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세계평화대회 국제심포지엄 발표 3.
2018. 10. 29. 인천하버파크호텔
화해의 정치학: 페미니즘의 육체 해석학을 통하여
상처받은 육체를 다시 새기기
사로지 네이더(SAROJINI NADAR)
남아프리카 웨스턴 케이프 대학의 데스몬드 투투 종교와 사회정의 리서치 센터장
* 급한 일정으로 인해 일부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문 자료를 본 텍스트로 참고해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보고서를 발간하며 수정보완하여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I. 머리말
이 논문에서 나는 화해의 사회 정치적 상황과 텍스트적 개념 사이의 연결에 대하여 숙고할 것이다. 나는 토도로프(Todorov)의 ‘이야기 평형’ 이론을 이용하여 사회정치적 행동으로서의 화해의 담론 층위를 개념화할 것이다. 성서와 같은 거룩한 텍스트에 주어지는 영향력과 권위를 고려하면 이야기 층위는 특별히 중요하다. 나는 성서의 이야기를 그리 오래되지 않은 다른 이야기와 비교하여 화해를 향한 ‘질주’와 인공적인 ‘평화’가 그 여파로 어떻게 상처받은 육체를 남기는지 보이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평화’와 ‘화해’에 대하여 생각할 때, 단순한 평형의 필요에 따라, 또는 ’저울의 균형을 잡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추상적 이상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더욱 육체적이고 페미니즘적인 해석학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안한다.
II. 이야기 1: 에스더 2장 1절에서 18절
1 이러한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아하수에로 왕은, 분노가 가라앉자 와스디 왕후가 생각나고 왕후가 저지른 일과 그리고 그것 때문에 자기가 조서까지 내린 일이 마음에 걸렸다.
2 왕을 받드는 젊은이들이 이것을 알고 왕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을 모실 아리땁고 젊은 처녀들을 찾아보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3 임금님께서 다스리시는 각 지방에 관리를 임명하시고, 아리땁고 젊은 처녀들을 뽑아서, 도성 수산으로 데려오게 하시고, 후궁에 불러다가, 궁녀를 돌보는 내시 헤개에게 맡기시고, 그들이 몸을 가꿀 화장품을 내리십시오.
4 그리 하신 뒤에, 임금님 마음에 드는 처녀를 와스디 대신에 왕후로 삼으심이 좋을 듯합니다." 왕은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하였다.
5 그 때에 도성 수산에는 모르드개라고 하는 유다 남자가 있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아버지는 야일이고, 할아버지는 시므이이고, 증조부는 기스이다.
6 그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그의 백성을 포로로 끌고 왔을 때에, 함께 잡혀 온 사람이다.
7 모르드개에게는 하닷사라고 하는 사촌 누이동생이 있었다. 이름을 에스더라고도 하는데,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므로, 모르드개가 데려다가 길렀다. 에스더는 몸매도 아름답고 얼굴도 예뻤다. 에스더가 부모를 여의었을 때에, 모르드개가 그를 딸로 삼았다.
8 왕이 내린 명령과 조서가 공포되니, 관리들은 처녀를 많이 뽑아서 도성 수산으로 보내고, 헤개가 그들을 맡아 돌보았다. 에스더도 뽑혀서, 왕궁으로 들어가 궁녀를 맡아 보는 헤개에게로 갔다.
9 헤개는 에스더를 좋게 보고, 남다른 대우를 하며, 곧바로 에스더에게 화장품과 특별한 음식을 주었다. 또 궁궐에서 시녀 일곱 명을 골라, 에스더의 시중을 들게 하고, 에스더를 시녀들과 함께 후궁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 옮겨서, 그 곳에서 지내게 하였다.
10 에스더는 자기의 민족과 혈통을 밝히지 않았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그런 것은 밝히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기 때문이다.
11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잘 지내는지, 또 에스더가 어떻게 될지를 알려고, 날마다 후궁 근처를 왔다갔다 하였다.
12 처녀들은, 아하수에로 왕 앞에 차례대로 나아갈 때까지, 정해진 미용법에 따라서, 열두 달 동안 몸을 가꾸었다. 처음 여섯 달 동안은 몰약 기름으로, 다음 여섯 달 동안은 향유와 여러 가지 여성용 화장품으로 몸을 가꾸었다.
13 처녀가 왕 앞에 나아갈 때에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주어서, 후궁에서 대궐로 가지고 가게 하였다.
14 저녁에 대궐로 들어간 처녀가, 이튿날 아침에 나오면, 후궁들을 맡아 보는 왕의 내시 사아스가스가 별궁으로 데리고 갔다. 왕이 그를 좋아하여 특별히 지명하여 부르지 않으면, 다시는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었다.
15 드디어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로 삼은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갈 차례가 되었다. 에스더는 궁녀를 돌보는 왕의 내시 헤개가 하라는 대로만 단장을 하였을 뿐이고, 다른 꾸미개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에스더는, 누가 보아도 아리따웠다.
16 그가 아하수에로 왕의 침전으로 불려 들어간 것은, 아하수에로가 다스린 지 칠 년째 되는 해 열째 달 곧 데벳월이었다.
17 왕은 에스더를 다른 궁녀들보다도 더 사랑하였다. 에스더는 모든 처녀들을 제치고, 왕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드디어 왕은 에스더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았다.
18 왕은 에스더를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대신들과 신하들을 다 초대하였으며, 전국 각 지방에 세금을 면제하여 주고, 왕의 이름으로 여러 가지 상을 푸짐하게 내렸다. (표준새번역)
Ⅲ. 테러의 텍스트
이전에 쓴 논문에서 나는 페미니즘 문학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에스더 2장 1절에서 18절의 텍스트는 ‘테러의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본문은 -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 미녀대회 이야기인 것 같지만, 제14절 (’저녁에 대궐로 들어간 처녀가, 이튿날 아침에 나오면, 후궁들을 맡아 보는 왕의 내시 사아스가스가 별궁으로 데리고 갔다. 왕이 그를 좋아하여 특별히 지명하여 부르지 않으면, 다시는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었다.’)과 같이 할렘에서 벌어지는 활동은 미녀 대회 이상이며, 사실상 성적 학대라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다는 점을 보였다. 여자들은 왕과 밤을 보낼 뿐 아니라, 그들의 지위가 처녀에서 후궁으로 바뀌었으며, 왕이 ‘기뻐하여’ 자기 이름이 불리면 왕과 지내는 밤이 반복되었다. 이 텍스트를 시간과 플롯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 보면, 독자는 내적 논리를 따라 가서 평형과 화해에 대한 이해를 구하게 되며, 따라서 독자는 이러한 학대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입증하였다.
1. 평형, 2. 평형의 파괴, 3. 파괴의 인식, 4. 손해를 복구하려는 시도, 5. 신평형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토도로프의 평형 이론은 독자가 이야기의 평형, 즉 이미 발생한 텍스트적 파탄의 화해를 향하여 나아가는 길을 보여 준다.
여기서 발생한 텍스트적 파탄은 제1장에서 발생한 왕비의 불순종이다. 와스디 왕비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왕과 술 취한 친구들에게 보이게 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이로써 텍스트의 평형을 깨뜨린다. 이야기의 평형은 복구되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왕이 새로운 왕비를 구하는 것이다. 제2장은 이렇게 텍스트적 화해로 끝난다. 에스더를 왕비로 지명함으로써 파탄에 대한 복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 평형은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이야기 평형, 즉 페르시아인 하만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은 유태인들의 구원의 전주이다. 유태인을 구하기 위해서는 에스더는 왕비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만 이야기 화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텍스트 화해의 논리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상처받은 여성의 육체는 더 큰 화해의 제단에서 희생된다. 이러한 화해는 가부장적이며 (왕에게는 새 왕비가 필요하다), 동시에 민족적이다 (유태인의 구원). 히긴스와 실버는 이처럼 이야기 평형으로 ‘질주’하는 것의 위험을 간략하게 보여 준다. ’특정 텍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서로 대비하는 분석은 몇 가지 심오하게 불편한 패턴을 보여 준다. 이 가운데 적지 않은 것이 강박적인 덧씌우기와 강박적인 여성(그리고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성적 폭력의 지우기이다 … 이러한 지우기에도 불구하고 (또는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강간과 성적 폭력이 텍스트의 묘사 전반에 걸쳐 이렇게 각인되고 합리화되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준이 된 것이다.’4
독자들이 화해와 이야기 평형이라는 매력적인 목표를 향해 끌려가는 동안, 젊은 처녀의 성적 학대는 텍스트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이는 거의 히긴스와 실버가 주장하듯이 성적 학대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Ⅳ. 이야기 2: 현대 남아프리카의 ‘크웨지’ 이야기
2006년은 남아프리카 헌법의 10주년이며, 민주주의 시작의 12주년이고, 진리와 화해위원회의 10주년이다. 이 탈아파르트헤이트, 탈식민시대 (여기에서 나는 이론적 구성으로서가 아니라 연대기 작가로서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다), 화해의 맥락에서 제이콥 주마(당시 64세이며 2018년까지 남아프리카의 대통령)가 추방되었던 당시, 동지의 31세 된 딸 ’크웨지’의 강간 혐의를 이해해야 한다.5
이야기는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구성’되는데, 크웨지 이야기는 미디어 보도, 법원 기록과 이후 책에 나오는 분석으로부터 구성된다.6 2005년 11월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그녀의 생생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제이콥 주마는 2006년 5월 8일 무죄 석방되었고, 법원은 성적 관계는 동의에 의한 것이라고 판결하였다.
크웨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죄 판결을 다투자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여 크웨지의 육체는 정치적 이익에 의해 지워지고 덧씌워졌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레이먼드 서트너는 재판에 대하여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설명한다. ‘강간 그 자체는, 또 강간이 있었는지 여부는 정치적 맥락에서 평가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이 강간 재판은 - 그 모든 복잡성 속에서 - 이러한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를 둘러싼 이러한 사건들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이해 또는 제안일 것이다. 즉, 주마는 타보 음베키 대통령이 꾸민 음모의 희생이라는 것이다.’7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크웨지의 이야기를 탈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에 수립된 ‘탈식민 평형’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종적 화해 또는 인종적 재활이라는 맥락, 즉 흑인 남성은 폭력적 담화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는 주장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탈식민 평형은 ’인민의 사람’에 대한 부패 혐의로 의하여 파괴되고, 성적 평형은 강간 재판으로 파괴된다. 공적 영역에서의 논쟁은 크웨지의 상처받은 육체가 음모이론에 의해 ‘구성’되고 ‘창조’되는 것과 관련해서만 그녀의 상처받은 육체에 관한 것이고, 이렇게 하여 수립된 탈식민 평형은 파괴되는 것이다.
토도로프의 이야기 평형 이론의 용어를 쓰자면, 4단계 즉 ’피해를 복구하려는 시도’는 법원이 제이콥 주마를 강간 혐의에서 무죄 방면하였을 때 달성된다. 그 다음 이야기는 5단계, 즉 다시 수정된 이야기 평형으로 진행한다. 이제 남아프리카가 그렇게 절실하게 달성하려고 하는 탈식민 유토피아에서 모두가 행복해진다.
페미니즘 육체적 해석학을 통하여 텍스트 읽기
우리가 페미니즘의 육체적 해석학의 렌즈로 에스더의 이야기와 크웨지의 이야기에서 토도로프의 이야기 이론의 4단계와 5단계 ‘사이의 공간’을 읽는다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치화되고 이야기를 지우는 것에 반대하는 살과 뼈의 육체의 재각인이 일어난다고 나는 말하겠다. 페미니즘의 육체적 해석학을 통하여 텍스트를 읽으면 우리는 잠시 멈춰 서고, 성서의 텍스트와 사회정치적 위치로 말미암아 독자들이 ’그냥 짧게 지나치는’ 지점의 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히긴스와 실버는 독자들에게 페미니즘적인 ‘독서’ 방식을 채택하라고 주장한다. ‘강간과 그 문화적 각인을 페미니즘적인 ‘독서’ 방식으로 읽게 되면 불길한 문화의 신화라고 할 만한 것들의 여러 방식으로의 구현, 위치 바꿈 및 변신을 찾아내고 그 신화를 벗기도록 도움을 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페미니즘적인 비판이 어떻게 법정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여전히 여성에게 상처를 주는 진술에 도전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8
페미니즘적 독서 방식은 독자에게 이야기의 맨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인종적, 정치적 평형으로 질주하기 전에 ‘인지적 폭력’ (푸코/스피바크)과 성적인 물리적 폭력을 고려하라고 도전한다. 성서의 이야기와 현대의 이야기는 모두 ‘화해를 위한 조급함’ (인종적, 종족적 및 기타) 속에서 여성의 상처 받은 육체는 자주 지워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육체의 페미니즘적 해석학은 우리에게 상처받은 육체를 재각인하고, 그리하여 화해가 포괄적이고 편의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한다. 오더 로데(Audre Lorde)는 이렇게 말하였다.
흑인 여성 문학은 인종주의적 가부장뿐 아니라 흑인 남성에 의해서도 자행되는 반복되는 폭행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공유된 전투의 필요성과 역사는 흑인 여성인 우리가 특별히 반성차별은 동시에 반흑인이라는 그릇된 주장에 취약하도록 만들었다. 반대로 힘없는 자의 방책으로서 여성혐오는 흑인 공동체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자체에서 힘을 앗아가고 있다. 보고되고 보고되지 않은 강간은 증가하고 있는데, 강간은 공격적 성정체성이 아니라 성적 대상화된 공격성이다. 흑인 남성 작가 칼라무 야 살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남성의 지배가 존재하는 한, 강간은 지속될 것이다. 저항하는 여성과 성적 대상화와 싸울 자신의 의무에 대하여 의식화된 남성만이 함께 강간을 멈출 수 있다.”
화해를 위한 상처받은 여성의 페미니즘적 신학은 다음의 네 가지 생각과 고려할 점을 제안한다.
1. 여성의 육체는 목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표 그 자체이다.
2. 여성의 육체는 ’필요악’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육체와 마음이라고 하는 이원적 이해를 극복하는 것은 중요하다.
3. 여성의 ‘상처받은 육체’는 그리스도의 ’상처받은 육체’와 대조하여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상처 역시도 전통적인 기독교신학에서 ’간과’되어 왔다. 왜냐하면 그의 상처는 구속의 효과와 연관되었고, 화해로 이어지는 시위와 연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간 멕키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었다고 하는 것은 절반의 신학이다. 여기서 잊힌 것은 그는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회에 위험분자였기 때문에 처형되었다는 점이다.’10
4. 화해의 신학을 추구할 때 담화 속에서 육체를 재각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샤론 봉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신학은 육화된 신학이다. 육화된 신학이야말로 건전한 신학이다.’
1. Th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Anglicized edition). 1989. 1995, 저작권자는 미국 그리스도 교회 전국 위원회의 기독교 교육 분과.
2. 사로지니 네이더, ‘공포의 텍스트 - 성서, 교회와 사회의 강간의 음모: 에스더서 2장 1절에서 18절,’ 이사벨 아포워 피리 & 사로지니 네이더 (편), 아프리카의 여성, 종교와 보건: 머시 암바 오두요예를 기념하는 에세이집, 뉴욕, 2006, 77–95 쪽.
3. 필리스 P. 트리블, 공포의 텍스트: 문학적 페미니즘의 성서 이야기 읽기, 필라델피아, 1984.
4. 린 히긴스 & 브렌다 실버, 강간과 대표, 뉴욕, 1991, 2 쪽.
5. 실명은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그녀를 법원에서 지지하였던 아홉 가운데 하나(One in Nine)라는 여성 그룹은 그녀에게 ‘크웨지’ (별)라는 이름을 붙였다.
6. 가장 통찰력 있는 분석은 믐마칠로 모체이, 캉가와 캉가루 법원: 제이콥 주마 강간 사건에 대한 고찰, 요하네스부르그 휴턴, 2007 참고.
7. 레이먼드 서트너, ‘제이콥 주마 강간 재판: 권력과 아프리카 국립 의회 (ANC)의 남성성,’ NORA: 노르웨이 페미니즘과 성 연구, 17권 3 (2009) 222-36.
8. 린 히긴스 & 브렌다 실버, 강간과 대표, 상동, 2쪽.
9. 게이야트리 스피바크, ‘그 중위는 말할 수 있는가?’ G. 넬슨 & L 그로스버그 (편), 맑시즘과 문화의 해석, 런던, 1988, 295쪽.
10. 메간 맥키나, 당신의 마가: 십자가의 그늘에서 마가복음 읽기, 뉴욕, 2006.
11. 샤론 A. 봉, ‘고통받는 그리스도와 아시아인의 육체,’ 궉 푸이란 (편), 희망의 풍요: 제삼세계와 토착 여성 신학, 뉴욕, 2010, 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