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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숨

'나의 품'은 '너'의 공간으로서 완성되는 것

by yunheePathos 2015. 5. 21.
'사람의 품'을 생각했습니다.

'품!'..

다른 사람을 온전히
품을 수 있는거?
담아줄 수 있는 거?
가슴의 넓이?
마음의 깊이?
관계?

주어와 객체가 없습니다.
주어와 객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쉽게 생각했던 '품'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도'라 생각했지만, 언제가부터 '품'은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정도, 나와 관계하는 깊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받아 주고 관계하는 정도'가 내가 갖고 있는 '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주어가 '나에서 '너'로 바뀌었죠.
객체가 '너'에서 '나'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 수고하고 고심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이 나와 함께할 수 있는 여백이 있는지 스스로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런 생각이 더욱 드는 시간입니다.
지역에서 홀로 애쓰고 있는 선후배들을 보면서 더욱 드는 생각입니다. 친구가 위로 받았다는 책들의 목록을 보면서 든 생각이기도 합니다.

내가 갖는 '품'은 내가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와 이야기하고 나누고자 할 때 더욱 온전해진다는 것을.

목적의식에서 만나는 것에 머물지 않는 자연스러운 관계의 흐름이 '품'을 더욱 넓히고 진정한 바닥의 만남이 된다는 것을.

나를 단단히 하는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갖는 여유와 여백이 '나의 품'을 만들고, '나'가 아닌 '너'의 공간으로서 '나의 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품'..

내가 갖고 있는 품의 크기를 생각해봅니다.
얼마나 될까?.

나의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그리고...

그 크기가 아마도 지금의 나일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도 그 '품'을 헤아리고 있지만 스스로 그 품을 감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어가 '내'가 아닌 '당신'이기에.
'나의 품'은 '너의 공간'으로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십자가 세상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015. 5. 21.
충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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