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에게 애국․민족정신을 고취시킨
근원(槿園) 강 매(姜 邁) 선생
근원(槿園) 강 매(姜 邁) 선생은 황성기독교청년회 초창기 회원으로서 1914년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제 1회 전국대회에 참석하여 전국연합회를 창설한 것을 비롯해 학생YMCA의 지도자, 동하령회의 강사, YMCA 이사 등을 역임한 바 있는 열성적인 Y맨이다. 이제 간단히 그의 약력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근원 강매 선생은 1878년 9월 27일 충남 천안군 풍세면(豊歲面) 풍서리(豊西里)의 깨끗한 선비가문에서 태어났다. 나이 25세까지는 고향에서 한문과 유학을 공부한 후 1904년 서울에 올라와서 양잠학교에 입학했다. 이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양반가문의 선비 자식으로서, 단순히 누에 기르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큰 수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일본 유학을 떠났다. 때마침 을사조약(1905년)이 맺어져서 나라가 온통 울음바다로 된 때에, 근원 선생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잡는다고 하면서 일본 땅을 밟게 되었다. 근원 선생은 1907년 일본대학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3년 간 법률을 공부하고 잠시 귀국했다가 1911년에 다시 일본대학 고등사범 수법과(修法科)에서 공부한 후 1912년에 졸업했다. 이때부터 그는 YMCA의 열성회원이 되었다.
따라서 근원 선생은 신민회(新民會)의 비밀회원이었다. 다시 말해서 근원 선생이 일본대학을 졸업하고 제 1차로 귀국했을 때(1910) 이회영(李會寧), 이동녕(李東寧) 등 신민회 지도자들이 만주로 망명을 갔었는데, 그때 근원 선생은 그들에게서 비밀 부탁을 받았던 것이다. 즉 그때부터 근원 선생은 국내의 비밀 공작원으로 남아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비밀 약속을 가슴깊이 간직한 채 그는 배재학당의 교사로 들어갔다. 때마침, 독립협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다가 풀려 나와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8년 만에 귀국한 신흥우(申興雨)선생이 초대 한국인 학당장이 되었는데, 그의 요청으로 배재학당 교사가 된 동시에 동지관계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 근원 선생은 배재학당과 YMCA를 왔다갔다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켰으며 1935년 배재학교 창립 50주년 기념식 때에는 근속 20주년 표창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근원 선생은 단순한 교육자는 아니었다. 그는 한글학자․에스페란트 연구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중앙일보(1920년에 창간된 중앙일보의 후신)와 시대일보(1924년 창간)의 편집국장을 역임한 언론가이며 문필가이기도 했다. 또 근원 선생은 각종 학회지, 월간잡지 등에도 수많은 글을 썼으며 YMCA일요강좌의 명강사이기도 했다. 그의 연설은 언제나 청소년들에게 깊은 감명과 애국심을 불어넣는 명연설이었다. 그의 아호 근원(槿園)이 가리키는 대로 언제나 나라꽃 무궁화정신을 강조하는 애국적인 연설이었다. 만약 그가 쓴 각종 원고와 연설내용을 모아 책으로 낸다면 방대한 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찾아낼 길이 없어 애석할 따름이다.
예수를 믿게된 동기와 시기도 확실히는 알 수 없다. 다만 1910년, 그가 일본에서 귀국했을 때, 감리교 상동교회의 전덕기(全德基) 목사의 지도를 입교하게 된 것은 확실하고, 전 목사와 같이 신민회(新民會)의 비밀동지였으므로 기독교를 통하여 나라의 독립을 지키자는데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세례를 받기는 1910년경이었다.
그 뒤 감리교정동교회의 교인으로서, 초대 장로로서 오랫동안 교회에서 봉사했다. 근원 선생은 일제말기 압력으로 북간도에 피난가서 연길농업실업학교 교장으로 약 5년 간 있다가 1941년 6월 19일 64세를 일기로 이승을 떠나시니, 북간도 동포들은 그를 사회장으로 모셨다.
남기신 저서로는 한문문법제요(漢文文法提要), 조선어문법제요(朝鮮語文法提要), 법률요강(法律要綱) 등이 있다. 그리고, 신민회 비밀동지 김진호(金鎭浩) 목사와의 공저(共著)로서 “잘 뽑은 조선말과 글의 본”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1914년 5월 18일 발행된 책인데, 그 내용에 대하여 한글학자 김윤경(金允經)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이 책의 첫째장부터 셋째장까지는 ‘소리’에 관한 것을 논술하고, 넷째장부터 열 번째장까지는 이름말․움직임말․꾸밈말․도움말․느낌말들의 일곱가지로 나누어 논술하고, 열한번째장에서는 ‘글’에 관한 것을 논술했다」라고 소개했던 것이다. 위 김윤경 선생의 서평을 통하여 우리는 이책의 성격과 내용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근원 선생은 주시경 선생과도 동지관계를 가진 애국자요 한글학자이셨다.
등걸
-1980.4.1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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