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여정에 한국 기독교가 함께하기를”
이윤희 /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 사무국장
“우리는 전 세계 교회를 향해 ‘와서 현실을 보라’고 호소한다. 우리는 여러분을 평화와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순례자로 받아들이며, 여러분에게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참된 현실을 전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 땅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에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지난 2009년 12월 11일 베들레헴에서 발표한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을 통해 아랍 세계에 기독교인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세계 기독교인들도 함께해주기를 요청해 왔다.
그런데 수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다녀왔지만,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이 같은 요청을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구 언론이 비춰주는 대로 아랍 세계를 ‘폭탄 테러를 자행하는 위험한 테러리스트’ 이미지로 연결하는 인식 탓이 크지 않을까. 그동안 진행됐던 한국교회의 성지순례가 서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팔레스타인과 아랍 세계에 대한 편견과 오해만을 더 깊게 하고, 한국교회에 시오니즘을 전파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여전히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지금의 이스라엘은 ‘2천여 년 동안의 디아스포라(Diaspora)를 끝낸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독립국가를 건설한 것은 정당하고 의로운 행위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
이런 현실 상황에서 대안 성지순례의 출발점은 “확장과 정복 중심의 신앙관이 만연한 한국교회의 문제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데 있다. 이와 더불어 다음의 질문들도 함께 짚어봐야 한다.
“지금의 성지순례가 이에 대한 응답이 되고 있는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이야기를 만나기보다는 죽어 있는 박물관을 다녀오듯 하는 것이 성지순례인가?”
“참여자들이 스스로 삶과 신앙에 대한 질문을 품고 가는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서아시아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갈등과 편견만을 더욱 깊게 한다면 이것을 성지순례라 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 삶의 자리에 기초를 두고 성지순례가 무엇이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여행의 기억
팔레스타인을 처음 방문했던 2010년 9월이 잊혀지지 않는다. 도착한 날 텔아비브 공항에 베들레헴으로 이동하는 어두운 차 안에서 한 발의 총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일까 내내 궁금했는데 아랍여성센터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도착해서야 그것이 한 소년의 목숨을 앗아간 총성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안타깝고 화도 났지만 겁에 질려 숙소 문밖도 나서지 못한 채 서성였다. 당혹감이 몰려왔다. 학습과 토론을 거치며 어느 정도 팔레스타인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일상적인 죽음 앞에 노출되어 있는 그들의 삶을 피부로 느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9미터 높이에 달하는 분리장벽을 따라 걸으며 ‘내가 이곳에 왜 있는가?’ ‘내가 갖는 두려움과 당혹감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묵상하면서 비로소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진이 아닌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게 되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에서 그들의 눈물을 만나게 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일행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수고하는 양국 시민 단체들을 방문해 그들의 현실과 삶, 평화에 대한 비전을 들었다. 그리고 난민촌과 교회들을 방문하여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팔레스타인 가정을 방문하여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고, 시장과 뒷골목을 걸으며 함께 먹고 마셨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상으로 겪는 분리장벽과 그들의 이스라엘 출입을 감시하는 ‘체크포인트’를 직접 경험하며 닭장에 갇힌 닭처럼 3~4시간을 꼼짝 못하고 있는 그들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 현장에서 이 시대 예수의 음성은 어디에 있을지 묵상했다.
이런 팔레스타인과의 만남은 ‘팔레스타인이 한반도이고 한반도가 팔레스타인’임을 확인하게 해주었고, 내 신앙의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다.
“온 땅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므로(시 24:1)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포함해서 그 어느 땅도 다른 땅보다 더 거룩하거나 덜 거룩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온 우주의 하나님, 변치 않는 본성을 지니신 하나님, 즉 모든 백성들에게 공의로우시며 이 땅과 온 땅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선하심과 자비를 베풀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땅은 거룩한 것이다. 거룩함은 이 땅에서 의롭고 바르게 살아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성소의 중심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도덕적인 삶이다.” - 예루살렘 성공회의 나임 아티크(Naim Ateek) 신부
한국ATG,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부름에 대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응답
팔레스타인 방문 후 팔레스타인 ATG(Alternative Tourism Group, 대안여행그룹)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방적인 지원이 아닌 팔레스타인과 한반도 공동의 평화를 위한 비전으로 한국ATG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ATG 창립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부름에 대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응답이자, 팔레스타인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다. 2013년 10월에 개최하는 WCC 부산총회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모여 한국ATG를 창립함으로써 세계 기독교인들에 평화 비전을 나누려는 꿈이 있다.
한국ATG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 증진은 물론 한국 기독교의 성서적·신학적 지평을 확대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국제적인 지지와 참여를 확산해가려고 한다. 이를 위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순례, 순례를 통한 평화교육(Pedagogy), 평화의 감수성과 문화 확산, 지도력 육성(팔레스타인 평화활동가 파견, 올리브아카데미 등), 국제 평화운동과의 협력(어린이 수감자 및 청소년, 청년 지원 프로그램 등), 한국교회 및 그리스도인들의 성찰적 신앙운동과 평화운동 참여 확대(평화교회 캠페인 -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참여하는 교회, 헌신하는 교회, 신학 심포지엄 및 평화박람회, 종교 간의 대화, 한반도 평화 국제캠페인 등), 올리브평화기금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운영은 개인, 교회, 단체 등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과 전통적인 계(契) 방식으로 한다. 다양한 자원봉사자 스텝을 운영하고, 납부된 회비의 30퍼센트 이내에서 평화순례 참가자를 지원하고,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참여가 어려운 이들과 청년층을 위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여성과 청년 지도력을 키우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대안 성지순례를 위한 한국ATG의 7가지 원칙
공정여행, 착한 여행을 전제로 하는 한국ATG 평화순례는 다음의 7가지 주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첫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에 기여하는 순례여야 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한국 기독교가 평화의 메신저가 되는 운동으로서의 평화순례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평화의 시각에서 현실을 냉정히 인식하려는 것이다. 또한 무엇이 정의이고,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지, 고통받는 자가 누구인지를 기독교인으로서 정확히 보고자 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어찌할 바 모르는 이들이 누구인지 찾고자 한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굴욕과 슬픔, 절망과 분노에 대해서 들을 때,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로하는 목소리에 기여하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둘째, 잠들어 있는 신앙과 교회를 깨우는 신앙운동이자 성서 다시 읽기 운동이어야 한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과 만나서 초대 기독교인들이 자손들에게 물려준 경험과, 팔레스타인 기독교 신학에 기초한 그들의 깊은 성경 해석을 듣고 토론하며 평화 예배를 나누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 기독교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변화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출애굽과 여호수아를 읽으며 독립과 새 시대의 희망을 일구었던 신앙의 선배들 눈으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만들기 위한 눈으로 성서를 읽고자 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은 한국 기독교의 잠들어 있는 신앙과 교회를 깨우는 운동이 될 것이다.
셋째, 한국적 상황과의 대화, 즉 콘텍스트(context)가 있는 순례여야 한다. 한반도는 일제로부터 식민지를 경험하고, 이어 전쟁과 분단, 독재 권력을 경험했다. 수난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이를 극복해 온 승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대국의 첨예한 국제정치질서에 편입된 한반도는 분단의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정전 60주년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지나고 있다. 팔레스타인도 한반도와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는 결코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는 미국의 입장과 이를 대변해 온 이스라엘 시오니즘에 의해 마지막 남은 식민지, 인종차별의 땅이자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 되었다. ATG 평화순례는 ‘지정학적 국제정치의 패권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한반도 분단과 팔레스타인 분리․점령 정책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동의 호소가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공유된다. 한국 시민사회와 기독교인들의 생활 방식과 국가 정책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패권적 국제정치질서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픔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이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시간인 것이다. 순례자의 삶과 가정에서, 그리고 공동체에서 평화를 모색해야 한다.
넷째, 평화의 사람들을 잇는 현장성과 민중의 평화운동이어야 한다.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고통받고 힘없는 이들에 의한 평화가 진정한 평화이다. 예수는 “세상의 평화와 내가 주는 평화가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로마제국의 평화가 아니라 약자와 소외된 자들의 연대와 협력에 의한 평화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팔레스타인의 평화는 이들의 연대와 협력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
팔레스타인 평화순례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지지·회복하려는 노력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만남이자 대화 여행이다. 문화와 생활을 배우고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를 배우는 시간이다. 팔레스타인과 함께 드리는 평화예배,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과 나누는 성서 및 팔레스타인 이해, 체크포인트, 음식, 사람, 문화와의 만남, 성지순례 등을 운영한다.
다섯째, 성찰이자 변화이며 학습이자 연대의 여행이어야 한다. 평화순례는 한번 오고 가는 여행이 아니다. 평화순례는 팔레스타인과 나의 삶, 평화와 한국 기독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자 응답의 여정이다. 따라서 순례는 순례자의 삶의 자리에서 시작될 뿐 아니라, 현지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 공동의 성찰과 기도에 그 의미가 있다. 그들과 편지를 나누고, 그들의 소식을 다른 이웃들에게 전하며, 어린 이웃들의 삶을 돌보기 위한 작은 정성과 수고를 모색하고, 우리의 교회가 평화의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며, 어린 나이에 수감자 신세가 되어 있는 어린이들과 애끓는 어머니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품을 만들어가는 순례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만남, 지지와 협력을 통해 우리의 삶이 바뀌는 경험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여섯째, 상생과 평화를 위한 이웃 종교와의 대화와 만남 여행이다. 한국 기독교는 모든 종파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왔으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협력하고 비폭력 평화운동인 3·1 운동을 만들었던 주체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도 형제인 무슬림들과 평화롭게 살아왔으며, 평화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과 함께 그들의 무슬림 자매형제를 만나며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고자 한다. 모든 것을 선악으로 재단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힌 시각으로 대하지 않고, 함께 대화하며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자 한다. 모든 극단주의와 근본주의를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제안하는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그들의 자매형제를 만나고자 한다.
일곱째, 파트너십을 통한 연대와 협력, 새로운 청년 리더십을 만드는 평화순례이다. 일방적으로 돕거나 불쌍한 이들을 지원하는 순례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과정으로서의 순례이다. 이를 위해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파트너십으로 한국ATG를 설립하고 지속적인 협력모델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내에 있는 기독교·이슬람·유대인·팔레스타인 출신 이스라엘 시민권자 그룹 및 외국인 평화운동 단체 등과 만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평화의 여정에 함께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청년 리더십이 양성될 것이다.
매년 2~3만 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다녀 오지만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위험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기독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예수의 땅 예루살렘,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와서 보라!”
<복음과 상황 2013년 7월호>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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