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UMENISM : THE WAY FORWARD CHALLENGES FOR YMCA MISSION
에큐메니즘 : 앞으로 나아갈 길,YMCA 미션에 대한 난제들
나이난 코쉬 Ninan Koshy
전 인도NCC 총무, 전 WCC 국제협력위원장
에큐메니칼 운동은 단지 자체 역량에 의해 진공상태에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요소가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갱신 노력이나 전진을 추구할 때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심오한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아시아 에큐메니즘 창시자 중 한 명인 D.T. Niles는 세속사의 풍조를 에큐메니즘의 한 추진력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세속사의 풍조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찾기 위해 우리에게 세대를 식별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잘 하지 못한다. 우리가 시대를 식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3가지 있다. 첫째, 성경이다. 신문 표제에 맞는 직접적인 성경 구절이 있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통찰력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교회의 정신과 역사이다. 수 세기에 걸친 교회의 경험을 포함하는 것으로 아시아 교회의 경험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의 경험을 포함한다. YMCA에게는 지난 1세기 반 동안 세계 여러 지역에서의 경험을 의미한다. 셋째, 가장 사용 가능한 사회 정치학적, 경제적 분석이다. 아시아 같은 지역에서 이것은 21세기 초기 아시아의 지정학을 의미한다.
YMCA의 선구적 역할
Hans Reudi Weber가 지적했듯이, “몇몇 서구 나라에서의 에큐메니칼운동의 역사는 SCM, YMCA, YWCA가 했던 일에 대한 언급없이 쓰여질 수도 있으나 아시아에서는 불가능하다. 아시아 에큐메니칼 역사에서 원형을 개척한 것은 바로 에큐메니칼 청년 운동이었다.” “초기 WSCF 아시아운동은 무엇보다도 대학YMCA와 대학YWCA이었다.” 라고 그는 덧붙였다. Weber는 종교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비(非)기독교적 환경 한가운데 서 교회가 많은 종파와 분파로 나누어진 채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지역에서의 YMCA와 YWCA가 해왔던 일, 그리고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에 대해 말하였다.
YMCA에 국제적운동으로, 에큐메니칼운동체로 특성을 부여한 Henri Dunant 또한 ‘에큐메니칼’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수십 년 전에 전체적인 의미를 부여한 최초의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Dunant의 에큐메니칼 비젼은 그 시대에서 100년을 앞선 것이었다.” 라고 C.P.Shedd는 썼다. Dunant는 ‘에큐메니칼’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렸다. “다양한 기독교 종파는 사랑으로 결합할 수 있고 해야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서로 교제하고 함께 일해야 한다. 이와 함께 관용과 자비를 가지고 개인적 관점과 특정한 종교적 신념을 유지하며 개인적 자유와 필요한 경우 방어할 권리를 유지한다.” 다른 종파의 지역 기독교 그룹을 “에큐메니칼”이라고 말한 것, “에큐메니칼 정신”에 대해 말한 것은 초기 시절에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사용이었다. Dunant는 에큐메니즘의 내용이 앞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경적 근거와 에큐메니칼 단체의 원칙을 명확히 한 것도 YMCA였다. 1855년 파리의 제1차 YMCA 세계회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다른 에큐메니칼 단체의 토대를 위한 모델이 된 세계연맹의 기본 원칙인 ‘파리기준’이 수용된 곳이 그 곳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하나님이자 구세주로 간주하는 사람들을 함께 모이게 해주는 파리기준의 공식화는 후에 YWCA (1898), WSCF (1895) 그리고 WCC(1948)의 토대로 사용되어졌다. 이 단체들의 공통적인 토대는 그들 모두가 하나의 같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부라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준다.
아시아 정체성 확인하기
아시아에서 초기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언급해 보자. 그들은 모두 YMCA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그들은 총론적 관점의 에큐메니즘을 지지했으며 이를 위해 힘차게 설득하였다. 그들은 아시아적 에큐메니즘에 대해 이해했다. 그들은 아시아 성(性)을 국제적으로 토론할 수 있었다.
선교사의 인도가 중요한 때가 있었다. 교회의 지도력은 내세 지향적인 경건을 종종 강조하는 온정적인 선교사와 목회자의 손에 항상 달려있었다. 이는 신앙심이 충만한 평신도의 역량을 교회 구조 내로 제한시켰다. YMCA는 이러한 헌신적인 평신도들에게 기독교적 활동과 더 넓은 공동체와 국가에 대한 봉사정신을 제공해 주었다. YMCA 지도자들은 몇몇 아시아국가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YMCA는 또한 그들에게 기독교 일체성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명시화할 수 있는 강령을 마련해 주었다. 그들은 또한 지역적 에큐메니즘의 표현과 지역 단체의 필요성에 대해 확신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1910년 에딘버러 회의는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작으로 알려졌으며 YMCA 사무총장이었던 인도의 V.S. Azariah는 에큐메니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에큐메니칼 운동을 잘 표현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합동 연구의 협조에서 그리스도 몸의 하나됨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풍요로움은 영국인, 미국인에 의해서도 아니고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인도인 자신들 만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두 함께 일하고 함께 예배하고 주와 예수의 완전한 이미지를 함께 배움으로써 완전히 실현될 수 있다”.
에딘버러 회의와 관련되어 Azariah가 기억되는 것은 에큐메니즘에 대한 정의를 한 것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에큐메니칼 역사에서 고전이 된 한 성명에서 선교사에 대한 강한 비판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선교사가 실패한 한 양상을 말하였다. 즉 그 당시 외국인과 원주민 사이의 협조문제라 부른 것이었다. 그의 연설은 선교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캠페인의 첫 총성이라고 불리어져 왔다. “당신은 가난한 자를 먹이기 위해 당신의 물건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몸을 태워지도록 주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사랑을 간청합니다. 우리에게 친구를 주십시오.” 라고 그는 말을 끝맺었다.
Azariah는 한 가지를 분명히 하였다. 그는 YMCA와 WSCF로부터 우정을 받았던 것이다. 그가 실패한 것은 선교 운동이었다. 그는 YMCA가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했고 인도에서 교회의 성장이 방해받지 않는다면 미션도 그와 같이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YMCA는 아시아 성(性)과 아시아의 정체성에 기여한 최초의 단체로 여겨진다. 지역단체의 설립 노력은 지역의 특수한 필요성과 아시아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고 이는 그 당시 드문 일이었다. 비록 아시아 YMCA의 열망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서구 지도자가 많았으나 서양으로부터 강한 저항을 받았던 것이다. 첫 지역회의인 1933년 Baguio의 극동 및 인도 지역회의에서 YMCA의 미션과 비전, 그리고 아시아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 등이 주요 관심사에 속했다. 그들은 지난 70년 동안 지역단체의 활동을 계속 형성해 왔다. 즉 아시아의 현실 속에서 YMCA의 미션을 의미한다.
지역 회의의 가장 의미 있는 활동 중의 하나는 기독교 외의 종교에 관해 취한 입장이었다. 그것은 종교에 대해 두드러지게 아시안적인 이해를 반영한다. 그것은 에큐메니칼 단체가 수 십 년 후에 취할 입장을 예상하였고 종교간 대화를 위한 토대를 준비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내적 종교적 경험과 기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도로써 우리는 다른 종교를 존중해야 하며 겸손함으로 인생의 깊은 것을 그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며 그리하여 신과의 교제를 풍요롭고 깊게 해 주어야 한다.
전통적인 선교 언어와 접근법으로부터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비기독교 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라는 언급이나 강요적이 아닌 존경과 나눔이라는 접근, 우월성이 아니라 겸손함이라는 태도 등을 말한다.
에큐메니즘 아시아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에서 많은 지도자들이 YMCA에서 형성되었고 세계의 다른 지역 지도자들보다 앞섰으며 특히 많은 아시아 국가의 독립과 중국혁명이 발생한 시기인 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에 그러했다. 세계적 규모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그들의 관심사를 회피하거나 혹은 그들의 견해를 무시했다고 느꼈을 때, 그들은 서구에서 형성된 아이디어와 계획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일관성 있게 미션과 일치를 분리하지 아니하여 에큐메니즘의 완전함을 주장하였다. 비록 종종 서구에서는 에큐메니즘을 약화시키는 시도로 해석되었지만 그들의 가시적인 지역적 표현에 대한 갈망이 여기에서 나왔던 것이다. YMCA, 교회 혹은 WSCF이었던 간에, 지역적 단체의 형성을 위한 시도는 서구의 후원자들에 의해 저지되었는데, 이들은 에큐메니즘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아시아에 대해 정의를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아시아 현실 속에서 기독교 증거
앞으로 나아갈 길을 토론할 때 Chandran Devanesan가 제기한 두 가지 질문이 관련이 있다. 그는 “아시아에서 화해에 헌신하는 YMCA”라는 주제 하에 1979년 지도자 회의에서 “아시아 현실 속의 기독교 증거”에 관해 말하였다. 아시아인의 혼란과 창조력, 절망과 희망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예수님과 살고 목격하라는 소명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우리가 어떻게 기독교단체가 되고 또한 모든 인류와 함께 연대하고 일체화할 수 있을까?
우리의 임무는 오늘날 아시아 현실을 면밀히 바라봄으로써 증인의 역할을 새롭게 해내는 것이다.
그때부터 25년 동안 아시아·태평양YMCA는 미션에 대해 많은 고찰을 하였다. 1984년 쿄토 세미나에서 다음의 말이 언급되었다. “아시아 YMCA로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헌신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당대 아시아 현실 속에서의 우리의 임무’를 위해 함께 연구하도록 요청된다.”
강문규는 미션 안의 YMCA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린다 : 우리는 교회의 교의적인 정의에서 보다는 미션 안의 교회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며 이는 개혁자의 전통에서 존재한다. YMCA의 연합의 형태에서 표명된 그러한 미션에 대한 소명에서 우리는 우리의 독특한 미션이 달성될 것으로 본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산업적, 정치적, 지적 생활 그리고 예술, 대중매체의 세계, 기타 등등에 참여할 때 지역거주 공동체에서 분리된 사회학적 계층에서 우리의 독특한 미션이 달성될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나는 YMCA가 미션 안의 그와 같은 그룹임을 믿는다.
YMCA의 미션에 대한 토론은 1987년 6차 아시아 YMCA 심화 연구의 참가자들에 의해서 계속 되었고 “YMCA의 미션은 공정하고 인도적인 사회를 계획한다.”라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려는 YMCA의 헌신적 노력과 함께 더불어 공정하고 인도주의적 사회를 구상해야 했는데 이 사회는 동등한 기회와 공평한 자원 분담의 기초 위에 세워진 사회였다. 하나님의 미션을 위한 YMCA의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향한 정언적인 미션에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었다.
13차 아시아 지도자 회의를 위한 연구록(1991년 3월 ‘부서진 공동체를 치유하며 지구 돌보기’주제)에서 데이빗 서는 YMCA가 하나님의 미션운동이며 기독교 미션이 YMCA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YMCA가 미션 단체라고 말함으로써 우리가 의미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미션을 교회와 종파단체들이 이교도 회원 수를 늘리기 위한 선교 활동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미션으로 이해한다”.
YMCA의 미션에 대한 이해에서 정의가 계속 강조되어 왔다. 정의는 복지가 아니다. 아시아 태평양Y연맹은 개발과 복지활동의 관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1976년 치앙마이(Chiang Mai)에서 개최된 ‘개발을 위한 아시아YMCA 계획세미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다. “YMCA는 세상, 공동체, 문명, 사회 그리고 정치에서 사람의 삶을 운명에 맡겨 놓았으며 더 이상 혼돈 속의 세계와 관련이 없는 복지활동으로 축소되었다”, “YMCA는 사회정의, 경제질서, 정치단체, 문화의 발전이 모두 하나님이 지구에 임재하는 비젼에서 각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10년 후 ‘정의와 개발에 관한 아시아 YMCA 포럼’은 정의의 관점에서 아시아의 현실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아시아 사람들은 식민지 과거의 영향으로부터 고통을 겪었을 뿐 아니라 착취와 지배의 형태를 띈 신식민지주의의 희생자가 된 것이 밝혀졌는데, 이는 선진국, TNC, 세계은행, IMF 등이 통치 엘리트들과 공모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쿠알라 룸푸르에서 기독교 연구위원회에 의해 수행된 “다른 종교 사람들과의 교제”에 관한 1980년 YMCA 세미나는 YMCA의 종교간 관계 분야에서의 선구적인 활동을 새로운 단계로 이끌었다. 다른 종교인들과의 대화를 위해 YMCA는 독특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 알려졌다. 제도적인 교회의 구속이 없었고 또한 다른 종교와의 협동의 전통 그리고 다른 종교에 속하는 많은 회원들 때문에 YMCA는 상호교류의 추진력을 주는데 남 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 “대화”를 “교제”로 대체한 것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대화”는 서로 서로의 기본적인 헌신노력을 살피고 문제에 대한 신학적, 철학적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제”는 사람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다룰 때 대등하게 적극적인 협조를 의미한다. 그 성명서는 다른 종교인과 함께 하는 개방과 교제를 향한 운동이 모든 사람을 염려하는 기독교의 이해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새로운 난제들
계속보기 http://yunheepathos.tistory.com/528
번역 :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
번역 자원봉사 : 우청숙님
201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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