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년 기독인선언 준비를 위한
제1차 집담회 속기메모
▢ 일시 : 2018년 2월 24일(토) 오후 2시 – 4시 30분
▢ 장소 : 한국YWCA연합회 2층 강당
▢ 참가자 : 김동한(한국기독교3.1운동100주년위원회 공동대표, 기장), 한영수(공동대표,
YWCA), 장규식(중앙대 사학과), 이숙진(이대 여성신학), 박창훈(서울신대 교회사), 김찬호(성공회대 문화인류학), 하희정(감신대 교회사), 김영철(서강대 경제학과), 정경일(새길기독문화원 원장), 방원일(서울대 종교학), 최수산나(YWCA), 최지영 (YWCA), 김기리(성공회), 서민영(대학YMCA전국연맹 간사), 주건일(서울YMCA), 이윤숙(YWCA), 김태현(NCCK), 손승호(NCCK), 이윤희(YMCA) 19명 (기독인선언 준비위원회 명단 보기)
▢ 주제 : <3⋅1 독립 선언서> 다시 읽기
▢ 발표 : 장규식(중앙대 사학과 교수, 3.1운동 100년 기독인선언 준비위원)
▢ 사회 : 이윤희(한국YMCA전국연맹 생명평화센터 사무국장)
- 사회자가 집담회 취지와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참가자들간 인사를 나누다.
- NCC 김태현 목사의 기도로 집담회를 시작하다.
- 장규식 준비위원이 1차 집담회를 위한 주제 제안을 발표하다.
사회자 : 집담회는 기독교선언, 시민선언을 기초해 가기 위한 기본 개념과 비전을 모으기 위해 참가자 모든 분들의 지혜를 모으는 시간이다. 따라서 세미나나 토론회 방식이 아니라 준비위원 중 관련 전문가가 집담회의 화두를 제안하고 모든 분들이 자유롭게 해당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다. 제안 발표는 15분 내외로 첫 집담회 발표는 중앙대 장규식교수님께서 맡아주셨다.
▢ 발표 메모 (장규식, 집담회 자료 참고)
1. <3⋅1 독립 선언서> 다시 읽기
1) 독립선언을 통해 인류평등, 전 인류의 共存同生, 민족자존의 대의를 천명
- 2천만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족의 자유발전을 추구
- ‘주권재민’의 키워드가 들어있고 독립선언의 정당성을 반만년의 역사와 2천만 민중, 자유발전의 기초로 독립선언
- 세계 개조의 대기운이라는 표현은 사회적 맥락에서 특별히 주목해야하는 대목.
- 제1차 세계대전, 베르사이유 강화조약 사이에 3.1운동이 일어나게 됨. 제국주의, 강권주의로 표현되는 구시대를 종말시키자는 선언.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이 서구 지성사에 큰 충격, 영향. 영국, 독일, 프랑스 등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전을 기원했던 것,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을 식민화하면서 야만을 문명화한다고 했던 담론, 명분이었는데, 문명의 종주국을 표방했던 나라들이 가장 야만적인 학살과 전쟁. 이런 충격에서 사회개조, 세계 개조 등이 나옴. 이광수 버전의 인격개조, 나라개조를 알고 있지만 그 이전 세계 개조 흐름.
2)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세계개조의 물결 : 생존권 보장, 심령상 발전, 민족적 존영, 문화 창달 vs 침략주의, 강권주의 / cf> 오늘날의 맥락에서 구시대의 유물은?
- 이런 흐름에서 독립선언. 이에 맞서 있던 것은 구시대의 유물인 제국, 강권주의, 이에 피해를 당한 역사 민중. 민족
- 이때의 생존권은 경제의 생존권과 다른 식민지의 생존권
- 민족적 존영, 문화적, 정치적 생존권의 침해.
-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 또 다른 선언을 한다고 한다면 이 선언을 통해 넘어서야할 구시대의 유물이 무엇인가 토론되어야 하지 않을까.
3) 정의 인도라는 인류 보편의 시대양심에 기반한 ‘抑强扶弱’의 실천
- 정의의 군과 인도라는 창과 방패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선언
-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 힘이 정의의 시대였던 시대, 사회진화론, 약육강식의 논리, 강권주의, 위력의 시대,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이 모순이 폭발.
- 이에 맞서는 새로운 시대의 힘은 정의와 인도. 힘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실현되어야. 정의가 힘을 가져야. 인식상의 전환.
- 약육강식의 논리가 억강부양의 논리로 전회하는 것을 독립선언서에서 볼 수 있다.
- 강자가 선이고 정의였는데, 이제는 그것을 누르고 약자들을 부추켜 세우는 것.
4) 일제의 문명화 담론과 통계 조작 / cf> 생활세계의 식민화, 신자유주의의 私事化 전략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지배할 때 내세운 명분이 야만의 사회에서 문명, 야만인으로 대접한 것에 대한 비판. 억압과 차별, 통계 숫자상의 조작이 있었다. 현대에 와서 보면 시스템의 지배가 전면화되면서 자본의 미시적 지배, 생활세계의 식민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모든게 자기 계발의 문제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에 대해 맞서는 비판의식이 필요하다.
5) 건설적 투쟁,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
- 시대의 양심, 양심의 명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자리에 신학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런 명제를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 응답 이런 것을 세속적으로 표현했을 때 이런 명제로 나오지 않을까.
6) 평화냐, 공멸이냐 : 조선독립 -> ‘동양평화’ -> 세계평화 -> 인류행복 / cf> 오늘날의 한반도 핵 위기
- 평화가 아니면 공멸의 길로 간다. 조선독립이 동양평화, 세계평화, 인류행복이라는 프로세스를 볼 수 있다.
- 100년 뒤에 선언을 준비하면서 이런 부분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7) 조선독립의 비전 :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에 기초한 위력의 시대에서 인도 정의에 기초한 도의의 시대로 개조, 시대교체, 더불어 부활 / cf>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 도의라는 것은 인도와 정의, 이를 합해 도의의 시대.
- 사회진화론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힘을 길러야 한다. 경쟁의 주체로서 민족, 국가가 있었기 때문에 평상시보다 더 집약적으로 실력양성에 매진, 학교를 건립한다든가 하는 애국계몽운동이 생겼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지만 식민지가 되고 정작 나라가 망하니 그러니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가 생겼다. 장지연선생 같은 분들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친일을 하게 되고 최근 서훈이 취소되기도 했다. 힘이 곧 정의다라는 인식.
- 안창호선생은 정의와 인도를 푯대삼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 도의가 실현되는 과정이 사회발전이라고 생각.
-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에서 시대교체의 개념이 들어있음. 사회개조론의 극복, 도의의 사회로의 비전이 필요하다.
- 선언서에서 눈에 띄는 표현은 ‘더불어 흔쾌한 부활’이다.
지금의 시대에서 무엇을 극복하고자 하는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8) 3⋅1운동의 화두 : 정의 인도 생존 존영 / cf> 정의 인도 생명 평화
2. 3·1정신의 계승
1) ‘자주독립’ ‘민족통합’ -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 통일 → ‘동양평화’ – 세계평화 – 인류행복
- 3.1운동을 통해 비로소 한 민족으로 자리잡음
- 민족통합의 용광로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 3.1운동
- 남북한의 화해평화통일운동으로 승화시키는 작업
- 독립선언서의 문법을 적용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2) ‘주권재민’ - 광장 민주주의, 제도적 민주화를 넘어선 실질적 민주화
- 2천만 민주의 성충을 합하여.. 주권자로서 2천만 민중을 규정. 주권재민.
- 이런 맥락에서 3.1독립선언서를 다시 볼 필요.
3) ‘정의 인도’ ‘억강부약’ - 사회 공공성의 회복
- 오늘 날의 맥락에서 사사화, 개인의 문제화되고 민영화가 만능화된 시대
- 관민의 구도를 공사의 구도로 대치해 본 것이 우리 세대의 실수.
- 관의 영역에서 민주화를 외쳤던 86세대, 그 이후 등장한 민영화는 사영화인데, 공적영역 자체가 크게 위축되고 축소되는 상황. 헬조선의 상황으로 귀결.
- 정의인도, 억강부약의 논의는 사회 공공성의 회복으로 봐야 할 듯하다.
▷ 무엇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 시간관계상 이 부분은 자료로 참고하는 것으로 했으면 한다. 이후 토론에서 다른 분들의 발표에서도 다양하게 제안되고 토론될 것으로 기대된다.
1) 독립에서 통일로 : 민족 화해와 평화 통일이야 말로 삼일정신의 재현
2) 국민통합에서 사회통합으로 : 주권재민 원칙에 입각한 실질적 민주화의 의제 개발
3) 정의 인도에서 생명 평화로 : 정의 인도 원칙에 입각한 생명 평화의 지구촌 공동체를 향해▢
▢ 집담회 메모
사회자 : 발표 감사하다. 독립선언서의 정신과 내용을 당대의 관점에서 정리해주시면서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 또 다른 선언을 한다고 한다면 이 선언을 통해 넘어서야할 구시대의 유물이 무엇인가, 무엇을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토론해주실 것을 제안해주셨다. 당대의 시점에서 새로운 선언을 준비한다면 과거 조선독립의 문제가 단지 식민지를 극복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동양평화와 세계평화 그리고 인류행복이라는 시대개조와 비전에서 제안되었듯이 지금 이 시대에서의 선언 또한 이런 프로세스를 고민할 것을 화두로 제안해주셨다. 토론 부탁드린다.
김동완 : 다음 주제, 대한독립선언이 무오독립선언인가?. 이것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가 100주년이다. -장규식, 음력으로 하면 올해가 100년, 양력으로 하면 19년이 100년- 저희 교회에서는 3.1독립선언서를 낭독하지 않고 무오독립선언서를 갖고 낭독한다. 3.1독립선언서는 너무 약하다. 무오독립선언서는 이에 비해 그나마 조금 민족의 뜻을 담아낸 것 같다. 올해가 무술년인데, 100년 전이 무오, 내년이 기미, 기해년이다. 이런 개념으로 따지면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성하는 선언문을 만들자고 한다면 내년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담는 선언문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올해년도는 준비차원에서 무오독립선언 정도의 선언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선언 주체 세력의 행태 등 부끄러운 모습이 많아서 100년 후의 후손인 우리도 100년 후손들에게 부끄러워져서는 안된다. 분단을 물려줘서는 안된다. 일방적인 친미 등 기독교인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는 친일을 비판하는데, 100년 후의 우리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를 봤을 때 친미했던 세력이 기독교인이라고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장규식 : 무오독립선언서를 읽는다고 하셨는데 그 고충과 의미를 충분히 알겠다. 독립선언서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했던 논리가 있다. 민족대표 33인이 친일 했다는 등. 안티테제로 이것이 너무 세가 가다 보니 33인 전부가 친일한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러나 사실 민족대표였기에 영향력이 컸지만 친일은 5명 정도가 된다. 나라가 없던 시대에, 신분제가 존재하던 시대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민족개념이 형성될 수 없다. 노비를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았다. ‘너와 나는 형제다’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까지, 25년이 지난 3.1운동까지 걸린 것이다. 함석헌 선생의 회고록에 이런 부분이 잘 나와 있다.
100년 전에는 민족 만들기라는 것이 중요 개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폐쇄적이거나 차별과 배체의 개념으로 작동하게 된다. 지금은 지구화 시대에서 민족 개념의 타당성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생산의 토대와 경제적 토대의 변화 속에서 100년이 흐른 지금, 민족은 무슨 의미일까? 민족의 통일이라는 과제가 미해결의 과제로 있기에 민족의 개념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시민이라는 중첩된 사회, 토대의 변화의 변화에서 숙고하면서 이런 지반의 변화에서 기독자 선언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이런 집담회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말씀하신 내용을 고민했던 세대로서 이런 것을 좀 더 벗어나야하는 시점이지 않을까.
한국 민족주의는 종교입국론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다.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여 새로운 입국론을 새우려 했다. 법과 제도를 받아들이고자 했으나 의식/문화의 변화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이런 개혁의 구심점으로 종교에 주목하게 된다. 청년 지식인들이 개신교에 주목하게 되고, 동학은 천도교로 개편, 유교 개혁, 단군이 대종교로 변화하게 된다. 개신교, 천도교, 대종교 이 세 가지가 사회주의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 근대사회의 내부 단결을 위한 중심적 논리였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이 세 가지 종교 중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대한독립선언문은 대종교에 기반한 사람들에 의해 발표되었다. 3.1독립운동은 개신교, 천도교 사람들이 중심이었다.
3.1운동 당시 종교와 더불어 청년학생이 주체로 등장한다. 2.8선언이 대표적이다. 2.8은 국제성도 있지만, 청년학생이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 세 종교와 주체로 청년학생을 중요하게 이해해야 한다. 개신교, 천도교, 대종교가 정신적 중심이고 세력으로는 학생단이었다. 학생단의 배후에는 학생YMCA가 있었다. 3대종교와 청년학생이라는 중심 세력, 이것이 100년 전 맥락이다.
지금 한국사회를 어떤 정신으로, 어떤 세력으로 중심을 잡아갈 것인가가, 무엇이 통합의 주체가 될 것인가?
사회자 : 집담회의 취지를 살려 참석자들이 주제 관련해 키워드 중심으로 자유롭게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 다른 분들의 토론에 대한 찬반 보다는 본인의 의견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주시고 보완하시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으면 한다.
하희정 : 역사를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 대한제국의 정체가 조선왕조다. 을사늑약, 한일합병의 사인 주체다. 시민이나 민중은 없다. 3.1운동은 시민, 민중, 이것이 중요하다. 왕조에서 시민사회로 그리고 세계 시민사회로 간다는 역사적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본다. 지금에서 보면 청사진을 밝히고 있다고 본다. 이런 그룹들의 다양한 인식이 반영되었고 이런 다양성이 검토되어야 한다. 세계 시민사회로 들어갈 것이라는 중요한 선언이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완성된 것이 수많은 과정을 거쳐 촛불혁명이다. 선언이 이런 청사진을 밝히고 미래의 비전을 표명해야 한다. 기독교의 틀을 넘어서는 세계 시민사회의 보편적 방향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방원일 : 여러 종교적 주체들을 말해주셔서 정리가 잘 됐다. 3.1운동 독립선언서는 천도교, 개신교의 연합으로 나온 텍스트다. 문외한의 입장에서 읽어 봤는데, 종교학자이다 보니, 얼마나 종교적인가라는 관점에서 봤다. 천도교적 관점은 느껴졌는데, 기독교적 관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민족담론의 중요한 텍스트에서 기독교적 담론, 정신이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은 비극적이고 안타깝게 생각된다. 이에 대한 반론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숙진 : 제 관심 중 하나가 자기 계발 담론이다. 이 담론이 종교 안에도 깊이 들어가 있다. 선언서의 키워드에도 많이 나온다. 공존, 공생의 사회, 경쟁적인 사회 끝났다 등. 공생의 시대다. 현 시대와도 비슷하다. 트럼프의 미국이나 아베의 일본이나 시진핑의 중국에 의해 숨을 못 쉴 상황인데, 3.1독립운동 선언이 지도, 나침판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서 왔다.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상황에서 쓰자는 취지. 선언서 이후에 자기 계발담론에 대한 기독교적 서간이 많이 발간됐다. 그래서 선언 작성 당시에도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장규식, 사사화 전략과 공공의 담론을 대비시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최수산나 : 나라, 민주적 주체로서 민중이 표현되고 있었다는 것이 의미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것에서 변화되는 문제, 개인적인 나와 공적인 나가 어떻게 변화되어 갈 것인가. 의문, 궁금점이다.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그 시대의 약자, 배제, 차별의 대상이었던 여성들, 그럼 지금의 시대에서 약자, 배제, 차별의 대상이 누구인가? 여전히 여성의 위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소수자, 배제, 혐오 등 이것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미투 운동 등...
박창훈 : 장규식교수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비판에 공감한다. 재미있는 현상은 미국 기독교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갖고 싸운다. 사회진화론 때문에 진화론을 반대했다. 사회진화론적 시각은 극복해야하겠지만 진화론적 시각을 배제할 수 있는가. 창조론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회생활은 철저히 사회진화론적 방식이다. 당시 사회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분석, 고종의 독살, 무단통치 시기 민중이 동원되는데 작동하지 않았을까. 미시적인 작은 이야기들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김태현 : 작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었고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이다. 한 시대를 통해서 흐르는 맥락이 있다고 보여진다. 개신교는 왜 이렇게 교파가 많은가라는 질문이 있다. 한 시대 한 공간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교회가 그 시대의 질문에 응답하면서 탄생한다. 시대 정신은 모든 억압하려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미투운동 등 지금의 시대도 그렇다. 피해자들이 숨겨진 치부들을 드러내고 극복해나가는 과정. 3.1운동 100주년을 정의하고 이끌어내는데 어렵다는 생각이다.
손승호 : 자기계발에 대한 인식, 자기계발을 통해 예외적으로 신분상승을 한 사람들을 일반화하는 사회, 사람들을 자기계발에 내몰면서 아프게 하는 사회다. 이런 시스템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자기계발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능력주의, 능력이 있는 만큼 높은 자리에 가야한다는 생각, 끔찍하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떨어져야 한다. 당연한 상식들이 우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김영철 : 민족의 독립만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나아갈 길을 밝힌 문서라고 생각한다.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있다. 16가지 정도 선언서가 있는데, 여자독립선언서는 몰랐다. 여러 부문, 지역의 여성들을 조직해 발표했다. 이 선언서는 한글로 작성되었다. 공공의 공간에 역사의 주체로서 여성의 역할을 밝힌 선언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독립선언서를 검토할 때 함께 검토되었으면 한다. 경제학을 하는 입장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일자리 문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원대한 목표도 선언서에 담겨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기리 : 기념한다는 것에 호의적이지 않다. 기념한다는 것은 그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렇다면 기념하는 것 이상이 있어야 한다. 그 이상이 무엇일까 생각된다. 선언서를 다시 읽기를 하고 있지만, 선조들이 고난을 감내하면서 만들어온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데, 오늘이 선조들이 말했던 그 오늘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곳에서 개혁과 변화를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무언가 감내하면서 바꿔야 한다면 이에 필요한 감내와 그 헌신의 의지가 우리에게 있는지 생각된다.
정경일 : 3.1운동 100주년 사업과 관련해 참여한 세 번째 모임이다. 선언문을 준비하는 의의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허함을 느낀다. 선언문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있는 것인데, 우리가 그런 사건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서다. 3.1운동이나 촛불혁명은 제국주의나 권위주의의 ‘부정성’에 대한 민중의 반발과 저항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으며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어떠한 부정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걸까? 발표문은 신자유주의를 지목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를 더 어렵게 한다. 눈에 보이는 부정성, 적이 분명하면 힘들더라도 단호하게 저항할 수 있는데, 오늘의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세월호 이후’에 다시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간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신자유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로부터, 맘몬으로부터 독립하려면, 이에 대한 절박성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 점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정의, 평화, 생명의 가치를 담은 선언을 준비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독특성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약자 중심성’이다. 사회적 소수자, 약자, 배제된 자, 버림받은 자의 목소리가 들어 있는 선언을 만들면 좋겠다.
김찬호 : 선언은 맥락이 중요하다. 80년대 많은 선언들이 있었다. 각 대학 교수들도 선언하고. 어떤 선언은 잘 작성되었다고 해도 사라진 것도 많다. 어떤 선언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 존재감이 무엇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는데 아무런 공명이 없었다면 내년이라고 달라질 것인가. 교회 내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이 선언이 사회적인 것인지, 교회 내적인 것이 되어야할지 토론되어야 한다.
독립이라는 것이 맞는 것일까. 너무 고립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립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독립이라는 말을 어떻게 재구성할지. 독립선언문이라고 하면 미국의 독립선언문하고, 3.1독립선언문이 떠오르는데 어떤 것이 있는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보면 행복, 권리, 안전 등이 들어가 있다. 오늘 발제에도 보면, 자유라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한국 시민사회는 자유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자유는 꼴보수, 자유한국당, 자유총연맹 등등. 자유와 진보가 섞이지 않았다. 자유와 자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시대에 자유라는 것에 대한 깊은 탐색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윤숙 : 여성이라는 주제로 집담회가 6월에 예정하고 있는데, 가려져 있던 주체로 여성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라는 관심에서 시작했다. YWCA 창립 100주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장규식교수님의 말씀처럼 주권재민, 도의의 시대 등등 여성이 처한 현실의 절박성, 절절성이 있었을 것이다. 침략주의, 강권주의, 남성주의, 유교주의에 항거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유관순 하나가 아니다. 이런 것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기독교가 갖고 있는 의의를 말해주셨는데 많은 참여자들이 여성들이었다. 근대적인 여성교육과 사회참여로 이끌었던, 재조명되지 않았던 현실을 다시 봐야 한다. 사사회, 신자유주의에서 적이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사사회 전략에서도 여성들이 더 배제되고 있다. 꾸밈노동, 섹스어필, 성형 등등에 여성들이 노출되고 있다. 여성 주체를 어떻게 다시 끌어내고 힘을 부여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 가부장제...
사회자 : 첫 집담회라 이야기가 쉽지 않을 수 있었는데 참석자들의 자유로운 이야기로 한 순배 돌았다. 3.1운동 100년 기독인 선언을 준비하는 것은 100년이기 때문에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름의 절실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한국 시민사회 형성의 정신사적, 역사적 맥락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정당과 정부, 기업의 자본질서에 부차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정신사적 기초, 형성원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일제에 의해 그리고 내전에 의해 한국 정신사가 끊겼고 불구가 되었다. 일제 이전 한국 정신사는 일제에 의해 사색당파가 되어 있고 내전이후 냉전과 팍스아메리카에 갇혀있다. 이에 대한 질문은 한국 시민사회가 기초하고 있는 정신사에 대한 것이고 또한 분단된 남북한 공동의 역사적, 정신사적 지반을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동학혁명과 3.1운동, 이 두 가지를 말하지 않고 한국 시민사회와 남북한 공동의 역사적, 정신사적 맥락을 찾을 수 없다고 본다. 이것이 지금 시대의 절실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과 평화를 위한 질문이다.
또 하나는 기독교 혁신의 필요성이다. 한국 시민사회에 한국교회가 더 이상 필요한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젊은 목회자들에게 요청했던 것이 목회직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었다. 젊은 목회자 10명만 한국사회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이 신앙적으로, 양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선언을 제안했다. 또 하나는 루터를 찾아 독일로 가지 말고 예수를 찾아 팔레스타인으로 가자는 제안이었다. 종교개혁을 맞아 소위 성지순례로 독일을 찾고 루터를 말하는 것보다 지금 당대의 평화의 핵심 위기 지역인 동아시아의 한반도와 서아시아의 팔레스타인에 관심하며 예수의 평화가 무엇인지, 지금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찾자는 제안이었다. 한국 기독교는 동학혁명이 끝난 후 국가없는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소식으로, 복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는 그렇지 않다. 한국 기독교의 존재 의의를 궁극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3.1운동100년을 맞아 선언서를 작성하고자 하는 이유이고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는 변화의 프로세스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발표를 맡아주셨던 장규식교수님께서 정리해주시면서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던 분들의 토론을 부탁드린다.
장규식 : 100주년선언은 3.1독립선언서의 번안학이다. 3.1운동의 유사성, 이야기들이 딛고 서 있는 지반의 차이, 지금의 컨텍스트 상황에서 번안하는 작업이다. 컨텍스트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선언문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고민했으면 한다. 3.1독립선언서에 억강부약이 나오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의 시대에서는 무엇인가? 보다 분명하게 좀 전에 말씀 주셨던 여성, 쓰레기 등등... 적이 잘 안보이는 사사화 전략, 액체근대화. 액체근대화라는 표현에 번개가 번쩍이더라. 이명박부터 사사화 전략이 본격화되던 시점에 액체근대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우리가 고체근대에 포커싱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고, 액체근대사회에서 헤매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재해석이 필요하다.
최수산나 : 방교수님이 기독교적 표현이 없었다는 말씀에 아팠다. 이 시대에는 성경 속에 있는 언어들이 많았다고 생각하는데, 기독교적 언어를 사용할 것인지, 새로운 기독교 내의 문화를 바꿔내는 선언으로 갈 것인지.
장규식 : 1919년의 독립선언서, 1973년의 그리스도인 선언이 징검다리로 이 시점이 고체근대의 시대였다. 지금은 액체근대의 시대이다. 73년의 선언을 징검다리 삼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1919년, 1973년 그리고 지금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73년의 경우에는 기독교선언이라는 것이 대사회적으로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2019년의 기독교선언은 기독교개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70년대는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기독교가 어쩌면 유일했다면, 지난해를 거쳐 정확하게 드러냈지만, 한국사회의 적폐가 대형교회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1970년대는 약자들의 인권을 이야기했지만, 지금 적폐의 온상이 되어버린 한국교회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1970년대는 종교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좁아진다는 느낌이라면 지금의 시점에서는 종교, 개신교 개혁의 메시지가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경일 : 이윤숙, 장규식 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이 더 명료해진다. 1919, 1973년 선언에는 선각자들의 향도성이 강했던 것 같다. 2019년의 선언은 대중의 선언,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선언에 포함되면 가장 바람직하겠다. 물론, 모든 ‘당사자’가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YW나 YM은 여성과 청년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도 경청하고 반영하면 좋겠다. 동시에,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잠재운 교회의 참회도 있으면 좋겠다.
이숙자 : 방관자의 소리.
하희정 : 세계 시민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대인데, 누가 대변해주는 것이 아닌 내가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거꾸로 폐쇄적이 되었다. 다중화사회에서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해서 함께 갈 수 있는 연대의식, 모든 분야를 넘어서서 보편가치로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의 가치로 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민사회를 끌고가는 리더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한 부분으로 건강하게 참여하겠다는 성찰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3.1운동을 기독교인이 끌고 갔다는 이상한 의식이 있다. 우리가 다 주도해서 끌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성과 이것을 넘어서는 건강한 연대를 만들어가기 위한 선언이 필요하다. 건강한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가면 좋겠다.
김태현 : 그런 구조의 선언문을 한번 경험했다. 88선언이 분단에 대한 기독교의 죄책을 고백하면서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안했던 선언이다. 형태 자체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다. 피해자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놓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문제. 기독교인으로서 내 책임의식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이런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 고려되어야 한다.
장규식 : 다음 달에 2.8/5.4 선언을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1973년 선언, 1988년 선언 등 징검다리로 삼았던 70, 80년대 기독교선언을 다시 읽기를 하면 어떨까.
김찬호 : 선언문이 사회파장을 만들 수도 있지만, 후속 프로그램도 있고, 선언이 그 이후 운동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인 반성은 행동으로 연결되어야한다. 많은 주체들이 참석할 수 있는 작업이 병행되어야한다.
김영철 : 대 시민사회에 한국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로 선언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또 하나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성찰 이렇게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한쪽을 고르라고 한다면 후자다. 비중을 후자에 두고 싶다. 선조 기독교인들의 교훈, 기독교인이 새로워지는.. 선조들의 노력들 그런 외침을 되돌아보면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작성했을 때 한국교회가 읽을까라는 생각이다. 10%라도 읽을까?.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와 닿는 글, 편안하면서도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선언문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김기리 : 4월 집담회 등에 3.1운동과 기독교 등의 주제가 있는데 집담회의 주제가 겹치는 것은 아닐지.
사회자 : 선언의 성격과 집담회의 주제는 지속되는 집담회에서 계속 토론될 것이다. 이를 위해 집담회를 하고 있는 것이고, 집담회를 통해 후속 집담회의 주제와 방식이 변화해갈 것이다. 집담회를 기획하면서 잡았던 일정과 주제는 큰 틀에서는 유지하면서도 집담회의 결과에 따라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장규식 : 3월 다음 집담회에서는 말씀드린 것처럼 1973년 선언과 88선언 그리고 원래 계획했던 대한무오독립선언/2.8/5.4선언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3.1운동 이후 지금까지 한국기독교가 주요하게 발표했던 선언의 내용과 의미, 영향과 아쉬운 점들을 알아보고 원래 계획했던 3.1운동을 전후로 한 당시 선언에 대해서는 제가 간략히 정리 말씀드리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 1973년 선언에 대해선 손승호박사가, 88선언에 대해선 김태현목사가 맡아주시면 감사하겠다.
사회자 : 다음 집담회는 참가자들의 뜻에 따라 2018년 3월 23일(금)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다. 집담회 후 간단한 친교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1차 집담회 발표를 맡아주신 장규식교수님과 참가자들에게 감사드린다.
2차 집담회 : 2018년 3월 23일(금) 오후 7시부터 9시 30분, 한국YMCA전국연맹 5층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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