일 것이다. 


한국 교회가 예수의 땅, 팔레스타인을 다시 보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평화와 연대의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교회개혁 500주년을 앞둔 한국 교회의 역할이 아닐까요?


Come & See

예수가 이 땅에 오신다면 

다시 죽음의 길이라 할지도라도 찾아갈 길.


식민지와 인종차별, 

내전과 독재라는 수난의 역사를 함께하는 21세기 갈릴리, 

팔레스타인과 한반도.


"주여,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외치며 흘렸던 

마지막 한방울의 눈물이 함께하는 땅. 

평화와 사랑의 땅,

팔레스타인과 한반도. 


팔레스타인 기독인들은 세계 교회와 평화의 시민들에게 

팔레스타인에 직접 와서 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가자기구 지원과 

팔레스타인 어린이 수감자 도서보내기 모금 캠페인'에 참여해주세요

http://yunheepathos.tistory.com/483


 - 모금 캠페인 온라인 참여 신청 :http://goo.gl/ABc54v

- 후원계좌 : 농협, 056-01-104546 (한국기독교청년회)


Come &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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