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韓·中·日 YMCA 平和포럼’ (2017. 12. 16-20) Lecture 1]
“한반도 평화와 통일, 연대를 위하여”
김준태(시인·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먼저 ‘韓·中·日YMCA平和포럼’을 위해 한반도 남녘 도시 光州에 오신 여러분과 이 행사를 개최하고자 애쓰신 광주YMCA 여러분께 경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더욱이 중국과 일본은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 혹은 한반도와 가까운 나라임은 물론 서로 간에 여러모로 기대를 갖고 있는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7년 전에 오사카, 교토, 고베, 오키나와 등을 여행한 데 이어 올해 10월, 도쿄 주우대학(중앙대학)에서 ‘시(문학)가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 주제로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 또한 저에게는 태어나기 전부터 일본과의 원초적인 인연도 있었던 이웃나라인데...저의 할아버지께서 오사카 간사이공항이 존재하기 전, ‘이타미공항’에서 노무자로 일하셨고 아버님은 일본군으로 차출되어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 시절이어서 할아버님은 강제징용으로 오사카에 가셨고 아버님은 강제징병으로 저 머나먼 태평양전쟁에 투하되었습니다. 그런 가족사적 비극도 맞물려서 어렸을 때부터 저는 할머니한테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일본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런 가족사적 혹은 국가적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세계 속에서 동북아시아 나아가 세계 모든 나라가 ‘평화의 길’을 가야하는 데는 이견을 달리하지 않으면서...개인적으로는 詩와 문학이라는 언어의 기재를 통하여 정치와 역사, 정의와 평화에 대한 靈感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오신 YMCA회원 여러분 역시 참으로 반갑습니다. 제 경우 중국은 수교 이전부터 다녀온 이웃나라로 홍콩을 거쳐 광저우, 베이징과 동북삼성 지역 곳곳을 여행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광주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재임 중일 때 난징학살기념관에 가서 그곳 인권단체와 연대행사를 했습니다. 이제 한중일은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방면은 물론 인권단체간의 교류와 연대가 계속되고 있어 참으로 기쁘고 뜻 깊게 생각합니다. 일본 오사카의 ‘이타미공항’과 중국의 ‘난징학살기념관’에서 썼던 詩 두 편을 소개하고 제 강연을 계속할까 합니다.
이타미공항(詩)
이타미공항이라?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비행장이 1930년대 말엽이었지,
고향 할아버지께서 징용으로 끌려가 ‘노무자’라는 이름으로 강제노역을
했던 곳이란 것을, 아 글쎄 2012년 6월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야 알았다
(일정日政 때였지, 소화昭和 몇 년이더라, 집 앞에서 밭을 갈다가 오사카
이타미란 곳으로 붙들려갔지, 우리 동네서도 몇 사람 끌려갔는데 죽어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 있지, 거기서 뭐 했냐고, 비행장 터를 닦는
일이었지, 말 탄 일본병사들 시키는 대로 격납고 짓고, 방공호를 파고...)
내 어릴 적 고향에서 듣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먼 오사카까지 따라왔다
(준태야, 네가 한국의 비행기로 내린 간사이공항은 이타미공항이 아니야,
네 할아비가 몇 날 며칠을 걸려 끌려가 노무자로 노역을 했던 곳은 저쪽
야마토 강변이야, 우리 같은 조선 사람들이 일구어낸 터가 바로 이타미야,
이타미 비행장이야, 그래 준태야, 일본 땅 구경 잘하고 한국에 돌아가거든
네가 그렇게도 뛰놀며 사랑하던 고향에 찾아가 내 오랜 무덤을 둘러보고
소주잔일랑 놓아 주거라, 네 할미 뼈와 하나 돼 누운 합장묘, 더러 보랏빛
제비꽃도 피고 지는 이 무덤가에서 잠시 쉬었다 가거라, 나의 손자 준태야
네 할미와 나는 무덤 밖을 나와 저 새푸른 남쪽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삼천리강산 조선의 평화를 빌고 빈다, 일정 때 이타미 땅에 끌려와 젊음을
다 보냈던 너의 할아버지가 오늘은 네 둥근 몸속으로 들어가 따뜻해진다)
이타미공항이라! 하마터면 살아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이곳에 와,
조선의 남쪽 고향 산자락에 잠들어계신 조부모님을 머리에 가득 그리면서,
어느새 70고희를 눈앞에 둔 나의 이타미공항에서의 여행은 끝나고 있었다
아 지금도 이타미 하늘가에 조선의 하얀옷으로 펄럭이는 할아버지의 청춘!
그 고운 하얀옷이 내 온몸에 대나무바람으로 휘감겨, 휘감겨오는 것이었다.
* 이타미공항(伊丹空港·ITM)
** 1931년 오사카자치정부가 함선부두로 사용한 야마토 강어귀에 일본제국주의가 군용비행장으로 만들어 1939년 개장한 <이타미공항>은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미군에 인도되어 ‘이타미공군기지’로 활용되다가 1958년 반환되면서 ‘오사카국제공항’으로 개명했고 현재는 간사이국제공항과 ‘통합법인’이 되었다.
자금초(紫金草.詩)
피어라
자금산 난초여
너는 내 얼굴
너는 내 마음
너는 나의 노래
피어라 피어라
어머니의 눈물 속에서
어린 소녀의 하얀 손에서 피는
아 난징의 꽃 보랏빛 자금초여
그날 너의 꽃잎, 꽃잎들은 떨어졌어도
너의 향기는 영원히 시들지 않으리라
피어라 아 피어라 난징의 꽃
보랏빛 자금초여
나의 사랑이여
* 2012년 12월 13일. ‘난징대학살70주년추모식’을 마치고 저녁에 난징 시장과 난징기념관장이 마련한 만찬회에서 즉흥으로 써서 낭송하다. 자금초는 난징의 산에 피는 자색 꽃으로 1937년 일본군 학살 때 이 꽃을 꺾어든 어린, 한 중국 소녀를 나타내며 역시 난징을 상징한다.
체옹 에크Cheoung Ek(詩)
잡풀 무성한
물웅덩이에
수련 몇 송이 떠 있네
모든 영혼에는 파수꾼이 있다*?
석가나무 나뭇잎에
잠깐 내려앉기도 하는
별빛이라든가 꽃향기에 파수꾼이 있다? //
1975년 9월이던가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15km 지점
1백여 명의 젖냄새 아가들을 트럭에
싣고 와 한꺼번에 파묻어버린 체옹 에크!
아
이 생면부지의 벌판에 와서
나는 내가 인간이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어린 죽음들 앞에 무릎 꿇어 엎드릴 때
― 코리아의 문경 새재 너머 돌당골에서
거창 신원 감악산 돌고 돌아 박산골에서
한라산 북촌마을 바닷가 너븐숭이 돌밭에서
두 살, 세 살 나이에 총알세례 받은 아가들!
그 어린 것들이
여기 먼 나라 체옹 에크
흙빛뿐인 물웅덩이에까지 와서
아야어여오요우유 한국어 母音으로 함께 울고 있었다.
* 체옹 에크Cheoung Ek :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근교에 위치한 일명 킬링필드. 제노사이드 현장 중 하나로 가장 많은 사람이 학살당한 곳.
**이슬람 경전 [코란]의 ‘밤의 방문자 장’에 나오는 경구.
1.光州정신의 역사성과 현재성
이른바 ‘광주정신’(Gwangju Spirit or, Gwangju Espirit)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그리고 무엇인가, 내일의 역사 속에서 그것이 갖는 패러다임 또는 영원성은 무엇인가.
1980년 5․18항쟁 당시, 외신도 ‘Free Gwangju’ 혹은 ‘Gwangju Uprising’이라고 명명하며 광주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서 세계 곳곳으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외신과 광주항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당시 광주의 시민들을 프랑스혁명 때 파리시민들과 같은 시각에서 보았습니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정신으로 무장된 1789년의 파리 시민들...그들 속에서 솟아 나왔던 시민혁명의 의미와 에너지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발현된 것으로 보고 광주항쟁을 ‘전시민적 봉기’로 뉴스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1980년에 태어난 5·18은 광주시민봉기로 규정되어지면서 ‘광주정신’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광주’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로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물론 인류가 지향하는...또는 지양하고자 하는 보편적 가치와 문화 즉 공동선(共同善)과 공동체문화 등을 10일간의 항쟁과 그 이후 계속되는 항쟁 속에서 줄기차게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광주가 보여준 위대한 시민정신은 예로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우리 조상들의 몸과 마음속에 내재되어온 생명존중, 인간에 대한 존엄사상에서도 찾아질 수 있기에 그 보편적 가치가 크고 높습니다.
5․18광주항쟁이 그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잉태․생산한 ‘광주정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도시 전체가 계엄군에 완전 봉쇄되고, 신문과 방송 등 모든 언론이 입에 재갈이 물려 완전히 멈추고, 버스와 기차, 비행기가 오도가도 못하고, 시외통화도 불통되고, 절해고도와 같이 봉쇄되었어도...시민들끼리는 생필품이 바닥나지 않았습니다. 서로 나눠 먹고, 나눠 입고, 나눠 사랑하고, 하나같이 운명공동체, 시민공동체, 자치공동체, 생명공동체, 예술공동체를 이뤄나갔습니다. 계엄군들이 저지른 죽음과 죽임의 직전에서도...피와 눈물과 땀으로 20세기의 신화와도 같은 공동체문화를 생산해낸 것은 당시 광주시민들이 이룩한 5․18항쟁의 가장 위대한 도덕적 성과요 훗날 회자되는 ‘광주정신’의 핵심, 광주로하여금 아이덴티티를 갖도록 했습니다.
신군부의 정치적 야욕과 계엄군의 상상할 수도 없는 쿠데타적 폭력 앞에서 5․18광주항쟁은 ▲민주주의 사수 ▲자발적으로 전개한 시민공동체문화의 생산과 발현 ▲사람존중과 인간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승화시킨 생명문화의 존중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한’ 숭고한 정신 ▲극한상황에서 적어도 시민들끼리는 절도․강간․살인 등의 범죄가 전혀 발생하지 않고 헌혈과 생필품 나눠 갖기 전개 ▲한반도의 모든 비극의 DNA는 분단에서 비롯됐다는 자각과 깨달음이 되살아나면서 ‘오월에서 통일로’ 가는 통일운동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저강도정책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운동의 출현 ▲불교․천주교․개신교․민족종교 간의 종파를 초월하는 참된 나라를 위한 종교운동 ▲민족민주인간화를 부르짖으며 출발한 교육운동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문학․출판․미술․음악․연희 등 예술의 각 장르가 함께한 경계를 허무는 문예운동 혹은 예술운동으로 5월 광주는 로컬섹티즘이 아닌 한국의 어느 지역, 세계의 어느 지역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로서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특히 시민사회의 도덕적 모럴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전망과 전범을 제시했습니다.
어둠 속에 불기둥이 솟고 있었다
끝없는 아우성 소리 밤바람 소리
더욱 참혹하게 일어서 달리는
사랑과 평화와 자유의 갈증들
아아, 밤이었다 불 꺼진 밤 10시
텅 비어 있는 죽음과 죽음 속에
가득히 담겨 소용돌이치고야 마는
저 역사에 대한 명백한 진리의
어둠 속에 부서진 라디오와
눈덩이처럼 얼어붙은 별빛이 뒹굴고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비겁하지 않았다
-‘밤 10시’ 전문
금남로는 사랑이었다
내가 노래와 평화에
눈을 뜬 봄날의 언덕이었다
사람들이 세월에 머리를 적시는 거리
내가 사람이란 사실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알아낸 거리
금남로는 연초록 강 언덕이었다
달맞이꽃을 흔들며 날으는 물새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입술이 젖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보리피리를 불고 있었다
어린애와 나란히 출렁이는 금남로
어머니와 나란히 밭으로 가는 금남로
아버지와 나란히 쟁기질하는 금남로
할머니와 나란히 손자들을 등에 없는 금남로
할아버지와 나란히 밤나무를 심는 금남로
누이와 나란히 감꽃을 줍는 금남로
금남로는 민들레와 나비떼들의 고향이었다
그리움의 억세디 억센 끈질김이었다
그래, 좋다! 금남로는 멀리
청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래, 좋다!
금남로는 가까이 마을로 찾아가는 길
금남로는 어머니의 젖가슴이었다
우리가 한때 고개를 파묻고 울던
어머니의 하이얀 가슴이었다.
-‘금남로 사랑’ 문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일부
과거는 미래다(Past is future)! 상기한 시편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광주정신’은 시민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과 평화와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하는 ‘불사조’의 정신을 가지고 싸웠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깃발’이며 ‘꿈’이고 ‘십자가’이면서 앞으로 광주뿐만이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 내일의 통일된 코리아, 그리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청춘의 도시’로서 거듭나야 할 광주의 정신이었습니다.
광주는 그때도 그러하였지만 이제 겸손하게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의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또 다른 ‘광주들’(many of Gwangju) 앞에, 혹은 ‘광주들’ 속으로 들어가 서로 같이 1980년 5월의 그날처럼 아파해야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보다 아름다워져야 하고 성스러워져야 하며,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인 나눔과 베풂, 사람생명을 모든 이데올로기에 앞서 상위개념으로 놓으면서 오늘과 내일 속에 역사해야 합니다.
특히 나눔과 베풂은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1998.노벨경제학상 수상)이 강조한 것처럼 오늘의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생명철학의 통로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 나눔과 생명존중의 철학이 광주정신의 최고의 덕목이며 문자 그대로 미래를 위한 미션이며 패러다임으로 간주됩니다. 어쩌면 5월 그날의 광주는 한국역사 혹은 세계의 역사 속에서 한 알의 밀알로 떨어져 썩었다가 다시 뜨겁고 경건한 생명으로 ‘평화를 지키고 평화를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양자역학(量子力學)에서처럼 꾸준히 평화의 에너지를 생산해야 할 것입니다.
1980년 5월, 정권찬탈에 눈이 어두운-한반도 분단상황이 배태한 신군부가 획책·자행한 학살극에 맞서, 광주시민들이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 통곡뿐인 南道의 / 不死鳥”와 같은 시민공동체의 蜂起 혹은 항쟁에 대한 발견은 저한테도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음악가 베토벤이 두 귀가 완전히 멀어버렸을 때 작곡한 ‘환희의 송가’가 들려오는 순간과 같았습니다. 제게 詩는 광주시민들과 함께하는...광주상황을 알려주는 긴급 메시지였습니다.
예로부터 그래왔지만 오늘날 특히 한반도는 세계 모든 나라의 고통을 축약하고 있습니다. 아노미현상에서 오는 문명의 충돌, 아날로그와 디지털문명의 충돌, 도시사회의 매머드화와 공동체사회의 붕괴, 다인종국가의 대두와 갈등, 가난과 부의 양극화, 에고의 집착과 가치관·철학의 부재, 매스미디어와 자극적인 상업주의, 독재자의 되풀이되는 출몰, 국가주의의 팽창...그 가운데서 발생하는 전쟁과 전쟁, 자본에 근거한 강대국의 무한경쟁과 남북 대치상황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터입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태평양전쟁→8·15해방공간→6·25한국전쟁→월남전쟁→5·18광주학살,10년간의 시민봉기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트라우마, 수많은 메피스토펠레스(괴테의 희곡 ‘파우스트Faust’에 나오는 악마의 전형 그리고 유혹)가 때와 장소를 가르지 않고 접근해오지만...정녕 ‘역사의 승리’와 ‘인간의 승리’를 동시에 추구해오고 있는 사람들로 거듭나야 할 것 같습니다.
‘평화와 통일’은 그리하여 우리시대의 화두이며 동전의 앞뒤나 다름없습니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비극의 원인은 ‘분단’에서 기인되고 있다는 점을 중시, 생명존중, 평화, 하나됨을 향한 방향으로 바꿈과 변화의 의미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의 철학에 준거한 몸부림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럼 이제 저는 두 동강난 한반도, 광주에 살면서 노래한 몇 편의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DMZ)에서 살아가는 물거미를 노래하는 ‘서울과 평양 사이에’...2016년 9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전국을 밝힌 ‘촛불대집회' 때 발표한 ‘행진곡’,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2. 늪지대...‘아기 물거미’가 의미하는 것
서울과 평양 사이에
강이 흐른다 북한강이
흐르고 물거미가 산다
DMZ 비무장지대 늪-
1과 1속 1종 물거미가
반경 2cm 물방울 속에
들어가 서로 kiss 한다
홍보석보다 더 영롱한
아기 물거미를 낳는다!
-서울과 평양 사이에‘ 전문
한반도는 3년 동안의 전쟁으로 남북전체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1950년 6월에 발발한 <6․25한국전쟁 : Korean War>이 휴전협정(1953.7.27)으로 막을 내렸지만 전후 70여 년 가까이 1초도 대치상황을 벗어난 적이 없는 세계유일의 분단국가 코리아. 그럼 남북의 허리를 자른 비무장지대와 남쪽의 경우 그것이 확대된 민통선(民統線)은 각각 무슨 뜻일까요.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 DMZ)란 남북 간의 무장이 금지된 지역 또는 지대로 휴전협정을 기점으로 생겨났으며 사선(死線 : Dead Line)의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휴전협정으로 생긴 이른바 총 길이 155마일 <휴전선>에 남․북 각각 2km씩 너비 4km로 비무장지대가 들어선 것입니다. 남쪽 철책선은 남방한계선이라 부르고 북쪽 철책선은 북방한계선이라 부릅니다.
그럼 <민통선>은? 남방한계선 바깥 남쪽으로 5~20㎞에 있는 민간인통제구역 즉 ‘민간인출입통제선’을 가리킵니다. 1954년 2월 미육군사령관 직권으로 다시 휴전선 일대의 군사작전과 군사시설보호 등을 목적으로 ‘남방한계선 바깥으로 5~20㎞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민간인 출입을 금하였는데 이것이 <민통선>입니다. 이 구역 안에는 민간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어 오다가 남쪽의 경우, 1990년대 들어 국방부가 민통선의 범위를 대폭 북쪽으로 상향조정함으로써 인근 주민들은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 농사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거미(학명 AQUATICA)는 거미과에서 오직 1과 1속 1종에 속합니다. 녀석들은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1996년 6월초,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거미학자 남궁(南宮)준 박사 팀의 현장답사를 통해서 경기도 북부지방 연천군 민통선(민간인통제선) 비무장지대 늪지대에서 발견․확인됐습니다. 대부분의 거미는 암수가 독자적으로 행동하지만 이 물거미는 암수가 꼭 같이 살면서 실지렁이, 옆새우, 장구벌레 등 작은 수서생물을 잡아먹습니다. 나는 이 암수 물거미를 통하여 남과 북이 만나는 것을 형상화 해보았습니다.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아기 물거미’는 희망이요 통일의 상징입니다.
3. 2017년...새롭게 태어난 People Power
둥둥 북을 울려라
둥둥 징을 울려라
꽹과리 장구 다 모여라
한라에서 서울하늘까지
우리 장벽을 부수리라
우리 어둠을 찢으리라
돌과 흙 나무와 꽃으로
아 Korea! 다시 세우리라
- ‘행진곡’ 중 일부
촛불은 ‘영감(靈感.inspiration)’을 줍니다. 광장으로 나온 촛불은 하나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특히 100만, 200만의 시민들이 손과 손에 들고 나오는 촛불의 일렁거림은 그야말로 엄청난 영감을 주고 화학반응을 일으켜 거대한 에너지가 됩니다.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4월 29일에 걸쳐 한반도의 남쪽, 서울에서 한라, 한라에서 서울까지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에서 타오른 촛불!
박근혜 정권의 적폐와 국정농단, 국가의 컨트롤타워 시스템이 정상적인 작동을 멈춘 상태에서 발생한 304명 세월호의 죽음,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각종 뇌물사건과 비리를 질타하며 타오르기 시작한 6개월간의 촛불집회,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촛불시민혁명’으로 드디어 승리와 영광을 쟁취합니다. 촛불의 눈부신 일렁거림의 중심에는 저 4·19학생혁명, 부마항쟁과 5·18, 6월항쟁의 피와 함성이 거대한 둥근 빛 속의 ‘암흑핵’(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말한 ‘중심핵’)으로써 생명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발현되는 그 ‘에너지의 축’이 증거했습니다.
어떻게 ‘촛불혁명’은 가능한 것이었을까. 두 손으로 움켜쥔 촛불이 거대한 에너지를 결집시키고 발산시킬 수 있었던 것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쟁취한 무혈의 시민혁명! 6개월에 걸친 평화적인 시위로 ‘새로운 시민, 새로운 시민권력’을 탄생시킨 대한민국의 국민들(시민)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솟아나와 발현된 것일까. 차량들이 질주하는 거리와 안방의 TV, 남녀노소, 어린 학생들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들, 달리는 지하철과 일터에서 켜지는 2천만대를 넘어서는 스마트 폰과 SNS...각종 네트워크를 통하여 들불처럼 번져나간 정보의 소통과 결속력, 시민들 스스로도 놀라워하고 있는 힘은 ‘찬란한 불꽃’ 그리고 무혈혁명의 승리가 그것이었습니다. 촛불은 ‘돌과 흙 나무와 꽃으로’ Korea를 다시 세우’는 힘을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
4. 사람은 하늘이다 : 한국문화의 세계적 보편성
누가 흘렸을까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역전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 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이랑에
깊숙이 깊숙이 심어주었다
그때 사방팔방에서
저녁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콩알 하나’ 전문
콩알은 생명입니다. 지금은 비록 하나뿐이겠으나 흙에다 심으면 또 다른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콩알입니다. 바로 이 콩알 하나를 가지고 코리아의 조상들은 자연스럽게 생명에 대한 비유, 나눔과 베푸는 일에 대한 비유를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콩알 하나라도 버리지 말아라, 발로 아무렇게나 밟으면 벼락을 맞을지도 모른다, 콩 조각도 나눠먹고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그것을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 먼 옛날부터의 한반도 조상과 후손들이었습니다.
코리아의 정신문화는 세계적 보편성을 갖고 있습니다. 온 누리에 널리 이롭게 나누어 베푼다‘는 뜻의 홍익사상, 모두 함께하는 대동정신, 효에 근거한 조상숭배, 동물과 식물을 숭배하는 토템사상, 생태주의(ecotopia), 샤머니즘(토속신앙), ‘사람이 곧 하늘이다‘를 최고의 가치로 삼은 동학사상이 바로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 진리요 문화요 최고의 가치요 생명사상입니다. 한국인들의 그런 마음과 사상이 결국은 세계적 문화의 보편성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반짝이는 콩알 하나...그것은 은유 즉 메타포어로 말하면 ’사람‘의 생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5.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그리고 평화통일
한 놈을 업어주니 또 한 놈이
자기도 업어주라고 운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두 놈을 같이 업어주니
두 놈이 같이 기분 좋아라 웃는다
남과 북도 그랬으면 좋겠다.
-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전문
요즘 저는 우리집 쌍둥이 손자와 아이슈타인 박사를 즐겁게 말하는 시간을 자주 갖습니다. 아니, 쌍둥이 손자와 아인슈타인 박사가 무슨 관계, 무슨 연관이 있느냐?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이야기를 듣다보면 흥미를 가지실 것입니다. 종종 그리고 자주 나는 이웃과 이웃, 사람과 사이, 70년 이상의 세월을 갈라져서 살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남과 북을 동시에 불현듯이 떠올리곤 합니다. 오른쪽 왼쪽 등거리와 어깨 위에 우리집 쌍둥이를 올려놓고 무등 태워주는 놀이를 해주면서 어쩌면 나는 마음속으로 울먹거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시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를 즐겁게 노래하는 나는 역시 아인슈타인 박사를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상대성이론(‘E =mc²)을 발표, 인류문명을 바꾼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이라는 것을 다 알 것입니다. 그는 1905년 처음으로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에너지(E)와 질량(m)은 같은 것이고 변환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1916년 ‘질량과 에너지가 시공간을 휘게 하고 빛을 포함한 자유입자들이 그렇게 휘어진 시공간 속에서 움직인다’라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아, 빛이 휘다니? 아, 하늘도 휜다니? 아인슈타인 박사는 빛이 직선으로 가다가 곡선으로 휜다는 사실을 발표, 세계 과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줍니다. 1919년 런던관측소에서 빛이 태양의 주위를 돌면서 휘는 것이 목격, 증명된 것입니다. 직선으로 날아간다고만 생각했던 빛이 그리고 저 하늘이 둥글게 휘어지기도 하다니 너무도 경이롭고 너무도 크나큰 진리와 교훈을 던져준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들도 직선과 직선으로 부딪치지 말고 곡선의 철학으로 서로를 껴안아주는 역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너와 나, 나아가 남과 북은 이제 아인슈타인 박사의 ‘빛과 하늘도 휜다’는 일반상대성이론과 둥근 곡선의 철학을 받아들여 평화통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평행선만을 달려온 혹은 직선과 직선으로만 부딪쳐온 분단의 세월, 그 수많은 분단의 입자들이 우리들의 몸과 영혼을 얼마나 많이 갉아먹어버렸는가를 생각할 때 가슴이 막혀 온 것이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쌍둥이 할아버지가 된 나는 즐거움에 젖곤 합니다. 머잖아 쌍둥이의 철학과 미학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삶과 꿈을 상당히 즐겁게 매력적으로 달굴 것이라고...모나게 서로를 찌르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둥글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감합니다. 쌍둥이처럼 통일의 그날도 유쾌하게 우리들 몸에 업힐 것이라고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두 놈을 같이 업어주면 두 놈이 같이 기분 좋아라 웃는 그런 통일된 세상을 찾아오기 위해 Peacekeeper(평화를 지키는 사람)...Peacemaker(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자...우리 모두가 아름답게 연대하는 ‘통일의 꿈’을 꾸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가시적으로 실현되리라 믿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동북아시아...나아가 아시아 전체는 물론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라 거듭 확신하는 바입니다. 저는 독일의 역사철학자 헤겔의 말을 믿습니다. 역사는 발전한다...단 꾸준히 역사를 위해 노력하는 자들에 의해서만이 역사는 발전한다는 희망을 믿습니다.
한중일 YMCA평화포럼을 함께하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의 굳건하고 행복한 연대를 위하여...건강과 평화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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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태(金準泰)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1969년 전남일보·전남매일 신춘문예 각각 당선, 월간『시인』(조태일 시인 주간)지로 한국문단에 나옴. 시집으로 ≪참깨를 털면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오월에서 통일로≫(판화시집) ≪칼과 흙≫ ≪통일을 꿈꾸는 슬픈 색주가(色酒歌)≫ ≪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 ≪지평선에 서서≫ ≪밭詩≫≪달팽이 뿔≫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Gwangju, Cross of Our Nation≫(영역시집) 등을 펴냈다. 1995년 문예중앙에 중편소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선보인 이후 100여 편의 액자소설을 발표했다. 역서로 베트남전쟁소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팀 오브라이언)을 간행했다. 산문집으로 세계문학기행집 ≪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백두산아 훨훨 날아라≫와 옛 소련지역 한민족구전가요집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등을 펴냈다. 고등학교 영어·독일어 교사, 5・18 필화사건으로 해직되어 대학입시학원과 국제·현대외국어학원에서 강의, 전남일보와 광주매일에서 문화부장, 경제부장 겸 부국장으로 일했다. 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일했으며 조선대학교에서 28년간 초빙교수로 봉직. 현재 광주 금남로에 집필실 마련, 저술활동 중. kjt487@hanmail.net
▲ 광주항쟁 직후 발표한 김준태의 詩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1980년 6월 2일)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김준태(金準泰)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이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不死鳥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 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그들은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 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난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번 죽고
한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 번을 죽고도
몇 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 위 詩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 Gwangju, Cross of Our Nation]는 1980년 5월, 한반도의 남녘 도시 광주에서 공수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일어난 ‘5.18광주항쟁 / Gwangju Upring’을 최초로 형상화한 詩로 동년 6월 2일자 <전남매일 ; 2개월 후 군사파쇼정권에 의해 강제 폐간됨> 신문 1면에 게재되었고 곧이어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전 세계 언론과 잡지에 각 나라말로 옮겨져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