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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끄적거림/원고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의 부름과 한국 그리스도인의 응답 - 생명평화의 대안성지순례를 생각한다.

by yunheePathos 2013. 6. 9.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의 부름과 한국 그리스도인의 응답

- 생명평화의 대안성지순례를 생각한다.

 

이윤희 /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 사무국장

 

“진실을 말할 때가 왔다. 고난 받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말씀을 전할 때가 왔다.”

 

“우리는 전 세계 교회를 향해 ‘와서 현실을 보라’고 호소한다. 우리는 여러분을 평화와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순례자로 받아들이며, 여러분에게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참된 현실을 전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 땅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에서)


팔레스타인 대안성지순례 정리본.pdf


“왜, 한국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 관심 가져야 하는가?”

- 한국 기독교를 성찰하는 신앙운동이다.

 

2012년 11월,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한 전쟁과 점령, 인권 유린을 묵인해 온 한국 교회의 죄를 참회하며, 팔레스타인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형제임을 밝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평화를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국 기독교가 테러리스트와 이슬람을 옹호하는가?”라는 질문과 “팔레스타인 지지는 기독교 신앙에 어긋난다.”는 응답을 받았다. 한국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선뜻 이야기하기를 주저한다. 연민과 부채 의식의 눈으로만 바라보고 있거나, 종교 간 갈등으로만 해석하기도 한다.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지금의 이스라엘이 ‘2천 여 년 동안의 디아스포라(Diaspora)를 끝낸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건설한 것은 정당하고 의로운 행위’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 이에 더해 한국사회는 키부츠와 이스라엘 여군이 70년대의 국가 동원체제와 획일주의, 안보의 상징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이와 같은 한국 기독교의 인식은 우리 신앙 선조들이 노예들과 피억압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해방과 자유의 열망으로 읽었던 성서읽기에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방과 자유의 출애굽과 가나안 땅이 아닌 정복과 지배, 확장과 패권의 모세와 여호수아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기독교에 대한 한국 사회의 뼈아픈 지적들에서 잘 드러난다. ‘자신들만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맘몬의 게토(Ghetto)가 되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떠나 종교라는 허울로 권력을 탐하는 정치세력이 되었다’, ‘교회와 목회자들이 세속 정치인들보다 더 타락했다’, ‘중세 시대의 사제들과 교회로 전락해 선데이 크리스찬(Sunday Christian)만을 양산하고 있다’는 등의 우려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팔레스타인은 이와 같은 한국 교회의 신앙과 신학, 성서읽기가 맞는지, 한국 기독교의 현실과 신앙에 도전하고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에 대해 관심 갖는 것은 한국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성찰운동이다. “누구의 편에 서서, 누구의 눈으로 성서를 읽고 있는가?”


“생명평화의 눈으로 성서 다시 읽기”- 정복과 패권에서 해방과 나눔으로.

 

“구원과 해방의 하나님으로 알려진 성서의 하나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편파적이 차별 대우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국가가 설립되기 전에는, 구약성서예수를 예언하고 증거하는 기독교 성서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이스라엘 국가 형성 이후, 유태인들과 기독교 해석자들이 구약성서를 시온주의의 성서로 보는 것이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에게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구약성서가 시온주의도 뒷받침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지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풀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숙제이다.”(예루살렘 성공회의 아티크(Naim Ateek)신부)

 

팔레스타인은 한국 기독교의 성서읽기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별히 성서의 이스라엘과 지금의 이스라엘 국가를 구별하지 않은 ,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국가 건설과 점령을 성서적 예언의 성취로 보는 기독교 시오니즘(Christian Zionism)과 그것이 한국 기독교에 미치고 있는 영향, ‘선택된 백성과 약속의 땅’에 대한 분별력은 대단히 중요한 신학적 과제이다. ‘선민사상’, ‘땅에 대한 약속’, ‘가나안 정복’ 등은 중세 십자군 전쟁의 명분이었으며, 근대 유럽의 전 세계에 걸친 식민주의와 침략 이민자들에게는 그들의 정복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였다. 십자군들은 '여리고 성'을 함락하고 스스로가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살육을 자행하고, ‘이것은 성서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었다. 근대 유럽에 의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는 역사와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도 이에 속한다. 남아프리카 신학자 모살라(Itumeleng J. Mosala)는 이 이야기들이 백인들에 의해 아프리카 흑인들이 당하는 억압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윤리적 권위를 상실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과 약속의 땅에 대한 믿음이 이런 식민지 정복자들의 합리화를 위한 이데올로기로만 기여했던 건 아니다. ‘가라 모세(Go Down, Moses)’라는 흑인영가에서 볼 수 있듯 땅을 잃고 억압받는 이들의 희망과 자유를 위한 투쟁의 모델이기도 하였다. 한국 기독교 또한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라는 절망의 땅에서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주는 신앙이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애굽 땅 노예들의 탈출과 해방이라는 이야기로 절망을 견디었고, 제국주의 총칼 앞에서도 해방과 자유를 말하고 정의를 행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대한 믿음으로 전쟁과 분단으로 갈라진 민족 앞에 새 희망과 새로운 세상을 설파했고 한민족의 단결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수고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이와 같이 인종차별과 식민지의 땅에서, 전쟁과 분단이라는 고난과 수난의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신앙이자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나눔을 만들어가는 평화와 치유의 종교였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 지금 어디에 있으며, 누구의 자리를 탐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이 되어 버린 한국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 한국 교회의 성서해석과 신앙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 신앙의 선조들이 말했던 모세와 여호수아가 지금 한국 교회에서 어떻게 불리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팔레스타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백과 질문을 통해 다시 성서읽기를 함으로써 한국 기독교를 성찰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호소와 요구 :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

 

“왜 지금인가? 왜냐하면 오늘날 팔레스타인 민족의 비극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결정권을 가진 자들은 현존하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현상을 유지하는 데 만족하고,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지 않고 있다. 신실한 자들의 마음에는 고통과 의문이 가득하다. 과연 국제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문제는 단지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다. 문제는 인간들을 파괴하는 정책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자매와 형제들, 곧 우리 땅에 있는 교회의 교인들에게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우리의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에게, 그리고 우리 팔레스타인 사회와 이스라엘 사회, 국제 사회와 세계 교회의 자매 형제들에게 호소하는 바이다.”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2009년 12월 9일 발표)’의 원제는 ‘진실의 때’이다. 이것은 남아공화국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중요한 계기였던 ‘85년 카이로스 남아공선언’에 비견되어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으로 불리고 있다. 이 선언은 67년 신학선언, 88년 선언에 이은 세 번째 팔레스타인 선언이다. 67년 선언 '6일 전쟁'의 참상 이후 시대적 상황에 대한 신학자들의 고백문이고, 88년 선언은 87년 '1차 봉기'의 충격과 희망에 대한 선언이다.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문서가 작성된 특별한 계기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20년 이상 진행되어왔던 평화협상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더 나빠졌고 평화가 없음을 인정하자는 것이고, 무장투쟁 또한 효과가 없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제3의 대안으로 ‘믿음, 소망, 사랑’기초한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보이콧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문서는 팔레스타인 모든 기독교 교단이 참여해 1년 6개월에 걸쳐 작성되었으며,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유대인, 이슬람, 세계 교회, 국제 사회 등에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알리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한 길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선언문이 한국 교회에 많이 보급되고 읽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일부를 그대로 전제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위한 사랑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서로를 향해서 적대적으로 대하는 자들을 편들지 아니하시며, 다른 사람의 얼굴 앞에서 다른 이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자들의 편도 아니시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의 주이시고,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는 분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명령을 주시고 모든 이들로부터 정의를 요청하신다. 우리는 자매 교회들이, 우리에게 점령의 죄가 강요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신학적으로 무시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오늘날 교회에 속한 자매 형제들을 향해서 제기하는 우리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여러분은 우리들이 자유를 되찾도록 도울 수 있지 않는가?”

 

“대안성지순례의 시작 - Come & See”

 

대안성지순례에 대한 고민은 한국 교회에 대한 성찰로 부터 시작되었지만, 단지 종교적 관심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대안성지순례는 성서를 다시 읽는 운동이자 한국 기독교의 신앙세계에 대한 성찰운동이지만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문서’를 통해 아랍 세계에 기독교인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세계 기독교인들이 함께 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서구 주류 신학이 더 이상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불법적인 점령을 인정하는 도구로 전락되지 말기를 요청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으로 직접 와서 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 교회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갔다 왔지만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이 같은 요청을 외면했던 것도 사실이다. 냉전시기 한국인들에게 ‘뿔난 북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지금 서아시아 아랍 세계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미지는 ‘폭탄 테러를 자행하는 위험한 테러리스트’다. 서구 언론에 비친 이미지다. 한국 교회의 성지순례가 서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팔레스타인과 아랍 세계에 대한 편견과 오해만을 더 깊게 하고 한국 교회에 극단적인 기독교시온이즘을 전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한국 교회의 ‘확장과 정복 중심의 신앙관’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이것이 대안성지순례의 시작점이다.


‘지금의 성지순례가 이에 대한 응답이 되고 있는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이야기를 만나기보다는 죽어있는 박물관을 다녀오듯 하는 것이 성지순례인가?’, ‘참여자들의 삶과 신앙에 대한 질문’이 없거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서아시아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갈등과 편견만을 더욱 심화시킨다면 이것을 성지순례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대안성지순례의 두 번째 질문이다. 나의 삶의 자리에서 성지와 성지순례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필자가 팔레스타인을 처음 방문했던 2010년 9월이 잊혀지지 않는다. 도착 첫날, 텔아비브 공항에서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어두운 차 안에서 한 발의 총소리를 들었고 무슨 일일까 내내 궁금해 하며 아랍여성센터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 한 소년이 총에 맞아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분노했지만 겁에 질려 숙소 문 밖을 나서지 못하고 서성였던 그 당혹감. 팔레스타인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하며 어느 정도 이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상적인 죽음 앞에 노출되어 있는 그들의 삶을 피부로 느끼며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 당시의 나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에 머무는 내내 한참이나 나를 고민하게 했던 질문이다.


이 당혹감은 9m에 달하는 분리장벽을 따라 걸으며 ‘내가 이곳에 왜 있는가?’, ‘내가 갖는 두려움과 당혹감의 실체가 무엇인가?’ 묵상하며 그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사진이 아닌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게 되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에서 그들의 눈물을 만나게 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수고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시민들의 단체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현실과 삶, 평화에 대한 비전을 듣기 시작하였고 난민촌과 교회들을 방문하여 평화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가정을 방문하여 하루의 쉼을 같이하고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시장과 뒷골목을 걸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상으로 겪고 있는 분리장벽과 체크포인트를 경험하며 마치 닭장 차 안에 갇혀 있는 닭처럼 3~4시간동안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눈을 마주보기 시작했다. 갈릴리 바다 위에서 이 시대 예수의 음성은 어디에 있을지 묵상했다. 팔레스타인과의 만남은 ‘팔레스타인이 한반도’이고 ‘한반도가 팔레스타인’임을 확인하고, 내 신앙의 자리가 어디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온 땅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므로(시편 24:1)”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포함해서 그 어느 땅도 다른 땅보다 더 거룩하거나 덜 거룩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온 우주의 하나님, 변치 않는 본성을 지니신 하나님, 즉 모든 백성들에게 공의로우시며 이 땅과 온 땅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선하심과 자비를 베풀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땅은 거룩한 것이다.”거룩함은 이 땅에서 의롭고 바르게 살아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성소의 중심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도덕적인 삶”이다.(팔레스타인 아티크 신부)


“한국ATG,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의 평화를 기도하는 한국 기독교의 응답”

 

팔레스타인 방문을 통해 우리는 팔레스타인 대안여행그룹(ATG, ALTERNATIVE TOURISM GROUP)을 주목하게 되었고, 일방적인 지원과 지지가 아닌 공동의 평화비전으로 한국ATG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ATG 창립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부름에 대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응답이며, 팔레스타인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다. 2013년 10월에 개최되는 WCC 부산총회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모여 창립함으로써 세계 기독교인들의 평화비전을 나누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다.


한국ATG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증진은 물론 한국 기독교의 성서적, 신학적 지평을 확대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국제적인 지지와 참여를 확산해가려고 한다. 이를 위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순례, 팔레스타인, 국제 평화운동과의 협력(어린이 수감자 및 청소년, 청년 지원 프로그램 등),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순례를 통한 평화교육(Pedagogy), 평화의 감수성과 문화 확산, 지도력 육성(팔레스타인 평화활동가 파견, 올리브아카데미 등), 한국 교회 및 그리스도인들의 성찰적 신앙운동과 평화운동 참여 확대(평화교회 캠페인 -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참여하는 교회, 헌신하는 교회, 신학 심포지엄 및 평화박람회, 종교 간의 대화, 한반도 평화 국제캠페인 등), 올리브평화기금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한국ATG는 특정 교단이나 단체가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교회, 단체 등이 조합원으로 참여하여 협동조합과 전통적인 계(契) 방식으로 운영된다. 다양한 볼런티어스텝 운영, 납부된 회비의 30% 이내에서 평화순례 참가자 지원,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참여가 어려운 이들과 청년층을 위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여성과 청년 지도력을 육성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순례가 말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평화순례는 공정여행, 착한여행의 기본 원칙들을 담고 있지만 몇 가지를 특별히 강조하고자 한다. 또한 팔레스타인ATG에서 제안하는 “Come and See - A guideline for Justice Pilgrimage to Holy Land”(2010)가 한국 대안성지순례 논의에 참고가 되기를 기대한다.

 

첫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에 기여한다. 한국ATG는 한편에 일방적인 비난이나 지지를 보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순례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한국 기독교가 평화의 메신저가 되는 운동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정의, 평화의 시각에서 현실을 냉정히 인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지, 그로 인해 누가 고통받고 있는지를 정확히 보고자 한다.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어찌할 바 모르는 이들이 누구인지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굴욕과 슬픔, 절망과 분노에 대해서 들을 때,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로하는 목소리에 기여하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게 될 것이다.


둘째, 잠들어 있는 신앙과 교회를 깨우는 신앙운동이자 성서 다시읽기 운동이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초대 기독교인들이 자손들에게 준 경험들과 팔레스타인 기독교 신학에 기초해서 형성된 그들의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생각을 듣고 토론하며 평화의 예배를 나누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 기독교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힘을 찾고 핍박받는 이들과 한국 기독교의 변화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 하에서 출애굽과 여호수아를 읽으며 독립과 새 시대의 희망을 일구었던 신앙의 선배들의 눈으로 성서를 다시 읽고자 한다.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만들기 위한 눈으로 성서를 읽고자 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은 한국 기독교의 잠들어 있는 신앙과 교회를 깨우는 운동이 될 것이다. 


 셋째, 한국적 상황과의 대화, CONTEXT가 있는 평화순례이다. 한반도는 일본 제국에 의해 36년의 식민지와 인종차별, 뒤이은 전쟁과 분단, 독재 권력의 시간을 보냈다. 이것은 20세기 초 제국의 확장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수난의 역사이자 이를 극복해 온 승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도 강대국의 첨예한 국제 정치질서의 한복판에 있고, 분단의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정전 60주년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쓰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한반도와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는 결코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는 미국의 입장과 이를 대변해 온 이스라엘 시오니즘에 의해 마지막 남은 식민지, 인종차별의 땅이자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 되었다. ‘지정학적 국제정치의 패권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한반도 분단과 팔레스타인 분리, 점령정책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동의 호소가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평화순례를 통해 한국 시민사회와 기독교인들의 생활 방식과 국가 정책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패권적 국제정치질서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픔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이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반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순례자의 삶과 가정에서, 그리고 공동체에서 평화의 변화를 위해 일할 것이다.


넷째, 평화의 사람들을 잇는 현장성과 민의 평화운동이다. 평화는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고통받고 힘없는 이들에 의한 평화가 진정한 평화이다. 예수는 '세상의 평화와 내가 주는 평화가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로마제국의 평화가 아니라 약자와 소외된 자들의 연대와 협력에 의한 평화이다. 한반도 평화와 팔레스타인의 평화는 이들의 연대와 협력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팔레스타인 평화순례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지지하고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만남이자 대화와 응답을 통한 상호간의 공유이다. 문화와 생활을 배우고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화를 배우고자 한다. 이를 위해 팔레스타인과 함께 드리는 평화예배,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과 나누는 성서 및 팔레스타인 이해, 체크포인트, 팔레스타인의 음식, 사람, 문화와의 만남, 성지순례 등을 운영한다.


다섯째, 성찰과 관계, 기도와 연대의 지속성, 함께하기다. 평화순례는 한번 오고 가는 여행이 아니다. 성찰이자 변화이며, 학습이자 연대이다. 함께 하기이다. 팔레스타인과 나의 삶, 평화와 한국 기독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고 응답이다. 따라서, 순례는 순례자의 삶의 자리에 있으며, 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 공동의 성찰과 기도에 그 의미가 있다. 그들과 편지를 나누고, 그들의 소식을 다른 이웃들에게 전하며, 어린 이웃들의 삶을 돌보기 위한 작은 정성과 수고들을 찾고 우리의 교회가 평화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 어린 나이에 수감자 신세가 되어 있는 어린이들과 애끓는 어머니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품을 만들어가는 순례. 이처럼 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만남, 지지와 협력을 통해 나의 삶의 자리가 바뀌는 경험을 갖고자 한다.


여섯째, 상생과 평화를 위한 이웃 종교와의 대화와 만남이다. 한국 기독교는 모든 종파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왔으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협력하고 3.1 독립운동이라는 비폭력 평화운동을 만들었던 주체이기도 하다. 한국 기독교인들처럼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형제인 이슬람인들과 평화롭게 살아왔으며 평화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과 함께 함으로써 그들의 이슬람인 자매형제를 만나며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고자 한다. 모든 것을 선악으로 재단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힌 시각으로 대하지 않고, 함께 대화하며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자 한다. 모든 극단주의와 근본주의를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제안하는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그들의 자매형제를 만나고자 한다.


일곱째, 파트너십을 통한 연대와 협력, 새로운 청년 리더십을 만드는 평화순례이다. 평화순례는 한 편이 일방적으로 돕거나 불쌍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배우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한국 기독교의 청년 리더십을 키우는 노력을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파트너십으로 한국ATG를 설립하고 지속적인 협력모델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내에 있는 기독교, 이슬람, 유대인, 팔레스타인 출신 이스라엘 시민권자 그룹 및 외국인 평화운동 단체 등과 만나고자 하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평화의 여정에 함께하고자 한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높이고 한국 기독교가 평화의 여정에 참여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와서 보라!’

 

매년 2만~3만 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갔다 온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위험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기독인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예수의 땅 예루살렘,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와서 보라!”

 

평화의 여정에 한국 기독교가 함께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참고 자료]

 

1.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2009.12.11)”,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 번역

2.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를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2012.11.29)”

3. “여호수아와 약속의 땅”, Roy H. May, Jr, 서광선 역, 연합감리교회 세계 선교부 여성국 출판

4.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에 대한 ‘신학적 관점과 에큐메니칼 연대”, 박성원(영남신학대학교 

    석좌교수, WCC 중앙위원), 한국YMCA생명평화센터 세미나 자료집(2011)

5. “Come and See - A guideline for Justice Pilgrimage to Holy Land

    - ATG의 연대적 성지순례 가이드 라인”, 팔레스타인 ATG, 2010

6. “한국 교회 성지순례의 문제점과 대안 성지순례 방안 모색” 심포지엄 자료집(2013. 5),

    한국YMCA생명평화센터

7. “팔레스타인의 현 상황”, 페이튼 후사리(Faten husari, 팔레스타인 활동가)

8. “지구제국체제 아래 서아시아의 상황과 동아시아의 상황”,

    김용복(생명학연구원 원장, YMCA생명평화센터 고문)

9. “팔레스타인 평화에 대한 성서 신학적 응답”, 배현주(부산 장신대교수, YMCA생명평화센터 위원)

10.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한국 교회의 실천적 과제”, 조헌정(향린교회 목사)


* <복음과 상황>, 7월호에 실린 ‘평화의 여정에 한국 기독교가 함께하기를’를 보완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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