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겸손이라는 말이 얼마나 실천적이고 어려운 말인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삶의 태도를 만들어가는데 있어 '책임'이라는 말과 함께 생각해보는 말인데요, 항상 실패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필요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모든 관계의 힘이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소개한 한 책의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두 도성"
"두 가지 사랑이 두 개의 도성을 만든다. 하나님을 배제하는 자기 사랑이 지상의 도성을 만들고, 자신을 배제하는 하나님 사랑이 천상의 도성을 만든다. 지상의 도성은 자신을 높이고 천상의 도성은 하나님을 높인다.
지상의 도성은 인간의 칭찬을 구하고, 천상의 도성에는 양심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이 가장 큰 칭찬이다. 지상의 도성은 머리를 빳빳이 든 채 자기 영광을 구하고, 천상의 도상은 하나님께 "[주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도성>,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p 110-111쪽.
겸손이라는 말을 생각하다 보면 언제가는 문뜩 말이 좀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항상 내가 못난 놈 같고, 가슴에서 불거져 나오는 울화통에 가끔씩, 아주 자주인지, 폭발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겸손이라는 말이 얼마나 쓸모없는 치장처럼 허위의식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두 가지 사랑이 두 개의 도성을 만든다. 하나님을 배제하는 자기 사랑이 지상의 도성을 만들고, 자신을 배제하는 하나님 사랑이 천상의 도성을 만든다. 지상의 도성은 자신을 높이고 천상의 도성은 하나님을 높인다.
지상의 도성은 인간의 칭찬을 구하고, 천상의 도성에는 양심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이 가장 큰 칭찬이다. 지상의 도성은 머리를 빳빳이 든 채 자기 영광을 구하고, 천상의 도상은 하나님께 "[주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도성>,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p 110-111쪽.
겸손이라는 말을 생각하다 보면 언제가는 문뜩 말이 좀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항상 내가 못난 놈 같고, 가슴에서 불거져 나오는 울화통에 가끔씩, 아주 자주인지, 폭발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겸손이라는 말이 얼마나 쓸모없는 치장처럼 허위의식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존감이라는 말, 겸손이라는 말, 항상 갈등하면서도 함께 가는 말인 듯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통합되고 이에 대한 증거이며 천상의 도성에 이르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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