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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성지순례, 대안, 평화여행

예루살렘과 한국교회

by yunheePathos 2017. 4. 7.

올리브산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도성. 구원을 바라는 이들의 무덤으로 휘감긴 도성. 지금의 Old City는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둘레가 3.4Km 정도의 아주 작은 규모이다. 이 작디 작은 예루살렘이 서아시아와 세계 평화의 핵심적 이슈 중 하나이다. 


그것은 정치적, 종교적 명분이 얽히고 설켜 있으며 특히나 정치적으로 오염된 흔한 대외적 명분은 종교에서 찾아지고 있다. 이 작은 땅을 명분으로 종교를 앞세워 갈등과 반평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종교인가 묻지 않을 수 없게된다.


지금은 무엇보다 평화를 주제로 종교들이 만나고 함께할 수 있는 협력의 선을 위해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곳에 종교의 길이 있지 않을까? 자신들만의 게토에서 어울려지는 패권의 평화가 아닌 다름과 차이를 포용하고 상생해 갈 수 있는 평화. 그러나 아쉽게도 종교, 특히 개신교는 국제 패권 질서의 제국의 종교가 되어 있고, 한국 개신교의 주류는 그 중에서도 근본주의와 정치적 시온이즘이 결합된 그 아류 중의 아류인 듯하다. 더구나 여기에 중세화된 성직자 중심주의와 개교회주의 그리고 반이성주의는 천박하기 그지 없는 목회자 왕국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이 교회개혁 500주년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며 눈물짖고 기도하는 이들이 한국 개신교의 정상적인 모습이라면 멸망한 예루살렘이 남의 일이 아닐 듯 싶다.


패권과 제국의 정치, 그리고 그 선두에 서 있는 종교와 신학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따뜻한 온기와 햇살을 먼저 나눌 수 있는 종교, 남북한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 세가지 접점의 핵심에 한국 기독교가 있다는 생각이다. 세계 기독교에서 한국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위치이자 역할일 수 있으며 이것은 평화의 남북한을 만들어가는 한국 시민사회를 위해 그리고 한국 개신교의 혁신을 위한 새로운 신학적 성찰을 위해 팔레스타인-이스라엘과 만나야할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 개신교가 한국 시민사회와 세계 기독교에 기여할 수 있는 길목이기도 할 것이다.(2.20)


#팔레스타인 #기독교 #대안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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