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정리한 잡스의 명언들.
▲ "디자인은 우스운 말입니다. 사람들은 디자인이 어떻게 보이느냐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디자인은 사실은 어떻게 작동하느냐의 문제입니다…무엇인가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냥 삼켜버리지 않고 꼭꼭 씹으려면 열정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1996년 2월 와이어드)
▲ "나의 만트라(주문) 중 하나는 집중과 단순함입니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더 어렵습니다. 생각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들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한번 그러한 단계에 도달하면 산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1998년 5월 비즈니스위크)
▲ "돈에 대한 내 대답은 그것이 좀 우습다는 것입니다. 모든 관심이 거기에 집중돼 있는데 돈은 내게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서 가장 통찰력 있거나 가치 있는 일이 아닙니다"(1985년 2월 플레이보이)
▲ "무덤 안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우리가 놀라운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 내게는 그것이 중요합니다"(1993년 5월 월스트리트저널)
▲ "혁신은 얼마나 많은 연구개발비(R&D)를 갖고 있느냐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애플이 맥을 개발했을 때 IBM은 최소 100배가 넘는 돈을 R&D에 쏟아붓고 있었죠. 하지만 혁신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들과 일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 거기서 얼마나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느냐에 대한 것입니다"(1998년 11월 포춘)
▲ "애플을 치료하는 것은 비용 절감이 아닙니다. 애플을 치료하는 것은 현재의 곤경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혁신하는 것입니다"(1999년 5월 애플 컨피덴셜: 애플 컴퓨터의 진짜 이야기)
▲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유일한 문제는 취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취향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품에서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1996년 트라이엄브 오브 더 너즈)
▲ "나는 항상 애플과 연결돼 있을 겁니다. 내 인생의 실과 애플의 실이 '태피스트리(Tapestry)'처럼 서로 엮여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애플에 없을 때도 몇년 있겠지만 나는 항상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1985년 2월 플레이보이)
▲ "여러분은 앞을 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를 돌아보면서만 점을 연결할 수 있죠. 그래서 여러분은 그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직감이든 운명이든, 삶이든 업보든 무엇이든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나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고, 내 인생에서 있던 모든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2005년 6월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
▲ "여러분의 일은 여러분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겁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요. 포기하지 마세요. 마음과 관련된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런 일을 발견하게 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2005년 6월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
▲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큼 무엇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의 덫을 피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발가벗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을 이유가 없죠"(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
▲ "항상 갈망하고 언제나 우직하게(Stay hugry, Stay foolish),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가십시오"(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
▲ "당신이 어떤 일을 하는데 그게 상당히 괜찮은 일이라면 거기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고 다른 놀라운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내십시요"(2006년 5월 NBC 뉴스)
출처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1006112208
잡스가 남긴 명언
◇인력
“나머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꿔놓을 기회를 갖고 싶습니까?”. 잡스가 펩시콜라 사장을 영입할 당시 한 말.
◇디자인
“디자인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낸 인간 창조물의 영혼입니다. 디자인은 어떻게 보이고 느껴지느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디자인은 어떻게 가능하냐의 문제입니다.”
◇실패&자신감
“가끔은 혁신을 추구하다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를 빨리 인정하고 다른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우리가 이룬 것만큼, 이루지 못한 것도 자랑스럽습니다.”
한편, 잡스는 생전에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최고의 명연설로 꼽히는 지난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잡스는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 만약 며칠 동안 그 답이 ‘NO’라고 나온다면,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라며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삶을 대신해 변화를 만듭니다.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바로 ‘죽음’입니다”고 말했다.
◇일
“내가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라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일을 찾으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 사랑하는 일도 찾아야 합니다”
◇혁신&품질
혁신은 연구 개발 자금 규모와는 상관없습니다. 애플이 매킨토시를 출시했을 때 IBM은 연구 개발에 애플보다 최소 100배 이상의 비용을 쏟았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혁신은 어떤 인력, 어떤 방향, 어떤 결과가 얼마나 나오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혁신은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입니다.”
“품질은 물량보다 더 중요합니다. 한 번의 홈런이 두 번의 2루타보다 낫습니다.”
출처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economy/it/499557.html
잡스의 생애
스티브 잡스의 탄생은 그다지 축복받지 못했다.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와 생모 조앤 심슨은 미국의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던 중 사랑에 빠져 그를 낳았다. 하지만 조앤의 아버지가 시리아 출신인 잔달리와의 결혼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잡스는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사는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심슨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폴과 클래라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입양을 허락했다고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밝혔다. 잔달리와 심슨은 그 뒤 결혼에 성공해 잡스의 여동생인 모나 심슨을 낳았지만 잡스를 다시 찾지는 않았다.
잡스는 학창 시절 사고뭉치로 보냈지만 양부모는 그를 따뜻하게 감싸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잡스도 양부모를 아주 사랑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양부모로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는 197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리드 대학에 입학했으나 1학기 만에 자퇴했다. 빈병을 팔아 음식거리를 마련하고 친구 집의 방바닥에서 자면서도 학교 수업은 꾸준히 청강했다. 잡스는 나중에 “수업료가 너무 비싸 부모님께 미안했다”고 자퇴 이유를 밝혔다.
그는 1974년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중학교 선배이자 나중에 애플 공동창업자가 된 스티브 워즈니액과 함께 게임회사인 ‘아타리’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돈을 조금 모은 그는 대학 친구들과 함께 훌쩍 떠난 인도 여행에서 선불교와 인도문화에 흠뻑 젖은 채 머리를 깎고 인도 전통복장을 한 채로 귀국했다. 그가 기존 방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문화적 혁신을 전자기기를 통해 구현한 것은 이때의 경험에 크게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21살이던 1976년에 워즈니액과 함께 아버지의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했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로 불리는 ‘애플’을 출시하며 단숨에 정보통신 업계의 기린아로 등장했지만 1985년 경영권 분쟁에서 져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가 1983년 “평생 설탕물만 팔거냐”며 설득해 영입한 전 펩시 부사장 존 스컬리에 의해서였다.
애플에서 쫓겨난 그는 독립해 ‘넥스트’라는 컴퓨터 회사를 만들었지만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재기의 기회는 엉뚱하게도 애니메이션에서 왔다. 그는 루커스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부문을 인수해 ‘픽사’라는 회사로 재탄생시켜 만든 로 큰 성공을 거두고, 픽사를 디즈니에 합병시키면서 거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1997년 경영 부진에 허덕이던 애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애플에 복귀한 그는 그동안 진행되던 프로젝트를 모두 다 갈아엎었다.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잡스의 대답은 단 한마디였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그리고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상상도 못한’ 제품들을 잇따라 내놓으며 전세계를 디지털 혁신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사업에서 이렇게 성공을 거듭하는 사이 그의 건강은 망가지고 있었다.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3번이나 병가를 냈고, 2009년에는 간이식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5일 새벽 사망했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4996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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