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3.1운동100주년위원회가 개최한 3.1운동 99주년 기념예배(2018. 2.28. 오후 7시. 남대문교회)에서 설교를 맡아주신 안동교회 유경재 원로목사의 설교문 전문입니다.
삼일운동과 한국교회
고린도전서 1:21-25
유경재(안동교회 원로목사)
99주년 기념예배 설교(유경재목사).pdf
삼일운동 – 어리석은 십자가?
3·1운동이 일어난 동기는 일제의 억압적인 총독 정치와 그 횡포 그리고 일제의 민족성 박멸 기도, 언론과 신앙과 결사자유의 박탈, 종교에 대한 근절 정책 그리고 이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를 띤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까닭은 교회에 대한 일제의 탄압정책에 대한 항거라는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일제의 억압과 불의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3·1운동을 발기하고 주도한 것은 교회가 아니었지만 이 일에 찬동하고 적극 협력한 이들이 교회의 인사들이었습니다. 당시 이 일들을 계획할 때 그것의 신학적인 혹은 신앙적인 타당성 여부를 생각하고 한 것은 아닐 것 입니다. 만약에 목사들이나 장로들이 이 일의 타당성 여부를 신학적으로 검 토를 하였다고 한다면 당시의 신앙으로는 받아드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시 일부 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내세우며 이런 운동에 찬동하지 않았 습니다. 언더우드의 뒤를 이어 새문안교회 당회장이 된 쿤스(君芮彬, E. W. Koons)는 교인들을 향해 ‘일본에 복종하며 이를 달가운 마음으로 할 것’과 평소 ‘독립운동은 생각지도 말라’고 역설하였습니다.1) 감리교 감독 웰치(H. Welch)는 “3·1운동 당시 어떤 곳에서는 독립선언서가 교회당에서 낭독되었 는데 이것은 불행한 일이었으며, 太皇帝의 奉悼式 후에 교회 건물에서 독 립시위를 한 것은 잘못이었다”2)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당시 유명인사 들 가운데도 이를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좌옹 윤치호는 삼일운동 참여를 처음부터 거부하였고,3) 특히 그는 1919년 3월 2일 종교교회에서 예 배를 드리고 오사카 매일신문 기자에게 자기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 다. 1) 파리강화회담에서 조선 문제는 거론되지 않을 것 2) 유럽열강이 조 선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 3) 우리는 아직 자주독립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4) 약소국이 강대국에 끼어 살아가려면 마찰을 피해야 한다. 5) 무고 한 학생들의 소요는 탄압의 구실만 준다. 6) 천도교의 음모에 속지 말아야 한다. 같은 주장이 3월 7일자 경성일보에도 실렸습니다.4)
그런가 하면 이화여고 교사요, 당시에 뛰어난 지식인이었으며, 안동교회 교인이었던 김창제는 독립운동이 아무리 애국적이라고 해도 투기, 미신, 허황된 말, 음모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동조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난 기독교 목사들이 이번 운동에서 천도교 인사들과 제휴한 게 죄악이라고 믿 고 있다”고도 하였습니다.5)
이들은 이런 주장 때문에 당시에도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세계정세 를 두루 살폈던 윤치호의 주장은 정치적으로 볼 때 타당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파리강화회의에서 우리의 독립요구가 전혀 다루 어지지 않았습니다. 세계열강들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하고 있는 상황 에서 독립운동 시위를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며, 오히려 현실을 더 악화 시킨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은 바로 십 자가를 어리석은 것, 미련한 것으로 여기는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의 생각과 일치합니다(고전 1:2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결코 합리적인 것도, 현실 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에서 의 죽음이 온 인류 구원의 근원이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당시 자료들을 살펴보면 이 운동을 주도한 인사들이 만세 운동 한 번으 로 독립이 쟁취된다고 본 것 같지는 않고, 또 만세운동 뒤에 무슨 특별한 계획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중 29명이 태화관에 모여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 후 은신하지 않고 오히려 총독부 정무총감 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습니다. 60여 명의 헌병과 순사들 이 태화관에 들이닥쳐 민족대표를 연행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정치적인 운 동이 아닌 일제의 억압과 불의에 대한 비폭력 저항을 목표로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어리석은 일로 보 였지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이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를 자취하였습니 다. 이들 33인 외에도 그 뒤를 이은 목사들이 있었습니다. 3월 12일 안동교 회 당회장인 김백원 목사와 승동교회 차상진 목사 등 11인이 영흥관이란 요리점에 모여 「十二人의 長書」라는 3월 1일 발표된 독립선언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만들어 총독부에 1부 보내고 종로 보신각 앞에서 발표하였습니 다.6)
去 三月 一日 朝鮮民族代表 三十三人의 朝鮮獨立에 對 宣言書 決 코 畿個人의 獨斷會決에셔 此바 아니오 實노 全朝鮮民族의 良心的 要求임은 事實이 確證이며 神明의 保證임을 吾等은 確信노라. 玆에 吾等은 其后繼者로써 二千萬의 要求, 主義를 代表야 其要求와 其主義 를 貫徹코노라.
이 성명을 발표하고 김백원 목사 등은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3·1운동을 통해서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한국교회는 억압과 압제와 불의에 항거하는 것이 그 신앙 본질상 잘못이 아니라는 전통을 세우게 되 었습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독립 운동에 대해서 미국교회들도 긍정적으 로 평가를 하였습니다. 미국 기독교연합회 동양문제연구위원회가 1919년 4 월 30일에 낸 보고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교회가 이번 운동에 참여한 것이 정당했다고 믿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 도 없습니다. 다수의 목사, 장로 및 학생, 이름 있는 평교인들이 지금 감옥에 서 형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 바로 예수교의 영향이 전국에 미치고 있다는 증 거가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교인의 이와 같은 박력 있는 행동과 의의 있는 존재 양식이 없었더라면 이 백의가 호소하려고 하고 수호하려고 하는 이념이 총을 쏘듯이 전국에 무섭게 작용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교인만 이 참혹한 식민 정책에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부류의 한국민이올 시다.”7)
3·1 운동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모든 압제에 항거하 여 싸울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민족의 독립이란 차원을 넘어 모든 악에 대한 항거요, 불의에 대한 타협의 거부입니다. 이것이 바로 3·1운동의 정신입니다.
십자가의 아픔
3·1운동은 처음부터 교회가 고난당할 것을 각오하고 시작하였습니다. 실제 로 3·1운동으로 해서 교회는 말할 수 없는 박해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 본은 경찰과 헌병의 병력으로 교회를 때려 부수고, 종탑과 성경들을 산산 조각 냈으며, 대량 검거 때에도 기독교인을 주로 체포하였습니다. 심지어 운동에 가담하지 않은 교인들도 마구 잡아 들였습니다. 일본 총독부가 이 운동을 얼마나 잔악하게 제압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제암리교 회 사건입니다. 1919년 4월 15일 낮 2시경 일본군 중위가 이끄는 한 무리 의 군대가 제암골에 나타나 남자 교인들을 그곳 감리교회당에다 모이게 한 뒤 군인들이 총을 겨누면서 쏘고, 칼을 휘두르면서 교회당에 불을 질렀습 니다. 그 안에 있던 30여명의 교인들은 다 타서 죽었고, 교회당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이런 만행은 전국 여러 곳에서 자행되었습니다. 그 해 가을에 열린 장로교 총회는 신학생들이 많이 잡혀갔기 때문에 신학교를 임시로 휴교할 것을 결의해야만 했고, 수십, 수백 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감옥에 갇 혀, 총회기능이 마비될 정도여서 총회 임원직을 선교사들에게 대량 위임하 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하였습니다. 한국교회의 피해는 전대미문의 참상이 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교회가 이런 정치적 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반대했던 선교 사들도 일제의 극악한 탄압을 보면서 마음을 바꾸어 고난당하는 한국교회 를 세계에 알리면서 한국교회 고난에 동참 하였습니다.
무모한(?) 십자가의 결실
이렇게 극심한 고난을 당한 한국교회 모습만을 본다면 3·1운동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운동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이방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였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삼 일운동이 무모하고 미련한 것처럼 보이나 역사를 통해 길게 보면 삼일운동 은 놀라운 전통으로 우리의 의식 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삼일 운동은 한 때 만세운동으로 끝나지 않고 그 씨앗이 자라 여러 가지 열매를 맺었습니다.
첫째로 삼일운동에 고무되어 같은 해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 국 상하이에서 설립되었습니다.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일본의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각지의 임시정부들을 통합하여 중국 상하이에서 단일 정부를 수 립하였습니다. “3·1운동은 한말 이래 여러 갈래로 산만하게 흩여졌던 민족 주의 흐름을 하나의 물줄기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새로운 동력으로 만들어 민족주의운동을 가능”하게 했습니다.8)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제1대 대통령에 선출된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함을 천명하고 연호를 민국 30년으로 기산하였습니다. 1987 년 12월 29일 9차 개헌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 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하였습니다. 삼일운동의 주체 는 종교단체였지만 그 결과로 임시정부가 탄생하였다는 사실은 뜻있는 사 건이며, 대한민국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하겠 습니다.
둘째로, 3·1운동을 통해 조선민족이 주체성을 지닌 민족으로 독립을 위 해 저항하고 있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전 세계가 알게 되었습니다. “3·1운 동은 세계 제1차 대전 후 강대국에 의해 재편되고 있던 새로운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에 대해 도전한 최초의 저항”9)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의가 크 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3.1운동에 자극을 받은 세계의 피압박 약소국가 들은 그들의 해방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10) 이렇게 볼 때 3·1 운동은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친 민초의 운동이 었기에 그 의의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셋째로, 3·1운동의 정신은 광복 이후 민주화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 습니다.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난 4·19 학생혁명, 유신정권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 끝에 일어난 부마민주항쟁,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 년 6월 민주항쟁에 이어 2016년 촛불혁명 등은 삼일운동의 전통이 그대로 계승되어 일어난 민주항쟁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삼일운동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였 지만 하나님은 이 운동을 통하여 이 민족으로 하여금 자유를 사랑하고 정 의를 실현하도록 그 역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
그러나 삼일운동 이후 한국교회는 그때에 지녔던 정의와 자유에 대한 열정 을 잃어버리고 자기 확장과 교권다툼에 빠져들었고, 광복 후 분열에 분열 을 거듭하였으며, 이승만 정권에 편승하였다가 4·19 학생혁명 때 부끄러움 을 당하였습니다. 그 후 군사정권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 동에서 한국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되찾았으나 또 다시 교회성장에 몰입 하다가 그 역사의식이 흐려져 촛불혁명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소극적 내지 는 반혁명적 태도로 일관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삼일운동을 기 념하지만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신앙선배들의 용기와 신앙 앞에 우리는 부 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 나님에 대한 신앙과 분명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오늘 이 시대를 지배하는 모든 불의와 억압에 도전하여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잠시 받는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보상을 바라보면서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진정한 신 앙인의 자세를 갖추게 될 때, 99년 전 용감하게 일어서서 불의에 항거했던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을 부끄럽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3·1절은 우리에게 있어서 뜻깊은 절기입니다. 이 날을 길이 기억하면서 그 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을 깊이 간직하여야 하겠습 니다. 고난에 굴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신앙 선배를 가진 우리는 그 선배들 부끄럽지 않게 이 고난의 역사 속에서 용기 있게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되 어야 하겠습니다. 고난을 헤치며 앞으로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