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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에 그가 작성한 ‘한국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견해’라는 문건을 받아 보았다. 민주당 고위정책회의에 전달하기 위해 쓴 글이었다. “4대강 사업은 연쇄적인 대형 보 건설 계획으로 볼 때 매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전통적인 운하 건설 계획과 유사합니다 … 특히 저를 놀라게 한 것은 4대강 사업의 모델이 독일의 라인-마인-도나우(RMD) 운하와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애초 ‘한반도 대운하’를 만든다고 했을 때 거론했던 게 바로 라인-마인-도나우(다뉴브) 운하였다. 세 강을 뱃길로 이은 이곳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 뛰어들기 전인 2006년 대운하 구상을 밝힌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바로 이 운하 설계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492661.html
-라인-마인-도나우 운하에 어떻게 관여했나?
“갑문 디자인을 설계했다. 갑문을 열고 닫을 때 일어나는 파도가 배 운항에 지장이 없도록 계산해 안전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그 운하는 4대강 사업의 전신인 한반도 대운하의 모델이다. 처음부터 4대강 사업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아니다. 단순히 한국에서 강을 복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하천 기술자로서 호의적으로 생각했다. 특히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4대강 사업을 ‘그린 뉴딜’이라고 소개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사업계획서인 <4대강 마스터플랜>과 이 사업을 다룬 <사이언스> 특집기사 등 관련 자료를 구해 읽을수록 강 복원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수록 명확해졌다. 이건 지난 세기의 하천수리학이었다. 생태적 관심이나 필요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프로젝트 말이다.”
“슈타이너 사무총장 또한 하천수리 전문가로 대형 댐의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와 함께 유럽의 댐 문제를 다룬 보고서를 만든 적도 있다. 나는 이 단체가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여 너무 놀랐다. 유엔환경계획은 정치적인 단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슈타이너 사무총장에게 토론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지금까지 답장은 받지 못했다.”
‘한반도 대운하’ 모델인 독일운하 설계에 참여
현장조사 위해 방한…국제심포서 결과 발표
“보·준설방식 전형적 운하…심각한 결과 예고”
지난 12일 남한강 조사를 할 때부터 그는 도대체 이 사업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크레이지!’ ‘노 센스!’ ‘(반어적으로) 원더풀!’ 강변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면서 줄곧 이런 말을 탄식조로 내뱉었다.
이날 오전 그는 경기 여주군 신륵사 뒤편 남한강과 금당천의 합류부에 다다랐다. 이곳은 4대강 사업 반대 진영의 일종의 ‘성지순례’ 장소다. 환경단체는 역행침식(본류의 과도한 준설로 지천의 강바닥, 제방, 교각 등이 상류 쪽으로 차례로 깎여나가는 현상) 때문에 주변 금당교 교각 하단부가 깎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금당교가 보이는 합류부에 이르는 도로는 ‘접근 금지’라는 푯말과 함께 흙을 돋우어 차량 통행을 막아놓았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재밌다는 듯 사진을 찍더니 훌쩍 뛰어 금당천으로 다가갔다.
-직접 보니 어떤가?
“전형적인 역행침식이다. 본류에 과도한 준설을 하면 강은 본류와 지천의 수위가 평형을 이루려고 한다. 저렇게 하상유지공(강바닥의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한 돌망태)을 설치해봤자, 얼마 안 돼 쓸려 내려간다. 하상유지공은 강에 던지는 ‘농담’일 뿐이다. 콘크리트 보를 짓지 않는 한 거센 물살은 다리 교각도 부수는 힘을 갖고 있다.”
베른하르트 교수와 함께 있던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위원장이 “저 하상유지공도 세 번이나 쓸려 내려갔다”고 말했다. 교수는 수첩을 꺼내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계속 침식이 되다가 결국 하상유지공이 붕괴되는 그림이었다. 콘크리트 보를 세우면? 강은 다른 물길을 찾아 흘러내려간다.
이날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여주녹색성장실천연합 회원 30여명은 베른하르트 교수를 따라다니며 시위를 벌였다. 베른하르트 교수에겐 “독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고, 조사에 동행한 이들을 “매국노”라고 했다. ‘6·25 유공자회’라는 조끼를 입은 촌로가 그에게 달려들어 말했다. “독일도 라인강 개발해서 선진국 됐잖아. 우리도 4대강 해서 잘살아 보려는 거야.” 교수는 다시 수첩을 꺼내 그림을 그리며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흘 동안 둘러보니 운하라는 생각이 들던가? 왜 운하라고 생각하나?
“첫째 보가 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점, 둘째 강바닥을 사다리꼴로 일정하게 준설한다는 점. 이것은 운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도 이렇게 생겼다.”
물론 이에 대해선 ‘또 운하 타령이냐’며 식상하다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운하 아니고는 도저히 ‘4대강 사업의 목적’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게 베른하르트 교수의 생각이다. 정부는 4대강 사업 목적으로 △홍수 방지 △용수 확보를 든다. 사업의 핵심 내용은 △대규모 준설 △16개 보 건설이다. 우선 본류의 대규모 준설은 실제 홍수위를 낮추기 때문에 홍수 방지 효과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 추가로 16개 보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한다. 보에 물이 가둬지면 다시 홍수위가 높아져 준설 효과는 상쇄되고 만다. 그렇다면 왜 보를 짓는 건가? 이 질문에 대해 정부는 기후변화 시대에 생길지 모르는 물부족 사태에 대비해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보에 가둔 물을 언제 어디에 쓸지는 ‘연구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보통 정부는 ‘필요성’을 확인한 뒤 ‘행동’하지만, 4대강 사업에선 ‘행동’한 뒤 ‘필요성’을 연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베른하르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보로 물을 가두고 죽은 물을 용수에 쓴다고? 정말로 물이 필요하면 수질이 좋은 산악지역이나 강 상류에 댐을 지어야 한다. 이런 식의 연속적인 대형 보 건설로 많은 양의 양질의 용수를 공급하는 건 불가능하다.”
-준설로 인해 물그릇이 커지면 수질이 좋아진다고 정부는 말한다.
“물살이 있어야 산소가 공급되고 물이 깨끗해지는 거다. 그런데 보로 막힌 4대강은 유속이 느려져 산소량이 부족해진다. (물이 깨끗해진다는 정부 주장이 담긴 신문 기사를 꺼내 보여주며) 겨울철 갈수기 때도 마찬가지다. 물길이 좁아지더라도 흐르기만 하면 수질은 아주 나빠지지 않는다. 지금처럼 물이 고여 있는 상태가 수질에 더 위험하다.”
4대강 지지 유엔환경계획은 정치적 단체화
사업 뒤엔 생물 사라지고 홍수 가시화할 것
“늦지 않았다…시계 거꾸로 되돌려야 한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사업이 있나?
“있었다. 단 1세기 전에. 4대강 사업은 20세기 초 (운하를 고려한) 전형적인 강 개발 방식이다. 적어도 최근 50년 동안 이렇게 연속적으로 보를 건설하는 나라는 없었다.”
-그럼 4대강 사업의 정체는 뭔가? 과거 하천 관리 방식의 답습인가, 아니면 운하 개조를 염두에 둔 정치적 모의인가?
“둘 다인 거 같다. 수심 4m로 준설하는 게 힌트다. 정권 초기 운하 계획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운하 만드는 게 아니라면 낙동강 최소 수심을 4m로 정할 이유가 없다. 지역별 용수 부족량에 따라 준설량과 수심을 조절하면 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에 따라 낙동강은 최소 수심 4~6m 깊이로 준설을 마쳤다. 하지만 이것은 최소 수심일 뿐 깊은 곳은 39.7m에 이른다. 평균 수심은 7.4m로, 얕은 여울과 곡류는 깊은 배수로로 바뀌었다. 물이 흐르는 저수로의 평균 너비도 기존 240m에서 420m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 정도면 화물선도 충분히 다닐 수 있다. 베른하르트 교수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강은 자신의 생명을 잇는 특별한 구조를 갖고 있다. 수질 정화 효과가 있는 모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쌓인다. 습지와 수변 수림은 물을 머금어 홍수를 완화한다. 이런 강 생태계에서 다양한 생물이 산다. 생물이 살 수 있는 곳은 모래 깊이 60㎝까지다. 그런데 보를 건설하면 물이 정체돼 모래가 이동하지 못하고 모래 위로 침전물이 쌓인다. 이를 ‘점토질 코팅’이라고 하는데, 모래 속 생물들은 숨을 쉴 수 없다. 홍수도 마찬가지다. 강을 직선화하고 사다리꼴로 준설하면 강 유속이 빨라져 홍수 위험이 증가한다. 예전에는 긴 시간 동안 유량이 분산됐다면 이제부터는 짧은 시간에 많은 유량이 몰릴 것이다. 올해는 보에 물을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물을 채우면 홍수 위험이 가시화할 것이다. 5~10년 뒤엔 지천에서 쓸려 내려온 토사가 본류를 메우면서 더욱 유속이 빨라질 수도 있다. 라인강도 1880년대에 큰 홍수가 적었지만 운하화가 시작된 1977년 이후 집중적으로 큰 홍수가 발생했다.”
-4대강을 둘러보니 어땠나?
“가슴이 찢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게 죽어가고 있었다. 습지와 모래밭으로 가득 찬 4대강은 ‘물의 사막’(water desert)이 되어버렸다. 가장 아쉬운 곳은 경북 예천 내성천과 낙동강 중상류다. 작은 물고기는 얕은 물에서 살고 큰 물고기는 깊은 물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곳을 깊고 반듯하게 깎아놨다. 생태계는 교란될 테고 얕은 물에 사는 생물들은 첫 희생양이 될 것이다. 국토해양부 장관은 그렇다 치고 환경부 장관이 이 사업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난 믿을 수 없다. 생태공학적으로 재난 상태다.”
-이번 여름 몇 차례 4대강 공사 현장에서 대형사고가 났다. 환경단체는 4대강의 대규모 준설 탓이라고 주장하고 정부는 관련이 없다고 반박한다. 지난 6월 말 낙동강 왜관철교 붕괴사고의 경우, 정부는 무너진 교각 주변을 준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4대강 사업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데, 가보니 어땠나?
“왜관철교 교각이 어떤 방향으로 넘어졌는지 보라. 물이 흘러가는(하류) 방향이 아니라 흘러오는(상류) 방향으로 쓰러졌다. 준설로 빨라진 물살이 교각 상류 아래쪽 강바닥을 깎아냈다. 그러면서 교각이 충격을 받아 무너진 거다. 바로 옆에서 준설하지 않았더라도 주변 준설 지점에서 거센 물살이 강바닥과 부딪히면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켜 강바닥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그가 내성천 다큐멘터리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가 동행한 이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16일 인터뷰에서 낙동강을 얘기하던 그의 얼굴도 갑자기 붉어졌다.
“당신들은 훌륭한 자연습지와 모래밭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을, 여태 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 파괴되고 인공공원이 되었다. 앞으로 훨씬 많은 돈을 들여 인공공원을 정비하고 재퇴적되는 모래를 파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것을 막지 못하고 무엇을 했나? 지금 4대강 생태계는 멸종시계 12시를 2분 넘겼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우리는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는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을 벌이는 환경단체 간부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고 한다. “16개 보는 거의 다 짓지 않았나. 올가을 4대강 사업이 완공되면 우선 수문을 열고 물이 흐르도록 놔두자고 요청해라. 그리고 그다음 토론하자고 해라. 일단 최대의 비극은 막아놓고 말이다.”
인터뷰/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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