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기독교사상' 2017년 5월호에 싣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호소, Come, See and Act'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이 글에 관련 사진을 추가하여 게시했습니다.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시선
목회자와 개교회 중심의 맘몬화된 한국 교회에 대한 소망을 상실하고 있을 때 만났던 예수의 땅 팔레스타인. 2천 년을 지속해온 그들의 신앙과 하나님의 평화를 궁금해 하며, 2008년부터 나는 새로운 신학적, 신앙적 계기를 찾아 팔레스타인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국내외 교계, 특히 한국교회에는 아직도 금단의 사과와도 같은 영역이자, 악마화된 신앙적 대결 상대로 남아 있는지 모른다. 한국의 성지순례 객들은 성서의 이스라엘과 현실 국가 실체로서의 이스라엘을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른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우호적인 글을 쓰기라도 하면, ‘기독교인이 왜 이스라엘을 편들지 않고 팔레스타인 편을 드나?, 이슬람과 테러를 지지하냐?’라고 종종 힐난하곤 한다.
이렇듯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주제들은 자칫 신앙적, 신학적,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기 쉽고,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애써 이를 외면하며 침묵을 선택하기도 한다. 나는 한국 교회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신학적, 정치적 편견을 극복할 수 있을 때 평화의 교회로 부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약속의 땅과 선민의식 그리고 정치적 시온이즘’을 바탕으로 한 패권과 제국의 종교에서 벗어나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평화를 이루는 일이다. 평화는 상대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직접 보고,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2월 한 달 동안,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주관하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에큐메니컬 동반자 프로그램(EAPPI, The Ecumenical Accompaniment Program In Palestine & Israel, 소개 글 보기)에 참여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지난 해 10월에 참여했던 올리브트리캠페인(Olive Tree Campaign, 자세한 소개 보기)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이 글에서는 팔레스타인 현실을 이해하는 창으로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여성과 청소년을 지원하는 단체인 WIAM 입구에 있는 벽화와 단체 알림 글. 베들레헴 체크포인트 300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방문자 누구나 단체 실무자들과 커피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팔레스타인 성지순례와 홈스테이
팔레스타인 가정에는 대부분 가족들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다. 그들의 가족 이야기에는 팔레스타인 수난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를 통해 마치 고난의 한국 현대사와 닮아 있는 그들의 역사와 신앙을 만나게 되고, 평화를 기도하는 시간이 된다.
팔레스타인 가정집에서 지내다 보면 가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물 문제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나 샤워할 때 물이 끊겨 난감한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수자원을 장악하고 관리하며 수자원의 80% 이상을 이스라엘이, 그리고 나머지 20%만 팔레스타인에 공급하고 있어 언제 무슨 일로 물이 끊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가정집 지붕 위에는 검정색 플라스틱 물 저장 탱크가 필수적이다. 홈스테이를 통해 만나는 무슬림들은 아주 친절하고 쾌활하게 손님을 환대하지만, 종종 역사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쉽사리 말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온 기독교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한국 기독교인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과 미국과 친하고 그에 비해 이슬람에 적대적이라고 말이다. 한국교회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 무슬림이고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고등학생 또래의 팔레스타인 무슬림 여학생은 "팔레스타인에서 지내다 보면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거에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친절한지를.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를 전한다. 한국교회가 이처럼 인사를 전하는 무슬림 여학생과 평화의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한국 여행사 특유의 바쁜 일정과 한국 교회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성지순례가 평화의 여정이기보다는 잘못된 편견을 강화하는데 기여하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성지는 과거의 박제화되고 상업화된 교회건물이 아닌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도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분리장벽과 검문소(Check point)
아침 출근 길 분리장벽을 통과하기 위해 새벽 2~3시부터 200여 미터의 철책 안에서 꼼짝달싹 못한 채 1~2시간 이상을 서 있어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730km에 달하는 7~9M 높이의 분리장벽이 팔레스타인 마을과 마을, 집과 집을 가로지르며 똬리를 튼 뱀처럼 서 있는 음침한 광경. 검문소(Check point) 철책라인 안에서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최대한 밀착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뭐라 표현하기 힘든 비참한 슬픔을 갖게 한다. 임산부도, 나이 드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다리가 불편하신 분도, 어린아이도 구별이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장벽에 의해 분리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허가증이나 신분증이 필요하고, 일별, 계절별, 혹은 주 단위로 바뀌는 지정된 출입구와 검문소를 통해서만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검문소는 이스라엘 방위군(IDF)이나 국경 경찰뿐만 아니라 민간 보안회사 인력에 의해서도 운영된다. 팔레스타인의 삶을 가로막고 파괴하는 것은 분리장벽만이 아니다. 불법 정착촌과 그것을 잇는 관통도로, 인력이 계속 상주하지는 않는 부분 검문소, 도로 장애물, 참호, 흙더미들로 인해 차단 통제되고 있다. 예수의 발길조차 가로 막고 있다는 분리장벽과 다양한 형태의 정착촌 그리고 관통도로에 의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웃과 땅을 잃어가고 있다.
예수가 분리장벽에 막혀 성탄절에 베들레헴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는 출입 허가가 안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팔레스타인 응급환자들의 현실 앞에서는 절망이 된다. 이처럼 분리장벽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지나며 주택들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그들의 공동체와 공공 서비스 그리고 경작지 등에서 분리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분리장벽을 설치하기 위한 토지는 이스라엘에 의해 강제로 몰수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이고, 그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늘어나는 검문소들과 지속되는 토지몰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제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장벽을 남아프라카공화국의 인종차별에 빗대 ‘인종차별장벽’이라고 부른다.
팔레스타인 난민캠프
매일 아침마다 이스라엘 군인들 앞에 일렬로 서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이면서도 사방이 분리장벽과 불법정착촌, 군사기지와 관통도로로 둘러 쌓여있는 곳, 그리고 일상적으로 가옥파괴와 퇴거가 이뤄지는 곳. 그들의 표현대로 숨 막히는 공간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이 현재 2만여 명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의 유일한 난민캠프, Shu'fat Refugee Camp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이야기다. 난민캠프 정류소에서 출발한 버스가 검문소 앞에 도착하기까지는 채 1분도 안 걸리는 고작 10여M의 거리. 검문소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말없이 버스에서 내려 순서대로 버스 옆으로 줄을 선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먼저 차를 검사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ID나 출입 허가증을 이스라엘 군인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내린 순서대로 차에 다시 타면 차는 말없이 출발한다.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부에 세금을 내지만 이스라엘은 이들의 치안과 안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곳은 하늘 아래 거대한 감옥이라고 불리는 가자(Gaza)지구와 함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옥조이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불린다.
이들은 원래 지금의 Old City 내 유대인 구역에서 살았던 사람들로 1948년 이후 그곳에서 쫓겨나 Old City 내에 난민촌을 만들어 살았었다. 그러나 당시 난민촌을 관리하던 UN에 의해 1965년도부터 지금의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분리장벽과 맞닿아 있는 Shu'fat 지역으로 강제로 쫓겨났다. Shu'fat와 마찬가지로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를 수립한 결과는 대략 400개에서 530개의 팔레스타인 마을들이 파괴되어 이스라엘 영토가 되었고, 현재는 약 460만 명의 난민들이 웨스트뱅크, 가자, 시리아, 그리고 레바논의 난민캠프에 거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은 총 7백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서안지역의 난민캠프는 이스라엘에 의해 땅을 빼앗기거나 전쟁으로 잠깐 도피한 사람들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학교를 가기 위해 모여드는 아이들 중 몇몇이 다가와 사진 찍는 것을 말린다. 분리장벽과 검문소를 찍다가 이스라엘 군인에게 총 맞는다고 몸짓 언어로 말을 전한다. 그 몸짓이 너무나 서글퍼진다. 이들에게 하나님이란 어떤 존재일까?, 매일같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이스라엘 군인이 아닌 하나님 앞에 증명하는 평화의 삶이 그들과 함께하기를 기도해본다.
예루살렘의 유일한 난민캠프인 Shu'fat Refugee Camp를 둘러싸고 있는 체크포인트와 분리장벽. 이 길을 통과하기 위해 모여드는 팔레스타인을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EAPPI 자원봉사자 핀란드 변호사(左, 서 있는 남자)와 미국 목회자(여, 右).베들레헴 난민캠프(Dehesha refugee camp) 입구에 붙어 있는 희생자들의 빛바랜 사진과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및 보상을 규정한 ‘유엔결의 194’가 영어와 아랍어로 벽에 설치되어 있다. 난민캠프 골목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파괴되는 주거 가옥
"이스라엘 군인들이 집을 무슨 이유로 파괴했나요?", "모르겠어요. 신만이 아시겠죠. 왜 내 집이 파괴됐는지. 50년 전에도 집을 잃고 쫓겨 나왔는데. 왜 우리 집을 부쉈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아이 다섯과 함께 사는 집을 파괴당한 할머니의 독백 아닌 독백이다. 이스라엘 군인 30명과 불도저 한대가 마을의 집 한 채를 부수고 갔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한 한 마을. 이 마을을 둘러싸고 정착촌 4개가 들어서 있었고, 마을 앞으로 정착촌을 연결하는 도로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마도 정착촌을 확대하고 정착촌을 잇는 도로를 건설하면서 그 사이에 있는 마을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이 집에서 정착촌 방향으로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이미 3개월 전에 파괴된 가옥의 잔재만이 남아 있었다.
이 마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안내를 해줬던 택시 운전사는 이런 작은 파괴는 비일비재하며 한 채, 한 채 힘없이 무너져 갈 것이고, 결국 이 마을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나마 아이들이 무사한 것을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곳을 방문하기 며칠 전 찾아갔던 마을에서는 파괴되는 가옥에서 잠자던 어머니와 아이들 둘이 떨어지는 벽돌에 다쳐 입원하기도 했다. 이 집은 금요일에 철거 명령이 떨어지고 이틀만인 일요일 아침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집 옆으로 분리장벽이 들어서면서 올리브 농장이 다 파괴되었던 곳이고, 행정구역 상 예루살렘이지만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허가는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가옥파괴는 이처럼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멀쩡한 자기 집을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부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다. 1년에 동예루살렘 지역에 필요한 신규 가구 수는 1,500여 채에 달하는데 이스라엘에 의해 허가가 나는 것은 400채 규모라고 한다. 필요한 가옥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허가 받은 주택과 연결해 방을 하나 더 만들어 부족한 주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것을 불법 건축물로 파괴 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하면 그 가옥을 직접 파괴한다. 그리고 엄청난 액수의 가옥파괴 비용을 집 주인에게 청구한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부족한 집 때문에 지었던 집을 다시 자기 손으로 허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라지는 베두인(Beduoin) 학교와 마을
최근 예루살렘 인근 베두인 마을 중 큰 학교에 해당하는 한 곳이 파괴 명령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갔다. 이 학교는 인근 베두인 4개 마을에서 6살에서 14살에 해당하는 아이들 170여 명이 다니는 학교다. 인근 베두인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뛰어놀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학교를 파괴하는 명분은 도로를 넓힌다는 것이다. 이 학교가 없어지면 아이들은 여리고나 예루살렘으로 학교를 다녀야 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아 대부분 20여 km 떨어진 여리고로 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도로를 가리킨다.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인도도 없는 도로를 2~3시간 걸어 다닐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아이들이 죽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주민들은 이스라엘이 학교를 부수는 이유를 다른데서 찾고 있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베두인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싶어 하는 우선지역(E1)이란다. 학교가 인근 베두인 마을들이 모이는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건너편 정착촌 때문에 그렇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여준 것은 건너편 산 위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위해 만들어진 빨간색 하수구 밸브였다. 그 밸브를 통해 가끔 가스를 배출하는데, 그때의 그 지독한 냄새는 인근 1km에 퍼진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바로 학교 옆에 설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착민들이 떼로 몰려 내려와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협박을 하거나 방목하고 있는 당나귀들을 아주 헐값에 잡아간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 학교는 2009년, 이탈리아 NGO들의 도움과 해외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지어졌고 EU의 도움으로 그동안 학교를 운영해 왔다고 한다. Bedouin은 아랍인들 가운데 아라비아 반도 및 중동 지역에서 씨족 사회를 형성하며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최근 이스라엘은 베두인을 특정 지역으로 이주시키고자 하고 있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심각한 갈등요인이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청소년들과 교육
예루살렘 Old City에 있는 14세 이상 18세까지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무슬림 학교를 방문했다. 선생님들이 가장 걱정하는 일은 아침 등교 시간에 학생들이 안전하게 오느냐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등교 중에 이스라엘 군인들과 마찰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로 인해 지난해에도 죽은 학생이 있었다. 또 하나의 걱정은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이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인의 편의점이나 주유소 등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들과의 마찰 후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학생들의 경우는 직업을 구할 수도 없고, 예루살렘 내 다른 학교로의 전학도 안 된다. 그래서 이런 학생들은 약과 술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학교도 재정이 부족해 이들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생님은 학교 안에서조차도 이스라엘 군인들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무기력을 호소한다. "학교는 전쟁 중에도 안전해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들을 잡으려고 학교에 들어오는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체포할 때 새벽 2시에서 5시 사이, 부모가 보는 앞에서 잡아가는 것과 같다. 선생님이나 부모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지고, 아이는 믿고 의지하던 선생님과 부모님이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으며 그들에 대한 믿음을 버리게 된다. 이 경험은 그들 모두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로 남는다.
선생님들은 강조한다. "점령지 어린이들도 그들 나라의 역사와 유산, 문화, 그리고 언어를 자유롭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팔레스타인의 민족성과 정체성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 우리들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지만, 시민이 아니라 거주자일 뿐이다.“
예루살렘 구도시 내 학교 등교길에서
이스라엘 시민의 딜레마, 안보(security)와 민주주의(Democracy)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까지 안보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결정해야만 했다.” 나이 지긋한 한 이스라엘 여성의 이야기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아왔다고 한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테러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도모하기 위해 일정부분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다. 평범했던 한 이스라엘 여성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일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첫 번째 계기는 팔레스타인 2,400여 명이 죽었던 2차 인티파다(Intifada) 당시, 맨 주먹으로 이스라엘 군인의 총칼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어머니들에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같은 어머니로서 ‘그들이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는 이유가 무엇인가?’ 알고 싶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아이를 키우면서 갖는 경험이다. 자신의 자녀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원했지만, 군인이 되어 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리고 항상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살아가는 환경은 사람을 너무나 황폐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2차 인티파다 이후 팔레스타인 어머니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검문소에서 인권 감시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를 통한 배움은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안전과 민주주의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어머니로서 생명을 돌보며 얻었던 평화의 지혜를 강조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같이하는 이스라엘 여성 250여 명이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조직으로 성장해 자신들의 기록과 활동을 UN 관련기구에 알리고 있다고 한다. 생명을 키운 존재로서 어머니가 갖는 놀라운 변화라고 스스로 고백하며, 검문소로 인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거나 전자화된 보안 프로그램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례들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과 한국 시민사회는 강요된 국가 안보이데올로기로 인해 민주주의와 인권이 제약되고 이로 인한 정신적 지체 현상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생명을 꽃피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한국과 이스라엘 시민사회의 만남이 요청된다.
2009년부터 이스라엘 청년들에 의해 시작된 Sheikh Jarrah 금요 시위. 매주 금요일마다 이스라엘과 외국 여행객들이 참여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반대하는 시위가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1시간동안 개최되고 있다. Sheikh Jarrah 금요 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 할아버지.
평화를 위해 일하는 팔레스타인 기독인들
팔레스타인 내 13개 교단과 YMCA, YWCA 등 관련기관이 모여 만든 카이로스팔레스타인그룹(Kairos Palestine Group)이 가장 대표적인 단체이다. 이들은 2009년 카이로스팔레스타인선언을 발표하고, ‘점령은 하나님에 대한 죄이며, 세계 교회가 팔레스타인에 직접 와서 볼 것을 제안’하였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해 반대하는 비폭력평화운동으로 BDS 캠페인(Boycott, Divestment, Section, BDS위원회), 이스라엘로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지키기 위한 올리브트리캠페인(이스라엘 군인들과 정착민들이 올리브나무를 불사르거나 뽑아내고 총으로 위협하는 일들이 발생, 농사를 못짓게 해 결국 땅을 몰수한다)과 국제청년 평화리더십 육성(JAI, Joint Advocacy Initiative, YMCA-YWCA 공동프로그램), 어린이 수감자 지원과 인권보호 활동(DCI, Defence for Children International), 매주 목요일의 평화기도모임(Sabeel), WCC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지원활동(EAPPI), 난민 현황 조사와 지원(Refuge Center), 신학훈련과 게스트하우스(International Center of Bethlehem) 그리고 대안성지순례(ATG, Alternative Tourism Group) 단체 등을 협력하여 조직하고 국제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한국 교계 내에서도 팔레스타인 기독인들의 BDS운동과 대안성지순례, 올리브트리캠페인 등과의 협력을 도모하고 청년리더십훈련, 신학교류를 위한 한-팔 기독인협의회 구성이 조심스럽게 타진되고 있다.
EAPPI 사무실 앞에서팔레스타인YMCA Andre Andre Batarseh와팔레스타인 YWCA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시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발걸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은 한국 시민사회의 평화담론을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연대와 협력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가 평화의 종교로 변화하기 위한 신학적 노력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이슈는 한반도 평화와 한국 교회의 문제가 거의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국제정치의 패권질서 아래에서 갖는 70여 년의 수난의 역사적 경험과 현실, 그리고 그로 인해 배태된 많은 유사한 문제들-난민, 통합(통일), 땅, 국가 형식과 체제, 화해와 치유, 제국의 종교 등. 이것은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주제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치열히 답을 구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더구나 ‘패권과 제국의 정치’, ‘이에 봉사하며 선두에 서 있는 종교와 신학’, 그리고 ‘평화’, 이 세 가지 접점의 핵심에는 한국 기독교가 있다. 한국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위치이자 한국 개신교가 한국 시민사회와 세계 기독교에 평화로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한국 기독교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만나야하는 이유이다.
20여 개국 청년들과 함께 한 분리장벽 아래에서의 평화의 대화는 예수의 땅, 팔레스타인이 평화의 땅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수난의 땅 팔레스타인을 통해 평화가 왜 필요하고, 누가 무엇을 위해 종교의 이름으로 평화를 헤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는 철책선과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은 이 시대 제국(帝國)의 反평화의 상징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과 한반도는 평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평화의 교사이자, 평화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생명의 수원지가 되기도 한다. 나는 팔레스타인에서 마치 팍스로마나(Pax Romana) 아래에서 산상수훈을 통해 선포됐던 평화의 메시지가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분리장벽을 뚫고 한국의 청년들과 교회들을 평화의 일꾼으로 다시 부르고 있는 환상을 본다. 교회개혁 500년을 맞아 루터와 독일교회로 향하는 한국교회의 시선이 예수와 팔레스타인으로 돌려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 사진 몇장은 지난 10월 올리브트리캠페인에 참여했을 당시의 것을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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