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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 이슈

기독교시오니즘 2. 성지의 주인은 누구인가?

by yunheePathos 2023. 11. 19.

성경적 질문 1.

성지의 주인은 누구인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은 그들의 후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종족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한때 가나안, 이스라엘, 유다, 블레셋, 팔레스타인 등의 이름으로 알려졌던 성지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지난 3000년 동안 대부분 군사 점령을 당했다. 외부 점령자들 중에는 아시리아인(기원전 8~7세기), 바빌로니아인(기원전 6세기), 그리스인(알렉산더 대왕과 그 후계자, 기원전 4~1세기), 로마인(기원전 1세기~서기 7세기), 오스만 제국(AD 16~20세기), 영국(1917~1948)이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 팔레스타인은 (수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에 의해 통치되어 왔던) 영국의 일부가 되었고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이라고 알려졌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다른 서방 국가들의 상당한 압력으로, 유엔은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으로부터 현대 이스라엘의 영토를 분할했다. 이 새로운 국가는 영국령 팔레스타인 영토의 54%를 차지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인구의 66%를 차지하고 토지의 90% 이상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할을 심각한 불의로 거부했다. 팔레스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국가가 건국됐다.

아래 그림은 “줄어드는 팔레스타인” 지도 시리즈로 알려져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통해 어떻게 땅을 잃었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이 나중에 전쟁과 군사 점령으로 땅을 강탈했는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 이미지는 1948년 이전의 영국령 팔레스타인을 보여준다.

두 번째 이미지는 ‘유대 국가’를 위해 토지의 54%를 분할한 UN계획이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주변의 땅(두 번째 그림에서 노란색으로 표시)은 유엔에 의해 별도의 독립체인 '유대인 분리국'으로 지정되었으며, 이 분리국은 이 땅의 아브라함 3개 종교와 그 외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히 평등하게 개방되어 있었다. 분할계획에서 유엔은 새로운 유대인 국가가 모든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통치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무시해온 법적 요건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기독교 아랍인과 무슬림 아랍인, 이스라엘 시민을 포함하여 비유대인 시민들을 차별하는 50개 이상의 법을 시행하고 있다. 세 번째 지도는 1948~1949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동안 이스라엘이 추가 점령한 땅과 전쟁이 끝났을 때 만들어진 경계를 보여준다.

이 세 번째 지도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땅(1948~1949년 전쟁 이후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남아 있던 땅)은 나중에 1967년 전쟁, 즉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다. 1967년부터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에 정착촌과 도로를 건설했다. 유대인 전용 식민지 정착지를 건설하기 위해 정당한 팔레스타인 소유자로부터 체계적으로 토지를 약탈했다. 유대인 전용 도로는 서안 지구 전체의 정착지를 연결한다.

네 번째 지도는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반투스탄"과 같은 70개의 고립된 섬으로 구성된 오늘날의 모습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들어오고 나가려면 이스라엘 군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땅이다. 이스라엘의 경제적 금수 조치로 인해 수출입이 엄격히 제한되고, 해당 지역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엄격히 제한된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은 원래 땅의 12%에 해당하는 게토에서 살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성지에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 주장에 대한 일반적인 정당화 중 하나는 성경에 대한 한 가지 해석인 "신의 토지 부여(약속의 땅)" 주장이다. 이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게 성지의 독점적인 소유권을 주셨다고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분열되어 있으며 일부 기독교인은 현 이스라엘 정부의 견해를 지지한다. 복음주의자들과 대부분의 주류 개신교, 로마 카톨릭, 동방 정교회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다른 기독교인들은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다.

□ 성경의 한 가지 해석: “신성한 땅 부여(약속의 땅)”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는 지중해에서 요르단 강까지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전용 정착촌을 건설하기 위해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소유주로부터 토지를 빼앗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의 토지 부여” 주장을 사용해 왔다.

유대 민족에게 부여되는 소위 신의 땅은 무엇인가? 그 성경적 근거는 히브리어 성경(구약성서)의 특정 구절에 대한 한 가지 해석에 있다. 특정 성서구절 — 즉, 창세기 12:1-3; 13:14~17; 15:18~21; 17:1~9; 신명기 7:1~11; 8:7~10; 11:29~32; 28:8-11 — 토지 부여 개념에 대한 주요 본문이다. 이스라엘 관리들, 유대인 정착민, 기독교시온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러한 내용과 유사한 내용을 주장한다. 그들은 이 구절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땅을 영원히 상속받을 것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전 세계의 기독교시온주의 교회와 조직은 이스라엘에 정치적, 종교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장려한다.

신의 토지 부여 해석은 이스라엘이 국제법과 유엔 분할 계획을 무시하도록 장려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땅을 주셨다는 시온주의 사상을 지지함으로써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약탈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건립을 저지하며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폭력적으로 점령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 성경의 또 다른 해석: 땅은 특정한 조건을 가지고 주어진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성서 안에 있는 두 번째 성서 이야기를 간과한다. 이 이야기는 주로 신명기와 히브리 선지자들의 글에서 발견되는 다른 성서적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 본문에는 고대 이스라엘이 성지에 남아 있으려면 토라의 요구 사항을 준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 중 하나는 ‘레위기 18:24-28’다. 만일 이스라엘이 토라를 범하면 그 땅이 “너희 전에 있던 나라들을 토함 같이 너희도 토할 것이라”(28절)고 말한다. 이 본문은 토라에 있는 법을 어기면 땅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들은 우상 숭배의 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서신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그의 저서 '선택받은 자?(Chosen?)' 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중에 성경을 읽으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땅은 무조건 주어졌지만 조건부로 유지된다.” 즉, 땅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이스라엘이 토라를 위반하면 땅을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 외국 제국에게 땅을 잃었다. 첫 번째 패배는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가 북쪽 왕국 이스라엘을 정복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바빌로니아인들이 유대인 인구의 대다수를 추방하면서(기원전 587~586년) 성전과 예루살렘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수백 년 후, 기원전 63년에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유대를 정복했다. 다음 세기에 로마군은 열심당의 반란을 진압하고, 제2성전을 파괴했으며, 서기 66~70년에는 예루살렘의 대부분을 파괴했다. AD 131~134년에 바르 코크바(Bar Kochba) 휘하의 또 다른 유대인 반란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더욱 파괴되었고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의 슬픔은 시편 137편에 담겨 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더니”(시편 137:1 NIV).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믿음이 회복되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회당이 세워졌다.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 통치자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성지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했을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백성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다.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나타났다고 믿는다. 이 새로운 해석, 즉 ‘조건부’ 성경 이야기는 사람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땅이 손실되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는 모세가 공동체에게 토라에 충실하여 그들이 머물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과 그가 너희에게 주신 규례와 율례를 반드시 지키라.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약속하신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신명기 6:17-18)

같은 주제가 여호수아서에서도 발견되는데, “하나님의 땅 부여” 이야기를 반영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란히 놓여 있다. 여호수아가 그의 경력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언약의 신실함의 중요성에 대해 도전하는 중요한 구절이 여호수아서의 결론 부분에 나온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언약을 어기 면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들에게 절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망하리로다.”(여호수아 23:16) 이것은 여호수아서의 나머지 부분과는 완전히 다른 신학을 표현하지만, 징계받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경험을 반영하기 때문에 중요한 추가 사항이다.

이 “조건부” 성경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들이 토라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때 땅은 멸망될 것이다. 아마도 가장 심오한 교훈은 땅 자체를 거짓 신으로 숭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군사적 승리로 인해 그들이 너무 자랑스러워져서 오만해지고 예외주의(특정 집단이 독점적인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를 믿기 시작해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에서는 토지가 우선순위가 아니다. 땅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스라엘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수단이 된다.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큰 계명을 존중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십시오. 이 두 계명은 모두 토라(신명기 6:4~5; 레위기 19:18)에 나와 있다. 예수님께서 나중에 언급하셨듯이, 이 계명은 동전의 양면,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누가복음 10:27-28).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 가르침을 설명하셨습니다(누가복음 10:30~37). 토라의 신실함은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할 때 민족, 인종, 종교에 관계없이 행동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 신학은 정치적 예외주의가 아니라 순종과 정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 더 깊은 영적 교훈: 땅은 사랑이 본질인 하나님께 속합니다.

이 본문에는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이 있다. ‘토지 부여 문구’와 ‘조건부 문구’ 모두 그 땅이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명시하거나 암시한다. 땅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신실하게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것이다(창 2:10). 이 땅은 사람들이 주의 깊게 양육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대출된 것이다. 창세기 12장 1~3절의 기록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과 맺은 성약의 창시자이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의 선물로 언약을 주신다. 땅의 선물은 환경을 돌보고, 공동체와 관계를 구축하고, 하나님과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신실하게 살아가는 은사와 책임에 대한 더 큰 성경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경적 관점에서 토지는 결코 그 자체로 끝이 아니며 최종 게임이 될 수도 없다. 한 민족이 땅을 정복하면 그 땅은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된다. 땅은 항상 계약 관계의 도구이며,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우는(그리고 결코 억압하지 않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교훈은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요나의 소식을 상기시켜 주셨다. 잘 알려진 요나의 이야기는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배타성과 예외성을 피하라고 명령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원수(앗수르 제국)에게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거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다. 요나는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고래나 큰 물고기에 의해 토를 하다가 결국 적의 수도인 니느웨에 뒤돌아 이르게 된다. 요나는 마지못해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한다. 그들은 결국 믿고 회개하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게 된다. 하지만 요나는 이러한 성공적인 전파 활동을 기뻐하기는커녕 낙담한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과 유대인 공동체에게만 국한시키기를 원했다. 이 책은 하나님께서 요나의 이기심과 편협한 믿음에 대해 질책하시는 것으로 끝난다. 요나의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너무 작았다. 그 결과 그는 세상,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놓쳤다. 그의 이해는 편협하고 부족적이며 배타적이었다. 변화해야 했다.

요나의 교훈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하나님은 방문객(레위기 18:20, 19:10)과 가난한 사람들(아모스 5:10~24)을 포함하여 이웃(누가복음 10:25~37)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도전일지도 모르는 적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다. 시편 87편에는 유대 민족뿐 아니라 블레셋 민족, 두로(레바논), 구스(에티오피아), 바벨론(이라크) 등 이방인들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겨진 예루살렘의 모습이 엿보인다. 적들과 화해하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쉽지 않지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시편 87편, 이사야 19장 24~25절, 아모스 9장 7절, 그리고 선지자들의 다른 본문은 예수께서 복음서에서 강조하신 이 도전을 제시한다.

이것은 낭만적이거나 진보적인 생각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에게 충실하려면 살아가야 할 성경적 진리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이러한 문제를 깨닫는 데 가장 멀리 있는 곳이 예루살렘과 성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체가 지중해에서 요르단강까지 공유되는 그날을 향해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이 일하고 있다. 그날은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 등 모든 시민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사랑할 때 하나님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예배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날이 될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여정의 예로 염두에 둔 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다.:

“믿음으로 그는 낯선 땅에서 나그네처럼 약속의 땅에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도 천막에 살았고, 같은 약속을 그와 함께 상속받은 이삭과 야곱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찬을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일을 예비하셨음이니 이는 그들로 우리와 함께 온전함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브리서 11:9–10; 39–40 NIV)

출처 https://www.christianzionism.org/faq-who-owns-holy-land

 

FAQ Who Owns Holy Land — Christian Zionism

The region called the Holy Land, once known by such names as Canaan, Israel and Judah, Philistia, and Palestine, has been under military occupation for most of the last 3,000 years. Among the outside occupiers were the Assyrians (8th and 7th centuries BC),

www.christianzionis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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