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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 YMCA

헬 조선과 헬 이스라엘의 희망: 젊은 예수들

by yunheePathos 2016. 3. 7.

세계YMCA연맹 전 회장이신 서광선박사(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명예교수)께서 YMCA 사순절 평화예배(2016.03.04. 오후 4시, 한국YMCA전국연맹 강당)에서 '헬 조선과 헬 이스라엘의 희망 : 젊은 예수들'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줘주셨습니다. 


함께 읽고 나누기를 기대하며 올려봅니다.


2016.03.04. Y 연맹 평화예배(헬조선의 청년예수).pdf




헬 조선과 헬 이스라엘의 희망: 젊은 예수들

 

서광선 전 세계YMCA연맹 회장



헬 조선의 한국 현대사

 

지난 몇 년 동안, 헬 조선이란 말, 3포 시대에서 N시대로 젊은이들이 인생에서 포기하는 것이 무한대로 많아 졌다는 자조적이고 절망적인 말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의 우리 젊은이들의 상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이 세상에 나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야 말로 80평생 헬 조선에 태어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헬 조선에서 살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31,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 난 이 할아버지는 헬 조선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 나라 말을 잃은 백성의 아들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8살이 되면서 우리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어야 하고 그 것을 자랑삼아야 했던 정체성을 잃어 버린 노예의 자식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고 온 아시아 나라들을 침략하고 있을 때, 저의 형님들은 일본군대에 학병으로 잡혀 갔고, 저의 누님들은 정신대로 끌려갔습니다. 저의 목사 아버지는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만주로 망명했고 거기서 조선의 농민들과 피난민들을 위한 교회를 개척하면서 난민생활을 했습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조선은 그야말로 헬 조선이었습니다.

 

1945815일은 조선 민족의 해방의 날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허황되고 짧았습니다. 또 한 번의 노예상태로서의 분단 조선의 비극을 강요당했습니다. 분단된 조선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헬 조선이었습니다. 소련 공산당 밑에서의 노예생활, 공산 독재사회에서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내 조선 이름을 되찾은 것 밖에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일본 말 대신에 소련말을 배워야했고, 조선 역사를 배우는 대신에 소련 공산당 혁명사를 배우고 스탈린 식의 마르크스와 레닌의 러시아 혁명 역사를 강제로 암기해야 했습니다. 남에서는 미국 군정 하에서의 반공주의,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군사 정권 밑에서 민주주의를 말하고 자유를 말하고 인권을 말할 수 있는 사상과 언론과 학문의 자유를 빼앗기면서 숨을 죽이고 살아 왔습니다. “해방된 헬 조선에서의 삶은 좌절과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1950년의 한국 전쟁은 삶의 모든 것을 빼앗았습니다. 공포와 증오와 살생의 지옥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진짜 지옥의 삶과 죽음. 동족상잔의 아픔, 모든 가치와 법과 희망이 없는 허무와 죽음의 세상이었습니다. 나는 이 전쟁을 북조선 땅 평양에서 겪었습니다. 반공주의자 목사 아버지는 인민군에게 총살당해서 대동강 강가에 던져졌습니다. 남쪽에서는 부역했다고, 공산당원이라고 대구에서 대전에서 거창에서 제주도에서 반공 청년단에게 살상 당했습니다. 전쟁이 나면 군인들도 죽고 죽이지만, 민간인들이 더 많이 죽고 당합니다. 부녀자들과 아이들의 희생은 통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수 천 수 백 만을 헤아립니다. 전쟁은 정말, 지옥입니다. 정당한 전쟁, 거룩한 전쟁, 전쟁 영웅을 말하지만, 전쟁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 낸 최악의 지옥입니다.

 

내 평생, 전쟁을 두 번이나 치룬 사람으로 젊고 아름다운 여러분을 앞에 놓고 보면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다시는, 다시는 여러분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일본제국주의 36, 미 제국주의 70, 군사독재, 유신, 신자유주의 70, 공산주의 3대 독재 북한민중의 삶과 죽음, 돌이켜 보면 우리 근대사에 있어서 헬 조선이 아닌 때가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헬 이스라엘의 예수

 

예수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30여 년 동안 살면서 하나님 나라 복을 전파하던 그의 시대역시 헬 조선만큼이나 지옥 같은 세상, 헬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로마 제국주의의, 식민지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 로마 제국주의 저항 게릴라 부대들이 이스라엘 독립 운동을 벌리고 있고, 로마 제국주의의 점령군들이 도시와 농촌을 장악하고 주민들을 억압하고 약탈하는 로마 법 아래 무법 세상에서 숨을 죽이고 살아야했습니다.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종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로마 점령군에게 아부하고 부역하면서 썩을 대로 썩었고 부패하고, 무책임하고, 무능한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두개파들 그리고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이스라엘, 유대 나라는 빈곤 그 자체였습니다. 로마제국에 바치는 세금은 유대 민중을 착취했고 수탈했습니다. 유대 지주들은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했습니다. 문화적으로 팍스 로마나의 예속 시대에는, 그리스어, 로마어, 아람어 등 문화적 혼란이 있었고, 백성들 대다수가 문맹으로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습니다. 무직자들과 부랑아들이 산과 들을 헤멨고, 민중들은 배고픈 무리들이고, 병으로 아픈 환자들과 장애인들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그야말로 헬 이스라엘에 태어났습니다.

 

헬 이스라엘에 탄생한 아기 예수.

 

아기 예수의 탄생 설화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있습니다.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의 잉태 소식, 로마제국의 호적 조사,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의 베들레헴으로의 귀향, 여관방이 없어서 가축들이 먹고 자는 마굿간 말구유에 태어난 아기 예수, 동방 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한 이야기, 헤롯왕의 영아 학살 이야기, 예수의 부모와 아기 예수의 에집트 피난 생활 이야기, 그리고 누가복음에는 베들레헴 광야에서 양치는 어린 목자들, 그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의 노래: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누가 2:14), 평화의 왕으로 탄생한 아기 예수, 아기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 헬 이스라엘에 오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는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 땅, 시골 나사렛에서 성장했습니다. 12살 소년 시절에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의 서울 예루살렘에 유월절, 이스라엘 해방절 축제를 즐겼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 구경을 마다하고 성전에 가서 거기 제사장이니 장로니 율법학자들 틈에 끼어서 대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학술대회였는지도 모릅니다. 거기에서 소년 예수는 어른들과 대담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늙은 학자들과 학문적인 이야기 모세 율법에 대한 이야기 신학이야기 정치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그때의 모습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예수는 학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누가 2: 47,48)” 아버지 어머니가 놀랐을 정도로. 예수는 그렇게 자랐습니다. 누가복음은 이어서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사렛으로 돌아 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누가 2:51)” 하고는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누가 2:52).”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동네에서 아버지 목수일을 도우면서 잘 성장했습니다. 그러다가 가출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가에 나가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습니다. (누가 3:21-22; 마태 3:13-17; 마가 1:9-11)) 30살이 다 된 씩씩한 청년 예수는 광야로 나갑니다. 광야에서 6(40) 동안 금식하면서 명상합니다. 인생을 고민하고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하는 청사진과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서 마귀의 시험을 받습니다.

 

그 첫째 시험은 광야에 늘어져 있는 돌덩이를 떡으로 만들어, 배고픈 예수도 먹고 가난한 백성들의 배를 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제적 시험이었습니다. 요새 말로 하면 민생에 관한 시험입니다. 둘째 시험은 산위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마귀에게 절만 하면 온 천하를 다스리는 정치적 권력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적 시험, 정치권력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는 거절합니다. 어떤 왕권도 대통령 자리도 하나님의 뜻 아니면 거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마지막 시험은 종교적인 시험이었습니다. 마귀가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거기서 뛰어 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천사들이 나타나서 구해 줄 것이 아니냐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종교적 시험이었습니다. 그 시험을 물리칩니다. 예수님은 종교적 권리, 종교 권리를 부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젊은 예수는 늙은 종교 지도자들과는 다른 젊은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마태 4:1-11; 마가 1:12-13; 누가 4:1-13).

예수는 민중의 아들로 민중의 친구가 되고 민중과 함께 배고픈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과 감옥에 갖힌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지배하고 독재하는 정치가 아니라 백성의 편에서 백성을 섬기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받아 드린 유대 나라 민중, 젊은이들

 

헬 이스라엘의 길 잃은 백성들, 배고픔과 육체적, 정신적 빈곤의 시대, 희망이 없는 시대에 일거리 없이 떠돌이 방황하는 민중은 예수를 따릅니다. 무리들이 젊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에 감동을 받고 희망을 가집니다. 그런 가운데 52.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조각으로 5천명이 먹었다는 “52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굶게 되었을 때 어린 아이가 자기 먹을 것을 내어 놓습니다. 그리고 나누어 먹습니다. 늙은이들이 내 놓지 않는 먹을 것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남자들만 5천명이 배불리 먹고 부스러기가 12광주리나 남았다고 합니다.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남자 5천명 + 부녀자 7천명 + 아이들 2천명, 해서 14천명이 배불리 먹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마태 14:13-21; 마가 6:30-44; 누가 9:10-12; 요한 6:1-14).

 

한 어린 아이가 예수의 서로 나누어 먹는 하나님 나라 민생 경제에 앞장 선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들: 젊은 예수를 따라 배우고 일한 제자들은 젊은 고기잡이꾼들이었습니다. 무직자들, 떠돌이들도 있었습니다. 성질이 급한 베드로, 가롯 유다와 같은 제롯당 게릴라 출신들, 혈기 가득 찬 젊은이들이 예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에 저항해서 겔리라 전투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요새 말로 하면 로마 사람이면 한 사람이라도 죽이려 했던 테러리스트도 있었습니다. 권력욕에 눈이 먼 어머니들을 앞세워서 예수가 왕이 되면 장관 자리 한자리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마태 20:20-28)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정치신학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 20: 25-28).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젊은 여인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복음은 특별히 예수를 모신 젊은 여인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뒤 예수께서는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는데 열두 제자도 같이 따라 다녔다. 또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 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 (누가 8: 1-3) 이들 여자 제자의 수는 남자 제자 열두 명보다도 많았습니다.

 

이 이외에도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사마리아 여인: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방의 우물가에서 만나 이스라엘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 샘물 이야기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전파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한 4: 1-24)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 잡혀 온 젊은 여성, 그 여성을 돌로 치려고 둘러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는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하는 바람에 모두 도망 간 사이에 용서 받은 젊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요한 8: 1-11). 나사로의 자매 이야기 (요한 11: 1-16).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여자도 젊은 여인이남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남자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소위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이렇게 보도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요한19: 25). 그리고 젊은 여인들은 부활절 아침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요한 20:1-14; 마태 28:1-10; 머거 16:1-11; 누가 24:1-12). 신약성서의 4 복음은 예수를 따르고 예수님의 사역을 함께 한, 젊은이들과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죄인, ()로마 테러리스트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사람은 예수를 모욕하면서 당신이 그리스도면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 보시오.”했습니다. 예수는 혁명가로 테로리스트로 로마제국으로 부터의 독립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혁명가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죄수 테로리스트는 예수를 모욕하는 친구를 야단치면서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 (누가 23:39-43) 라고 부탁합니다. 헬 이스라엘의 희망, 혁명가 젊은이들이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대화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헬 조선의 희망: 젊은 예수들

 

헬 조선의 희망은 젊은 예수들, 여러분들입니다. 오늘 사순절 평화예배를 시작하고 조직하고 주관하는 한국 YMCA 여성 총장, 간사님들입니다.

 

어제 목요일 (201633) [한겨레] 신문의 칼럼에 백남기 선생의 딸 백민주화씨의 인사말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1차 민중궐기대회 때 경찰이 무차별로 쏘아 댄 물대포에 맞아 쓸어진 농민 백남기 할아버지의 딸, 백민주화씨가 지난해(2015) 125일 제2차 민중궐기대회때 한 말: “지금의 눈물은 슬픈 눈물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이 추운 날씨에 함께 해주시는 그 마음이 감격스러워 나오는 눈물입니다...사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여기까지 오시리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저는 나라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목소리를 많이 담고 나왔는데요. 제 앞에 있는 여러분들을 보는 지금, 저는 희망이라는 단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도 많이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의 희망을 보는 것 같네요....” 절망 속의 희망, 헬 조선의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늙은이도 이 평화예배에 와서 여러분을 만나면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내가 왜 이리 오래 살아야 하나. 너무 오래 살았다.” 절망의 한숨을 쉴 때 젊은 제자들이 저를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러시면 안 되지요. 우리가 희망입니다. 힘내세요.”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누가복음 4:16-19에 나오는 말씀은 예수의 선교 목적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를 따라 헬 조선의 젊은 예수들은 한국 YMCA의 목적문을 읽고 우리의 선교적 사명을 다짐합니다. 이 목적문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한국기독교청년회는 젊은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삶을 따라 함께 배우고 훈련하며, 역사적 책임의식과 생명에 대한 감성을 일구어, 사랑과 정의와 평회의 실현을 위하여 일하며, 민중의 복지향상과 민족의 통일 그리고 새 문화 창조에 이바지함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헬 조선의 희망은 YMCA의 젊은이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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