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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원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은 한국 시민사회/기독교 평화운동의 재구성을 위한 노력이다.

by yunheePathos 2024. 1. 17.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은

한국 시민사회/기독교 평화운동의 재구성을 위한 노력이다.

 

이 윤 희 / 고양YMCA 총무
 

한국YMCA 간사회(AOS) 푯대지, 2024.1.15.
팔레스타인 관심하는 이유(2024 AOS).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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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 대해 왜 관심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특정 시기의 인도주의적인 관심이 아닌, 에큐메니컬운동과 평화운동의 맥락에서 ‘한국 기독교’에‘, ’YMCA운동‘에 ’팔레스타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대면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기독교가 평화인가?’, ‘이 시대의 기독교인이란 무엇인가?’, ‘한국 기독교의 혁신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에큐메니컬운동의 질문에서, 그리고 ‘한반도/동아시아 평화의 지평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평화운동의 재구성’이라는 과제로 이어진다.

제국의 점령과 지배, 패권의 질서를 옹호하고 강화하는 ‘기독교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시오니즘’은 아주 다른 이질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국제 지배질서와 정치’ 안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움직이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슈는 이제, 서아시아의 영토문제로만 머무르지 않고, 서구 중심의 정신사에서 그리고 국제 정치 패권으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시오니즘’에 대한 강력한 응전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반도라는 역사적, 현재적 맥락에서 ‘한국 시민사회와 YMCA 에큐메니컬 평화운동의 재구성’이라는 관심으로 ‘팔레스타인 이슈’를 통해 ‘평화운동의 열쇠’를 찾아보고자 한다.
 
1. 제 2의 홀로코스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에서는 지금, 이스라엘 극우정부에 의해 팔레스타인인을 제거하고 팔레스타인을 ‘아파르트헤이트 이스라엘 국가’로 변화시키기 위한 75년에 걸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서안지구에서 진행해왔던 것처럼, 가자지구에서 최소 10~2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만들거나, 완전히 팔레스타인인을 청소하기 위한 대규모 학살을 진행하고 있다. 굶주림과 전염병, 쏟아지는 폭탄을 피해 떠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발적 이주’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이집트, 요르단 등으로의 강제 이주를 강요하고 있다. 네타냐후는 몇 달 전 유엔에서, 팔레스타인이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언급이 없는 새로운 중동 지도를 제시했으며, 이스라엘 대통령은 ‘가자지구에는 무고한 팔레스타인인이 없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가자지구 북부에서 온 수십만 명의 난민들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인들은 말 그대로 더 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되었다. 학교, 교회, 병원, 주택 등 가자지구 북부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가자지구의 80%에 달하는 1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또 다시 난민이 되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1948년 났던 난민들이었다.

이스라엘의 침공 기간 동안 어린이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행해지고 있는 “죽음의 속도는 금세기에 전례가 거의 없는 수준“으로 ”1948년 나크바 이후 팔레스타인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군사 작전”이 되고 있다. 가자지구는 폐허가 됐고, 기본적인 물, 음식, 의약품, 전기, 위생(하수구와 송수관) 등의 부족으로 기아와 목마름, 질병으로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종말적 상황”이다.
 
2. 가자지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 일상화된 인종청소,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사람들은 1,200여개에 달하는 이스라엘의 군사 명령에 의해 통제받는다. 수자원, 전력, 건축, 천연자원, 토지 등 모든 것에 대한 군사 명령이 존재한다.  이스라엘은 이런 군사 명령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갈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삶을 비참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고향을, 국가를 떠나도록 몰아가고 있다. 서안지구의 26%를 차지하는 요르단 계곡(Jordan Valley) 및 정착촌이나 아파르트헤이트 장벽(분리장벽), 군사기지 주변 지역과 같은 전략적 지역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2년간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특히 나블루스, 제닌, 툴카렘 지역에서 여러 차례 군사 작전을 펼쳤다. 2023년 7월 3일, 1천여 명 규모의 이스라엘 군이 헬리콥터, 드론 및 중화기를 동원하여 제닌을 공격했으며, 48시간 지속된 이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12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공격은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으며,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서안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지배는 더욱 강화되고 심각해졌다. 올해 10월 이전에만 167명의 서안지역 사람들이 살해를 당했고, 이스라엘군과 불법 정착민들에 의한 일상적인 처벌에 노출되어 있었다. 올해 초부터 8월까지 이스라엘군에 의해 서안 지역 팔레스타인 173명이 사망했고, 670명이 부상당했다. 올해에만 4,5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구금되었으며, 그 중 1,200명은 아무런 혐의나 재판 없이 행정구금 되었다.

또한 불법정착민들에 의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공격이 올해에만 600차례 이상 발생했다. 11,00여 명의 정치범이 이스라엘 감옥에 구금되어 있고, 2021에는 어린이 인권단체, 공정무역 농민단체 등 6개의 NGO가 불법화되었으며, 서안지역의 96%를 실질적으로 점령, 지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쟁 기간 동안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동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의 도시 연결을 모두 차단할 수 있는 새로운 점령촌 건설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23년 9월, 3,500채의 주택 건설을 승인한 것에 이어 11월 29일, 추가로 1,738채의 주택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토지와 사람들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불법정착촌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뿐만 아니라, 알 아크사 사원과 같은 종교시설을 침탈하거나 파괴하는 등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종교적 감정도 하루가 멀다 하고 자극한다.
 
3.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역사적 맥락 : 식민지 점령과 저항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말 이후, 이스라엘과 제국의 국제패권 질서 재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땅이 식민지화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정부뿐만 아니라 서구 제국의 많은 정치인, 주류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에 자리 잡고 있는 시오니스트들에 의해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문제가 단지 종교/문명 간의 문제이거나 과격한 일부세력들에 의한 일탈적 사건으로 축소 또는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3-1. 1947년 UN에 의한 영토분할과 이스라엘 건국
팔레스타인 땅의 갈등과 분쟁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만들어지고, 미국에 의해 유지, 확장된다. 오스만제국이 지배했던 땅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쳐 모두 독립국가로 성립되었지만, 팔레스타인 땅만 유대인들에 의해 점령당했고, 그 역사가 지금까지 75년간 이어지고 있다. 1905년, 아랍에 의한 팔레스타인 건국을 지지했던 영국의 맥마흔선언(McMahon–Hussein Correspondence), 1906년, 서아시아 지역를 식민지 영토로 분할했던 영국과 프랑스의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 1907년, 유대인들의 독립국가를 지지했던 영국의 벨푸어선언(Balfour Declaration)과 프랑스의 Cambon Letter 등으로 팔레스타인은 1차 세계대전 이후(1917-1947) 영국에 의해 위임통치를 받게 되었고, 1945년 이후 UN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넘겨진다.

1947년 11월 29일, 미국이 중심이 된 유엔에 의해 ‘팔레스타인 분할에 관한 결의안(제181호)’이 채택되고 영토가 분할되어, 이스라엘이 건국된다(1948년 5월 14일). 당시 UN 결의안에 따르면, 당시 인구의 7.1%를 차지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54%의 땅을, 88.5%인 팔레스타인인들에게 43%의 땅을, 그리고 베들레헴/예루살렘을 국제연합통치령 국제도시(3%)로, 공공의 땅(4.4%) 등으로 분할한다는 안(案)이었다. 이때, 이스라엘에 의해 팔레스타인 마을 530여 개가 파괴되었으며, 70여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난민이 된다. 이것은 1945년 얄타회담(1945.2.4.~2.11.) 이후 바로 이뤄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에스에스(USS) 퀸시’ 협상(1945.2.14.) 이후, 이스라엘의 정치적 시오니즘과 전후 미국의 서아시아 지배 전략이 만난 결과였다.

이에 불복한 요르단, 이집트 등 아랍세력은 1948년, 소위 1차 중동전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귀결되었다(이스라엘 76.7%, 팔레스타인 23.3%로 영토 변경). 1967년 3차 전쟁(소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 골란고원(시리아), 시나이반도(이집트) 등에 대해 점령을 전면화, 확장(이스라엘 86.3%, 팔레스타인 13.7%)하게 된다.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캠프데이비드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게 반환한다.
 
3-2. 1차 인티파다(Intifada, 민중봉기)와 오슬로협정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1차 인티파다(Intifada, 민중봉기)는 1987년도에 시작된다. 1차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한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진행됐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세금 납부 거부 투쟁을 하거나, 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하지 않는 등으로 이스라엘에 저항했다. 4년간 지속된 인티파다의 결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국제적 요청이 거세졌고, 1993년도 1차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오슬로 협정은 ‘땅과 평화의 교환’이 핵심 내용이다.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땅에서 물러나고, 그 땅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하는 평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오슬로협정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기대는 말 그대로 ‘땅과 평화가 교환’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서안지역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안지역에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촌이 더 확대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초반, 20만여 명이었던 불법 점령촌(Illegal Settlement)의 유대인들이 현재는 97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서안지역 팔레스타인 인구가 350만 명인 것에 비교하면, 1/3에 해당하는 약 100만 명의 유대인이 불법 정착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점령지에 점령촌을 만드는 것은 UN법상 불법이다.
 
3-3. 오슬로2차 협정과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점령 확대
2005년, 오슬로 2차협정에 따라, 서안지구는 A구역(Area A), B구역(Area B), C구역(Area C)으로 구분되었고, 이스라엘 지역과 서안지구 B, C지역을 포함하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의 96%를 실질적인 지배하에 두고 있다. 현 이스라엘의 극우 파시스트 정부는 그동안 C구역 합병 계획을 주장해왔으며, 팔레스타인 국가의 가능성에 대한 대화는 모두 차단하고 있다. 관련 선언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C구역의 팔레스타인 토지는 사실상 이미 합병됐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A지역 또한 유대인 불법 정착촌 등으로 잠식되어 있거나,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일상적인 식민지적  통제(세금, 관세, 통행 등)가 이뤄지고 있다. 97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정착민들이 서안지구에 위치한 200여 개의 정착촌 및 150개의 아웃포스트(outpost)에 거주하고 있다.

불법 정착촌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에 700km에 달하는 분리장벽을 건설하고, 팔레스타인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분리하고 있다. 또한 점령촌과 점령촌, 이스라엘 군사기지을 연결하는 관통도로로 팔레스타인 서안지역을 분리, 통제하며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실질적인 정부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3-4. 하마스의 총선 승리와 가자지구 봉쇄
1993년 오슬로협정 체결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기대했던 평화는 오지 않고, 불법 정착촌만 확대된 결과가 초래되었다. 또한 정착촌에 사는 유대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스라엘 군인들의 일상적인 침탈과 군 기지 건설과 주둔/점령이 확대됐다. 땅과 평화의 교환이라는 오슬로협정의 결과, 점점 땅을 빼앗기게 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오슬로협정, 국제사회를 불신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 2006년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맡고 있던 파타(PATA)를 상대로 승리하게 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권력이 하마스로 이양되어야 하는 국면을 맞았고, 권력 이양을 부정당한 하마스는 가자지구(Gaza Strip)로 쫓겨나게 된다. 가자지구는 2007년부터 분리장벽(인권차별장벽)으로 봉쇄됐으며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는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이 되었다.
 
3-5. 가자지구(Gaza Strip)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 폭 10Km~13km, 길이 40km에 이르는 작은 지역이다. 가자지구는 해안 대륙붕의 천연가스와 제2수에즈운하 건설 등의  필요성 등에 따라 지리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1948년 이후 이집트 지배하에 있다가 1967년 3차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불법정착촌 건설, 이스라엘 법을 적용하는 등 통제 강화)했으며, 2005년 이스라엘 샤론 정부에 의해 유대인 불법 점령촌이 철거된다. 2007년 이후 분리장벽(인종차별장벽)으로 봉쇄되어 있고, 해상으로 4.8km를 벗어난 어업과 해상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자, 세상에서 하늘이 열린 가장 큰 감옥 또는 케이지(Cage)라고 불린다. UN은 2017년, 가지지구는 60~70%의 높은 실업률, 깨끗한 물과 전기의 부족 등 주민들이 살수 없는, 외부의 지원에 의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은 1967년 가자지구 점령 이후, 1974년, 1981년, 1987년-1991년, 1997년, 2000년, 2008년, 2014년, 2018년/2019년, 2021년 등 아홉차례에 걸쳐 가자지구를 침공한다.
일상적인 실업과 폭력에 노출된, 희망을 상실한 불가능의 시간을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성난 사자들’로 변하고 있다. 하마스와 화난 젊은 사자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의 평화적인 비폭력 호소에 귀를 막거나 방해했던 국가, 세력, 사람들에 의해 성장되고 있다. "평화적인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폭력적인 혁명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는 존 F 케네디(1962년 3월 12일)의 말이, 지금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이해하는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
 
4.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 대한 쟁점 이해
 
4-1.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의 핵심 : 종교/문명 간의 충돌이 아닌 점령과 인종차별의 문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보는 시각이 다양하지만, 심각한 오해 중 하나는 ‘종교 간의 갈등, 분쟁’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정치적, 역사적 맥락을 넘어서는 매우 복잡한 사안이 된다. 더구나 이것은 서구 정부와 주류 언론, 그리고 그들의 편향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한국 사회의 언론과 지식 전문가들에 의해 확장된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지지하는 것으로 낙인찍기 되거나,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반유대주의’로 몰리기 십상이다. 이것은 1947년 이후 발표된 300여 건의 ‘UN 결의안’을 무시하며, ‘인도주의’와 ‘전쟁’과 관련한 각종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비판적 시각도 부정한다.

팔레스타인은 한반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19세기 전후 그리고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제국에 의한 국제패권질서가 재편되면서 만들어진 75년의 ‘식민지 점령과 인종차별’의 문제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문제’는 최소한 국제법과 역사적 문맥에서 다뤄져야 한다.
또한 서구 중심의 정신사와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문제’는 서구 기독교 중심의 세계사와 정신사에서 벗어나 세계 문명의 토대를 제공해왔던 1천년 이슬람과 동양의 정신사와 세계사를 다시금 보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문제’는 역사적 문법에 따라 현재를 보면서도, 이것을 관통하고 있는 다양한 정신사와 문명사를 서구 제국이 말하는 충돌이 아닌 융합, 발전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길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한국/세계 시민사회와 종교계는 이스라엘의 ‘반인도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집단처벌’의 방관자로 남아 있거나 그저 울림이 없는 공허한 탄식의 소리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잘못된 종교적 신념’이나 ‘이슬람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 팔레스타인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대량학살’에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것은 단지 그 땅의 사람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남·북한과 동아시아 그리고 종교 간의 평화를 소망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숙제를 풀어갈 수 있는 ‘평화의 열쇠’를 찾는 과정이며, 평화를 만드는 한국 기독교를 위한 통로이다. ‘한국 기독교가 평화인가?. 기독인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응답하는 과정이다.
 
4-2. 점령의 유대민족주의(정치적 시오니즘)와 평화의 반시오니즘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의 집단적, 조직적 이주로 유대인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정치적 시오니즘’은 제1차 시온이스트 총회(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종교적 색채를 완전히 탈색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 된다.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 빈의 랍비이자 저명한 유대 사학자 모리츠 귀데만은 “시오니즘은 민족주의적 이기주의의 발로”라고 비판한다(1897년). 실제 당시 독일인 랍비 90명 중 2명만이 이 총회에 참석한다. 대다수 유대인들은 ‘다원적 사회에서 평등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종교적 공동체의 성원’이라는 생각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반대했다.
그동안의 평화운동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비판과 반시오니즘 평화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휴전을 촉구하는 UN 결의안이 지난 10월 27일, 120개국의 찬성으로 채택된 이후, 12월 12일에 193개국 중 153개국의 찬성으로 다시 한번 채택되었다. 인종차별로 고통받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 12월 29일, 이스라엘을 인종차별로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하였으며, 즉각적인 임시 휴전 명령을 촉구했다.

지구시민사회 또한 이스라엘의 불법점령과 대량학살을 규탄하는 시위와 보이콧운동이 그 어느 때 보다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종교로 각색된 ‘유대민족주의 시오니즘’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가로서 이스라엘은 한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지만, 시오니즘은 각국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현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시오니즘은 단순히 국가로서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비전이 된다.

특별히 한국 기독교가 ‘기독교 시오니즘’의 이름으로 유대민족주의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가 평화를 만드는 세상의 동행자로 가기 위한 어두운 터널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반문명의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광화문 광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국기가 상징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법점령과 인종차별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자칫 또 다른 인종차별로 ‘반유대주의’를 불러일으키거나 유대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4-3.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 기독교시오니즘과 불법점령, 인종차별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여러 측면에서 너무나 익숙하고 가까운 곳이다. 그러나 구글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의 지도가 사라졌듯이, 한국 기독교인들의 인식에서 팔레스타인이 사라진지는 오래이다.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 특히 대다수의 개신교인들은 1948년도에 건국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실현된 성서의 이스라엘’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자세’라는 기독교 시오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이것은 ‘약속의 땅을 회복하는 선민(選民)의식’으로 ‘점령과 정복,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시오니즘’과 맥을 같이하는 ‘기독교 시오니즘’의 전형적인 태도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불법점령과 인종차별, 집단처벌(구금, 강제이주, 학살 등)의 불가피함을 주장하거나, 이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회피하게 된다. 이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시오니스트들과 주류 언론들에 의해 강화된다.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인은 1948년도 이전에 청산되었어야할 사람들이며, 지금의 문제는 그들이 지금도 하나님의 땅을 차지하고 있어 발생하는, 인간적으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쉬이 치부되고 있다. ‘기독교 시오니즘’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한국 교회는 UN의 국제법과 인권법에 따른 이스라엘의 점령과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비판조차 곧바로 ‘반유대주의’가 된다. 이스라엘의 점령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애달픈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이슬람과 테러리즘에 대한 지지’로 낙인찍기 된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팔레스타인인의 평화’는 편히 이야기할 수 없는 금지어가 되었다.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찾아가기보다는 나와 다른 그 무엇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패권 세력으로 한국 교회가 비판받고 있는 신학적 배경이다. 기독교 시오니즘에 의해 경도된 한국 기독교가 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해 어려워하며, 그들의 현실에 대해 ‘악어의 눈물’로 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의 이스라엘’은 ‘성서의 이스라엘’이 아니며, ‘정치적 시오니즘’은 유대교나 기독교와도 무관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의 이스라엘(다종교, 다인종, 다문화사회)은 성서의 이스라엘(종교적 언약의 공동체)과 다르다. 십자군전쟁이나 아메리카 선주민 학살, 노예무역 등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던 반(反)문명의 비극이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이웃 종교에 대한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한국 기독교의 모습이 어디서 태생되고 있는지를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을 통해 볼 수 있어야 한다.
 
5. 팔레스타인과 한반도, 한국 기독교의 만남 : 평화로 성서와 세상을 읽는 힘을 회복하자.
 
한국 기독교는 새로운 근대국가와 독립의 비전으로 한국 民들에 의해 스스로 수용되었고 성장해왔다. 한국 정신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였으며, 출애굽을 읽으며 나라를 잃는 백성의 희망이 되고자 하였다.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싼 제국 간의 전쟁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외된 약자의 편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신앙전통을 형성해왔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극복하며, 국제 시민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약자에 의한 정의로운 하나님의 평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에서 ‘약자의 연대와 협력에 의한 하나님의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신앙의 자리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아직도 한반도는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채, 팔레스타인과 함께 ‘동-서아시아의 양 끝단에 위치한 평화와 분쟁의 시소(seesaw)’가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한반도, 특별히 YMCA 에큐메니컬운동은 ‘제국’, ‘점령/패권’, ‘정치적/기독교 시오니즘’, ‘기독교/종교’, ‘평화’라는 공동의 화두를 갖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한국 그리스도인들과의 만남은 ‘약자들에 의한 하나님의 평화’를 넓혀가는 일이자, 한반도 평화를 일구어가는 일이며, 사랑으로 평화를 확장해가는 한국 기독교인의 소명이기도 하다.

지난 75년 동안, 동서아시아 양 끝단의 한반도와 팔레스타인은 제국의 패권질서에서 벗어나 약자의 연대로 만들어지는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YMCA와 에큐메니컬운동은 울부짖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民들의 애달픈 호소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절규하는 이 땅 民들의 것과 같은 일이다. 중립이라는 말로 강자의 편에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는 평화로 세상과 성서를 읽는 힘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기독교공동체가 ‘카이로스팔레스타인문서’를 통해 제안한 바와 같이, ‘점령과 정복의 시오니즘 신학’에서 벗어나야 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과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시오니즘은 이스라엘의 정치 이데올르기일 뿐만 아니라, 서구 국제패권질서를 만들어가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강력한 이념적 기반이다.

팔레스타인 민民들이 땅을 지키고 생존할 수 있도록 올리브나무심기캠페인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균형감 있게 볼 수 있도록 팔레스타인 지역 민民들과 함께하는 대안여행, BDS캠페인(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에 참여하자. 그리고 우선 당장은 가자지구 난민들과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긴급구호사업을 진행하자. 팔레스타인 기독인들은 한국YMCA가 절망 가운데 평화의 영성을 키우는 뿌리를 가꾸는 일에 팔레스타인 민民들과 함께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① '올리브트리캠페인(Olive Tree Campaign)'과 ‘가자지구 어린이와 난민 피난처’ 지원 모금 참여 : 올리브트리캠페인은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땅과 생존을 지키기 위한 국제평화운동이다. 한국에서는 YMCA와 올리브나무평화한국네트워크가 2020년도부터 4년째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특별히 가자지구 어린이와 난민을 위한 후원모금을 진행 중이다. 지난 2023년 12월 1일부터 시작해 1월 10일(40일간)까지, 가자지구 1차 모금을 진행했다. 1월 10일 현재, YMCA와 시민들이 총 67,658,111원(가자지구 48,857,100원, 올리브나무캠페인 18,801,009원)을 모아주셨다. 동행에 감사드리며, 1차 모금액은 1월 중 가자YMCA를 통해 전달될 예정이며, 2차 모금은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② 'BDS 캠페인(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 학교,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스라엘의 불법점령과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을 거부하자는 평화운동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종교단체, 대학교, 노동조합, 교사, 문화예술인, 체육인 등 전 세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별히 종교기관 등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과 기금의 정의로운 윤리적 투자 원칙을 세우고 부정의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회수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인의 정신사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대동사회의 비전을 일구어 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대면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시민사회를 위해서는 한국 기독교, 특별히 개신교가 기독교 시오니즘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웃나라, 이웃종교와의 평화를 일구기 위해서는 ‘점령과 정복의 시오니즘 신학’을 극복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가 평화의 눈으로 세상과 성서를 읽고, 약한 자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정의’, ‘예수운동’으로의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를 위해 YMCA와 시민사회가 서구 기독교 중심의 세계사와 정신사에서 벗어나 세계 문명의 토대를 제공했던 1천년 이슬람과 동양/한국의 정신사를 통섭하고 융합하는 ‘평화운동의 재구성’을 위한 공동의 노력과 협력이 요청된다.
 
참고 :
 
1. 팔레스타인 현안 이슈 https://url.kr/pnxh4f
2. 팔레스타인 관련 글 https://url.kr/31fxr9
3. 2024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1차 후원 모금 결과 보고
https://blog.naver.com/peacekymca/223319500496
4. 팔레스타인 올리브트리캠페인과 GAZA 어린이/난민을 위한 후원 모금 2차
https://blog.naver.com/peacekymca/223278138604
5. 팔레스타인 올리브나무 캠페인(OTC) 후원 참여 안내 및 현황(2023 제4차년도
https://blog.naver.com/peacekymca/223174501832
 
 

팔레스타인 올리브트리캠페인과 GAZA 어린이/난민을 위한 후원 모금 2차 참여 안내

https://blog.naver.com/peacekymca/223278138604

팔레스타인 올리브트리캠페인과 GAZA 어린이/난민을 위한 후원 모금 2차 - 올리브가 만드는 평화

“세계 최대의 야외 감옥에서 거대한 묘지로 변하고 있는 것을 이제, 막아야 합니다.” 아그네스 칼라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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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올리브나무 캠페인(OTC) 후원 참여 안내 및 현황(2023 제4차년도)

https://blog.naver.com/peacekymca/223174501832

팔레스타인 올리브나무  캠페인(OTC) 후원 참여 안내 및 현황(2023 제4차년도, 12월)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만드는 평화 2023~2024 제4차년도 팔레스타인 올리브나무 모금 캠페인 올리브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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