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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성지순례, 대안, 평화여행

매일 아침마다 군인들 앞에 일렬로 서서 자신이 누군인지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 Shu'fat 난민캠프

by yunheePathos 2017. 4. 6.

매일 아침마다 군인들 앞에 일렬로 서서 자신이 누군인지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류소에서 출발한 버스가 검문소 앞에 도착하기까지는 1분도 안걸리는 고작 10M의 거리. 체크포인트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말없이 주섬주섬 내립니다. 버스에서 내린 그들은 내린 순서대로 버스 옆으로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 두 명이 차를 타고 차내를 검사하며 외국인들의 여권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차량 트렁크를 모두 열어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명 한명 차량 검문소 군인들 앞으로 가 ID나 출입허가증을 보여주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며 판결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시 내린 순서대로 차에 타고 앉았던 자리에 가 앉습니다. 그리고 차는 말없이 출발합니다.


저도 검문을 받아야 하나보다 생각하고 이들과 내릴려고 했습니다. 운전 기사가 여권을 갖고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외국인은 내릴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이 때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차 창문 하나로 바뀌는 세상이랄까요. 창문너머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가슴에 차오르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밖으로 보이는 그들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차 창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이면서도 사방이 분리장벽과 이스라엘 불법정착촌, 그리고 군사기지와 관통도로로 둘러쌓여 그들의 표현대로 숨 막히는 공간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Shu'fat Refugee Camp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Shu'fat 난민캠프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의 전략을 잘 보여준다고 합니다. 분리장벽, 정착촌, 군사기지, 관통도로로 온 사방이 막혀있고, 세금을 이스라엘 정부에 내지만 이스라엘은 이들의 치안과 안전에 대해서는 무신경이며 일상적으로 가옥파괴와 퇴거가 이뤄지는 곳. 이곳은 하늘 아래 감옥이라는 가자지구와 함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옥조이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Shu'fat 난민캠프는 예루살렘의 유일한 난민캠프입니다. 이들은 원래 지금의 Old City 유대인 구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1948년 이후 그곳에서 쫒겨나 Old City 내에 난민촌을 만들어 살았고 살아갈 집과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Old City에서의 생활터전을 원했으며 Holy Place의 접근권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난민촌을 관리하던 UN은 유대인 구역이나 Old City 내에 이들의 주거를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고, 난민들은 1965년도 부터 지금의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분리장벽과 맞닿아 있는 Shu'fat 지역으로 강제로 쫒겨났다고 합니다. Shu'fat 난민캠프의 사람들이 2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일제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그들의 삶 속에 묻어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그들이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든 그들 가운데 함께하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지도 궁금하기만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학교를 가기 위해 모여드는 아이들은 어디서나 천진난만하고 천사같습니다. 철조망 담벼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다가와 사진찍는 것을 말립니다. 분리장벽과 체크포인트를 찍다가 잘못하면 이스라엘 군인에게 총맞는다고 몸짓 언어를 전합니다. 그 몸짓이 너무나 서글픕니다. 그런 학생들 틈으로 학교를 가지 않는 청소년들이 보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이란 무엇일까요?


고난 가운데에서도 평화의 씨앗과 소망의 빛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슴에 지금보다 더 커지기만을 기도해봅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약자의 평화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수난의 역사에서 한 줄기 평화의 빛을 발견했던 한국 기독교가 이들과 만나 다시 평화의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다른 것임을 증거하는 일일 것이며, 제국의 종교로 신학화된 한국교회가 거듭나는 방법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약자의 평화가 하나님의 평화임을 기도하며 교회개혁 500년은 독일이 아닌 팔레스타인과 한반도의 만남에서 시작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교회개혁 의 의미는 루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필요한 현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하나님 앞에 증명하는 실천적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2.23)


 #팔레스타인 #기독교 #대안선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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