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질문 3.
예수는 시온주의자였는가?
예수에게 현대의 시온주의 특성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그에(시온주의) 가장 가까운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시오니즘은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목표를 촉진하는 정치적 관점입니다. 기독교시오니즘은 이와 동일한 정치적 견해를 공유하지만 신학적인 사상을 포함합니다. 기독교시온주의는 성경을 사용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은 현대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신실함을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관점은 유대교를 옹호하거나 존중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일부 유대인이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세속 국가인 이스라엘이 다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신성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시온주의는 이스라엘의 안전과 번영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된다는 사상입니다.
예수 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은 이웃 사람들에게 고대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촉구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신성한 의무라고 묘사했습니다. 일부는 로마인(바리새인, 헤롯당)과 협력했고, 다른 일부는 폭력을 사용했습니다(열심당). 그러나 각각의 경우 목표는 동일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운명을 돕는 것이 종교적인 의무로 간주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2:13~17(또한 마태복음 22:15~22 및 누가복음 20:20~26)에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예수께 다가와 유대인들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묻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질문입니다. 주후 6년에 갈릴리 사람 유다(요세푸스, 고대사, 18.1 참조)라는 사람이 정치적 반란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가이사 같은 이교 압제자에게 세금 내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지불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이러한 정치적 저항은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2장 13~17절(그리고 위에 인용된 구절)에서 예수님은 시험을 받고 계십니다. 대화를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유대 민족주의를 장려하려는 정치 열광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이를 위한 방안으로 조세 반란에 동의하시나요? 이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라”(막 12:17)라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꿔 말하면, 여러분, 저는 이러한 정치적 목표에 관심이 없습니다. 내 왕국은 질서가 다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고대의 잘못된 시온주의 의제를 거부하고 계십니다.
1세기의 많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정치권력 회복은 메시아의 출현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1절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시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정치적 실체로 보임)이 즉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사도행전 1:6에도 비슷한 내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부활 영광을 보고 즉시 그들의 마음은 정치적인 질문으로 사로잡힙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전의 영광으로 회복시키실 것입니까? 이 질문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령(행 1:8)과 왕국에 관해 말씀하실 때, 우리는 1세기 유대인들에게 “회복의 소망”을 준 두 가지 사상을 봅니다. 메시아는 성령으로 충만한 왕국을 세울 것이며, 이 왕국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으로 건설되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생각을 거부하셨습니다. 대신, 그의 왕국의 사명은(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1세기 유대인의 기대는 지역적인(이스라엘에 대한) 것이지만, 예수님의 기대는 전 지구적(온 땅에 대한)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기대는 부족적(이스라엘을 축복함)이지만, 예수님의 기대는 보편적(모든 사람을 축복함)입니다.
예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국가를 위한 정치적 목표를 개인의 신앙과 연결시키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셨습니다. 자신의 메시아 왕국을 선포하면서 예수께서는 그 왕국이 카이사르나, 어떤 민족 국가나 어떤 정치적 계획보다 더 깊고 심오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이 세상의 왕국과 혼동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유대 문화와 이스라엘 땅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한 민족이나 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복음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배타주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시온주의와 같은 정치신학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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